[정책논평]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가 밀어올린 혐오정치의 제도화

작성자
노동당
작성일
2022-04-13 10:53
조회
1148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글자가 밀어올린 혐오정치의 제도화

-여성혐오를 멈추고 성평등 정치를 실현하는것이 국가의 임무다

1.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혐오에 편승한 정치가 가져온 최악의 결과

대선시기 윤석열이 공약으로 밀어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지금 우리는 현존하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지우는 혐오선동이 대선 공약이 되고 당선인의 차기 정부의 구상이 되고 있는 참담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인수위가 반대여론에 밀려 여성가족부 폐지 유예로 당장은 한발 물러섰지만, 새로운 여성가족부 수장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수행해야 할 임무를 떠안은 시한부 장관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젠더 갈등을 조장해 온 보수정치권은 이제 일부 세력들의 혐오선동을 국가 정책으로 승인하고,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배제를 국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여성가족부폐지 공약을 내세우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 해소 정책에 ‘공정’ 프레임을 들이민 것은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에 ‘공정’ 프레임을 내걸고 반대 입장을 내세웠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비정규직의 권리와 취준생들의 불안감을 경쟁시키고 이주민의 권리를 여성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과 경쟁시켜온 보수 기득권 세력의 소수자 혐오 프레임이 이제 온 사회를 휘감고 있다.

내로남불 민주당 정권의 5년은 진영논리를 강화시켰고, 혐오에 편승했다. 민주당은 180석의 의석을 가지고도 사회적 합의의 이름으로 소수자들의 권리를 유보시켰고, 그 과정에서 혐오세력의 담론은 성장해 왔다. 문재인 정부의 어정쩡한 집값잡기가 결국 시장의 불안을 증폭시켜 집값을 밀어올린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어정쩡한 비정규직 정책이 결국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간극만 벌려 놓았던 것처럼, 차별금지법 제정도 결단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어정쩡한 성평등정책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올려놓는 혐오정치세력의 준동을 막지 못했다.

보수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너도 나도 앞다투어 청년들의 고용불안을 군가산점제와 연동했고, 이후 여성할당제를 부정하고 여성가족부를 공격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청년세대의 취업,주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함 대신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화살을 돌리게 했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묵인하고 조장하면서 혐오의 정치에 속속 편승해갔다. 기득권과 특권층을 향하던 특권이라는 언어는 이제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했고, 차별 해소를 요구하는 권리 요구를 ‘특권’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공정’으로 이름 붙여 나가고 있다.

2. 구조적 차별은 차고 넘친다.

한국사회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2021년 성별격차지수에서 156개국 중 102위, <이코노미스트> OECD 29개국의 유리천장 지수에서 10년째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조사 대상국 평균 13.5%보다 2배 이상 큰 31.5%를 기록한 성별 임금격차는 여성의 고용, 배치, 승진 전반에서 성차별적인 노동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회의원 내 여성비율은 19%,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은 9.9%에 불과하다. 기업의 여성 중간관리자 비율은 15.6%, 상장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8.7%에 그친다. 한국사회 여성의 대표성은 정치, 행정, 공공 및 민간기업의 의사결정 영역 전반에서 터무니없이 낮다.

여성 3명 중 1명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일터를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여성을 출산하는 몸, 가사돌봄의 전담자로 보는 시선이 채용에서부터 배치, 승진, 해고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에 영향을 미친다. 2018년 금융권과 공기업에서 채용 결과를 조작해 여성지원자를 탈락시킨 것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여성노동자 중 300명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비율은 9.6%에 불과하고, 여성노동자의 22%는 근로기준법조차 예외적용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코로나19 시기 돌봄 사유로 인한 일자리를 조정하거나 일을 중단한 것은 주로 여성이었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상징하는 M자형 곡선은 출산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성차별적 노동시장을 여실히 증명한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93.5%,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81.4%가 여성인 사회에서 일상의 공포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은 여성의 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취약한 여성의 위치를 분명히 보여준다.

“구조적 차별은 없다.”면서 가부장적 자본주의사회의 차별적 구조 자체를 부정하는 윤석열 당선인의 관점은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이며 몰성적이다. 구조적 차별을 지우면 모든 결과는 개인의 책임과 능력의 문제가 된다. 성별 임금격차와 유리천장의 문제는 여성 개인의 능력의 문제가 되고, 여성에게 집중된 육아휴직과 가족돌봄은 여성의 선택의 문제가 되며, 성폭력문제는 일부 남성들의 일탈의 문제가 된다. 여성고용차별, 가사돌봄의 여성전담, 재생산권리 침해, 성폭력문제 등 구조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해결 의지는 불필요한 것이 된다. 결국 구조적 문제는 은폐되고, 차별은 강화되며 구조적 차별에 대한 인식은 흐릿해진다.

여성가족부가 “역사적 소명이 다하지 않았느냐”는 윤석열 당선인의 인식과는 사뭇 다르게도 성평등 전담부처 설치는 국제적 상식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성평등 추진기구를 설치한 국가는 194개국이고 이중 한국과 같이 독립부처 형태로 설치한 국가만 해도 160개국에 이른다. 영국의 [여성과 평등부], 프랑스의 [성평등·다양성· 기회균등부], 캐나다의 [여성과 성평등부] 등 많은 국가에서 성평등 전담부처를 통해 성평등 정책 추진, 차별 시정, 여성고용평등 정책을 수행한다.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의 양상을 살피고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고 드러내야 한다. 국가정책이 젠더관점에서 수행되고 있는지 평가하고, 관련 정책과 제도를 점검하고 법안을 발의하고 시정 권한을 가지는 컨트롤 타워는 필수적이다

3. 여성을 ‘가족’과 분리된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라.

인수위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가칭 ‘미래가족부’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신설되는 부서는 ‘가족’과 ‘인구’ 관련 업무를 중점적으로 맡게 될 것이라고 누차 밝혀 왔다. 지금은 비록 여가부 폐지를 유예하는 입장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향후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여성’을 쏙 뺀 대체조직을 구상하고 ‘저출산’을 중심으로 한 ‘인구/가족’ 정책에 주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철저히 여성을 임신·출산·양육의 전담자로 보는 가부장적 관점이며, 여성이 가족과 분리된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전제를 부정하는 퇴행적 정치다.

‘여성가족부 폐지’ 프레임은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권한, 한계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가로막는다. 현재의 여성가족부 역시 ‘여성’과 ‘가족’을 엮어 여성의 기존 성역할을 강화하는 범주로 구성되어왔다.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한 이래, 2005년 참여정부 때 영유아보육업무를 이관받아 여성가족부로 개편, 2010년 가족업무와 청소년 업무를 추가 이관받아 현재의 여성가족부에 이르고 있다.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한 초미니 부처, 예산의 80%가 가족·청소년 정책으로 사용되고 단 7%만이 여성정책에 할당되는 현실이 현재의 성평등 전담부처가 처해 있는 위치다. 여성가족부 스스로도 폐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드러내기보다, 가족과 아동 청소년 업무의 강조, 균형과 조화를 내세운 양성평등의 논리로 대응하는 데 급급했다. 국가는 20여년간 여성관련 부처를 운영하면서 여전히도 여성을 출산·육아를 담당하는 존재, 가족과 연관지을 때만 의미 있는 존재로 보고, 가족과 분리된 개인으로서의 여성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을 독립적 주체로 인정하는 것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원인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가부장제와 결합한 자본주의는 여성의 성과 출산을 통제해 인구 재생산의 의무를 지우고 모성을 자연화하면서 가사/돌봄노동을 전담하게 했다. 여성의 성역할을 가족에 가두고 재생산노동의 가치를 폄훼하면서 생산영역에서도 여성의 노동가치를 저평가했다. 여성의 성을 대상화하고 남성의 성욕만을 자연화해 성폭력에 관대한 법제도와 관행을 만들고,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가족이데올로기를 강제하면서 체제를 유지해왔다.

여성가족부 폐지 논쟁은 여성가족부 존치 여부를 넘어서서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드러내고, 국가의 책임있는 역할을 촉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가족부는 ‘성’을 이유로 하는 일체의 차별과 폭력, 편견을 해소하고 실질적 평등과 해방을 도모하기 위한 역할로 개편 강화되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여성’ 뿐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평등조치를 포함한 젠더평등 정책을 실질적으로 펼쳐나갈 성평등 전담부처로 설 수 있도록 그 역할과 권한에 대한 치열한 논의와 이를 위한 운동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2년 4월 13일
노동당 사회운동위원회 여성사업팀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