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에너지값 폭등,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민주적·생태적 공공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성자
노동당
작성일
2023-03-10 10:18
조회
1247

에너지값 폭등,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민주적·생태적 공공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3년 연초 최대의 화젯거리는 단연 난방비 폭등이었다. 올해 1월 기준 가정 난방비가 1년 사이 34% 올랐으며, 도시가스 요금과 전기 요금은 작년 대비 각각 36.2%, 29.5% 상승했다. 연료 물가 전반으로 볼 때 외환위기 이후 최다 상승폭이며, 특히 전기 요금의 경우 42년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기록적인 에너지 요금 상승에 올 겨울 강력했던 한파가 맞물려 가계의 에너지 요금 부담이 극심한 상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추가적인 에너지 요금 인상의 가능성이 있어 저소득층·취약계층의 에너지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정부는 상반기 에너지 요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겨울 에너지 요금을 인상하며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에 지난 정권에서 에너지 요금을 인상하지 않아 ‘난방비 폭탄’이 터졌다‘고 주장하는 것에 알 수 있듯이, 윤석열 정부는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기후운동 일각에서도 에너지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에너지 소비를 지금보다 줄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요금을 인상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가격을 인상하면 소비가 줄어든다는 경제학에 근거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는 일견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의 논리’에 근거한 이러한 주장은 ‘누가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는지, 에너지 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자본주의적 시장논리를 넘어선 다른 해결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의문들을 은폐한다. 따져 물어야 한다. 정말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가?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기후위기의 책임을 역진적으로 묻는 일률적 요금 인상

에너지 위기, 그리고 기후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보자. 옥스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누적탄소배출량 중 소득 상위 10%가 전체 탄소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배출한 반면, 하위 50%의 누적탄소배출량은 전체량의 7%에 불과했다. ‘더 많이 배출·소비한 자가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상식적인 논리에 비추어봤을 때,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 역시 차등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에너지 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은 계층별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2020년 전기저널에 게재된 한국전력공사의 <주택용 전력수요의 가격탄력성 결정요인 분석>에 따르면, 가계의 소득 증가 시 전기요금의 가격탄력성은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즉, 고소득층일수록 전력가격 변동에 둔감하며, 저소득층일수록 민감하다. 에너지 요금이 인상된다고 하더라도, 에너지 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고소득층의 경우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이지 않을 것이며, 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저소득층에게로 전가된다는 뜻이다. 즉 일률적인 요금인상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역진적으로 묻는다는 점에서 문제이며, ‘모두에게 공평한’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서민에게만 고통 전가, 에너지 자본은 노다지

작금의 에너지 위기, 서민들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지만 누군가에겐 이윤을 뽑아낼 기회이다. 2005년 천연가스 수입이 민간 시장에 개방된 이후, 전체 가스 수입량 중 민간 직수입 비중이 최근 3개년 20%까지 상승한 상황이다. 이렇듯 전체 가스 수급 중 적지 않은 부분을 민간 직수입분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공기업인 가스공사와는 달리 민간 직수입자들은 비축의무가 없어 시장 상황에 따라 수입·비축분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가스 가격이 쌀 때 대량으로 구매하고, 비쌀 때 대량으로 처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에너지 자본의 가스 매매는 에너지 공급 안정성에 타격을 주며, 이는 고스란히 공공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실제로, 국내 정유 4사는 2022년 1분기 기준으로만 해도 12조가 넘는 흑자를 기록했으며, 기본급의 수 배에서 십수 배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등 그야말로 ‘노다지’를 캤다. 10대 대기업들은 최근 5년간 4조 2천억 원에 이르는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받았다. 한술 더 떠, 윤석열 정부는 주택용 가스요금 인상과 동시기에 산업용 가스요금을 대폭 인하했다. 국제유가와 환율 인하로 천연가스 원료비가 내려감에 따라 산업용 가스요금을 인하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인데, 가정용에는 적용되지 않고 산업용에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는 전형적인 ‘재벌 퍼주기’이다. 에너지 위기를 틈타 자본의 이익과 공공의 부담을 맞바꾼 것이다.

민간에 개방된 에너지 시장이 에너지 위기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이며, 민간 에너지 자본이 공공 영역을 착취해 이윤을 올리고 있음이 명약관화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노무현 정부부터 추진된 역대정부의 에너지 민영화 기조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가스공사와 한전의 ‘미수금’과 ‘적자’를 지속적으로 문제삼는 등 ‘민영화 근거 만들기’를 계속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 이후 각국이 민영화된 에너지 부문을 재국유화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고 있다.

에너지 자본에게 책임을 묻고, 공공에너지체제를 만들어야

정치권 일각에서도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흑자를 올린 기업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거두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에너지 자본의 책임을 묻고, 서민들의 에너지 요금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주장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장기적 에너지 위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간에 개방된 에너지 시장 구조를 그대로 두고 세금만 부과하자는 방안은 ‘언 발에 오줌누기’일 수 있다.

에너지 위기의 해결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자원의 ‘공공재’로서의 성격에 주목해야 한다. 일정 수준의 에너지 소비는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재이며, 존엄과 직결된 필수재의 제공은 정부와 공공부문의 책무이다. 즉 모든 이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에너지 기본권’이 국가와 사회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정부는 에너지 원가 상승에 대한 부담을 오로지 서민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서민의 고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가정용 에너지 요금 인상이 아닌, 산업용 에너지 요금 인상으로 재벌퍼주기를 멈추어야 한다. 가스공사와 한국전력 등 에너지 공기업 적자에 대해 재정지원을 통해 에너지 기본권 실현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에너지값 폭등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에너지 기업에 대한 높은 과세를 통해 이윤을 환수해야 하며 에너지 민영화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가스 민간 직수입 금지’와 ‘민자발전소 국·공유화’ 조치를 통해 민간에 개방된 에너지 시장을 공공의 영역으로 가져와, ‘국가책임 공공에너지 체계’를 구축해 에너지 기본권을 실현해야 한다.

삼중의 에너지 위기 해결책,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민주적·생태적 공공경제로의 전환!

글로벌 에너지 위기의 시발점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지목하곤 한다. 전세계적 에너지 수급 차질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틀린 분석은 아니지만,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전 세계적 에너지 위기가 터진 상황 자체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한국 사회에서 서로 연결된 세 가지의 문제로 드러난다. ‘높은 에너지 수요’와 ‘낮은 에너지 자립도’,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지체’이다. 한국은 세계 8위의 에너지 소비국이나,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93%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 자립도는 현저히 낮다. 에너지 전환의 지체로 인한 화석연료체계의 극복이 요원하다.

세계 8위라는 한국의 ‘높은 에너지 수요’를 보자. 2021년 기준 산업부문 에너지사용량은 14억 8천만 석유환산톤(toe)으로, 전체 최종에너지 사용량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높은 에너지 수요’는 자본의 높은 에너지 소비와 직결되어 있고, 자본의 높은 에너지 소비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모순인 과잉생산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목적은 ‘필요의 충족’이 아닌 ‘이윤의 극대화’이며, 이윤 극대화를 위한 자본간 경쟁 과정에서 사회적 수요 이상의 과잉생산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생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므로, 실제 사회적으로 필요한 양 이상의 에너지가 생산 과정에 투입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이윤을 위한 과잉생산체제에서 사회적 필요에 따른 생산체제로, 자본을 위한 경제에서 모든이의 존엄한 삶과 민주적 결정권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로 한국경제를 바꿔야 함을 말해준다. 바로 ‘자본을 위한 경제에서 만인을 위한 민주적 공공경제로의 전환’이다.

한국의 매우 낮은 에너지 자립도는 매우 낮은 재생에너지 비율과 연관된다. 2022년 한전 집계에 따르면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7.5%밖에 안 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평균의 1/4 수준에 그친다. 바이오에너지와 폐기물같이 전력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을 제외하면, 실제 비중은 4.7%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풍력 에너지의 경우 민간자본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민삶과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본의 새로운 돈벌이 영역이 되고 있다.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입에 의존하는 화석연료 체제를 극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체제로의 전환에 미온적이다. 석탁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고, ‘녹색 에너지’라는 궤변을 덧붙여가며 핵발전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마련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30.2% 목표도 턱없이 부족한데 이마저도 21.6%로 끌어내리고 있다. 노골적인 친자본 정권답게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시하면서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의존한 성장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화석발전을 중심축으로 핵발전을 보조축으로 유지되는 현 한국의 에너지체제는 자본주의와 화석연료체제의 결합물인 ‘기후위기’를 심화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에너지값 폭등, 낮은 에너지 자립도, 기후위기라는 3중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적·공공적·생태적인 에너지 전환, 즉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더불어 ‘이윤이 아닌 인간, 경쟁이 아닌 연대, 멸종이 아닌 생명!’이라는 현 인류의 시대정신을 현실화해야 한다. 자본과 이윤을 위한 생산시스템을 모든이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민주적·생태적 공공경제’로 경제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에너지값 폭등 서민 전가 반대-에너지 공기업 재정 지원-에너지 기본권 실현! 에너지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수-에너지 산업 공영화(국·공기업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민주적·생태적 공공경제로의 전환!’ 이것이 현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근본적 대안이다.

자본주의 넘어 지속 가능한 한국 사회와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동당은 자본과 정권에 맞서 싸우며 이 대안을 노동자·민중과 함께 구현해나갈 것이다.

2023.3.10

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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