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위원회 논평] 5월 가정의 달, ‘상호돌봄’과 ‘사회적 돌봄’을 생각해 볼 때

작성자
노동당
작성일
2023-05-04 15:47
조회
1346


5월 가정의 달, ‘상호돌봄’과 ‘사회적 돌봄’을 생각해 볼 때


5월은 이른바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부부의 날(21일)이 연달아 있다. 15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가정의 날’이기도 하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효, 부부간의 사랑과 화합, 가정이 갖는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 등이 강조되는 달이다.

하지만, 각종 시설에서 지내며 마땅히 누려야만 할 사회적 관심과 애정에서 배제된 어린이들, 그런 시설이나마 18세를 맞으면 제대로 된 준비없이 떠나야만 하는 청소년들, 단지 가족관계부 안에서만 존재하는 자식으로 인해 사회적 보호에서 배제된 부모들, 하나의 가정을 꾸리고 서로 아끼고 돌보며 살아가지만 가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부부들과 비혼부부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생각하는 그 좁은 가정의 범위와 가정의 역할에 대한 강조, 각 기념일에 넘쳐나는 말의 성찬에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가정 안의 애정과 화합이 누군가의 희생과 위계에 기초한 것이라면, 이것은 사랑이란 이름에 가리워진 억압이 된다. 가정이 애정과 보살핌의 공간이 될 수 없는 조건이면, 가정은 애정의 공간이 아닌 비참과 폭력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왜 그런가?

사랑, 애정, 화합은 모두 ‘돌봄’을 전제로 한다. 어린이의 성장, 부모와 노인 보살핌, 가정생활의 유지는 ‘돌봄노동’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돌봄’과 뗄 수 없이 살아간다. 태어난 후, 병이 들어 아플 때, 장애가 생겼을 때, 노인이 되었을 때, 죽기 전에, 그리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가사노동을 포함한 돌봄노동이 필요하다. 이렇듯 돌봄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이 책임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즉 우리는 언제나 돌봄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고 제공자가 되어야 하는 ‘상호돌봄’ 관계를 맺어야 한다. 토미 드 파올가가 만든 어린이 그림책 ‘오른발 왼발’에서, 소년이 커나갈 때 할아버지가 ‘오른발 왼발’ 하며 손자에게 걸음마를 가르쳤듯이, 할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리자 이제는 손자가 ‘오른발 왼발’하며 할아버지의 재활을 돕은 것처럼 말이다. ‘상호돌봄’은 돌봄노동이 특정 성이나 계층에게, 그리고 개인이나 가족에게만 그 책임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가 돌봄을 책임지는 ‘사회적 돌봄’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상호 돌봄’, ‘사회적 돌봄’과는 거리가 멀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첫째, 돌봄노동의 성별화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성별분업구조와 성별 위계화는 돌봄노동의 담당자로 여성을 호명해왔다. 그 결과 가정 안에서 여성의 무급·독박돌봄은 당연한 것으로, 임노동 영역에서의 남성의 생산노동에 비해 부차적이거나 가치없는 노동으로 여겨져왔다. 신자유주의 시대 들어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무너져 양벌이 가정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위계화는 여전히 작동하여, 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둘째, 개인과 가족에게 돌봄이 떠맡겨져 있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비극적인 간병살인, 노인빈곤과 고독사, 입원환자가 생길 때 발생하는 간병비 부담, 양벌이 가정에서 생기는 어린이 돌봄공백,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 등은 모두 가족(개인)에게 짐지워진 돌봄이 낳은 문제들이다.

셋째, 돌봄의 시장화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정책으로 그동안 가족에게 맡겨진 돌봄이 시장주의적 방식으로 사회화돼, 돌봄이 하나의 산업영역(사회서비스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 또는 지자체 같은 공공부문에서 직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정부는 재정지원만 하고 서비스기관 설립과 운영은 대부분 개인영리사업자(민간)에게 맡기져 있다. 그 결과 민간돌봄기관의 수익창출을 위한 불법·편법행위, 질낮은 서비스 및 보편적인 돌봄서비스 공급의 부재,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불안정고용, 저임금, 무권리)이라는 문제를 낳고 있다. 또 사회서비스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대부분이 중년여성노동자로 채워지면서 가정 밖에서도 돌봄노동의 가치 저하와 성별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떠 “민간 주도의 사회서비스 고도화” 운운하며, 요양시설은 이미 민간이 99%를 운영하고 있는데도 대기업의 진출까지 꾀하면서 돌봄의 시장화를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돌봄영역은 모든 이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복지 영역이 아닌,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투자처가 되었다.

결국 한국사회의 돌봄은 ‘성별화된 돌봄노동, 무급·저임금 돌봄노동, 가족(개인)에게 짐지워진 돌봄, 시장화(상품화)된 돌봄’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자본축적을 위한 노동력 재생산에서 돌봄노동이 필수불가결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자본주의는 성별분업구조를 활용해 여성노동을 무상(또는 저임금)으로 착취·수탈하면서 작동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서비스산업 시장화(활성화) 정책으로 뒤를 밀어주면서, 자본은 돌봄영역을 자신의 새로운 이윤창출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 돌봄체계는 바로 ‘가부장적 자본주의’인 한국사회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평생에 걸쳐 양질의 돌봄을 사회(국가)로부터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것으로, 연대적 상호돌봄의 파괴로, 돌봄의 위기로 귀결되고 있다.

이제, 가정(개인)과 시장에 맡겨진 돌봄을 끝내야 한다. 모든 사회구성원의 필요에 따른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고 제공하는 돌봄체계로 바꿔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보편적 권리를 누리며 평등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누려야 한다. 돌봄의 성별화를 끝내고,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인정를 이뤄내며 상호 돌봄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현 돌봄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자, 한국자본주의를 넘어 연대와 협력이 숨쉬는 사회로 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강조되는 가치인 사랑, 애정, 화합도 이런 사회로 나아갈 때 온전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5월 4일

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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