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등잔 밑의 빈곤을 보라

작성자
노동당
작성일
2025-05-29 13:52
조회
2013


등잔 밑의 빈곤을 보라

– 사각지대 없는 사회를 위해 투쟁하자


익산에서 생활고를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인 두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먼저 죽은 20대 딸의 시신과 약 20일을 같이 보낸 60대의 어머니도 생활비와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생을 마감했다.

원래 큰딸까지 세 모녀가 생계‧의료‧주거급여를 받고 있었지만, 큰딸이 지난해 1월 취업을 하며 생계‧의료급여가 끊어졌다. 지자체에서는 큰딸과 따로 살면 수급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현실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상태에서 취업한다고 바로 월세 집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 큰딸은 1년 후 결혼해 분가를 했고, 그때부터는 다시 수급을 받을 수 있었으나 신청을 하지 못해 받지 못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겨졌던 어머니와 남겨진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선정기준 자체도 낮고 까다롭지만, ‘신청주의’와 부양의무자기준이 사각지대를 더욱 넓히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어려운 사람이 지자체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가구 안에서 소득이 발생하면 깎이거나 받지 못하게 되는 급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개인에게 부양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닌, 국가주도 복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은 주거급여 뿐만 아니라, 주거에 대한 지원을 만들면 일제히 집세도 같이 올라가는 사회다.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어 누구는 수백 채의 집을 가지고 누구는 관짝 같은 방에 몸을 누인다. 어떻게든 집세를 줄여보고자 전세 집에 들어간 사람들이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어 생을 마감한다. 곰팡이가 피고 비가 오면 물이 새는 반지하에서 실제로 사람이 병과 재해로 죽고 있다. 실내에서 물이 얼어버리는 쪽방에 대각선으로 누워 자는 사람이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는 반지하 소멸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집주인들에게서 매입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국토부는 동자동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으로의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4년째 지구 지정조차 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공공주택을 늘리고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 살고, 돈 때문에 먹지 못하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해서 초래되는 죽음이 존재한다. 의식주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불안정노동으로 내몰린다.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조차 힘들어서 통계에 드러나지 않고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길거리 위에서의 죽음이 있다.

21세기의 빈곤은 주거지역과 한참 떨어진 지역공단과 물류센터의 허브에 있다. 콜센터, 폰가게, 식당 주방에 있다. 2교대와 3교대 근무에, 조조할인 시간에 교통카드를 찍고 2시간을 출근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역버스에 있다. 평생을 일하다 은퇴하고도 돈이 없어 재취직한,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경비실 안에, 하루 종일 리어카에 주워 담는 파지 사이에 있다. 노동해도 가난한, 혹은 노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겨우 몸을 누이는 쪽방촌과 고시원, 반지하, 성매매집결지에 있다.

이 모든 것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빈곤 때문에 이렇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직업이나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고된 노동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노동이든 존엄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며, 빈곤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누구나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사회, 아프면 병에 대한 걱정만 하면서 치료 받을 수 있는 사회, 노동당은 그런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노동당은 모든 사람이 사회적 안전, 기회, 참여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보편적 기본서비스’를 정책으로 제안한다. 주거, 의료, 돌봄 등을 필요에 따라 적용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 누구나 방이 아닌 집에서 살 수 있는 사회로 가자. 돈이 없어도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사각지대가 없는 사회로 나아가자. 궁극적으로 빈곤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회로 가자. 가자, 평등으로.


2025.5.29.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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