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라인, 수유부 라인 들어 보셨나요?

작성자
서울특별시당
작성일
2021-11-10 18:38
조회
645


임산부 라인, 수유부 라인 들어 보셨나요?


김은형/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산연지회



 마산 수출자유지역이라는 곳을 들은 적이 있나요? 수출자유지역에는 일본계 기업이 대다수 있습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큰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지요. 저는 일본 산켄전기에서 100퍼센트 출자하여 만든 자회사 한국산연에 1990년 입사했습니다.


 공장에는 이미 한국노총 소속의 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다른 공장과 달리 시설은 모두 깨끗하였고 임금도 제법 높은 편이었습니다. 복지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현장 생활은 참으로 힘겨웠습니다. 잔업, 특근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고, 법적으로 보장된 연월차, 생리휴가는 그냥 종이에 적힌 글자였을 뿐이었습니다. 아파서 월차나 생리휴가를 쓰면 집까지 리다(반장)가 찾아와서 강제로 출근을 시키기도 하고, 휴가를 쓴 다음 날에는 내가 일하는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큰 공장 안에서 두 개의 컨베이어 라인이 마주 보고 돌아가고 현장 노동자들은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마주 보고 라인 작업을 했습니다. 매일, 매주, 매달, 생산 실적을 비교하여 회식 등으로 보란 듯이 차별 대우를 하였습니다. 전체가 모인 곳에서 생산 물량을 못 내는 사람들을 향해 ‘공짜 월급을 받는 자, 회사를 좀 먹는 자'라는 등 인신공격까지 서슴없이 하였습니다.

 라인에서 일하다가 생리통이 심해서 진통제 20알을 넘게 먹으며 일하다 쓰러지고, 만삭에 일하다 양수가 터져 구급차에 실려 가는 동료들을 보았습니다. 기존 노동조합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조합으로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의 동료들을 규합하여 노동조합 민주화 추진위를 조직하고, 저는 대의원에 출마를 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활발히 하였고 노동조합 위원장에 당선되었습니다.

 위원장이 되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라인별, 부서별, 남녀 조합원 간담회였습니다. 간담회의 주요 내용은 현장에서 가장 힘든 부분과 가장 바뀌었으면 하는 것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다음은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의 내용을 알려 주며 월차, 생리휴가를 돈이 아닌 휴가로 찾기 등 ‘권리 찾기’ 운동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현장 생활은 점점 활기를 띠었고 조합원들의 의식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간담회는 매주, 매달 중식 시간, 퇴근 이후로 이어졌고 첫 사업은 임산부 라인과 수유부 라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여성 노동자들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생기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자세히 파악하고 실제 기혼자들을 대상으로 퇴사의 이유를 알아보니 임신을 해서 일할 수 있는 공정이 한정되어 있고, 대부분 어려운 곳에서 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일찍 출근할 때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고, 수유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습니다. 사측과의 교섭을 진행하기보다 기혼과 미혼, 남과 여, 사무직과 현장직 사이에 이해관계가 다 다르기에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진지한 간담회와 설문지, 대안 등을 둘러싸고 많은 토론 끝에 방향이 잡혀 갔습니다. 결국 조합원들과 사원들의 동의를 받고 세상에 없는 임산부 라인과 수유부 라인이 생기게 되었고, 여성 조합원들이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회사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노총으로 가입하자 사정은 달리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주총에서 ‘한국 공장을 철수하고 인도네시아로 이전 계획’을 일방적으로 세우고 한국 노동자에게 통보도 없이 진행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1년 반 넘도록 공장을 점거하는 등 농성을 이어 가며 투쟁에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공장 생활’을 꿈꾸며 투쟁하였습니다. 노동자가 가장 많은 시간 동안 있는 곳은 집이 아니라 공장이기에 공장 생활이 행복해야 노동자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투쟁으로 현장을 바꿔 나갔습니다.


2014년 겨울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전·현직 간부들이 함께한 소모임. 사진 제공_ 한국산연지회


 긴 투쟁 끝에 많은 모범 사례도 만들었지요. 전 조합원의 간부화를 위해 노동조합 부서별로 전체 편재하여 부서별 회의와 활동을 전 조합원이 하였고 매주 대의원 선거구별 회의를 통해 조합원 전체가 조합 활동을 함께했습니다. 매달 1회 1시간 이상 연 17시간 조합원 교육과 매주 부서별, 대의원 선거구 간담회 등을 하며 전체 조합원을 이끌어 가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주인인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6년 정도 우리는 출근이 기대되고 행복했지요.

 하지만 일본 산켄전기 자본의 생각을 달랐습니다. 민주노총으로 전환한 1995년부터 2021년 오늘까지 산켄전기 일본 자본은 25년 이상을 일방적 자본 철수 시도, 사업부 폐쇄, 구조조정, 조합원만 전원 정리해고 하였고, 우리는 1년 가까이 일본 원정 투쟁까지 벌여 원직복직 승리하였지만, 이제는 일방적으로 공장 해산, 청산(위장폐업)을 일본 본사에서 결정하며 우리를 모두 해고하고 길거리로 내몰았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하여 일본 본사를 찾아가 항의하지도 못하고 450일을 훌쩍 넘기며 천막 농성과 각종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으로 넘어가지 못하자 5년 전 정리해고 당시 일본 원정 투쟁에서 만난 일본의 노동자, 진보 활동가, 양심적인 시민들이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연대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1년 넘게 우리와 함께 일본의 산켄전기 앞에서 항의, 규탄 투쟁을 하고 있으며 우리와 인터넷으로 투쟁 발언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산켄전기의 허위, 폭력 신고로 일본의 연대 활동가 한 분이 구속되었습니다. 사측에서 여러 번 위로금을 제시하였지만 우리는 우리의 투쟁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구속된 일본 동지 ‘오자와’ 선배님의 석방과 공장으로 복직을 꿈꾸며 투쟁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2017년 7월 전 조합원 원직복직 승리 후 일본의 연대 단체들이 도쿄에서 승리 보고 대회를 열어주었다. 사진 제공_ 한국산연지회


 ‘공장이 해산, 청산하여 폐업되었는데 어떻게 어디로 복직 하느냐’, ‘위로금 더 받으려고 투쟁하는 것 아니냐’, ‘많이 싸웠으니 이제 그만하면 안 되냐’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우리만 제거하고 다시 공장을 세운다는 것을. 또한 한국 내에는 일본 산켄전기에서 자본 100퍼센트를 투자해 인수한 기업도 있고, 합작회사도 존재합니다. 우리의 복직 투쟁은 정당하고, 우리는 우리가 ‘출근하는 것이 행복한 공장’으로 만들기 위해 꿈을 꾸며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행복한 공장 생활을 꿈꾸는 것이 헛된 꿈일까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꿈과 투쟁을, 우리의 복직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 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폐업 철회 투쟁 200일 행사에서. 왼쪽이 글쓴이 김은형 씨. 사진 제공_ 한국산연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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