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빠는 왜 그렇게 바빠?

작성자
서울특별시당
작성일
2021-09-13 16:59
조회
40

아빠, 아빠는 왜 그렇게 바빠?


김용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한국조에티스지회


 우리 아빠는 노동조합 지회장이다. 예전에는 수의사였다고 한다. 아빠는 지금도 수의사라고 하지만 난 아빠가 동물을 치료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빠도 처음에 그냥 회사원이었는데 노조 지회장을 하면서는 나랑 잘 놀지도 못하고, 엄청 바쁘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노조는 교통에 방해되는 나쁜 놈들이라고 하는 걸 들으니 누가 나한테 아빠 뭐 하시냐고 물어보면 그냥 수의사라고 말하고 만다.

 2019년 6월부터 아빠는 전보다 훨씬 더 더 바빠졌다. 아빠는 회사가 잘못되어 가고 있고, 싸워야 한다고 했다.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고, 들어와서는 핸드폰 붙잡고 무언가를 계속 보냈다. 저녁 먹고는 컴퓨터로 작업하고, 프린트하며 밤새 일했다. 아빠가 나간 아침, 나는 프린터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조에티스 경과보고'. 

 

‘조에티스’는 좋은 회사였다고 한다. 원래는 코로나백신으로 유명한 ‘화이자’였는데, 동물약품 부서만 따로 조에티스가 되었다고 했다. 동물약품에서는 세계 1등이고, 미국 100대 기업에 들어가고,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계속 뽑히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까진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일하기 좋은 회사, 1등 회사였다고 했다. 

 그런데 2018년 사장이 바뀌고, 인사부라는 데가 바뀌면서 갑자기 노조원은 모두 승진을 안 시키고, 괴롭히고, 18명도 넘게 벌을 주었다고 한다. 회사를 속여 돈을 빼돌린 직원이나 잘못해서 회사에 벌금을 받게 한 직원은 노조원이 아니라 벌도 안 주었다고 한다. 형이랑 싸워도 나만 혼나면 정말 짜증나는데, 아빠가 정말 화가 날 거 같았다. 

 어떤 팀장은 새로 온 직원에게 노조랑 놀지도 못하게 하고, 자기 말 안 들으면 짜른다고 협박도 하면서 부려 먹었단다. 어느 날은 갑자기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고 괴롭혀서 해고까지 했다고 한다. 타노스 같은 사람이 진짜 있었다니…. 


2019년 6월 28일 조에티스는 직장폐쇄를 하고 경비용역을 동원해 조합원의 출근을 막았다. 사진 제공_ 한국조에티스지회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사장님한테 직장 내 괴롭힘을 한 사람을 처벌하고, 모든 직원을 공평하게 대해 달라고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니까 그 다음 날 회사 문을 잠그고 노조원만 못 들어오게 ‘직장폐쇄’라는 걸 했다고 한다. 2019년 서울에서 직장폐쇄를 한 회사는 아빠네 회사뿐이라고 한다. 노조는 굽히지 않고, 시위를 했다고 한다. 서류 속 사진엔 여러 명이 길에서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어떤 날은 아빠 혼자 서 있었고, 눈 오는 추운 날 다른 이모들과 서 있는 사진을 보는데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우리 아빠가 왜 길에…. ㅠㅠ 


 2020년 6월 비오는 날 '아들에게 아빠의 징계통지서를 보내는 회사'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조합원들이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한국조에티스지회


 2020년 4월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렸다. 나랑 형아는 택배인 줄 알고 뛰어나갔다. 우체부 아저씨였다.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하고 큰 봉투를 주었다. “내용증명?” 궁금해서 형아랑 나는 뭔지 살짝 뜯어보기로 했다. ‘해고통지서’.
“귀하는 … 회사의 정당한 지시를 위반 … 허위사실 유포, 명예 훼손, 규칙 위반, 명령 불성실 이행, 고의 변조 … 직장 내 괴롭힘 … 2020년 4월 10일자로 징계 해고하기로 결정함” 

 형아랑 나는 얼른 종이를 봉투에 넣고, 풀로 붙인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혼날 일을 한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려 고막이 터질 것 같았고,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우리 아빠가 잘못할 리 없다고…. 이 나쁜 놈들아…. 


 아빠는 더 바빠졌다. 이제는 주말도 없었다. 늘 나랑 재밌게 놀아 주던 아빠는 정신이 없어 보였고, 엄마도 말이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강아지 메리가 밥도 잘 안 먹고, 잘 걷지도 못하는 게 아닌가? 메리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집에 살던 강아지다. “아빠, 메리가 아픈 거 같아.” “응? 아빠가 시간 나면 한번 볼게.”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아빠는 시간이 나지 않았다. 며칠 뒤 잠든 줄 알았던 메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슬퍼 목이 아프도록 울었다. 우리는 메리를 앞산에 묻어 주었고, 아빠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돌봐 주지 못해서….” 그날 나는 아빠들도 눈물 흘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던 6월 어느 날, 아빠는 기분 좋게 술에 취해 들어왔다. 흥얼거리며 말했다. “여운아, 아빠가 이겼어. 다른 사람들이 아빠가 옳고 회사가 틀렸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아빠가 이겼다니 그냥 좋았다. 나중에 아빠 책상에는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판정서’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겼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빠는 여전히 바빴고, 정신없는 표정에 맨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캠핑도 가고 싶고, 장난감도 사야 되는데 그런 아빠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날이 선선해지던 가을, 침대에서 아빠 핸드폰을 보는데 동영상이 하나 있었다. 한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에게 마이크로 물어보았다. “조에티스는 지회장을 요주의 인물로 지목, CCTV로 감시 사찰했습니다. 답변하세요.” “저는 잘 모릅니다.” “조에티스는 경비 용역을 시켜 조합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하도록 한 바 있습니다. 인정하세요?” “확인하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다른 아줌마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모른다고만 했다. 한 아줌마가 말했다. “지회장을 감시하고 사찰하다 못해, 해고까지 한 조에티스는 정말 나쁜 회사입니다.” 한 아줌마는 강은미 국회의원이고, 다른 한 명은 조에티스 사장이었다. 감시? 사찰? 누가 아빠를 해칠까 봐 무서워졌다.


2020년 10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서 한국조에티스 이윤경 사장에게 질문하는 강은미 국회의원. 사진 제공_ 한국조에티스지회


 그로부터 얼마 후 아빠는 하루 외박을 하고 들어왔다. 밤새 협상을 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낮에 들어온 아빠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다음 날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잠만 잤다. 걱정하던 엄마는 들어가서 아빠에게 물었다. 나도 걱정돼서 문 뒤에 서 있었다. “왜 그래?” “음. 나 이제 회사 돌아가기로 했어. 그동안 고생했어.” “그럼 잘된 거 아냐?” “응, 잘된 거지…. 좋은 거지….” 하면서 아빠는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근데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엄마 아빠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뭐가 억울할까? 

 겨울, 아빠는 다시 ‘조에티스’라고 써 있는 검정 노트북과 아이패드 그리고 회사 차를 받아 왔다. 난 차가 생긴 것과 아이패드가 맘에 들었다. 오랜만에 아빠랑 같이 스노보드를 타러 갔고, 다른 것에 신경 안 쓰고, 내 보드를 붙잡고 나만 바라보며 놀아 주는 아빠가 다시 돌아와서 너무 좋았다. 물론 못 타면 짜증을 냈지만….


아빠(김용일 지회장)가 복직하자 다시 스노보드를 타러 간 아들 여운이. 사진_ 김용일


 2021년 해가 바뀌었지만 아빠는 여전히 바빴다. “아빠, 아빠는 왜 그렇게 바빠?” “아빠는 회사원 일, 노조 지회장 일 두 가지를 하니까 바쁜 거지.” “그럼 아빠도 그냥 수의사 해.” “아들, 아빠는 여기 있어야 해. 이 회사에는 아빠가 힘들 때 아빠를 지켜 준 사람들이 있어. 이제는 아빠가 그 사람들을 지켜 줘야지. 노동조합은 강자에 맞서 약자를 지키는 거니까. 그게 사장님이건 대통령이건….” “그럼 아빠는 사장님보다 강한 거야?” “그럼! 자기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거야.” 

 아빠는 여전히 바쁘고, 예전처럼 많이 놀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아빠가 좀 멋있는 거 같다.
오늘 놀이터에 가면 우리 아빠가 노조 지회장이라고 자랑이나 좀 해야겠다.


2020년 8월 김용일 지회장이 미국회사인 조에티스의 불법을 고발하기 위해 미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한국조에티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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