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기위원회의 동지들과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 : 당을 계속 사랑하고 싶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당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함께해주십시오.

작성자
사루
작성일
2022-08-03 20:38
조회
837

사회운동위원회의 사루입니다.

복잡한 심경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 일은 "이제 내 문제"라는 이영주 동지의 일성에 울컥해 목이 메었던 까닭인가 봅니다. 제가 노동당의 당원으로 있는 이상, 노동당이라는 조직, "나의 노동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저도 마찬가지로 함께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직의 공동체적 책임을 함께 지는 길은 조직 내외의 한계와 오류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의견개진으로 이뤄진다고 믿는 바, 당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I. 당기위원회의 동지들께 드리는 글
당의 기율을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하시는 당기위원 동지들께 동지애의 인사를 드리며, 다음의 사항들에 대한 요구의 말씀을 드립니다.

1. 노동당 중앙당기 제2022-05-26호 제소 각하에 대한 판단 근거를 소상히 밝혀주십시오
당에 공지된 중앙당기 제소의 건 결정문에 따르면 제소 각하의 이유는 ①제소인이 직접 피해자가 아님(1-1 사건의 경우) / ②제소인의 당권이 없음(1-2 사건의 경우)의 두 가지입니다. 그러나 피해자 대리인 동지가 공개한 자료와 당헌•당규에 근거하여 볼 때, 위 두 사유로 제소를 각하한 당기위원회의 판단에 대해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기위원회의 동지들께 이러한 판단의 근거를 소상히 밝혀주실 것을, 또한 판단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면 이를 인정하고 시정할 조치와 이러한 오류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마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① “제소인이 직접 피해자가 아니므로 제소인의 제소를 각하한다”
피해자 대리인 동지께서 공개하신 자료에 따르면, 1-1 사건의 경우 제소인인 K동지가 직접적인 피해자임이 명백한 2차 가해 사건인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또한, “제소인이 직접 피해자가 아니”라고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인 사건조사절차 역시 매우 미흡했거나 아예 없었다고 판단되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기위원회가 “제소인이 직접 피해자가 아니므로 제소인의 제소를 각하한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답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② “제소인이 당권자인 경우에만 제소가 유효하다”
당기위 결정문상의 맥락으로 볼 때, 제5호 당규 “성차별·성폭력·가정폭력 사건 처리에 관한 규정” 제3조 “본 규정은 노동당 당원들에게 적용되며 제소인이나 피제소인 어느 한 쪽만이 당원인 경우도 본 규정이 적용된다.”는 성차별·성폭력·가정폭력 사건에만 적용되며, 이에 따라 단순 언어폭력 사건인 1-2 사건의 경우 제소인이 당권자인 경우에만 제소가 유효하다고 당규를 유권해석, 이를 적용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본 사건의 성격 규정 / ▲당규의 적용 / ▲민주주의적 일반원칙과 운동사회의 상식 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 본 사건의 성격 규정
피해자 대리인 동지께서 공개하신 자료에 따르면, 1-2 사건의 경우 단순 언어폭력 사건이 아닌 질병으로 인한 장애상태에 대한 차별사건이며, 사건의 맥락을 고려하여 볼 때 성폭력사건인 원사건에 대한 2차가해로서 규정하는 것 역시 무리한 판단이 아닙니다. 제5호 당규와 제6호 당규 모두 당규의 적용범위를 가해자와 피해자 둘 중 어느 한 쪽만이 당원인 경우에도 해당 당규를 적용하게끔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제6호 당규 제4조는 차별의 원인이 장애를 포함한 2가지 이상일 경우 해당 차별행위를 제6호 당규에 따른 차별로 보아야 함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1-2 사건을 언어폭력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당규에서 규정하고 있는 바를 위배하는 판단이기도 합니다.

■ 당규의 적용
설령 1-2 사건을 언어폭력 사건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제소자가 당권자인 경우에만 제소가 유효하다는 당규 유권해석은 문제적입니다. 사건처리 일반을 규정하는 제4호 당규 “당기위원회 규정”의 그 어떤 부분에도 제소인이 당권자여야 한다는 규정은커녕 제소인의 자격을 묻는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에 소속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소속 시도당” 관련 규정 역시 제소인이 아닌 피제소인의 소속 당부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4호 당규에서 “당권”과 관련한 부분은 제소인의 자격이 아닌 징계의 종류로서 당권 정지를 규정하면서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관련 당규 그 어디에도 제소인의 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으며, 제소인의 자격 미달로 제소를 각하하는 유권해석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규정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 민주주의적 일반원칙과 운동사회의 상식
또한, 그러한 유권해석은 당규상 적절한지 아닌지의 차원과는 별개로, 민주주의적 일반원칙과 운동사회의 상식에 비추어봤을 때에도 부적절합니다. 피해자 대리인 동지의 공개질의 이후 다른 당원 동지들께서 지적하셨던 바와 같이, 제소자의 자격을 당권자로 한정하는 조치는 피해자로 하여금 조직의 해결 의지를 신뢰할 수 없게 하고 피해를 비가시화하며, 가해를 부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큽니다. 운동사회의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도, 당기위 제소와 같은 공식적 사건해결 절차의 제소 권한을 당권자, 즉 조직 내부인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조직에 대한 외부적 비판 일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조치로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극도로 폐쇄적인 조직은 오류의 시정도, 한계의 지양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우리 당이 그러한 전철을 밟아나갈 수는 없습니다.

2. 본 사건 이후 당기위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가 있었는지,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주십시오
당기위 결정문의 “1-1 사건 자체는 성차별폭력과 연관이 있”다는 서술, “1-2 사건은 언어폭력 사건”이라는 서술 등에 비추어 볼 때, 제소의 각하와는 별개로 사건의 성립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본 제소가 기각되어야 했던 사정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본 사건이 성립함을 인지•인정하였다면 징계 등 당기위 절차상의 조치 외에도 본 사건 해결과 조직문화 개선 등에 대한 일련의 노력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타 사건에 대한 당기위 결정문 일부에서 당헌•당규의 검토, 당과 당원들의 인권 감수성 확보와 평등 실현을 위한 노력, 재발방지 조치 등에 대한 당기위 차원의 특별제언이 존재하는 등 이전의 실례(實例)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 사건에 대해서는 이러한 조치들이 있었는지,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주실 것을 바랍니다.

지금껏 법정에 보냈던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숱한 탄원서들을 기억합니다.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법정인 걸 알면서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이 그것뿐이라 탄원서를 보냈던, 그리고 십중팔구는 부르주아 법정에 가졌던 일말의 기대가 무용한 것이었음을 재확인하게 되었던 무기력한 경험들을 다시금 곱씹게 됩니다. 그런 종류의 무기력감을 당 안에서도 느끼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글을 보냅니다. 당기위원 동지들의 책임감 있는 답변과 조치를 바랍니다.


II.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
강령에서 명시하고 있는 바, 우리의 당은 평등•생태•평화의 사회주의 정당이며, 사회주의의 원리를 당 안에서부터 구현해 나가는 정당입니다.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과 맞닿아 있으며,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현재 상태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평등이 상존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랐고, 사회의 차별과 배제를 내면화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당 역시 자본주의 체제 안에 위치하고 있기에, 우리 당의 그 누구도, 심지어 당 그 자체도 자본주의적 차별과 배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러한 차별과 배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지금껏 많은 폭력과 차별행위를 행해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노동당의 당원으로 남아있는 까닭은 우리의 당이 완벽한 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계와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당이기 때문이며, 당원 동지들을 신뢰하는 이유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성소수자이며,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장기복용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입니다. 자본주의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테두리 바깥에 서 있는 제게 당은 쉼터였고, 이해자였으며, 때로는 생존과 존엄을 위한 투쟁의 무기이자 동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게 쉼터이며 이해자인 당이 저와 꼭 닮은 다른 동지에게는 가슴을 찌르는 비수였다는 사실을 마주하자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과 서글픔이 몰려옵니다. 동시에 언젠가는 당이 나를 상처입히고 공격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또한 느끼게 됩니다. 이 문제는 “이제 내 싸움”이라는 이영주 동지의 말씀에 울컥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이제 저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저의 싸움이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도 당과 당원 동지들을 신뢰합니다. 이는 당이 무균실과 같이 완벽히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때로는 당에서, 또는 당원 동지들에게 상처를 입고, 어쩌면 공격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바뀌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 믿음이 옳았다는 걸 보여주시길 당원 동지들께 부탁드립니다. 여러 한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을 계속 사랑하고 싶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당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함께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2022.08.03.
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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