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36호 202108
작성자
미래에서 온 편지
작성일
2021-08-30 18:27
조회
4057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 :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
정리 : 이용규 편집위원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여의도 맞은편에 마르크스 사진이 걸린 건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상징성이 크다. 한국처럼 이렇게 이념이 통제 및 억압 당하는 경험을 가진 나라가 없다. 몇 년 전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에 방문한 적이 있다. 연구소 차원에서 매년 <아카데미 유로파>에 참가한다. EU가 주관하는 행사로, 유럽에 대해 여러가지를 배우는 2주간의 아카데미다. 맑스 생가를 방문하는 것이 아카데미 프로그램 가운데의 하나다. 매우 상징적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맑스는 유럽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인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맑스라면 아직 금기의 영역이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세계적 흐름에 뒤쳐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당에서 맑스 사진을 걸고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맑스를 혐오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상적 후진성, 퇴행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사 외벽의 빨간 걸개를 보면서 노동당이 한국 사회를 계몽시키는 사상적, 문화적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어떤가. 답답하고 우울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 코로나는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우울함을 던졌지만 중요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것을 코로나 옐로우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정상이라 알고 살아온 이 모든 것이 대단히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체제가 근본적으로 비정상적인 체제일지도 모른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슬로건은 그래서 매우 시의적절하다.


코로나의 첫 번째 경고: 사회 없는 사회

 어떤 경고를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고 있나. 우리가 가장 코로나를 통해 분명하게 인식한 것이 뭔가.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모두가 다 행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행복, 모든 사람의 안전, 모든 사람의 건강이 나의 행복, 나의 안전, 나의 건강의 전제라는 걸 배웠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경고이다. 한국 사회에는 그러한 가치가 너무 결여돼 있다. ‘더 소셜The Social’,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가 한국처럼 결여된 나라가 없다.

 한국 사회를 ‘소사이어티 윗아웃 더 소셜Society without the Social’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인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각자도생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자들의 무리다. 거의 모든 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OECD의 사회관계지수라는 것이 있다. 한 개인이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얼마나 깊은 결속을 맺고 사는가를 측정한다. 한국이 계속 꼴찌다. 평가항목 가운데 ‘타인에 대한 신뢰’는 압도적으로 꼴찌. 한국은 ‘사회’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사회다. ‘더 소셜’이라는 가치가 불온시되는 사회라고 봐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라는 어떤 곳에서는 ‘social’이란 말을 당명에 붙일까 말까를 놓고 1년 동안 고민했다. 정말 이상한 사회다. 어떤 사회가 이런가. 이를테면 독일은 이와 정 반대다. 독일에서는 ‘소셜’하지 않다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다. 독일 말로 ‘Asozialität’. 상대방에게 이러면 싸움난다! ‘인간 이하다, 미쳤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런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프랑코 벨라르디라는 이탈리아 철학자가 한국을 방문하고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사회는 이해하기 어렵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리듬의 초가속화라는 네 가지 특징이 한국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외국 철학자가 한국 사회를 이다지도 잘 볼 수 있을까 놀랐다. 한국사회의 끔찍한 측면이 그정도로 보인다는 것이겠지.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가장 강력한 경고는 그것이다. 그런 사회적이라는 가치,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코로나의 두 번째 경고: 공공 없는 공화국

 두 번째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 선거를 했다. 선거가 무엇인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개선하는 일종의 과정이다.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와 저소득층의 위기다.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생존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진 적이 있나? 없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었나? 민주당이라는 정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도 없다. 이 정당을 견제하는 정당은 더 없다. 이것이 쟁점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존재가 없고 취약하기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나라 구실을 못하는 나라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세월호를 두고 ‘이게 나라냐’라고 했다. 지금은 더하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

 ‘리퍼블릭 윗아웃 더 퍼블릭republic without the public’. 공화국은 공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 그런데 공적인 가치가 없다. 이게 무슨 공화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조항은 임시정부를 만들었던 선각자들이 건국강령 1조로 넣은 것이다. 그들이 꿈꾸던 국가는 이런 게 아니었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공적인 가치가 부재한 나라다. 코로나가 이걸 너무나 분명하게 폭로해 준 것이다.

 국민들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에 공공병원이 10%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공공병원 비율이 가장 적은 나라다. 심지어 미국도 공공병상이 20%다. 초기에 대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병상이 없어서였다. 어떻게 된 것인가? 공공병상이 없었다. 대구 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에 있는 빅5 병원(삼성, 아산, 세브란스, 카톨릭, 서울대) 가운데, 국립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빅4에서 내놓은 병상은 단 7개였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해내지 않고 완전히 시장에 내맡긴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에서 고등교육의 공교육 비중이 제일 낮다. 우리 대학의 87%가 사립대학이다. 이런 나라가 없다. 실제로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자 독일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코로나 대응 자금을 재정 편성한 것인다. 국가 재정의 3분의 1을 편성했다. 1조 유로, 우리 돈 1350조였다. 이를 위해 독일 정부가 약 20% 이상의 부채를 졌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와 손해, 부담의 90%까지 국가가 감당했다. 임대료, 인건비 따위의 90%를 감당해줬다. 우리는 4차 긴급 재난지원금으로 20조를 편성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착한 임대료 운동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9시 뉴스 끝나고 이웃돕기 성금을 모은다. 군사독재 시절에 하던 일들이다. 신파극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잡아대는 퇴행적 행동. 돌아다니며 계속 비판했는데 지금 없어졌다. 이건 무능인가 직무유기인가. 그러다 보니 재경부 장관이라는 자가, 국가부채가 45% 수준이라며 ’재정이 건실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선진국 평균 국가부채는 135%다. 그 대신 우리의 가계부채가 108%다. 국가부채는 가장 낮고 개인부채는 가장 높은 게 대한민국이다. 이 위기에서 국가는 아무것도 안하고 개인이 은행빚으로 살아남고 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공적 가치가 아니라 사적 이해밖에 없는 공동체다. 공공의 책임, 공공의 가치를 국가가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다.


코로나의 세 번째 경고: 생태 없는 경제

 세 번째는 ‘이코노미 윗아웃 이콜로지economy without ecology’.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나. 경제가 생태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생태적인 상상력이 완전히 없다. 전세계에서 가장 생태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연구소 연구원이 재작년 베를린을 다녀와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취리히에 있는 친구를 베를린에서 만났다는 거다. 취리히에서 베를린에 오는데 기차로 8시간, 요금은 150유로가 든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이고 50유로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취리히에 사는 친구가 기차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 이해가 안 된다, 시간도 요금도 더한데. 그런데 그 취리히 친구는 베를린으로 간 친구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생태적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유럽에서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유럽에서 이미 ‘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e’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비행기 타는데 대한 부끄러움이다. 기본적인 생태적 관점을 갖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없다는 게 유럽은 상식이다. 유럽은 그러한 인식 때문에 독일인의 82%가 생태 보호를 위해 소비를 포기할 수 있다, 는 명제에 동의한다. 소비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소비는 지금의 욕망 때문에 미래 생태를 포기하는 것이니까.

 한국은 어떤가. 독일 아이들의 대다수가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데, 한국은 ‘소비하는데 일자리가 생긴다, 경제가 돌아간다, 국가가 부강하다’고 한다. 경제논리의 전일적 지배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 유럽에서는 ‘21세기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인류가 최후의 인류가 될 것이란 것. 나는 살만큼 살았지만 내 자식, 손주는 어쩌면 마지막 인류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다행히 마지막 인류가 아니더라도, 이 파괴 속에서 대단히 고통스러운 삶은 살다가 갈 것은 확실하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기후깡패’라고 불린다. 이번(2021년 4월 세계기후정상회의)에도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내놓지 못했다. 투표장에 가서 보니 ‘녹색당’이 아예 없었다. 독일에서는 9월 총선이 있을 것이다. 문명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것과는 정반대로 세상이 구성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녹색당이 제1당으로 집권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저지하자는 정당이 녹색당이다. 지금까지의 성장과 발전은 죽음으로의 성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저 녹색당은 ‘항의정당Protest Party’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수권을 논할 정도가 됐다. 놀라운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당, 사민당, 좌파당 3개 좌파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재작년 유럽의회선거를 보면, 유럽 전역에서 녹색당이 득표 2위를 했다. 작년에 있던 프랑스 지역 선거에서도 녹색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는 생태적 상상력이 도착하지 못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이 1%도 득표를 못했다. 지금의 정치지형이 매우 세계적 흐름과 유리되어 있다. (엮은이 주: ‘9월 총선’은 2021년 9월 26일 시행되는 독일 연방하원 선거를 말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 선거를 끝으로 총리직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2021년 8월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대체로 기민련/기사연(여당)이 25%,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이 각각 18~20% 가량 득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한국 사회는 함께 사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책임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태국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가치, 공공적 가치, 생태적 가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미래가 없다.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한국이란 사회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외부에 있는 외부인들, 외국 학자들에 의하면 매우 놀랍고 경탄할 만한 사회다. 본인 연구소에서 전체 컨퍼런스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배울 기회다. 한국은 많은 외국 학자들이 존경하는 나라다. 우리가 가진 존경할만한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왜 그런가? 가장 큰 까닭은 ‘민주주의’. 특히 중국, 일본 학자들에게서 그렇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 항의하는 시위 규모를 보면 정말 얼마 안 된다. 일본은 봉건, 하류 민주주의다. 역동성을 상실한 미래가 없는 나라. 중국은 어떤가. 베이징대학 교수들이 어느 순간부터 말을 조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양심적 학자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정말 한국 민주주의를 부러워한다. 시진핑 이후 중국 민주주의는 완전히 퇴행 중이다. 그러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 민주주의도 위기다. 시리아 사태로 난민들이 몰려들자 극우 정치인들이 이를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했고 이게 먹혀들었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겪었고 프랑스에선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결선투표까지 올라갔었다. 미국도 트럼프에 의해 준파시즘 국가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2016년 광화문에서 촛불을 통해 대통령을 탄핵하고 이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외국의 많은 학자들이 놀라워했다. 전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독일의 <Die Zeit>(옮긴이 주: 독일의 진보 성향 주간지)의 칼럼에서 이르길, “이제 유럽과 미국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민주주의의 시대는 저무는가 하는 상황에서 유라시아대륙 끝의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다시 타올랐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외부에서 크게 인정한다. 오히려 우리들이 우리 민주주의를 그렇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만큼 평가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수출국가다. 오늘날 아시아 독재국가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공부한다. 본인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모두 대학에서 겪었다. 주로 일본 책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공부했다. 우리가 지금 그런 모델이 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 민주주의를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4.19혁명은 ‘20세기의 제3세계 가장 위대한 민주혁명’이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그정도로 평가 못한다. 4.19는 1960년 일어나서 그 다음해 육군 소장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부정당했다.

 1979년의 부마항쟁, 1980년의 광주항쟁, 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촛불까지 이어지는데, 나는 일련의 반독재 연속혁명이라고 부른다. 군사독재의 후예까지 완전히 청산하는 과정이었다. 부마와 광주항쟁은 육군 소장 전두환에 의해 짓밟혔다. 87년 역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며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2016년 촛불 항쟁에서도, 육군 소장 조현천이라는 자가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 왜 이 자를 잡아들이지 않나. 이해하지 못하겠다. 단호하게 응징할 필요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는 육군 소장들의 반란의 역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의식이 있다면 육군 소장이라는 직위를 ‘파 버릴 줄’ 알았다. (엮은이 주: 조현천 예비역 소장은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국군기무사령관이었다. 그가 탄핵 기각 상황을 상정하고 계엄령을 공포하고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려고 했다는 기무사령부 문건이 공개된 바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외국에서 도피중이다.)

 우리의 경제성장 역시 놀랍다.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부유한지 느낀다. 매년 다르다. GDP가 작년 7위다. 그건 맞다. 한국은 엄청난 부자나라.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명을 달성한 국가)이라고 하는데, 우리를 포함해 일곱 국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한 경제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그러나 이면은 어떤가. 18년 째 자살률이 세계 1위다. 두 번 2위 했다. 자살의 내용도 안 좋다. 노인 자살률이 너무 높다. 어떤 해는 평균의 10배까지 나올 정도. 자연사를 앞둔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노인 빈곤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대체로 매년 48~52% 수준이다. 유럽은 3~5% 사이다. 이런 나라가 없다. 부산, 광주 등지에 강연을 하러 가는 일이 잦다. 오전 10시에 강연하러 가면 오전 6시에 집을 나서는데, 그 시간에 폐지 줍는 노인들이 정말 많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잘 산다는 나라에서 노인들이 폐지를 주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힘이 처지면 목숨을 끊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우울증 발병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아이들은 온 세상이 궁금하고 즐거워야 한다. 한국 아이들은 기적적으로 우울해.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그 어린 나이부터 경쟁을 시키고 지식을 주입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하다. 자산, 부동산 불평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상위 1%가 50.5%를 가지고 있다. 상위 10%가 96.4%를 가지고 있다. 하위 90%가 3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정태인 씨는 “한국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공동체다.”라고 했다. 그 말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정도로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노동시간을 보면 어떤가. 작년 독일의 노동시간이 1,300시간이다. 지금 한국 노동자들은 2,000~2,100시간이다. 5개월 더 일한다. 노동 기계라고 봐야 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떤가. 가장 심각한 주제다. 소위 산업재해 사망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산업재해가 아니라 기업살인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고 24년째 1위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4만 명이 넘게 죽었다. 일 년에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 작년에 2,400명 죽었다. 이 정부 들어서 더 늘고 있다. 이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것이 정상 상태인가. 이것은 내전이다. 자본과 노동의 내전이 일상화된 것이다.

 영국이 유럽에서 기업살인으로 가장 악명이 높다. 영국은 계속 유럽 1위였다. 이것이 너무 크게 사회적 문제가 되어 2008년에 법을 개정했는데, 산업재해법이 아니라 기업살인법(엮은이 주: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살인에 준하는 단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을 누더기 법으로 만들고, 오히려 노동자가 더 많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자식을 낳지 않는다. 출산율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인류 역사상 합계출산율 ‘1’이하가 2년 연속 지속된 적이 없는데 우리는 4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가르치는 여학생들에게 ‘아이들을 안 낳을 생각이냐’고 물으면, 전원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이유를 물으면, 이 지옥 속에 내 아이를 넣을 자신이 없다고 한다. 너무 처절한 말이다. 다른 학생들이 다 공감한다. 이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묻는다. 이렇게 훌륭한 민주주의를 하고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까지 된 나라가, 모든 국민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해놓고 있는 나라가, 지옥같은 일상을 만들어냈는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래서 주식과 가상화폐에 의존하는 카지노 자본주의에 빠져 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나.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도 되었는데 한국사회는 왜 이런가? 우리 일상은 왜 지옥으로 가나. 잘못된 정치에 그 원인이 있다.


수구-보수 과두제

 우리 삶을 규정하는 법을 만드는 이들이 여의도에 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가. 국회의원 300명 중 294명이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 이런 나라는 전세계에 없다. 자유시장경제는 인간과 같이 못 간다. 이 점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좋은 걸로 한국인들은 안다. 놀라운 오해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물론 있다. 그걸 이미 봤다. 지난 세기 내내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경쟁했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왜, 어떻게 이겼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인간은 사회주의를 할 수 없는 동물이다.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계몽주의 이래 근대의 선각자들이 꿈꾸었던 이성의 기획이다. 모든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고 그 인간들이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인간의 탐욕에 기대서 생겨난 체제가 자본주의, 이성에 기반해 구성된 체제가 사회주의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이성의 기획을 수행할 정도의 존재가 아니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동유럽을 중심으로 붕괴했다.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비효율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효율성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이겼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효율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놓아두면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야수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사자, 호랑이, 표범… 야수들은 멋있고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을 잡아먹는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이 가장 정곡을 찌른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은 ‘현혹’이다. 눈을 부시 게 해서 정체를 못 보게 한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그처럼 꿰뚫는 말이 없다.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야수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면 자본주의를 유용하게 쓸 것인가. 효율성을 살리되 야수성은 통제해야 한다. 이 야수에게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채워서 통제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시장경제’. 독일은 메르켈의 보수당이 그렇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체제 내에 필연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실업과 불평등이다. 자본주의를 잘 활용하려면 실업과 불평등 문제, 그에 따르는 불안과 빈곤을 국가가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국가가 개입해서 자본주의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어떤 수단으로 하는가. 당연히 조세다. 사회복지국가는 조세국가다. 정의로운 조세를 통해서 조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실업은 어떤 문제인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본다. 우리처럼 실업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독일 연방의원 가운데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300명 가운데 294명이다. 이것이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유민주당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보수 정당인 기민당/기민련이 사회적(social)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독일의 사민당은 사회주의적(socialistic)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시장경제를 인정하지만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사는데 조건이 되는 영역은 시장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 주거, 의료. 독일에서는 대체로 의료체제의 70% 이상이 공공병원이고 대학은 96%가 국립대학이다. 이보다 더 왼쪽에 있는 녹색당 역시 시장경제를 인정하나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또 한 당은 좌파당이다. 좌파당만은 시장경제에 반대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한다. 그런 정당도 8% 가량 득표했다. 지난번 의회에는 이런 4개의 정당이 있었다. 이런 의회에서 어떤 정책을 만들까?

 그러나 한국 국회는 전부 인간을 잡아먹는 법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다. 민주주의, 정권 교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치 지형과 체제가 잘못되었다. 아무리 선거를 해도 우리의 불행은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진보고 국민의힘이 보수라는 인식은 당연히 잘못이다. 한국 정치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경쟁 구도가 아니다. 수구와 보수의 70년 과두 지배 체제라고 보아야 한다. 수구와 보수가 4대 6, 6대 4로 구도를 형성하는 체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좋은 보수가 없다는데 있다. 보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다. 여기서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자유주의다. 보수는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 민족을 중시한다. 이런 공동체의 과거, 현재, 곧 문화와 역사를 중시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가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공동체’를 주장하면 빨갱이라고 지탄받는다. 민족은 친북이라고 공격받는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 도망가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한다. 이런 보수는 세계에 없다. 이런 자들은 보수가 아니다. 수구라고 불러야 한다.

 문재인 정부 정도가 그저 보수와 유사한 정도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사명은 좋은 보수가 되는 것이라고 항상 말해왔다. 그래야 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진보를 자칭하니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진보를 갉아먹는 것이다. 좋은 진보가 등장할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사명인데 끊임없이 진보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를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진보세력의 잠재력만은 매우 크다. 정치지형의 불리함과 국민 인식을 넘어선다면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정치지형이다. 김종인씨가 한국 정치 전면에 등장해 있다. 그것은 그가 계몽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 국민들이 자꾸 헛갈린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다른 정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김종인씨가 몇 번을 왔다갔다 했나? 두 당이 같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 정당의 차이는 하나다. 김정은에 대한 시각 뿐이다. 그러나 이재용을 어떻게, 한국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똑같다. 대북정책이 조금 바뀌는 것 뿐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이제는 정발 대안적인 정당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가장 중요한 해법은 선거법 개정이다. 민주당의 작년 선거법 개정은 추한 일이었다. 민주당의 자기부정이며 기회주의적인 행태라고 칼럼을 쓴 뒤 공격을 당했었다. 독일처럼 사표가 발생하지 않는 선거법, 민심이 표심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선거법이 만들어진다면 한국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20% 이상 득표할 것이라 본다. 환경, 생태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정당도 5% 이상 얻어서 여의도가 다양한 정치세력이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지금 두 개의 정당이 야합하는 수구-보수 과두 체제가 한국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고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강연 마치겠다.


전체 0

전체 89
썸네일 제목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도서 : 기후 위기와 기후 불평등 극복을 위한 투쟁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도서 : 기후 위기와 기후 불평등 극복을 위한 투쟁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도서 : 기후 위기와 기후 불평등 극복을 위한 투쟁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2.01 | 추천 0 | 조회 3326
■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2021.11.) □ 도서 : 기후 위기와 기후 불평등 극복을 위한 투쟁 강용준 노동자정치행동 위원장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활동가들이 올해(2021년) 초부터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토론과 집필, 검토의 과정을 거쳐 20개의 테제로 된 『기후정의선언 2021』를 팸플릿 형식으로 출판했다.  최근 들어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후 위기, 경제 위기, 감염병 위기 등 모든 이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의 고통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위기는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그 위기의 고통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동하고, 국가와 사회는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기후정의선어 2021』에서 “기후 위기는 불평등한 사회의 위기이고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성장 체제를 변혁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하고, 기후정의운동이 이를 말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선언문이 “한국 기후정의운동의 방향타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면서, “기존의 기후 운동, 그리고 무관심했던 여러 사회 운동에 대한 매서운 비판과 도전”이며, “기후 위기만이 아니라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서려는 많은 운동들과 연대의 고리”가 만들어 지기를 희망한다.  기후 위기, 경제 위기, 감염병 위기 등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기는 결국 자본주의의 끝없는 탐욕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체제를 전환’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 100여 쪽의 글을 통해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기후 위기와 기후 불평등 극복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가는데 작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Date 2021.12.01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영화 : 연상호가 바라보는 세상 - 지옥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영화 : 연상호가 바라보는 세상 - 지옥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영화 : 연상호가 바라보는 세상 - 지옥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2.01 | 추천 1 | 조회 3201
■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2021.11.) □ 영화 : 연상호가 바라보는 세상 - 지옥 박수영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갑자기 거대한 천사가 등장한다. 천사는 당황하는 사람에게 앞으로 얼마 후, 모월 모일 모시에 지옥에 갈 것이라는 “고지”를 남기고 사라지고, 그 시간이 되면 흉측한 지옥의 사자가 등장해 고지를 받은 사람을 산 채로 태워 죽이는 “시연”을 벌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보여지며, 사진 촬영이나 영상 녹화, 심지어 실시간 방송도 할 수 있다. 신흥 종교인 “새진리회”는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 빠르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현상은 인간 세상에 만연한 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신이 내리는 직접 개입이다, “고지”를 받은 인간은 자신이 저지를 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만인 앞에 낱낱이 고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시연”을 받아야 한다, 만일 자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고지”를 받는다면 가족들 모두가 그의 죄를 고백하고 함께 뉘우쳐야 하며, 죄인을 감싸고 감추는 것 역시 신의 뜻을 거스르는 죄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 해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새진리회는 엄청난 규모의 교세는 물론, 정계 및 사법 영역에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강한 조직이 된다. 새진리회는 자신의 이 권력을 바탕으로 “고지” 및 “시연”에 대해 자신들과 다른 해석을 하는 모든 사람과 집단을 억압하고 파괴한다. 지난 11월 19일 넷플릭스 체널을 통해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위와 같은 상상을 통해 “사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지옥인 것인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져준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당사자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고지”나 정해진 때만 되면 장소에 상관없이 벌어지는 “시연”은 현 시기에도 인터넷에서 만연하고 있는 “좌표찍기”, “조리돌림”이 바로 연상되기도 한다. 이 드라마의 직접적인 원작은 2019년부터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지만, 기본 모티브는 연상호 감독의 대학교 졸업작품인 <지옥: 두 개의 삶>이다. 천사에 의해 지옥(part 1), 또는 천국(part 2)에 가게 된다는 고지를 받은 주인공의 현재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연상호 감독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하는 원인에 대한 탐구”라는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이 주제의식은 웹툰과 드라마를 거치며 고지받은 당사자를 넘어서 주변 인물, 사회 전반으로까지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사람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관심은 그의 다른 전작, 특히 <돼지의 왕>, <창>, <사이비> 같은 작품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중학교, 군대, 소멸을 앞두고 있는 농촌 마을 등 제한된 상황에서 비대칭적 정보를 통해 권력을 구가하는 기득권과 그 기득권을 혁파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대립을 큰 축으로 하는 이들 전작은 주인공들이 기득권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질서에 순응하거나 적극적 가담자가 되는 주변인물들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 늘 따라다니는 “염세적 세계관”을 완성하게 되고, 이는 감독의 주요한 인장으로 인식되게 된다. <지옥> 역시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구성을 보다 강렬하고 힘있게 밀어붙인다. 새진리회는 자신들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시연을 조작하는가 하면, 시연의 생중계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무력감과 공포감을 순식간에 전파시켜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질서에 빠르게 종속시킨다. 종속된 대중들 중 일부는 극단적 선동자의 지령에 따라 자신들의 교리에 조금이라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 자들을 린치하는 “자발적 홍위병”이 되고, 이들에 의해 린치당한 신질서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이 신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또 다른 시연의 생중계를 준비한다. 기득권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기득권의 수단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들의 강변에 뭐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느낀 것은 필자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을 겁주고 벌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시겠다? 그런 데가 하나 더 있죠. 지옥이라고” 극 후반부의 주인공인 배영재 PD(박정민 분)의 대사야말로 연상호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해석과 조금이라도 다른 주장은 모두 “죄”이니 “벌”을 받아야 한다며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곳, 이곳이야말로 진짜 지옥이 아닐까.

Date 2021.12.01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사진 : 백년 경계 너머로의 여정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사진 : 백년 경계 너머로의 여정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사진 : 백년 경계 너머로의 여정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2.01 | 추천 0 | 조회 2764
■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2021.11.) □ 사진 : 백년 경계 너머로의 여정  >>>>>> 업로드 준비중 <<<<<<

Date 2021.12.01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0.31 | 추천 1 | 조회 3245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편지를 띄우며 기후위기와 경제위기, 그리고 심화된 착취와 불평등 속에서, 모두가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어떠한 전환인가에 따라, 한국사회의 위기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현재의 착취와 불평등을 미래로까지 지속·확대시킬 수도 있습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는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 우리가 실천해야 할 전환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소식들로 채웠습니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 2년 째 거리에서 투쟁 중인 당원의 목소리는 이 위기와 착취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사회주의·좌파 대통령 선거·지방선거 공동투쟁본부’의 출범을 앞두고 시작하는 대선 기획과 노동당 대선정책토론회 소식은, 우리에게 필요한 전환에 대한 고민을 풍성하게 합니다. 춘천버스완전공영제 투쟁의 여정과 지역순환경제 소식, 그리고 이번 호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세계’편은 우리가 실천해야 할 전환의 경로를 알려 줍니다. 대선에 앞서 노동당에서는 차기 대표단 선거와 각급 당부의 당직선거가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체제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인 노동당의 전환 또한 필수불가결합니다. 그리고 노동당의 전환이란 각 지역과 현장 당원들의 보다 실천적인 전환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중한 우리들의 고민과 실천들이 더 멀리까지 더 가깝게 연결되어, 사회주의 실현을 향한 정치적 무기로서 노동당의 강화와 확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복간 후 여섯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위원회 김석정 나도원 안보영 이용규 적야 정상천 현린 [제목을 누르면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편지를 띄우며 □ 기획 :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과제 □ 이슈 : 11기 대표단 선거와 대선 정책 토론 □ 특집 : 지역 순환 경제, '밑에서부터의 대항' □ 정세 :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 세계 : 인도 케랄라주의 21세 여성 시장 아리얀 □ 현장 : 춘천버스완전공영제를 향한 여정과 과제 □ 사람 : 투쟁을 이어가는 사람 - 기노진 □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4 □ 도서 : 장애학 : 과거, 현재, 미래 □ 영화: 웅장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의 체험, 듄 □ 사진 : 레드 어워드라는 붉은 선물

Date 2021.10.31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기획 :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기획 :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기획 :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과제 (1)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0.29 | 추천 0 | 조회 2800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기획 : 2022년 대통령 선거의 의미와 과제 함께, 바로 지금 시작하자 이갑용 노동당 고문, 전 민주노총 위원장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당과 사회변혁노동자당(이하 변혁당)이 사회주의 후보로 공동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자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미약한 힘이기는 했지만 노동당은 보수정당들 사이에서 쓰러진 진보와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겹게 견뎌왔다. 변혁당 역시 수십 년을 노동자 민중의 버팀목이 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투쟁하는 정치조직이다. 양 당은 선거라는 공간에서 노동자 민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경험한 정당들이기에 2022년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함께하자고 조직적 결정을 했다. 노동해방과 민중의 지킴이로 시작한 진보정당이 분열하며 지금은 사회주의를 문구로도 사용하지 않는 가운데, 사회주의 정치의 뿌리가 튼튼히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총의 전직 간부들과 전직 노동운동가들이 속속 민주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부터 지금까지 20년의 세월을 함께하다 민주당으로 가는 사람들은, 분열만 하고 있는 진보정당으로는 전망이 없다고, 그래서 떠난다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민주노총 내의 활동가들이 진보정당을 비판하는 내용이 민주당으로 떠난 사람들의 비판과 다르지 않다. 수구정당 국민의힘이 민주노총을 적대시하지만 진보정당을 비난하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20년을 넘게 욕먹어 가면서 진보정당 한다고 자신의 돈과 시간 써가며 진보정당을 지킨 사람들에게 전망의 부재와 분열이라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된다. 정당 밖에서 수수방관 할 때 우리는 내부에서도 싸우고 선거에도 출마하며 진보정치란 이런 것이라며 버티고 지켜왔다. 진보정당 내부투쟁에서도, 민주당이라는 가짜 진보와의 외부투쟁에서도 도와주지 않던 사람들이 진보정당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에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1987년 대선에서의 비판적지지론 이후 계속된 민주당과의 선거연대론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의 탄생은 노동자·민중에게 기회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창당하고 10석의 국회의원이 생겨나자 바로 내부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1인7표제로 대표되는 다수 정파의 횡포나 일심회 사건이라는 비상식적인 사건도 서슴없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망가진 진보정치는 분열의 수순을 거쳤고 오로지 국회의원 당선만을 위한 합병과 분열을 계속했다. 이러다보니 노무현 정권의 핵심이었던 국민참여당도 진보의 대열에 들어섰고 오직 명망가 중심으로 뭉치고 흩어지는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지조 없는 선거공학적 정치 때문에 진보는 쪼그라든 반면, 민주당은 다시 집권도 하고 이제는 개헌도 가능한 의석수까지 차지했다. 이후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가 추진하던 노동악법인 탄력근로제를 국회와 합심해 밀어붙였다. 그리고 재벌총수를 풀어주기 위해 규정까지 손보는 열의를 보였다. 그런데, 선거 때마다 이런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후보 단일화를 외쳤던 사람들 중에 과거 자신의 언행을 제대로 반성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지난 20년 동안 깨지고 쪼그라들면서도 일부 유명인의 선거 들러리가 되지 않고, 사회주의 정당의 자리를 지켜온 노동당과 변혁당의 역할은 존중 받아야 한다. 유명하지도 않고 당선이 어려워도 보수정당들의 정치판인 선거에 출마하는 이유는 진보정당이 있음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서다. 당선 희망이 없다고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의 공간도 없었다. 보수정당들은 민중들이 지지하는 진보정당들의 공약을 흡수해 왔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여성활당제 등처럼,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정당만의 공약이었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보편적인 공약이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물론 보수정당의 공약은 실천을 담보하지 않기 마련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성장해 왔다. 민주노총의 역할도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과거 IMF 위기를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공기업을 해외나 대기업에 매각하여 극복하려던 김대중 정권에 투쟁으로 저항했다. 당시 공공운수노조는 의료민영화저지와 공기업매각 저지를 외치며 투쟁했다. 금속노조는 해고 저지 투쟁을 극렬하게 전개했다. 대우자동차 투쟁으로 인해 김대중 정권의 공기업 매각이나 민영화에 제동이 걸렸다. 당시의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 코로나위기로 인한 국민의 피해는 더욱 컸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쌍용자동차 해외매각에 맞서 투쟁했던 조직도 민주노총이다. 전 국민의 지탄을 받은 박근혜 정권에 정면으로 투쟁한 조직도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했지만, 정작 투쟁의 당사자인 본인들은 희생을 당했다. 투쟁의 대표적 사업장이었던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은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 박근혜 퇴진투쟁 당시 눈치만 보던 민주당이 촛불의 모든 성과를 챙겨 갔지만, 투쟁의 선봉이었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구속되었다. 그런 면에서 변절자들에 대한 엄격한 평가도 필요하지만,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성장에 기여했던 부분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또 다른 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적 역할은 더 없이 중요하다. 1987년 민주화투쟁과 2016년 촛불투쟁도 경험한 노동자 민중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재벌해체, 사교육 철폐, 주거의 무상화 등을 주장하자. 이런 공약이 실현 되지 않을 것이니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을 바꾸어야 한다. 국회 의석수 과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노동당과 변혁당, 그리고 투쟁하는 민주노총이 함께 2022년 대선과 지선에서부터 바로 지금 시작하자.

Date 2021.10.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이슈 : 11기 대표단 선거와 대선 정책 토론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이슈 : 11기 대표단 선거와 대선 정책 토론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이슈 : 11기 대표단 선거와 대선 정책 토론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0.29 | 추천 0 | 조회 2589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이슈 : 11기 대표단 선거와 대선 정책 토론 >>>>>>>>>  업로드 준비중 <<<<<<<<<<

Date 2021.10.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특집 : 지역 순환 경제, '밑에서부터의 대항'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특집 : 지역 순환 경제, '밑에서부터의 대항'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특집 : 지역 순환 경제, '밑에서부터의 대항'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0.29 | 추천 2 | 조회 3038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특집 : 지역 순환 경제, 민주적 로컬의 글로벌화 [기획강연 '체제전환' 6부 양준호] '지역순환경제, 민주적 로컬의 글로벌화-관료제적 중앙-독점자본에 대한 '밑에서부터의' 대항' 지역순환경제란  반갑습니다. ‘지역순환경제’라는 개념을 아실 것이다. 지역에서 돈이 순환하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지역화폐 같은 것이 구체적인 사례다. 그런데 이것이 계급적으로 진보적인 개념이다. 지역 안에서만 돈이 돌고, 지역의 소득이 지역에서 소비되고 지역의 기업이 지역 내 다른 기업으로 재투자하는 완결적  지역순환경제가 구축된다는 것은, 지역을 잠식하는 글로벌 독점 자본이나 대기업과의 대항관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지역이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이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경제적 생명력이 있는 방안으로 대항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도 지역순환경제는 글로벌화에 대한 대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역순환경제는 지역이 자주적, 자치적 측면에서 지역의 경제와 사회를 편성하고 기획하는 운동이다. 관료제적 중앙에 대한 대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 경제는 피폐해져 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지역 경제가 피폐해져 있다. 지역 경제를 떠받칠 동력이 모두 지역 밖으로 유출되는 상황이다. 서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의 경제적 동력이 서울로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인천 시민 소득의 52.8%가 서울로 빠져나가는 중이다. 오히려 서울에 가까운 수도권이기에 경제적 동력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일본의 도쿄 옆에, 꼭 인천 같은 요코하마가 있다. 80년대 중반 신요코하마역에서 도쿄역까지 40분만에 가는 특급 전철이 만들어지자 요코하마 시민들이 동경에 자주, 쉽게 나가게 되었다. 이러면서 요코하마 경제의 30%가 도쿄로 흡수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역류 효과’다. 서울 중심의 한국 사정을 고려하면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그 성장 동력을 서울로 빼앗기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다음으로 우리 나라의 지자체들이 대기업 유치 만능론에 빠져 있다. 피폐화된 지역 경제를 살리려고 대기업 본사도 아닌 분공장을 유치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 부산 보궐선거가 그랬다. 그러나 본사는 절대 지역으로 가지 않는다. 대기업의 분공장이나 RND 센터를 유치한다는 수준인데, 우리 지자체가 지역 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대기업을 유치했더라도 낙수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가능성도 없다.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삼성 바이오로직스가 있다. 이 때 대단히 효과가 있을 것처럼 포장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천의 사업체로 재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다. 원재료나 중간재를 인천 기업들로부터 납품받는다든지 하는 현상이 있어야 하는데, 대기업들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상법상 대기업의 브랜치(Branch, 계열사)들은 자신의 모회사에 해당 지역에서 번 돈을 그대로 헌납하게 되어 있다. 지적 재산권 사용료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서류상 본사는 인천이 아니다. 페이퍼 컴퍼니란 말이다. 인천에서 행정, 재정 지원을 받아서 인천에서 돈을 벌어도 그 돈을 다른 곳에 있는 본사로 송출하는 것이다.  지역 공동체가 해체된 지도 오래되었다. 지역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동일한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웃 간의 호혜 체제가 해체된 지는 대단히 오래되었다. 지역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생태는 어떤가. 산이 골프장으로, 갯벌이 경제자유구역으로 바뀐다. 지역의 환경과 생태는 자본의 가치 증식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역의 ‘실용적’ 담론으로서 기업주의 담론이 또 성행한다. 도시 공간을 기업과 같이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도시에 대한 마케팅을 하거나, 투자 자본을 유치해서 역동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시가 투기자본에 포획되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농촌은 또 어떤가. 농촌은 거의 소멸 위기다. 급격한 고령화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농가소득은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지역의 공간에 관한 의사결정의 주도권은 이른바 지역 성장연합이 갖고 있다. 기업주의적인 도시를 지향하고 대기업 유치 만능론에 빠진 지역 성장연합들이다. 이들이 지역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하고 있다. 중앙 담론만 있는 한국 사회  한국 사회는 문제 의식이 지나치게 일국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다. 최근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서도 지역에 관한 담론은 없고 정권심판론만 가득하다. 독일의 경우, 독일인들은 지지 정당이 중앙 담론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보다는 지역 현안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독일 사회가 좋은 의미로 분산된 반면 한국 사회는 중앙 집중화되어 있다. 진보정당들도 담론 자체를 지역적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담론이 워낙 일국화되어 있다. 현상에 대하여 세계적, 일국적, 지역적 차원으로 인식 층위가 다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지역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추진하는 지역 정책은 어떤가. ‘국가 균형 발전’ 용어는 좋다, 그런데 그게 고작 정부기관을 각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지점은, 우리나라가 각 지역에 ‘혁신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 계열의 국가균형발전은 혁신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각 지역에 혁신 도시가 생겨나면 그 주변에서도 서울에서 역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혁신 도시 언저리의 농촌을 더욱 피폐화하는 역설이다. 또 이것은 토건 사업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지역 정책들이 지역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대항의 기조  본인은 일본 공산당원이다. 일본 공산당은 지역에 착목한 운동, 연구, 정치를 한다. 일본도 우리처럼 정치적 담론이 중앙화 되어 있다. 일본 공산당은 지역 운동에 역량을 쏟아붓는다. 지역 주민 아무개의 집에 수저가 몇 개 있다는 것까지 아는 게 일본 공산당의 민세 운동이다. 대학의 민세 운동가들은 포섭 대상 학우가 몇 과목을 듣고 어느 과목에서 힘들어하는 지 파악하고 있다. 우리 한국의 진보 좌파 세력은 지역에 착목한 담론 발산에 인색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대항의 기조는 무엇인가. 담론의 지역화라고 본다. 일국 차원에서 큰 사태가 벌어져도, 그 사태의 본질 이면에 있는 지역적 차원의 맥락을 짚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에 초점을 맞춘 실천을 위한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사안이라도 그 사안에 대하여 글로벌(세계적), 일국적, 지역 차원의 층위가 중층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환이 필요하다. 그다음 지자체와 지역 성장 연합, 독점 자본의 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진보적 시민들의 운동과 연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지역 민주주의의 실질적 제도화가 구축되어야 한다. 민주적 주민 자치, 주민 참여 시스템, 재정 분권 운동 등이 제도화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경제의 작동 방식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독점 자본, 관료화된 중앙과의 싸움,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의 싸움, 지역 경제를 살려내는 실용적 성과를 동반하는 운동, 진보적 계급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대항 방식이 중요하다. 지역 경제의 민주적 소유  이런 대항 운동의 기조 전환으로서 지역 순환 경제를 유도하기 위해 유럽의 좌파, 또는 영국 노동당처럼 급진적 리버럴들은 어떤 운동을 펼치고 있는가. 지역 내 공적 기관들의 거대한 발주와 조달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를 시민, 또는 노동자 협동조합이 민주적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일본 공산당 계열의 미야모토 겐지 교수 그룹이 1980년대부터 지향했다.  여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역 내 민간 독점 자본의 조달력과 자산도 민주적으로 소유하는 운동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대구의 사례를 보자. 대구의 대형 은행들은 대구 사람들을 상대로 예금을 받아 돈 장사를 하는데, 그 예금자들 중에서 신용, 소득, 담보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투자, 융자를 하지 않고 신용 등급이 좋고 담보 능력이 있고 고용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 융자를 하다 보니 지역의 예금 자본들이 지역 밖으로 다 유출된다. 지역 자금을 지역 밖으로 유출하는 민간 독점 금융자본들에 대해서는 조례 등을 통해 지역 내부의 주에들에게 자금을 투자할 것을 의무화하는 조치가 중요하다. 미국이 신자유주의의 메카라고 하나 지역으로 들어가면 진보적인 시도도 많다. 1977년 제정된 미국의 지역 재투자법이 그렇다. 지역에서 돈벌이를 하는 대형 금융 독점 자본에게 지역 내의 투융자를 의무화하는 연방정부 차원의 법이 1977년도에 제정되었다. 이런 것이 생산 수단의 소유 주체를 전환시킨다는 측면에서 계급적으로 진보적인 정책, 운동이라고 본다.  또 실질적인 주민의 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지역 경제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다음 지역의 생태에 문화, 복지가 맞물려서 작동되는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를 기획하는 운동들이 앞으로 대항의 기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지역순환경제로 기조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론이 필요한가.  먼저 지역화폐가 중요하다. 한국의 지역화폐는 변종이다.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해서 지역의 소비를 진작하는 것인데, 원래는 지역 화폐 발행에서부터 지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책을 지역화폐하고 한다. 그래서 로컬(Local)이 아닌 시티즌 커런시(Citizen Currency)다. 우리도 원점을 잘 찾아서 시민이 직접 경영하고 발행하는 화폐 체제로 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두 번째는 지역의 공적 앵커 기관의 조달력과 민간 독점자본이 축적하는 조달력이 지역에서 재투자되도록 하는 조례 운동이 필요하다. 부산에서는 최근 ‘부산광역시 지역 재투자 조례’를 만들어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대기업, 대형 독점 유통 자본, 금융 자본들이 의무적으로 지역에 재투자하고 지역에서 납품하게 만드는 조례가 제정되었다. 결국은 독점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에서 산업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의 재투자를 담보하는 지역 정책, 그것을 제도화하는 운동이 중요하다.  지역 시민들의 자금 수요에 적극적으로 매칭하여 자금을 공급하는 지역 공공 은행 같은 존재도 필요하다. 지자체가 100% 출자하는 것이다. 금융 체제에서는 다 배제되는 저신용등급자들, 저소득층, 담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감싸안는 공공적 금융이다. 광역자치단체들이 모두 지역신용보증 정책을 펼치는데, 이는 공공 금융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다 신용 등급 1등급에서 3등급인 소상공인이 줄을 이루고 있다. 시장 금융의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운동이 중요한 키워드다.  일본 공산당 계열의 운동가들이 또 ‘커뮤니티 웰스 빌딩’이란 개념을 내고 이를 미국과 영국에서 수입해가서 제도화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클리블랜드에 가면 클리블랜드 클리닉이라는 대형 병원이 있다. 이 조달을 외부로부터 않고 지역 내부로부터 조달하게끔 지역의 운동가들이 강제, 의무화 시켰다. 대형 병원은 엄청난 규모의 세탁 사업을 발주할 수 있는데, 이만큼의 세탁을 할 수 있는 사업체가 클리블랜드에 없었다. 이 사업을 결국 영위하게 된 것은 클리블랜드 노동자 협동조합이었다. 지역 앵커 기관의 조달력을 지역의 사업자들에게 매칭시키는 것이 커뮤니티 웰스 빌딩 운동이다. 주로 노동자 소유 기업, 노동자 협동조합이 이런 발주 사업을 맡도록 지역에서 키우는 것이다. 사업에서 지역적 자기완결성을 갖추는 프로세스를 포괄하는 운동이 지역 경제 선순환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조정, 계획경제로의 체제전환  지역순환경제 얘기를 하다 보면, 이를 너무 경직된 지역주의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보다는 세계화에 대항하는 여러 도시와 지역들 간의 수평적인 연대를 지향하는 것이다. 각 지역이 서로 연대해서 지역 사이에 경제적 선순환을 추구하면 글로벌에 대한 로컬의 의존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한 지역이 경제를 홀로 영위할 수도 없다. 요는 수평적인 지역간 연대로 글로벌화에 맞서는 체제인 것이다.  일본의 지역 좌파 지역경제순환론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지역 내 수급을 중시하는 지역 경제 경영을 통해 지역의 수요 수준을 초과하지 않는 생산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역 내 소비자들을 조직화하고, 생산자들도 조직화한다. 생산자 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되어 조직화된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격을 사전 결정하고 생산량과 판매량을 사전에 결정하는 체제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 핵심인 시장경제를 뛰어넘는 일종의 계획 경제다. 그런데 주체가 국가가 아닌 시민인 것이다. 이 운동의 출발점은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화다. 이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 조정’이라는 계획 경제적 개념이 필요하다. 주류 경제학의 핵심은 무정부적 생산과 무정부적 소비다. 보이지 않는 손이 생산량을 저절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방식이 이런 체제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것이 실현될 때 지역 순환 경제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지고 민주적 계획 경제의 가능성을 지역에서부터 발산할 수 있다.  일본 공산당 지역 운동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왔고 전 세계가 주목한 지역순환경제운동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나가노 현 서부의 ‘사카이 마을’의 사례다. 그 지역의 소비자들은 100% 조직화되어 있다. 사카이초는 임업, 가구, 목공, 일반 농업, 서비스 산업이 주 산업이다. 이 생산자들이 모두 조직화되어 있다. 이것을 민생 운동가들(민민, 민청)이 조직했다. 이 소지역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합작하여 사카에촌 유안공사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협동조합들이 지역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전량 매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조직화된 시민 사회와 조직화된 소비자들과 협의하여 필요에 따라 판매, 분배한다. 1990년대 초반 데이터를 보면, 이렇게 모두 분배하고 나니 70%가 잉여로 남았다. 이것을 지자체가 전량 매수해서 지자체가 공적 사회 서비스에 필요할 때 현물로 사용하게끔 했다. 100%에 가까운 수급 균형이다. 일국 차원에서는 이같은 조정이 어렵지만 지역 차원에서는 중요한 방법론이 된다.  오늘 지역순환경제에 대한 설명이 어떠셨나. 지역화폐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 진보적 의미가 있는 계급이라는 것을 이해하셨으리라. 그리고 로컬의 글로벌에 대한 대항, 독점 자본에 대한 대항이라는 것도 이해하셨으리라.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 조정 방식은 일국 차원에서 한번 뒤집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본 공산당이 1970년 이래 지역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담론도 지역화되었고. 운동도 지역화되었고 좌파적인 마르크스 경제학 체계도 지역화되기 시작했다. 소지역에서 지역순환경제 운동을 전개해 나갈 때 민주적 지역경제, 계획 경제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본 공산당 좌파의 현실 인식이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강조드린다. 일본 공산당 좌파 세력들의 현실 인식이 백그라운드로 저는 작용 했다라고 하는 점을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강조를 드린다.

Date 2021.10.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정세 :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정세 :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정세 :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0.29 | 추천 2 | 조회 3181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정세 :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생태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이승무 정책위원 1. 생태경제 이론들의 배경  최근 국내외적으로 생태사회주의, 기후 중립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주장들이 지금의 생태 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 시스템 또는 경제 운용 원리의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각각이 상당한 고민의 결과이면서 나름의 사상적인 배경들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주류 경제학은 생산 요소를 노동과 자본, 부존 자원으로 추상적으로 파악하고 시장경제의 균형 체계를 수립한 다음에 역시 추상적인 가치물인 화폐와 금융을 가지고서 경기 변동과 거시 경제를 설명하는 쪽으로 이론을 발달시켰다.  물질적인 노동 과정과 기술에 따른 물질의 흐름을 화폐와 가치의 흐름과 병행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설명하는 이론의 핵심에서 파악하려고 노력한 것은 카를 마르크스 경제학의 중요한 공로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위기 이론에 기초를 둔 생태사회주의와 물질 대사 이론에 기초를 둔 생태마르크스주의의 출발 배경을 살펴보고, 기후 위기와 같은 생태 환경의 위기로 인한 체제 전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서 최근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움직임에 대하여 검토해 보려고 한다.  철저한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폴란드 출신의 헨릭 그로스만은 1929년도에 출간한 《자본주의 체제의 축적과 붕괴의 법칙》이란 저서의 이론적 결론 부분에서 “그리하여 자본주의 체제는 그 내적인 경제적 메카니즘을 통해 진보하면서 그리고 자본 축적에 따라서 쉼 없이 그 종말을 향해 가며 ‘자본 축적의 엔트로피 법칙’(Entropiegesetz der Kapitalakkumulation)에 의해 지배 받는다.”라고 하여 아무런 이론적 설명 없이 엔트로피 법칙을 꺼내 놓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경제 내의 물질의 흐름과 순환의 관점을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서는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경제학에 적용한 것은 1971년에 《엔트로피의 법칙과 경제 과정》이란 책을 출간한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뢰겐이라는 루마니아 출신 경제학자다.  산업 사회의 물질적 전제 조건을 문제시하는 생태 경제학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게오르게스쿠-뢰겐의 엔트로피 경제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사실로서 전제되고 있다. 생산에 투자되는 자본 중에서 노동자의 인건비에 투자되는 액수에 비하여 생산 수단과 원재료 등 물적 요소에 투자되는 액수의 비율이 기술 발달에 따라 계속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설명이 된다. 첫째, 생산 현장에서 같은 수의 노동자들이 일한다고 할 때 갈수록 이 노동자들이 더 많은 물자들에 둘러싸여 일을 하게 된다는 실물 측면에서의 구성의 고도화다. 둘째로는 노동자들의 생활에 필요한 식량 등의 생활 필수품 부문에서 기술 혁신이 일어나서 이러한 소비재들이 저렴해져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락하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된다. 반면에 생산 수단이나 원재료에 해당하는 물자들의 희소성이 높아져서 이를 조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품의 생산과 판매가 발생하여 생산의 물적 요소들을 보충해 넣고 또 기술 혁신에 따라 새로운 물적 생산 수단을 개발하여 생산에 투입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잉여가 사용되게 된다. 이것을 축적의 진행이라고 한다. 그러한 추세가 계속 진행되다 보면 결국에는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고용하는 데 들어갈 자본도 보충이 안 되어 실업자가 늘어가게 되고, 자본가들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잉여 부분도 사라져 버리게 되어 자본주의 경제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붕괴의 위기를 뒤로 늦추어 주는 것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 속도를 늦추어 주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서 해외로부터의 저렴한 원재료의 조달, 저렴한 노동력의 조달, 임금을 낮추어 줄 수 있는 식량과 같은 저렴한 생활 소비재의 조달 같은 것들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이윤율이 높은 저개발국으로의 자본 수출도 이에 기여한다. 물론 투입하는 노동 임금에 비한 이윤의 크기인 잉여 가치율이 높아지는 것도 이러한 붕괴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에 대한 해결책들은 위기와 붕괴의 도래를 늦추어주는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로스만의 자본주의 붕괴 이론은 여러 생산 요소들 중에 오로지 노동에서만 잉여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전제, 임금 총액에 비한 이윤의 크기인 잉여 가치율에는 기술적,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한계가 있다는 것, 기술의 발달 상태에 의해 주어지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계속해서 높아지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 노동자 인구의 증가는 그보다 낮은 한계를 가진다는 것 등의 전제들을 고수한 데서 유도된다.  이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과소 소비론 또는 실현 불가능 이론과 다른 잉여 가치의 과소 생산이란 방향에서의 자본주의의 불균형 이론이고 제국주의적 팽창의 경향을 설명해 주고 있다. 카우츠키, 힐퍼딩, 투간-바라노프스키 등의 다른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들은 자본주의 경제 자체에 내재적인 붕괴 경향이 없으며 생산재 생산 부분과 소비재 생산 부문 간의 적정한 비율이 정교하게 유지된다면 무한한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전개하는 데 비하여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로스만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필연적으로 불균형과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것을 재생산 도식을 통해서 논증하려고 했다. 그중에서 이론 구조상 엔트로피 경제 이론과 같은 방향으로 접목될 수 있는 쪽은 그로스만의 잉여 가치 부족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Paul Mattick을 거쳐서 Michael Löwy 등의 주창한 생태사회주의 계통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국내에 많이 알려진 John Bellamy Foster는 생태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조류를 대표하며, Kautsky 등에 의해 조명된 도시와 농촌의 물질 대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Paul Sweezy의 사상을 계승하는 독점 자본주의 이론가다.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붕괴 이론을 사실상 내포하고 있으며, 생태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그런 측면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붕괴 이론은 경제의 내적인 모순으로 붕괴가 임박한 결정적인 시점에 노동자들이 자본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체제를 세운다는 정치 전략을 내포한다. 그런 이론이 있었다고 해도 오늘날 그렇게 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나 생태 위기가 전쟁의 발발(勃發)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은 과거부터 많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문명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어 왔다. 그것은 거대 제국의 지배 계층이 일으키는 전쟁이 아니고 생태 문제, 식량 문제로 압박을 받은 변방 민족들의 이동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제국의 지배 계층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제국이 붕괴하고 역사의 방향이 크게 달라져 왔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로마 제국이 멸망, 몽골의 유럽 진출, 투르크족의 유럽 침략 등이 그런 예들이다. 제국의 지배 계층도 당면한 경제위기를 모면하고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도발할 동기를 가진다. 십자군 전쟁과 같은 종교 전쟁들, 20세기의 세계 2차 대전은 주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2. 기후 위기와 체제 전환의 가능성  기후 위기의 시대에 제국의 변방 지대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고향을 등진 난민들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 생태 위기가 심해지면서 그 피해가 큰 지역들로부터 제국의 중심부로의 인구 이동이 일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멕시코 국경 봉쇄와 같은 사태와 분쟁, 전쟁의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 추세로 간다면 거의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고, 제국의 중심부에서 군사적인 대비를 한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는 추세가 될 것이다. 그러한 진통을 거쳐서 지금의 자본주의 문명과는 성격이 다른 더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문명과 체제가 생겨나면 다행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를 위해서 철저하게 전략을 세우고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런 것이 생태사회주의적인 집권 전략이 될 것이다.  이 입장에서 보자면, 기후변화의 진행을 억제하도록 노력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런 변혁을 위한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파국을 맞이하여 희생자들만 생겨나고 더 나은 체제로 갈 수 있는 보장이 없게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기 위한 시간을 벌고 질서 있는 이행(移行)을 할 수 있기 위해 기후변화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필요한 정도일 것이다. 지금의 생태 위기나 기후 위기의 의식과 염려는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 지속하기 위해서 가지는 염려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나마 탄소 중립이라는 것도 체제가 스스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허구적인 구호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3. 전환 과정에 필요한 노력  사회주의 사상을 품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을 희망해서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을 기울일 이유는 없다.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더 인간적이고 더 평등하고 더 생태적인 체제로의 전환을 찬성한다고 보아야 하며, 그에 덧붙여서 누구도 피를 흘리거나 희생되지 않는 평화로운 체제의 전환 과정을 찬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 헌법 체제에서 사람들의 취향이 달라져서 선거에 의해 그런 체제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금의 추세에서는 기후와 생태의 파괴로 인해 앞으로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평화가 지켜지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을 통해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럴 때 그런 시도를 폭로하고 평화를 외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물론 지구촌의 현 상태를 전쟁 없이 유지해 가자는 것은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더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며, 이는 결정적인 위기의 시점에 도달했을 때 자본주의의 착취와 기후, 생태의 변화에 가장 취약하게 피해를 당하고 프롤레타리아화 된 다수의 민중이 신속하게 사태를 장악하고 급속한 체제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연적 위기는 소수의 과학 기술자들만의 혁신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생물 종의 생존 양태로 미루어 본다면, 다수 인구의 필사적이고 지속적인 협동적 노력에 의해서만 커다란 비극 없이 풀려갈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와 제국 문화가 어떻게 생태 위기를 가져왔는지, 이론적으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다른 어떤 체제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를 학습하고 교육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중국인 등 유색 인종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구미 극우 세력들의 준동이 기후 난민에 대한 통제, 기후 위기의 유발에 대한 서구 제국 문화의 책임 회피 등을 내포하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기후 위기와 탄소 중립을 이야기하면서 자본을 살리기 위해 민중에게 고통을 떠넘기려는 경향을 잘 감시해야 한다. 다수 민중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의식주의 수단을 확보하고 기후의 급변에 따라 더위와 추위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냉난방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온실가스를 절감하기 위해 빈약한 주거지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라고 하는 것은 전혀 기후 대책이 될 수 없다. (석탄이 온실가스를 많이 발생시키는 화석 연료라고 해서 겨울철에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이웃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충분한 영양과 쾌적한 주거 및 노동 환경에서 창조적인 노동의 역량을 발휘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윤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지구상의 가난한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활 조건이 보장되도록 물적 향상과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기후 위기라는 이유로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화석연료, 특히 석유는 수요를 줄이면서 이와 병행하여 공급을 통제하지 않으면 아무런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석유 수요가 낮아지면 공급 조건이 같은 상황에서 유가가 낮아지게 되고, 그러면 석유를 더 방만하게 사용하는 쪽으로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산유국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 석유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규제가 심해질 것을 예상해서 그 안에 많은 부(富)를 축적해 놓기 위해 석유 생산에 더 열을 올리게 되는 역설이 벌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green paradox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정유 회사들은 모두 외국의 석유 재벌들과 연계된 국내 재벌 회사들이고, 이들에 대한 가격 및 생산의 통제권은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 정책을 추진해 온 막강한 관료 조직이다. 산업 정책은 값싼 연료와 원료의 조달을 통한 수출 위주의 성장 정책이었다. 이 산업 정책 자체가 폐기되어야만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를 해체하고 순환 경제부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이 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처럼 민간과 공공의 대표들이 다수 참여하여 석유 수요를 줄이는 것과 병행하여 정유회사들의 생산량과 가격을 통제하도록 해야만 믿을 수 있는 탄소 중립 정책을 실시할 수가 있다.  한국의 다소 성급하게 작성된 그린 뉴딜 정책은 전기에너지를 통한 디지털 기술로 경제 구조를 혁신시킨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수소 자동차도 전기에너지를 기초로 하는 것이고, 이 수소의 생산은 우라늄 연료에 의한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디지털 기술이 마치 온실가스도 줄여주고 미래의 먹을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디지털 기술이 쓰레기를 분리 선별하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 불결하고 힘든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작업을 자동 기계가 대체하는 등 산업 재해를 줄이는 쪽에 중점을 둔다면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인건비를 줄이고 이윤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플랫폼 노동 등과 결부되어 노동자들을 더 심하게 착취하고 자원 낭비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4. 결론  사회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주의자들의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체제 안정화 노력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제국의 우산 아래 묶인 국가와 기업의 기후 대응 정책에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하고, 비판적인 관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기후 이변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 농민, 에너지 취약 계층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서 이들이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상기후에 대한 책임은 인간 일반이 아니라 제국과 산업과 자본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태 위기, 자본 축적의 위기 등 복합적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세계 평화에 불안을 가중시키고 전쟁 위협을 가하는 제국의 책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수 인구의 건강한 생존과 역량의 발휘를 통해 자본의 번창이 아니라 지구 전체 생명계의 건강한 번창을 이루어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Date 2021.10.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세계 : 인도 케랄라주의 21세 여성 시장 아리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세계 : 인도 케랄라주의 21세 여성 시장 아리얀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세계 : 인도 케랄라주의 21세 여성 시장 아리얀 (1)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10.29 | 추천 3 | 조회 3843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세계 : 인도 케랄라주의 21세 여성 시장 아리얀 21살의 여성 아리얀은 어떻게 3천4백만이 사는 인도 케랄라 주의 수도 티루바난타푸람의 시장이 되었는가? 정호영(노동당 국제연대재건 트로이카 세계마당[1]) 아리얀 시장 취임 사진 . 2020년 12월 2020년 12월 인도에서 21살의 여성 아리얀 라젠드라이 인도에서 가장 젊은 시장이 되었다[2]..[3] 한국으로 치면 21살의 여성이 서울시장이 된 것이다. 한국의 좌파정당이 지방자치 관련한 정책들을 내려면 그 규모와 인구로 판단해볼 때에는 가장 좋은 사례는 케랄라이다.[4]. 케랄라의 면적과 인구는 38, 863 km² 3400만명. 대한민국의 면적과 인구는 100,201 km² 인구 5178만명이다. 인도 케랄라 주는 면적과 인구의 비율로 따지면 한국과 비슷하다. 케랄라의 이러한 규모 때문에 케랄라가 그동안 거둔 성과는 지방자치제 사례 연구를 넘어 개발경제학에서 ‘케랄라 모델’로 연구되고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왔다. “인도 출신 학자인 아마티아 센은 ‘성장이 최우선이 아닌 품격 있는 발전’이라는 모델을 제시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 모델은 인도 케랄라 주의 사례를 연구한 것이다. 케랄라 주의 소득수준은 가난한 나라인 인도의 전국 평균치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가난에 가장 민감한 지표인 영아사망률은 가장 낮으며 평균수명도 다른 주보다 훨씬 높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맹자가 있는 인도지만 케랄라에는 문맹자가 거의 없다. 이런 성과는 주민들의 참여와 지지라는 민주적 방식을 통해 부와 권력의 탈중앙집권을 추구한 결과다.”[5] 아리얀 시장이 21살의 여성으로 케랄라 주 수도의 시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케랄라의 오랜 전통을 가진 대중운동 때문에 가능하였다. 아리얀 시장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오던 정당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는 다양한 의제조직들이자 대중조직들때문이었다. 여성운동의 예를 들어 케랄의 대중조직을 이해해보고자 하면 식민지시절 여성 사회주의자 정칠성, 허정숙 등이 활동한 근우회가 해산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6] 아리얀 시장은 시장이 되기 위해서 여성운동을 하지 않았고 학생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정당 정치인으로 성장했다.[7] 여성으로 인정 받은 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인도의 현 집권정당인 BJP 정치인이 의회에서 ‘유치원애기’가 뭘 아냐고 아리얀 시장을 비난할 때 아리얀 시장의 답변은 ‘제가 이 나이에 시장이 되었다면 저는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체계(system)를 밟고 제가 이 자리에 왔다는 것입니다.’[8]였다. 한국의 좌파정당이 21살의 여성 서울시장을 만들려면 이러한 체계를 만들어야 하고 그 출발점은 대중조직들의 건설이다. 아리얀 시장이 선거 출마시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폐기물 관리이고 그 다음이 코로나 국면에서의 기초보건시설의 구축이었다.[9] 아리얀 시장의 치적을 케랄라 방역을 예로 들어서 보자. 10월21일 현재 티루바난타푸람의 인구는 약 96만명이고 코로나 확진자 수는 24명이다.[10] 14억 인구의 인도에서 코로나 확진자 수는 3410만명이다. 케랄라는 인도 전체 확진 비율과 비교하면 100배가 양호한 것이다. 인구 약 980만명의 서울의 코로나 확진자 수 511명과 비교해 보아도 양호하다. 아리얀이 티루바난타푸람의 시장이 된지 2년이 되어가지만 한국에서는 케랄라 아리얀 시장에 대해서 보도된 것은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이것은 한국 좌파운동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갑용 노동당 고문은 10월 21일 노동당 기획강연에서 민주노동당이 무상의료·무상보육·무상교육을 제시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민주노동당이 제시했던 무상정책들은 이제는 보수정당들조차도 주장하고 있는 정책이 되었고,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이라면 집권은 못 하더라도 세상을 바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1] 이갑용 고문이 동구 구청장으로 있을 때 도입한 주민참여예산제도[12]는 좌파정당이 지방자치제의 핵심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다. 케랄라가 지방자치, 탈중앙화의 상징이 된 이유는 80년대말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할 때 그 지자제 규모에서도 세계 최고였고 주민에게도 가장 많이 자율권을 준 것이었에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서구[13] 이외의 사례에서도 배우고 우리의 과거도 제대로 복기해보자. 울산 동구청에서 시작된 한국의 주민참여예산제도와 케랄라의 주민참여예산제도를 비교해보는 것을 이제부터라도 차분히 시작해보는 것은 좌파정당의 정책 구체화의 첫 걸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1] 노동당의 트로이카조직사업 지원에서 승인 받은 국제연재 재건 트로이카의 이름이 '세계마당'입니다. 트로이카 소개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평화를 갈망해왔고 이제 이룰 때가 되었습니다. 노동당 국제연대 재건 트로이카인 세계마당의 목표는 평화 pax입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이니, 너희가 누워 자더라도 너희는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위험한 짐승들을 없애고, 칼이 너희 땅을 휩쓸지 못하게 하겠다. (레위기. 26:6) [2] Meet Arya Rajendran, India's youngest Mayor https://www.youtube.com/watch?v=bRuBLrqCoGQ https://www.thenewsminute.com/article/meet-21-year-old-arya-rajendran-new-mayor-thiruvananthapuram-140371 [3] 정호영. ‘케랄라 모델 창안자’ E.M.S. 남부디리파드.(2012.9.2)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1209022134345?www [4] 지역순환경제 모델의 좋은 사례로 거론되는 일본 나카노 현 사카에 촌의 경우에는 고령화 비율이 높은 약 4천명의 인구라서 한국에서는 ‘마을 살리기’의 사례는 될 수 있어도 한국의 거대 지자제에서 사례 연구로는 한계가 있다 .오카다 도모히로; 양준호, 김우영 옮김(2016), <<지역 만들기의 정치경제학>>, 한울. 제9장 작아서 더욱 빛나는 지자체. 나가노 현 사카에 촌을 중심으로. [5] CoronaIndia Tracker https://coronaclusters.in/kerala/thiruvananthapuram [6] Parvathi Menon(2004), Breaking Barriers; Stories of twelve women, leftword. 한국에서도 서구 이외의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소개가 진행되면 좋을 것이다. [7] https://en.wikipedia.org/wiki/Arya_Rajendran [8] When India's Youngest Mayor Took On Age Critics https://www.youtube.com/watch?v=8wSmccfFSxc [9] In line To Become India's Youngest Mayor, Arya Rajendran Spells Out Plan for Trivandrum https://www.youtube.com/watch?v=zxOuZpe8suo [10] CoronaIndia Tracker  https://coronaclusters.in/kerala/thiruvananthapuram [11] 기획강연 '체제전환' 11부 이갑용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https://www.youtube.com/watch?v=TJVcICw5WgI [12] 안성민, 이영(2007), 주민참여예산제도 사례분석: 울산광역시 동구를 중심으로, <<지방정부연구 11권 4호>>. 기획강연 '체제전환' 11부 이갑용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 [13] 한국에서는 서구 추종이 너무 강해서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단적인 예가 이제는 유행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 버니 샌더스를 프론트 맨으로 내세운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열광이었다. 버니 샌더스는 미국에서 무상의료·무상보육·무상교육, 최저임금 인상 등을 주장하였다. 북구의 복지모델조차도 공산주의로 여기는 미국 내에서는 분명히 진보적인 것이기는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한국 정도의 사회복지도 되지 않아서 70만명이 코로나로 사망하였다. 현재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들의 목표는 한국 정도의 의료보험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미국민주적 사회주의에서 배우자고 하는 것은 운동을 하향화시키자는 것이다.

Date 2021.10.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