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2개월의 훈장 또는 징역 : 17명 비정규직 노동자 징역 21년 2개월 구형에 대한 의견서

작성자
노동당
작성일
2022-01-13 10:15
조회
1206

21년 2개월의 훈장 또는 징역

: 17명 비정규직 노동자 징역 21년 2개월 구형에 대한 의견서

2021년 11월 검찰은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총 21년 2개월의 징역을 구형했습니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5년이나 감옥에 가두겠다는 이들의 죄는 공동주거침입과 공동퇴거불응 등입니다.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는 묻습니다. 이들이 침입했다는 공간은 어디였고, 이들이 퇴거에 불응하면서까지 그 공간에서 버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과연 들어가서는 안 될 공간에, 들어가서는 안 될 이유로 들어갔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들이 침입했다는 공간은 다름 아닌 지방고용노동청 복도나 대검찰청 민원실입니다.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게다가 그 공간에서 이들이 했던 일은, 정부와 사법부가 마땅히 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일들, 불법파견의 처벌과 비정규직 전환, 故 김용균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필요한 요구를 하기 위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극히 정당한 목소리를 냈을 뿐입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도 약속했던 일이고, 이 땅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였습니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검찰이 공정한 법집행을 하지 않는 동안, 오늘도 누군가는 부당하게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으며 누군가는 일하다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그만큼 정당했고, 절박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찾아가서 목소리를 높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검찰이 보다 빨리, 보다 공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늦게나마 불법파견 판결이나, 부족하나마 산업안정법 개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거리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이들 덕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들에게 줘야 할 것은 벌이 아니라 오히려 상일 것입니다.

2020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을, 그것도 최고등급인 무궁화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국민복지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들 17명의 노동자들이 했던 일 또한 그렇습니다. 이들 또한 누구나 안정적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곳,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전태일들입니다. 하지만 2021년 11월 검찰은 이들에게 징역을 구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구형량마저 전태일 열사의 짧았던 생애의 길이와 일치하는 21년 2개월입니다. 전태일 열사는 50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21년 2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를 이어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갈아 바쳐 온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총 21년 2개월의 징역을 구형했습니다.

훈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우리는, 인간으로서 정당한 권리,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의 보장을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징역 선고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과거의 전태일에게는 훈장을 수여하면서, 현재의 전태일에게는 징역을 선고할 순 없는 일입니다. 같은 땅 위에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부끄럽지 않고 싶습니다. 부디 부끄럽지 않은 현명한 판결을 기대합니다.

2022112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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