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영화 : 웅장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의 체험, 듄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영화: 웅장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의 체험, 듄
웅장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의 체험, <듄>
박수영
A.G. (After Guild) 10191년, 레토 공작이 다스리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황제 샤담 4세의 명령으로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스파이스의 생산지인 아라키스 행성을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레토는 아들 폴과 첩인 레이디 제시카와 함께 아라키스 행성으로 이주하지만, 이전 관리자인 하코넨 가문이 남겨 둔 낡은 장비로는 황제가 명령한 수확량을 채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 명령은 사실 귀족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견제하고자 하는 황제의 음모였다. 황제는 하코넨 가문과 비밀 협약을 통해 아라키스 행성에서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진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습격해 레토 공작을 살해하고,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와 함께 겨우 빠져나온 폴은 생존과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맨들을 찾아 황량한 사막을 가로지르게 된다.
한 공상과학 소설 잡지에 연재되다가 1965년 정식 출판된 공상과학 소설 <듄>은 “<반지의 제왕>외에는 견줄 작품이 없는 독창적인 작품” (아서 C. 클라크), “비판할 틈도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 (칼 세이건) 등 비평적 찬사를 한 몸에 받은 프랭크 허버트의 공상과학 소설이다. 높은 비평적 평가는 물론, 2천만 부 이상이 팔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공상과학 소설이기도 하다.
매력적인 이야기로 출간 직후부터 헐리웃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워낙 방대한 세계관과 깊은 철학적 깊이로 인해 영화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이 작품은 1984년 데이빗 린치 감독에 의해 처음 영화화된다. 최소한 3시간은 필요하다 생각한 감독과 2시간 이내로 줄일 것을 요구하던 제작자의 극한 대립 속에 결국 134분의 분량으로 공개된 이 작품은, 흥행과 비평 모두 철저히 실패하게 되고, 감독인 데이빗 린치는 후일 아예 이 영화의 감독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달라고까지 하게 된다.
2021년작 <듄>의 감독인 드니 빌뇌브와 스튜디오는 전작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원작 소설과 비슷한 대서사시인 <반지의 제왕>처럼 시리즈 연작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공개된 <듄>은 총 2부작으로 예정된 영화 중 첫 번째 파트로, 주인공 폴이 시련을 통해 원주민들의 구원자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린다.
배경이 되는 행성 아라키스는 사막으로 뒤덮여 있어 생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버려진 행성이지만, 이곳에서만 생산되는 스파이스는 수명연장, 예지능력의 개발 등의 효능이 있는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이다. 때문에 아라키스의 지배권을 두고 황제와 귀족 가문들간 끊임없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맨의 권리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사막에서 나는, 정신능력을 개화시키는 물질인 스파이스는 아랍어와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는 원주민 프레맨의 존재와 함께 중동의 석유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음을 손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신화 속 예언자는 “재림 예수”와 같은 존재라는 것 역시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영화는 먼 미래의 외계행성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 세계의 주요한 세력 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듄>은 현대의 석유를 연상시키는 주요 자원인 “스파이스”의 이권을 둘러싸고 황제, 아트레이데스, 하코네 등 귀족 가문, 신비주의 교단인 ‘베네 게세리트’, 그리고 주 무대인 행성 아라키스의 원주민 ‘프레맨’ 사이의 권력투쟁과 음모, 암투를 그리는 작품이다. 또한 주인공인 폴을 통해 해방자-학살자의 딜레마, 믿음과 광신의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총 6권으로 이루어진 원작 소설의 1권 중 절반 정도의 분량을 2시간 30분 가량의 러닝타임으로 다루고 있다. 1984년 작품이 1권 분량 전체를 2시간 안에 압축하고자 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 생각된다.
시간을 늘리고 복잡한 서브플롯을 주인공인 폴 위주로 정리하면서 느껴질 수 있는 공백을 메우는 것은 압도적인 화면이다. <시카리오>, <컨텍트>, <블레이드 러너 2049>등을 통해 단순한 스펙타클이 아닌, 감정이 느껴지는 멋진 화면들을 선사했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음모와 암투의 한가운데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소년 폴의 복잡하고 어두운 심정은 모래로 가득한 사막행성 아라키스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단번에 다다르는 듯 느껴진다.
감정을 고조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음악이다. 마치 엠비언스처럼 배경에 깔리는 음악은 각 장면의 중심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화면과 함께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해 준다. 마치 종교음악 같기도 한 단조로운 멜로디의 낮은 저음 위주의 음악은 종교와 신념, 정신세계를 주로 주로 다루는 서사 구조와 완벽히 어울린다.
워낙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가진, 그것도 2부작의 첫 번째 영화다 보니 마블이나 스타워즈 같은 액션 활극의 재미는 떨어진다. 하지만 SF적 가상 세계에서 펼쳐지는 음모와 암투의 정치 드라마, 영웅과 학살자라는 ‘동전의 양면’에 집중하는 심리물로서 영화를 바라본다면 오랫동안 잊기 힘든 충실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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