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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명은 '지향'이 담겨야 해서 노동당이다? 이론적 근거가 없는 자기 지론을 대단한 것처럼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어떤 분 말마따나 '공산당'이 좌파적 '지향'의 끝에 있으니 제일 '적합'하겠죠. ('사회당'이 '사회주의'라는 표현에 가까우니 두 번째쯤으로 적합하겠지만 아마도 그건 또 대부분 싫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사회민주당, 노동당, 사회당 등은 그저 역사적으로 선택된 이름일 뿐이에요. 왜요? 말씀하신대로 그 지향, 즉 '이념'만으로 구분되고 팔리고 먹히던 20세기에서 온 이름들이니까요. 한 줌 남은 좌파의 현실을 자조하시면서 현실정치에선 지향만 보이면 된다라...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포데모스는 당명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도 모르는 근본 없는 사람들이 만든 정당이라서 '우리는 할 수 있다'를 당명으로 지었을까요? 포퓰리즘적 입장에서 다소 무지향적이지만 고무적인 이름을 골랐겠죠. 민주, 정의, 미래, 민중. 좌파정당은 대개 이 지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나요? 그냥 무엇이 선택되었고 무엇이 기표로 남았는지 역사 속에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당명(?)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거 아닌가요.

2. 결론적으로 당명에 대한 대단한 이론은 없습니다. 그저 남았다고 할만한 건 '효과'일 뿐입니다. 이 당을 봤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인식'하고 '연상'할 것인가에 대해서요. 당의 입장에서라면 우리 당에 대해 뭘 어떻게 보여줄까에 대해서요. 기본소득이 중심이 된 정당이라고 하면요? 당연히 '기본소득당'이란 명칭을 선취해야 합니다. 그보다 좋은 효과를 내는 당명은 없을 겁니다. 그저 자신의 미감에 좋고 익숙하다고 원하는 효과를 가져오란 법은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해방적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에 동의하신다면서 '기본소득당'은 싫다고 하는 분들 또한 제 입장에선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더 보기 좋은 이름을 원하시는 건지.

3. 결국 핵심은 '당명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전략을 바꾸는 문제'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논의는 과거 노동당의 전략에 대한 평가, 이에 따른 현재 노동당이 미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할 새로운 전략에 맞춰져야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회준비위원회가 제출한 <6년의 평가>와 <3년의 전략>은 동의여부와 관계 없이 이를 논의할 수 있는 적확한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현재 논의는 '노동당을 지키고자 하는' 당의 선배 활동가들과 '노동당을 비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젊은 당 대표단의 대결로만 비춰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논의를 매우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으로 흘러가게 한 건 '노동당 사수파'라고 주장하시는 몇몇 선배 당원분들이십니다.

4. 핵심을 가지고 논쟁을 해야 합니다. 별다른 대안도 없이 '지금은 곤란하다'로 얘기가 자꾸 새면 안 됩니다. 비민주적이다. 의견으로 얘기할 순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당대회에 당명 개정에 대한 결정 권한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나요? 당명이 규정된 당헌 개정이 당대회 권한인데요. 당대회 대의원들이 소위 '거수기'니 비민주적이다? 대의원 동지들도 모욕적이겠지만, 뽑아준 당원들은 더 모욕적이겠네요. 이런 종류의 소모적인 논쟁은 이제 그만 해야 합니다. 처음 연서명하신 것에도 댓글로 말씀드렸는데 가장 큰 문제/피로감은 사실 누군가 '답'을 주장하는 것이 때문이 아니라, 그 '답'에 대한 논쟁이 없어서일 겁니다. 뭐가 다른지 알아야 논쟁도 종료가 되겠죠. 그러니 차라리 기본소득이 뭐가 해방적이냐고 하면 논쟁의 요소가 되겠지만, '노동당이 좋다'의 반복만이면 상대방도 논의를 할 수 없고, 논의를 할 수 없으니 의중을 파악하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노동당'이 좋다고 말할 거라면 그 노동당이란 당명이 가지는 의미와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래서 논의의 핵심은 당명이 아니라 반드시 전망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노총에 대한 정치기획 여전히 유효하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 000 통해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같은 것처럼요. 당연히 여기에는 어려운 얘기, 이론적 논쟁도 포함될 겁니다. '어렵게 얘기하지 말고'를 쉽게 말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5. 기본소득이 해방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 당원 분이 말씀하셨는데 백번 동의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해방적인가요? 정의로운 것인가요? 노동과 활동은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적어도 맑스적인 개념에선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노동이 가치를 만드는 행위라고 하는 건 '가치=가격', 즉 추상적 노동으로 환원되어 가치로 정량화될 수 있는, 교환가능한 물질을 생성한다는 뜻입니다. 농사'일'이 어느 순간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된 걸 생각하면 간단할 겁니다. 잉여가치=생산력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해방적이다라고 하면 맑스에 대한 심대한 오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맑스라서 다 옳다는 게 아니라 그 논리를 사용하셔서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떤 이론을 활용하지 않아도 언제부터 인간이 물질을 만드는 것을 통해 행복을 얻었는지 자문하면 답하기 어려울 겁니다. 노동이 주체가 아니라 차라리 노동자(계급)가 주체입니다. 주체는 행위자입니다. 노동이 주체라는 건 노동이 스스로의 동학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이 스스로의 동학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으로 자본주의가 스스로 움직인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해방적인 일이 아닙니다.
6. 마찬가지로 '노동'이 다른 가치를 다 담을 수 있다, '기본소득'이 다른 가치를 다 담을 수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고 이 문제를 깊게 파고 들어봤자 남는 게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사회주의'도 '페미니즘'을 모두 포괄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핵심은 효과이고, 내용은 선명함입니다. 속된 말로 그게 무엇이든 잘 팔리는 거 하나만이라도 걸어두는 게 적합하고, 또 가능한 일입니다. 현실의 운동은 점점 더 넓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그 운동에 개입하는 것보다 어떤 '총체성' 혹은 총체적 해석에 집착하는 모습은 실천을 지체시킬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운동정당의 장점은 이러한 다양한 인민들의 운동을 등가적인 형태로 연결하고 포괄하며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떤 당원 분께선 모든 피억업자들의 존재가 총체적으로 계급으로 통합된다고 하셨는데, 그건 총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개별적 존재의 세기나 주체적 동학을 제거해버리고, 역사적 주기율에 끼워넣는 일인 듯합니다. 오히려 그런 인민들의 저항 속에서 어떤 '보편적 주체'를 발견할 수 있겠죠. 무페와 같은 급진민주주의 이론에 기댈 거라면 저는 불러도 차라리 그걸 '계급'이라고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7. '기본소득당'이 누군가한테 설득력이 떨어진다면, '노동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좌파정당이라서 들어왔지 '노동당'이라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합당하고 이름 정할 때 당원도 아니었습니다. 현상유지가 최선이라는 것만큼 쉽고 게으른 대답도 없을 겁니다. 몇몇 당원들 지역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거 존경합니다. 그런데 당명을 바꾸면 지역에서 인지도 다시 쌓아야 해서 안 된다는 의견에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게 좌파들의 덕목이라지만, 당을 인지시키는데 중요한 건 결국 메세지입니다. 경험, 관계, 신뢰 모두 소중한 자산이지만 메세지 없이 고착된 당은 그저 예비후보와 당번호를 매치시킬 뿐 예비후보가 등에 짊어진 그 당을 매력적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사실 십 몇 년째 내리막인데 오늘 기본소득을 전면에 건다고 아주 잘된다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하지만 가장 가능한 대답을 찾으려고, 최저임금 1만원 때처럼 정세에 무참히 휩쓸려 주도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써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뭐라도 제대로 준비해서 한번 해볼수 있는거 아닙니까. 노동당 얼마 못 간다 얘기하시는 분들, 탈당해버릴 거라 얘기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백년대계 십 년 읊조리며 칼 갈아봐야 다 늙고 손잡이만 남습니다. 플랫폼 노동부터 시작해서 디지털 전환에 앞서 노동 문제부터 해결하고 개입해야 영역들, 제시해야 할 대안이 여전히 많습니다. 좌파들이 이런 시대에 나서서 보다 미래에 주목하고, 보다 현실적인 정책 내어놓아야 합니다. '디지털 전략' 우리보다 민중당이 먼저 제출하고 논의하는 게 우리 당의 현실이고, 실력입니다. 이런 상황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으로 사회운동정당, 기본소득당은 충분히 유효합니다. 솔직히 누가 압니까. 기본소득을 통해서 기본소득 때문에 이재명 같은 정치인 지지했던 사람이 우릴 지지하게 될지. 현상유지가 아무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면, 가능성에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닙니까. 더 좋은 대안이 이 논쟁 중에 등장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당원들 선택하고 지지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논쟁이 되길 바랍니다.


***


(페북 원글에 댓글 달아주신 당원분께 답변드린 것도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되어 붙여 올립니다.)


1. 솔직히 '현실로의 개입을 지체시킨다'에 '대응에 급급해서 뛰어다니다 소진한다'가 따라붙을지는 몰랐습니다. 말씀하신 내용들 현실의 실천이 얼마나 어렵고, 개별 활동가를 지치게 하는지에 대해서 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 실천을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말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는지요. '지체시킨다'는 말에 아무런 기획과 준비도 없이 눈에 보이는 실천을 부여잡아야 한다는 말로 읽은 건 어떤 선입견 때문인 걸까요. 현실의 현상을 짚더라도 논리를 비약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2. 글쎄요. 저희가 어느 부분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같은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총체성과 보편성을 엄밀히 구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체성은 부분들 위에 전체의 우월을 결정하는 개념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무엇에 의해 지양되는 변증법적이든 아니든지 간에요. 제가 '계급'이란 단어에 더 민감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건 총체성을 담지한 주체란 결국 구성상과는 별개로 선험적이고 초월적으로 규정될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무페/라클라우가 말한 포퓰리즘 주체=급진적 인민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구체적 억압과 투쟁 속에서 구성될지언정 역사를 담지한다는 전제가 없으며, 인민이라는 평범한 존재의 무근거성에서 강력한 정치적 함의를 발휘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포퓰리즘이 어느 순간에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밝혀지고 해석되는 것입니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같은 책이 기존 맑스주의적 이론의 주석이 아닌 오히려 사회운동의 일반론처럼 읽히는 경험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는 그들이 '절충안'을 제출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민'으로 돌아가 그들의 급진성을 재해석하고 발견해내려고 분투했다고 생각합니다.


3. 왜 사회운동정당을 '등가 사슬을 구성하는 기획'으로 설명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제출된 논고들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지만, 위의 논의에 이어보자면 단적으로 수직적 연결과 인정으론 더 이상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좌파정치가 다양한 '정체성' 앞에서 무력한 이유는 구좌파와 신좌파의 경향성 차이라기보단, 좌파정치가 '계급'의 자리를 총체성으로 고수시키기 때문입니다. 그 선험적 지위가 '인정'하지 않는 운동, 더 나아가 자신의 '노동자성'을 깨닫고 '계급'이 될 리가 없는 운동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노동당에 있는 '노동에 대한 물신'이 퀴어 안에서 '노동'을 발견하려고 하고, 페미니즘 안에서 '노동'을 발견하려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운동정당은 오해하신 것과는 달리 연대의 공간에 나아가 깃발 흘리고 구호 외치는 걸로 만족하지 말고, 직접 당이 사회운동을 발굴하고 기획하고 성장시키자는 기획입니다. 저는 이게 단순히 외국의 성공적 이론을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니라 당과 사회운동이 괴리되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자, 가능한 정치의 현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여기기에 지지하는 것입니다. 


4. '협소해진 의미의 노동'이란 말은 어떤 뜻인지 감이 잘 오지 않지만... 일단 맑스는 노동과 활동을 자신의 저작을 통해 철저히 구분하였다는 건 위의 글에 언급드렸고, 만약 이 말이 '노동정치(혹은 계급정치)'와 다른 내용을 가진 정치(운동)의 위계 혹은 지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는 또 동의할 수 없겠습니다.


5. 당명 개정에는 저도 찬성하지만 '노동당이 좋다!'만큼 '공산당이 좋다!'는 식의 논의에는 별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도 '공산당'을 남들 좋아할만큼은 좋아하지만, 그냥 '공산주의를 부르짖자! 그럼 조금은 신선해보이겠지' 같은 발상은 자기 만족일뿐 나이브할 뿐더러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들 고려한 내용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쓰신 글이 담고 계신 진중한 고민과는 별개로 대체적으로 조롱처럼 느껴지는 듯합니다. 아무튼 논의를 하려는 반가운 글이어서 제 논의에도 넣어보았습니다. 건강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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