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조직실장의 소회.

by 담쟁이 posted Jun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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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당원게시판에서 인사드립니다.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총선까지 6개월 동안 중앙당 조직실장으로 근무했던 이건수입니다.

 

당원게시판의 조회수가 폭증하면서 평소에 당 게시판에 들어와 보지 않았던 분들까지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묻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냐? 혹은 왜 일찍 중앙당 생활을 접었느냐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제게 전화를 주셨지만 저는 말을 아꼈습니다. 가끔 홈페이지에 들어와 제목만 보면 대부분의 발언들이 감정이란 잣대로 판단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발언을 더욱 아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실장의 위치에 있던 저로서는 정무직들이 무능했다는 점에 대해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선거 이전의 노동개악 국면의 활동 등은 논외입니다. 선거에 국한된 평가입니다.) 나라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구교현 대표는 잘 아시다시피 당직경험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정치인으로서 반드시 흠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바노조 위원장 출신이며, 30대라는 점은 우리 당의 정체성과 지향을 충분히 드러내주고도 남습니다. 대표단의 부족한  점은 유능한 당직자, 특히 정무직이 어떻게 역할을 해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정무직은 정치적인 직책이라는 뜻입니다. 대표단은 선출직이며 정치적인 상징성이 중요한 자리이므로 정치적 상황에 맞게 자신을 뽑아준 당원들에게 책임지고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 합니다. 일반직은 고용보장을 받는 반면,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정치적 권한도 행사하면서 고용보장도 받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정무직은 선출직인 대표단과 고용된 일반직의 중간쯤인지라 까다로운 자리 같습니다. 대표단의 집행부에 참가해서 당을 운영하는 권한을 갖는 대신 정치적 책임은 자신을 임명한 대표단에게 맡깁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는 인사권을 가진 대표단의 처분에 따라서 언제든 물러서야 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자리입니다. 실무능력과 정치력이 뛰어나거나 운이 좋다면 대표단의 임기와 관계없이 오랜 기간 일할 수  있겠지만, 그 반대라면 언제라도 대표단을 대신해서 희생양으로 혹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물러나야 하는 자리입니다. 당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부담해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를 치르면서 그리고 최근의 당원게시판 논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우리 당이 선거역량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당직자의 노동윤리도 무너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과 당원들에게 봉사해야 할 당직자들이 논란의 진앙지가 되어서 당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훌륭한 당 관료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업무에서는 유능하고 정치적으로는 진퇴를 분명히 할 줄 아는 당관료가 없어서 지금 우리 당이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가와전망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조직실장을 그만 두기 전에 선거평가를 위해서 전국의 시도당 간부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나름의 소회를 문의했을 때, 여러 분들이 재창당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저도 앞으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기대 속에서 저 나름대로의 선거평가를 마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전투구가 벌어졌습니다. 평가와전망위원회를 통한 이성적 평가와 전망 수립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평가와전망위원회가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뛰어뛰어듦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자신이 깍아먹었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평가와전망위원회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가와전망위원회는 기존의 각종 위원회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단 회의자료를 보면 위원회의 진행상황이 보고되는 일이 없고,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럴만한 사정과 근거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평당원들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조차도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당원들의 참여와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곧 있으면 결과물들이 나오겠죠. 이제 평가와전망원회가 보고서를 통해서 자신 역시 평가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어떤 결과물들이 나올지 자못 궁금합니다.


뒷북이지만, 그래서 오늘 당원게시판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 나름의 선거평가를 당원 여러분에게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치 평가

 

- 새누리당 완패, 더불어민주당 선전, 국민의당 약진. 진보진영 제자리걸음.
 
- 새누리당의 참패가 기쁜 일이지만 노동당의 비례대표 성적(0.38%)이 너무 저조하다. 녹색당(0.76%)은 물론이고 민중연합당(0.61%)에게도 뒤진다. 세 정당 모두 1%가 안 된다. 정의당이 그나마 7.23%다.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의 기운이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지 않고 국민의당으로 가 버렸다.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을 찍고 비례는 국민의당을 찍어준 야권 지지자들의 교차투표가 위력을 발휘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진보정당에 대해 너그럽게 투자하던 마음들도 그리로 빨려들어갔다.
 
- 진보진영의 표는 다 합하면 9%다. 진보정당의 최대치가 12%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 진보좌파 4당이 얻은 득표수를 보면, 213만표로 2014년 지방선거 때 통진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이 얻은 223만 표와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 3% 정도의 손실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치열한 경쟁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였다면 군소정당 세 정당이 각각 1% 정도씩 더할 수는 있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의석수도 정의당 6석에 울산연합의 2석을 포함하면 8석이다. 비례대표의석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손실은 아니다. 
- 득표율로나 의석 수로나 진보정당 전체로 보면 대단히 큰 손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노동당이다. 이게 한계인 모양이다. 우리가 다수출마전력을 썼더라도 변화는 없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치열한 경쟁구도를 바꿀만큼의 다수출마는 어느 정도라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지역밀착형 활동을 한 다수의 후보가 출마했더라도 민중연합당 이상의 득표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양보다 질이다. 노동당이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서 무언가 가능성을 증명했더라면 좀 더 의미있는 득표가 가능했을 것이다.

 

- 이제 1%미만의 세 정당은 앞으로 독자생존을 고민해야 하고, 정의당은 현상유지를 했으나 비례대표 순번으로 보듯이 정체성에서 후퇴하고 정파연합적 성격을 드러냈다. 정의당의 성과는 진보대표정당이란 이미지 덕이고, 선거연합을 구걸한 덕이다. 그들은 대선 국면에서 연합정부를 구성하려고 할 것이고, 더불어민주당의 부속물로 연명하는 노선을 당분간 유지할 것이다.
- 문제는 정의당과 녹색당 사이에 낀 노동당이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녹색당과 공동의 지반을 마련하여 적록동맹을 구축하여야 하지만, 녹색당은 스스로를 진보정당으로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당 쪽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연대연합에 적극적이지 않다. 현실정치의 쓴 맛을 몇 번의 실패를 통해서 더 맛보아야 생각이 바뀔 것이다. 노동당에서 당명을 녹색노동당 혹은 초록사회당으로 바꾸면서 강제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녹사연이 민주노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추진했던 노동당 노선을 과감히 버리고, 녹색을 당명으로 사용하는 것에 금기를 두어서는 안 된다. 녹색은 특정한 부문의 독점적 가치가 아니며 보편적인 가치이므로 널리 사용하는 것이 대중들에게 이익이다. 또한 독재시절에는 모든 정당이 민주당(하다못해 노동당도 민주노동당이었다)이었지만 민주당이 '민주'란 명칭을 독점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노선을 명확히 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지 동업자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진짜 두려운 것은 국민이다.

 

- 앞으로의 활동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가능성을 심어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투쟁단체와 같은 모습으로는 안 된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선거정당으로 거듭나야 하며, 진보정당의 정치가 어떤 것인지 현실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유의미한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최저임금1만원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고,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라고 주장한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당명을 '민생당'으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가 매체가 되어서 활동하는 수 밖에 없다. 매체가 된다고 하는 것은 특정한 매체를 만들고 육성하는 것 뿐 아니라 당의 활동방식이 여론매체와 같은 구조와 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도 있다. 정당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 정치캠페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정치캠페인이 효과적이려면 우리 당의 체계가 어떠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 첫째, 이 모든 총선결과는 대선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호남민심이 더불어민주당에 냉혹한 것, 다시 말해서 국민의당에 지지를 보낸 것은 대선을 의식해서다. 그리고 이번에 위력을 발휘한 교차투표 역시 그 바탕에는 대선이 자리잡고 있다. 대선이 끝나면 판이 바뀔 것이고, 그때 다시 판을 짜기 위해 미리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 선거제도 개혁운동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우선 결선투표제부터 시작해서 물꼬를 튼 다음, 전면적인 비례대표를 도입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2. 조직 평가

 

- 선거 결과 낮은 지지율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으나, 선거 과정에서 당원들로 하여금 보람을 느끼고 유권자들에게 노동당의 존재이유를 설득하는데 실패했음.

 

- 1월초 4기 6차 전국위에서 총선종합계획 채택된 이후 중앙당은 개방형 비례대표에 대한 미련, 상반기 사업계획 수립 등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음. 이 시기에 세밀하고 전략적인 선거실무 기획을 토론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없었으며, 이에 따라 중앙당 총선활동은 새해 사업계획에 따라 각 부서별로 다분히 실무적으로 사업을 집행하거나 각자의 경험에 따라 자발성을 발휘하는 수준이었음.


- 울산동구 전략지역구의 진보후보 단일화 실패 이후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지 못함으로써 의례적인 선거 진행에 그쳤음. 중앙집행위, 당직자 워크샵, 의견그룹 간담회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지혜와 의견을 모아야 했으나 소수의 한정된 실무자 풀을 넘어서지 못했음.

 

- 조직실 차원에서는 당원참여에 의한 선거운동을 위하여 컨텐츠를 생산하였으나,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실행하지는 못하였음. 시도당 선거사무원 등록으로 일정 정도 활력을 만들었으나 시기적으로 다소 늦는 등  실무미숙이 있었음.

 

- 지역구 출마자의 경우 선본의 선거실무 경험 부족, 후보의 평소 지역활동 미비, 급하게 결정된 출마 등 전반적으로 선거 준비태세가 부족하였음. 선거학교 및 사무처장단회의 수시 개최 등을 통하여 미리 대비하고 부분적으로나마 보완할 필요성이 있었으나 새해 사업계획 수립 등과 겹쳐서 시기를 놓쳤음.
 
- 본 선거 이전에 진행한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정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으나, 언론 주목에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임. 선거기간 전에는 통상적 정당활동을 위하여 많은 시도가 있었고, 조직실도 적극 결합하였음. 시도당 체계를 통한 활동에 있어서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으나, 당원의 참여에 의한 전당적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었음. 선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이슈를 남겼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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