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미래'='도로 꼴통'

by 박찬수 posted Jul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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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당의 미래'란 이름의 게시물을 보고서야

뭔가 이해 안되던 부분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노동권'부터 시작해서 툭하면 나온 궤변들이 결국 같은 무리였군요.

최소한, 한번의 실수나 누구나 한번쯤은 할 수 있는 그런 잘못이 아니라,

아예 목적하고 움직이고 있단 것을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네요.


< 쪽수 정치 >

현(아, 이젠 '사퇴한'이 되겠군요.) 대표부는 당이 인정하는, 우리가 이미 합의한 테두리 내에서 

경쟁을 통해 당선됐습니다.

당선자는 이로부터 획득된 권한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전 세계 어떤 정부와 조직이 이 자체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데도, 지금에 와서 '합의되지 않음'을 문제 삼거나,  '기본소득'이 옳지 않다는 등등은

당의 합의사항 및 지지한 세력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합의한 제도가 가진 문제가 지금 밝혀졌다 해도,

이는 함께 풀어야 숙제이자 책임이지 특정 세력만의 책임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백번양보하여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면,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현 제도를 유지하는데 더 공이 큰  '당의 미래' 에 있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욱이 자신이 그 경쟁에서 이겼을 때, 똑같이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 탓을 한다는 것은 실재론 자신이 자신을 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노동권" 문제와 똑같은 형식의 궤변입니다.

자신들도 했고, 자신들도 했을 사항이 왜 다른 사람이 하면 다 문제가 되는건가요.


특히, '기본소득'은 '대표선거'시 부터 있던 내용입니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은 존재할 수 있어도

이게 지금에 와서야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정말 '쪽수 정치'는 자신 뒤의 사람들 무리 수만 믿고선 설치고 분위기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퇴한 지도부는 공정한 경선을 통해 주어진 '합의된' 권리라도 되죠.

님들은 대체 누구한테 '합의'받아 이리 예쁘게도 설쳐주시나요.

당신들과 똑같이 얘기해 보죠.

도대체 '당의 미래'는 누가 합의해 줘서 만들고 또 주장하라고 합의해 줬나요?

난 합의해 준적이 없는데 당 내에서 '당의 미래'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주장하시나요.


진짜 '쪽수 정치'는 '당의 미래'가 한 것이지 이를 말도 안되는 논리와 근거로,

또 모두가 책임져야 할 사항을,

특정 세력에게만 덮혀 씌우면 안되는 겁니다.


이는 이미 이 자체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스스로가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믿는 '쪽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워낙 뻔뻔해서 자신들이 얼마나 뻔뻔한지도 모를 겁니다.

아니죠. 뻔뻔함을 느낀다면, 양심이라도 있는 것이겠죠.

굳이 그럴 필요 있으시겠어요. 어차피 믿는 '쪽수'가 있는데...


"하지 않은 것", "못한 것", "할 수 없는 것"은 서로가 매우 다른 의미입니다.

누가해도 똑같고, 누가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나 잘못이지 그게 특정 세력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전망'은 우리 모두가 하지 못했던, 무엇이 부족했는지에 대한

'당원'들의 반성이자 책임을 다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그 결과를 당신들처럼 특정 세력의 잘못으로 만들면서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특정 세력의 문제라면, '전망'이란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하지 말고,

'난 사회당계는 무조건 싫어. 왜 굴러온 돌에게 대표부를 줘야 해~'라고

사실대로 표헌하고 '정쟁'을 하셨어야지요.

그래야 '전망'을 기다리는 당원들이 덜 답답했겠지요.

뭐 이것조차도 뒤의 '쪽수'만 믿고 하는데, 이 외에 다른 것이 보일리 만무하셨겠지만요.


< 패권주의 >

패권주의란 자신이 가진 권력을 타인에게 행사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문제를 만들어 자신이 개입할 여지를 억지로라도 만듭니다.

현재 당의 모습엔 모두의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모두 함께 걸어온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툭하면 '기본 소득'을 문제 삼습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고, '전망'을 얘기합니다.


당은 시작부터 그 모습이 이미 '대중정당'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운동 단체라면 지하(비밀)조직 형태로 대중과 관계없이 지내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은

대중이 원하는, 대중이 이해하는 어떤 모습과 형태로든

관계하고 소통해야 할 기본 책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 소득'은 당신들이 말하는 그 이론과 관계없이

'당'으로 마땅히 해야 할 여러가지 방식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는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기본 소득'으로 안된다고 여기는 것은 현재 당에 부재한 모습 중 하나일 뿐입니다.

더욱이 이미 활동하고 대표선거 공약에도 있는 내용에 대해 '틀렸다'함은

활동 자체를 중지하라는 얘기나 진배없습니다.


함에도, 이들은 얘기합니다.

'합의'하자. '상대를 인정하자'

현재 진행형인 상대의 활동 자체도 인정도 못하고, 아예 하지 말라고 떼까지 쓰는데,

'당의 미래'는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합의가 가능한지 보여주시지요.

그래야 '합의'정치를 모르거나 부족한 사람이 따르지요.


'노동권'이니 뭐니 계속 근거도 없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심지어는 자신조차 한 행위를 부정하면서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이미 스스로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선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만 사사건건 문제삼는 행위.

이거야 말로 바로 '패권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다른 것'도 '틀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입할 문제를 만들어 '자신들의 무리의 쪽수'로 밀어부치기.


자신들의 그릇된 행위마저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득권 세력이 잘하는 못된 버릇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 텃세 >

우리들은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을 얘기합니다.

이유 없이, 근거 없이 '박힌 돌'이 시비거는 것을 '텃세'라고 합니다.

그래도 '텃세'는 자기 것에 대한 애정의 증표이기도 하고,

대개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한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러한 것은

'경쟁'에서 지고 나서 배아프니 심사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단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 '안한 것', '못한 것', '할 수 없는 것' >

< '다른 것'과 '틀린 것' >

이에 대해서 구분하지 못하면, 문제의 성질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 아무 것도 하지 못하거나, 2개의 노동당 >

현재 당은 어떤 시스템, 제도를 도입해도 2개의 계파가 다른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현재와 같으면,

'합의 정치'를 하려 해도 운동회를 열려해도 100년 지나도 못하거나,

같은 의제로 '사톼한 대표부'와 '당의 미래'가 각기 2개의 깃발로 모이지 않는다

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려 노력하지 못했다는 건

공동의 책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풀려해도 어느 한쪽이라도 막장이면 풀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굴러온 돌'은 어떤 순간에도 '박힌 돌'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

여전히 순진한 '굴러온 돌'은 쪼개지는 것만 두려워할 뿐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떼를 써도 누구에게 얼만큼 떼를 써야 된다는 것쯤은 압니다.

한번 해서 통하면 계속 하고 나중엔 당연한 것이 되는게  '떼쓰기'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합의 정치'를 말하면서도 지금까지 가장 많이 한 일이

'사퇴하라'와 '사퇴' 인 것입니다.


다들 '이직'이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잘알겠지만,

지금 '박힌 돌'이 '굴러온 돌'에게 하는 얘기를 '굴러온 돌'은 그 몇배 이상으로 똑같이 느꼈을 사항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얘기하지 않았고, 할 수가 없었을 뿐임을 잘 알 것입니다.

'텃세'도 지나치면 '권력'이 되고 '독재'가 됩니다.


'당'은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전망'은 고사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함께 해도 부족할 판에,  다같이 고생 지지리도 하는데,

막장을 하려거든  여기에 님들 막장까지 덜어주진 못할망정 안겨줘서야 되겠습니까.


< 대중 운동 >

그래도 같은 조직원이라 여기선 아무리 궤변을 늘어놔도 무리가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들어줍니다.

대중은 내가 옳은지, 똑똑한 지, 잘났는지, 못났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나를 지지할 이유도 없고, 아니 관심을 가질 이유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있건 없건 아예 상관이 없으니까요.

차라리 길가다 욕짓거리라도 해 주면 다행입니다.

왜냐면, 그래도 관심이라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잘못된 방식으로 어떤 편입견이라도 가지게 되면,

이걸 다시 바로 잡는데만 해도 몇 배, 몇 십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데,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대중과는 관계하죠.

그 땐 또 다르겠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겠죠.

현재 극복해야 할 과제나 문제인식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중 공간이라고 뭐가 달라질 수 있단 믿음이 생길 수 있을까요.


'당의 미래'를 보면, 대중 앞에 서서 제대로 뭐라도 해 본 적이나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가장 뼈아프고도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 내 자신의 부족함" 이기 때문입니다.


님들은 남 탓 하고, 자기 잘난체 하기 바쁘잖아요.


< "극복해야 할 과제"와 "문제" >

현재 당이 겪는 문제는 이번 만이 절대 될 수가 없습니다.

'대중 정당'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향후에 어떤 때 어떤 상황이 존재할 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몇 천, 몇 만명의 당원을 가입시켜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은 이쪽, 저쪽에 비운동권까지 몇 십 아니 몇 백개의 무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 때도 지금과 같이 '문제'라고 할 건가요.

님들은 분명히 그럴 겁니다.


우린 어떤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 이상의 방법은 찾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못나고 0.0001%의 득표를 받는다해도,

'운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는

"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한다면, 우린 어떤 경우에라도 '극복할 과제'로 보고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 '문제'로 삼는다 것"입니다.


'당의 미래'에겐 '사퇴한 대표부'가 문제고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다른 사람들이 문제겠지만,

우린 우리 당이 문제라 생각하고,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보고,

그래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고민하게 될 것 입니다.


운동하는 사람의 책임은, 말이나 사퇴같은 뭣같지도 않은 그저 그런 행동이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기본 소명입니다.

그래서 우린 남이나 무언가를 탓하기 전에 항상 내가 무얼할 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   >


'새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 주장에 걸맞는 실천을 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래야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이 믿고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이 우리에게 보다 엄밀한 '도덕성의 잣대'로 보는 것은 그렇기에 당연한 이치입니다.


'제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안'하는 사람이 먼저 자기 주장에 대해 본보기를 보이거나,

그 근거를 찾거나 만들어야 합니다.


< 한국의 좌파 운동  >

한국의 좌파는 선배란 작자들부터 매번 그랬습니다.

늘 소위 주사파에게 대중 영역에서부터 밀리고,

현장은 이런 저런 이유로 떠나기 바쁘면서도,

정작 자신의 반성보단 남탓하고 그 놈의 이유 아닌 이유 대기만 바뻤습니다.


한국의 좌파운동이 언제는 이론이 없어서, 잘못돼서, 마르크스 주의를 더 이해하지 못해 실패했을까요.

자기 주장만 옳다는 생각만으로 행동했을 때, 그 나머지 모두는 우리들로부터 등을 돌렸고,

자신의 주장과는 합당하지 않는 모습들로 또 역시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이 얻는 몇푼어치의 지식이 이론의 다인냥 착각하고, 이로부터 다른 사람은 대상화하고,

방법을 찾기 보단, 다른 것으로 문제를 대체하기 바뻤습니다.

그 결과의 모습이 현재입니다.

(이론은 지식이 아니라, 여기에 내포된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고 실천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선배라고 내세울만한 사람 한명 없는 것이 한국 좌파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는 현재 우리 당 내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때, 좌파에게 말했습니다.

"꼴통" 좌파 라고.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맞는 말이고, 전혀 부족함이 없는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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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이 '도로 꼴통'이 아니라면,

님들의 어떤 행위가 '쪽수 정치'가 아니고 '패권 주의'가 아닌지 설명하고 증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합의 정치'의 본보기 부터 보여주세요.

같은 사람이 똑같은 사람을 이끌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구 사회당 소속이라 해 봐야 원래 운동권도 아니고,  뭐가 어떻다고  지지할 사람도 없는 1명이니

님들 잘난체 하는데 이 보다 더 먹기 좋은 떡밥이 어딨고,

그나마 '마르크스 주의'가 뭔지는 아는 사람인데 이 정도의 직장인 1명도 설득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대중 운동 예행 연습한다는 셈치고 좀 보여주세요.

아주 열심히, 열심해 배우고 또 본받도록 하겠습니다.

이해력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니 청출어람할 지 어찌 알겠습니까.


님들이 백만명, 천만명 된다해도 싸가지가 없고 똥배짱이라 하나 두렵지도 않습니다.

님들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천지거든요. 그 수에 비해봐야 새발의 피입니다.

그리고, 님들은 여전히 누군가 탓하고 문제 삼을거지만, 전 어떤 경우에도 방법을 찾을텐데

뭐가 겁나겠어요.


어떤 소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잘못을 하면 나쁜 놈이고, 좋을 일을 하면 좋은 놈"인 것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운동한다고, 어느 무리나 조직에 있다해서 더 정당하진 않습니다.


개인 얘기 좀 하자면,

어차피 직장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면,

'이 곳에서 날 믿고 당에 투표할 10만명을 만드는 것' 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보니,

'당'을 가도, '회사'에서도 늘 홀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당'은 오랜 만에 만나면 늘 반갑지만 '삶에 대한 공유'가 부족하고, '회사'는 그 반대겠죠.

누구의 탓도 아니고, 제가 지어야 할 그냥 삶의 몫 쯤으로 여깁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 힘들 때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은 아무리 싫어도 욕해도 그걸 들어 줄 사람이 있잖아요.

조금만 생각을 바꿔봐도 이리 행복한 것을, 무엇이 그리 옹졸하게들 만들었을까요.


톨스토이인가, 누군가 했던 말 같습니다.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부터 바꾸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말씀 드립니다.


유럽 좌파 정당의 역사만 해도 백년이 넘습니다.

여기에 한국 좌파 정당의 역사는

한국의 자본가나 기득권 정당의 역사와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니, 진짜 좌파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우린 진정 좌파 정당으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 지,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야 하는

걸음마도 못뗀 애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들이 얘기하길, 뭔가 사업 아이템 하나 생각해 내는데도 기본이 최소 7년을 봅니다.

이것도 매우 운이 좋은 경우이지 실재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 조차 없습니다.

특히나, 반공이데올로기에, 단 한번의 혁명도 없던 역사에,

개인이기주의가 조선일보에서 조차 문제라고 얘기할 정도의 한국 사회에서

실력 좋고 가진 것도 많은 기득권에 대항해서 무언가 만든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앞선 선배의 역사조차, 우리 스스로의 경험조차 턱없이 부족하잖아요.


'운동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해야 하며,

타인의 운동성에 대해선 관대해야 하며,
불의엔 단호하고,

일관된 모습과 함께 전술에 대해선 최대한 유연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처음부터 당이 당 다운 모습을 갖추는데도 몇년, 아니 몇십 몇백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0.3%요? 0.00001% 면 어떤데요.

반대로 90%라도 이게 우리 방식이 아니면 무슨 소용인가요.

더욱이 당은 대부분이 운동권인 현실에 대중들의 삶과 거리가 있던 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사지가 잘려나간다 해도, 그건 나의 부족함이지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가 운동을 시작하고자 했던 그 '이유'가 존재하는 한,

우리의 부족함일 뿐이지 우리에게 영원히 실패란 없습니다.

오늘 사지가 잘리고, 또 내일은 어딘가가 잘려 나가고, 마지막 내 혀나 두 눈만 붙어 있는다해도

그건 나의 또 부족함일 뿐입니다.

그 세치 혓바닥이라도 놀릴 수 있는데 까지 해보고,

이 못난 두 눈이라도 부릅뜨고 쳐다볼 수 있는 한 쳐다보고 그리 가면 됩니다.

그래서 내 후배는 나보단 콧털 하나라도 더 붙어 시작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고요.

어찌 압니까, 이런 날 내일 당장 저 바위덩어리가 부서질지.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을 찾고, 그 결과에 취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매번 반성하고

'새 세상'이 오는 그 날까지 가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운동을 하고자 했다면, 우리들의 숙명일테니까요.

누구에게 원하고 바라기 보단, 이는 우리 스스로부터 먼저 찾고 만들면서

다른 사람 혹은 당과 관계해야 하는 것이라 봅니다.


내게 답이 없으면, 대개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울 때일 수록, 그래서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듯 합니다.


" 진인사 대천명" 이니까요.


P.S: 노래도 잘 안듣는데, 가요 한 귀절이 요즘 자꾸 귀속을 맵돕니다.

"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https://www.youtube.com/watch?v=z1eD6h43i2U


  P.S:  글 제목의 일부와 내용 중에 2줄에 문제가 있는 단어가 있어 삭제 처리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아 그러한 것이니, 이 부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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