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경쟁에 참여하고픈 욕망이 저지른 범죄]

by 변신 posted May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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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8일 강남역 근처 노래방 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무고한 20대 여성을 살해했다.


나는 모든 범죄가 본인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전제 아래

가해자의 최종적인 이익이 합리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면,

그 범죄는 사회의 병폐로 분류돼, 분석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범죄에서 노동당 <여성위원회>의 논평과는 달리  <여성 혐오> 보다는 <욕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통념상, 여성 살해보다는 구타가, 구타보다는 성폭행 혹은 추행이 더 많은 옹호를 받는다.


심지어 그러한 옹호로부터 자발적으로 멀어지는 행위를 우리 사회는 그동안

<비정상> <정신이상>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의 닉네임을 붙이면서,

정상인(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과 분류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도 소위 <묻지마 범죄>에 관심을 갖다보니,

범죄의 대상이 우연적으로 선택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고,

가해자 역시 쉽게 분류되지 않는 존재임을 터득하게 됐다.


사실, 이런 범죄의 경우

<계획적>이라는 말도, <우발적>이라는 말도 타당하지 않다.


자신이 어떤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살해를 계획한 것도 아니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순간적으로 분노를 느꼈다는 것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안 된다.

(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장소를 물색해, 여성이 등장하기를 기다렸으니, 분노는 준비된 셈이다.) 


우리는 그 분노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자생되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심지어는 숨만 쉬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주민세 대신 동네 어귀에서 쓰레기를 주울 순 없으니까.)


대학생들이 꼽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건희> <유재석> <김연아> <스티브 잡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그들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경쟁하면서,


우리는 점점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공허함을 느끼고, 

성공에서 멀어질수록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어느새 밥벌이에  지칠 때, 박지성의 기형적인 발을 보면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타인의 성공에 대해선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룬 것이라고 확신(질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사회의 중심에 서 있는데,

그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물론 5월 18일 그녀가 그 노래방 화장실에 하필 그 시간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과,

그 화장실에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들어갔더라면 아무 일이 없었을 거라는 분노는,

마땅하지만,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다행히>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 무의미하듯,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서  <여성 혐오>라는 용어를 쓰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어떤 여성도 여성만 혹은 약자만 보호받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성이,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을 필요로 할 뿐이다.  


이 사건은 자본주의가 만든 전형적인 범죄로 기록되어야 하며, 

 <여성 혐오>라는 단어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취향의 대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모든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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