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권석천의 복기『정의를 부탁해』

by 청수 posted Apr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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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 권석천의 복기 『정의를 부탁해』





종북이란 용어의 본적지는
보수진영이 아니라 진보진영이었다



오래전 정운영의 칼럼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때 이후 신문에 실렸던 글을 모아놓은 책을 구입하는 일은 없었으니, 그럴만한 필자가 없었다고 할까. 그랬던 내가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책을 집어 들게 된 건 방송인 손석희의 극찬 때문이었다. 권석천의 시각, 『정의를 부탁해』를 통해 처음으로 그의 글을 접했다. 반신반의하며 읽어나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만족스러워 하는 나를 발견했다. 손석희는 추천사에서 “내가 팬인 거의 유일한 글쟁이”라며 그의 글은 “웅장”하지도 않고 “명문”도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할 수 있다”고 평한다. 이 책에서 만난 94개의 칼럼 전부를 읽어본 결과 사실이었다. 문장, 글, 문체 어느 하나 빼어난 게 없지만 동시대를 함께 견디며 매의 눈으로 사건들을 추적하고 고통스런 진실을 마주하려는 권석천의 노력은 의미 있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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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왜 ‘정의를 부탁해’로 했을까. 그에게 ‘정의’는 어떤 의미였을까. 권석천은 1967년생으로 법학을 전공했고 경향신문 기자와 중앙일보 법조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학업이든 직업이든 그는 법과 연관이 깊은 ‘정의’에 관해 평생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권 논설위원은 신문의 칼럼을 통해 한국사회 곳곳에 ‘정의가 부재함’을 날카롭게 드러내왔다. 그의 문장은 신문기자답게 건조하고 논리적이고 깔끔하지만 그렇기에 개성이 생명인 문체의 매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글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저자의 ‘따뜻한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약자와 억울한 사람들에게 더더욱 마음을 쏟는다. 마음가짐, 세상을 보는 눈, 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저자의 인간미에 감화된다. 그는 하나의 칼럼을 작성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찾아 참조했고 핵심을 정확하게 짚으려고 노력했다.


실시간으로 작성한 칼럼들과 사후복기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글은 그가 중앙일보의 ‘시시각각 필진’에 참여하면서 발표한 것들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이미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건들을 되돌아보는 데 있다. 권석천은 바로 그 사건들이 뉴스로 막 불거진 시기에 칼럼을 써야했다. 사건을 분석, 진단, 평가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담았다. 이렇게 세월이 조금 흐른 뒤, 그때 그 사건들을 돌아보는 것 즉 복기과정이 흥미롭다. 과연 당시에 그가 내린 진단이 옳았는지, 칼럼 발표 이후 그의 예측대로 매듭지어졌는지, 잘못된 정보에 의해 오판했던 것은 아닌지 비교하게 된다. 수록한 글들과 책을 엮으며 저자가 직접 붙인 후기를 보면 대부분 그의 진단이 맞았고 결과는 예측대로 흘러갔다. 물론 운 좋게 들어맞은 것들만 묶어내고 크게 오판했던 것들을 은근슬쩍 생략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저자의 양심을 믿을 수밖에 없다. 사실 중요한 건 비판적 시선이지 예측의 정확성이 아니다.


권석천은 대학에 들어가 운동권 활동을 한 뒤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같은 학생운동 언더서클에 있던 친구로부터 “네가 판사가 된다면 내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겠니?”라는 질문을 받은 후 고민 끝에 사법시험 응시를 포기한다. 이후 문화부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전공 때문에 경찰, 법조를 담당했다. 기자 시절 그는 “중심보다 주변부에, 칼을 쥔 쪽보다 칼끝 앞에 서 있는 쪽에 자꾸 눈길”이 갔다고 한다. 나라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들- 국정원 댓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을 접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고민도 깊어갔다. 그는 “엇비슷한 이슈들이 물고 물리면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한국 사회가 돌파구를 찾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냈다. 과거의 사건에 대해 성찰하고 그 전개과정과 결말을 복기해보면 그와 유사한 바로 눈앞의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나는 독자로서 권석천이라는 필자와 함께 지난날의 사건들을 복기해 나가는 특별한 독서여행을 하였다.


사회당의 종북 비판과 민주노동당의 종북논란


권석천은 거의 모든 글에서 정의가 부재한 자리를 조망하고, 한국 사회의 작동 원리를 고발하고,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묻는다. 법 앞의 평등이라지만 ‘성완종 리스트’ 수사 결과를 보며 “형사책임이 힘의 서열 역순으로 재분배 되는 건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을 곱씹는다. 죄질에 따라 형량이 무거워진 게 아니라 힘 있는 주역들은 요리조리 피해가고 실무자들만 처벌받았다. “법률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인문학적 감수성, 인간애, 정의감 같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사법시험에 출제되지 않는다.


진보정당들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조사와 서술을 보면 권석천이 얼마나 사실과 핵심에 충실히 다가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종북’의 연원을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정리한다.


종북從北이란 용어의 본적지는 보수진영이 아니라 진보진영이었다. 2001년 12월 당시 원용수 사회당 대표가 민주노동당의 통합 논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사용했다.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함께 당을 할 수 없다.”(《연합뉴스》 2001년 12월 21일) 종북논란은 2008년 민노당 내부에서 또다시 불거진다. 당내 진보신당파가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직자 제명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수파인 민족해방NL 계열을 ‘종북주의’로 규정한 뒤 탈당한 것이다.
- 「그렇다면 나는 ‘종북’일까」


그가 새삼 종북의 출처를 찾아내고 다시 정리한 까닭은 2013년 8월의 ‘이석기 내란음모’ 수사와 11월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라는 엄청난 사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들이 자주 그러하듯 남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종북이란 과장된 공포의 언어로 시민들을 위축시키는 일이야말로 북한의 유일사상 체제를 뒤따라가는 것, 즉 종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1994년 고시잡지에서 출제된 ‘정당 해산과 관련한 문제’는 19년 만에 ‘사회 문제’로 출현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다양한 의견이 숨 쉴 공간을 위축시킬 가능성”을 낳는다.


통진당이나 종북세력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 역시 그들이 그릇된 길로 접어들었다고 믿는 쪽이다. 하지만 그들을 해산시키더라도 그들의 생각까지 해산시킬 수는 없다. 그들은 정부가 아니라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평가되고 걸러져야 한다.
- 「생각까지 해산시킬 순 없다」


한편 간통죄는 폐지되고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자 “사상의 자유는 안 되고 성의 자유는 되는 거냐”고 조롱하기도 한다. 권석천이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글을 쓰는 동안’ 통합진보당은 민주공화국의 자유시장에서 ‘퇴출, 강제해산’ 되었다.


정의를 갈망하는 따뜻한 시선


권석천의 시각, 『정의를 부탁해』는 실로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논한다. 그것들을 다시금 기억해 내고 음미하는 것도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가운데 일부만 추려본다.


특히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을 수용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데 맞서 동교동 중심의 새천년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과거사’가 ‘친노-비노 반목’의 뿌리로 지목돼왔다.
···
권력에의 의지로 집요하게 전략을 짜고, 자신들을 단련시키고, 치열한 ‘가치 논쟁’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정당엔 미래가 없다.
- 「새정치연합은 폼 나는 패배를 원한다」


전두환의 은닉재산 환수를 놓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것과 전두환 만큼은 ‘전두환식으로’ 되갚아 주는 것 가운데 어느 게 정의일까 고민해 본다.


학력 및 로스쿨 관련해서 아이의 성적은 “엄마의 정보력부터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며 한국은 “계층 간 이동이 막힌 사회, 새로운 중세”라고 야유한다. 신종 음서제는 사회 퇴행의 징후라는 것이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소재로 하여 로비스트와 이익집단의 자유 경쟁을 통한 타협과 절충이라는 미국 정치의 핵심원리를 음미한다. 그는 “정리되지 않은 이슈들이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사회”를 개탄한다.


같은 당명을 못 쓰게 하는 조항은 19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되고 출범한 국보위 작품인데 2%를 얻지 못한 진보신당과 녹색당이 그 피해를 입었다. 그 조항은 2014년 1월 위헌 결정으로 폐기되었다.


고려대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물음에 “중요한 건 대자보를 쓴 학생이 노동당 당원이란 게 아니다. 그 대자보가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응답한다. “차라리 인터넷이나 트위터가 없었다면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종교가 19세기 인민의 아편이었다면 21세기엔 인터넷이, 스마트폰이 젊음의 아편인 거다.”


지금까지 권석천과 함께 지난 사건들을 복기해보았다. 바둑을 소재로 한 드라마 《미생》에서 그가 인상 깊게 본 부분은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다고 한다. 그가 사건 현장에서 직접 두었고 나중에 복기해보던 칼럼 모음 『정의를 부탁해』는 바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한 책이다. 권석천은 후기에서 이기는 게 정의인 세상의 상식을 깨자고 호소한다, “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존재다”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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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엽 : 매일 새벽 탑차를 몰고 나가는 택배노동자, 음악 듣고 바둑 두고 책 읽고 야구 하며 지내는 노동당 당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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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월간 좌파] 제36호 2016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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