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을 마치고

by 추공 posted Jul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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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포함해서 평전에 체출한 문서 두 편까지 첨부자료로 올렸습니다. 글이 길어서 첨부자료로 읽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첨부자료가 중요합니다. 

여하튼 평전에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하지만 저와 평전 위원들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전을 마치고

 

평전 과정을 스케치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오직 저 개인의 생각이므로 책임은 모든 제게 있습니다.

평전은 실패했습니다. 합의나 봉합이 실패했다는 의미입니다. 당권파 위원들은 정파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함구했고 제가 제안했던 내용은 전부 거부했습니다. 정당연합이나 새로운 지역 전략 등은 물론이고 당의 정치 전략을 연구하는 연구소나 정치기구를 두는 것도 반대했습니다. 합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저는 노동당이 재창당에 준하는 새로운 시도가 없다면 더 이상 의미 있는 현장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거결과로 판단하는 선거평가가 아니라 “운동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평가의 기준을 제시했고 또 몇 가지를 제안했습니다(첨부파일 중 두 개는 평전에 제출한 것입니다).

 

첨부한 자료는 정파문제를 주로 다루었습니다만 저의 주장의 핵심은 정당운동의 “내부민주주의”입니다. 정치정당에서 내부민주주의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지 우리의 진보정당운동이 권위주의 정파에 의해 계속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의미를 넘어서 당내민주주의는 “당원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정체성 형성”을 위한 기본원칙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1. 내부민주주의가 왜 중요한가?

민노당 이후 지금까지 진보정당운동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분명 후퇴했습니다.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그 경험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발전이 더디며 서구식 정당 시스템은커녕 당은 주변화 되고 그나마 분열을 거듭합니다. 통합된 정당은 다시 분열을 준비합니다. 통합이라는 이름의 분열의 중심에는 조절되지 않는 “정파정치”가 있습니다. 애초에 당원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으니 정파정치는 결국 엘리트주의의 원인이 됩니다.

 

정치정당의 저발전은 한국운동 전반의 저발전, 민주주의의 후퇴,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의 실패의 원인입니다. 진보정당운동의 연구자들의 평가 글을 보면 신기하게도 약속이나 한 듯이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지목합니다만 그것은 의미 없는 동어 반복입니다. 애초에 민노당은 민노총의 중앙파와 학생운동에 뿌리를 둔 몇 개의 조직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습니다. 그 목적은 누가 말은 하지 않아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였습니다. 정치세력화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동어반복이며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런 세간의 평가는 정당운동에 대한 잘못된 이해방식에 기인합니다


지금까지 아주 당연시 여기고 있는 사회운동정당 개념이 실은 정당운동을 사회운동의 결과로만 이해하는 사회운동 우위의 잘못된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래서는 독자적 정치정당의 영역을 사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정당은 노동운동이 실패하고 있는 것만큼 그대로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존의 민노총의 대리조직이나 도구로 이해된 정치정당은 정당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체제 내부에서 의미 있는 개입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렇게 저발전된 정당시스템과 민주주의로는 어떤 진보적 가치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대중에 대한 설득력이 생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정당운동이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정체성을 새로 구성해야 합니다. 당내민주주의는 이 정체성 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념입니다.


저는 당내민주주의 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운동조직 전체가 내부민주주의를 거론하지 않습니다. 이는 내부민주주의, 특히 정당의 기본요건조차 우리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는 지나치게 당연히 해왔던 관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만입니다. 사회주의자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당내민주주의는 정밀하게 설계된 민주주의 제도를 만들고 그것에 의해 훈련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당내 민주주의는 우리 운동현실의 암담함과 후진적인 정치현실, 특히 정파주의에 찌든 현실 때문에 기껏 정파들 간의 갈등조절 제도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정파주의를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정당운동 처음부터 패권주의가 당에서 범람하고 그것이 정당정치의 기본 원칙을, 특히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의 원칙과 같은 문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왔기 때문에 당내 민주주의의 원래 취지와 의미를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당운동의 원칙을 다시 말해야 하고 새로운 운동을 말해야 합니다.

 

서구, 예컨대 독일의 사민당의 경우 약 1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100년 정당을 훌쩍 뛰어넘는 이 같은 시간동안 독일의 계급정치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존속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당내민주주의의 원칙이라고 봅니다. 특히 강령을 만들거나 개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당원중심주의의 원칙은 당의 기본강령의 가장 기본원칙으로 기본강령에 기입되어 있습니다. 즉 기본강령은 당내민주주의를 의무화한 강령입니다. 정당은 내부에 당원들에 의해 조직된 2차 집단, 즉 정파와 의견그룹들, 그리고 개인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합입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때문에 토론이 제도화되어야 하고 각 세력 간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합의의 과정, 즉 “민주적 합의”가 제도화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서 집합의 의지가 만들어 집니다. 이것이 당의 정체성입니다.

 

당의 정체성은 특출한 정치 엘리트나 당권파의 이론가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출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만드는 과정이 당내 민주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당의 정체성은 당의 내부민주주의, 즉 내부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 토론으로 조직되어 생산됩니다. 독일 사민당의 경우 강령의 개정을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여 몇 년에 걸쳐 조사하고 강령초안을 위해 분과위원회 등을 만들고 세부계획을 토론하며 합의에 만들어 내는 복잡한 절차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기본강령을 수정하는 86년 기본개정안이 나올 때까지는 8년이 걸렸습니다. 8년 동안 당원중심의 토론과 당적 합의의 과정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내 민주주의는 150년 동안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당내 제도의 총화이고 문화가 됩니다. 흔히 오해하듯이 우리와는 다른 토론문화”는 이 제도의 합의 과정에 만들어 지는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노당도 당원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창당됩니다만 사실상 사문화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사회의 민주주의(체제)에서 정당은 대단히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정당의 정치적 의사표현과 정치적 결정은 곧바로 국가적 결정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물론 원내정당의 얘기이긴 합니다만 오직 정당만이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현대정치를 “정당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사회에서는 정당만이 유일하게 제도정치에 직접 개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당의 내부민주주의는 (주변화 된 진보정당은 해당사항이 없는 것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당원들과 정당, 그리고 그 외의 조직들(타 정당, 원내교섭단체, 정부) 등과 유기적인 결합을 유지하게 하는 제도적 절차이고 따라서 한 국가의 의사결정과정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 국가의 민주주의의 성격은 정당시스템에 의해 가장 크게 좌우됩니다. 정당이 투쟁단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투쟁단체와 동일하다고 판단하면 곤란합니다. 이는 진보정당운동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지배적 그룹은 진보정당이 이들만의 잔치에 진입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선거단체로 환원하거나 투쟁기구로 이해하는 낡은 석기시대 방식으로 진보정당운동을 해왔던 것입니다.

 

정치정당은 (계급이나 지지층의) 목소리, 즉 “의사형성”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소리가 형성되는 것은 당내 민주주의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진보정당이 피억압자의 의사형성을 주도하고 그들의 협상권력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에서부터 의사형성의 민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진보정당운동의 후진성과 내부 민주주의의 형해화는 진보정당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2. 진보정당운동의 발전(혹은 정상화)이 왜 필요한가?

진보정당운동의 발전의 핵심은 정당의 위상을 높이는 것입니다. 서구의 발달된 정당시스템에서는 패권적 정파는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쪽수로 당을 장악한다거나 책상머리에서 쓰인 정책이 당의 기본전략으로 충분한 토론 없이 만들어 지지도 않습니다. 정파의 정체성이 정당의 정체성으로 과잉 대표 되지도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정파정치는 정당의 후진성이 그 원인이자 결과입니다.

 

우리는 왜 정파나 단체의 입김에 의해 이렇게 쉽게 분열될까요?

이는 한국의 최초의 진보정당이 애초에 전술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고 정치정당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의 정당과 정당시스템이 갖는 역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발전의 핵심은 이것을 전략적 단위로 상승시키는 것입니다. 정당연합은 이에 대한 구체적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진보정당이 어떤 특정한 세력의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낡은 정치사상을 가진 권위주의 정파가 진보정당정치를 더 이상 후퇴시키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권위주의 정파들의 공통된 특징 하나는 자신의 조직을 전략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당은 분열되고 소모되어도 자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인적으로도 바뀌지 않는 위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의 고정된 위치는 권력이 시민적, 민주적인 권력이 아니라 지배적 권력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정파는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진보적 역할을 담당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진보정당운동의 독자성을 확보할 때만 노동정치도 가능해지며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문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다양한 전술을 제시하고 운동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됩니다. 현재의 단순하고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서 정책을 통해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국가내부에서 국가의 민주화를 위한 실천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는 우리 운동의 가장 큰 문제가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스스로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대중을 상대로 계몽의 필요를 주장하고 내부에서 위계와 부패한 권력을 생산하면서 평등과 청렴함을 요구합니다. 내부의 세력 간의 비례대표제는 할 생각도 없으면서 공약으로 완전비례대표제를 제시합니다. 저는 이런 것을 위선적인 운동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오히려 운동이란 우리가 그리 되고 그리 함으로써만 계몽의 역할을 하게 되며 정당함을 보여줄 때만 지지 받는 것입니다.

 

저는 첨부한 문서에 새로운 운동을 정당연합과 지역에서의 정당적 실천과 정책명부비례대표제와 같은 제도적 노력 등을 제안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이 대안적인 정파운동과 정당운동을 같이 해나 갈 주체와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1막을 내린 진보정당과 단절하고 새로운 운동으로서 제 2막을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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