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당원여러분께 드립니다.

by 구교현 posted Mar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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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이 늦었습니다.

처음엔 진상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에는 머릿속이 복잡해 입장을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또 다른 오해를 낳을까 조심스럽습니다.

 

지난 2, 저는 알바노조 임원 선거에 출마했고, 그와 동시에 피해를 호소하는 글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분들의 분노와 좌절을 읽으며,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제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지금껏 해 온 운동을 근본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는 단체 상근활동을 중단하였습니다.

 

저는 2013년 알바노조 위원장이었고, 2015년 노동당 대표였습니다.

제가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최저임금 1만원의 절박함을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캠페인에 나섰고, 국회 앞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썼습니다. 나이 많은 활동가들과의 거리감을 견디며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세계적 대자본과의 투쟁을 이끌었으며, 알바노동에서조차 감춰져 있던 여성노동의 문제를 고발했습니다. 제가 당대표로 출마했을 때 저의 당선을 위해 일면식도 없던 당원들에게 쉼 없이 전화를 돌려주었고,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는 가운데서도 전국순회투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분들의 지난한 수고와 노력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보다도 저는 이분들에게 인생의 큰 빚을 졌습니다. 저도 함께했던 조직 활동이 이분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피해를 호소하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

 

운동조직은 목표와 상황에 따라 그 형태를 다르게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 권력은 자신을 위협하는 저항세력을 탄압해 왔습니다. 운동의 목표 중 하나는 권력을 위협하는 정치세력으로의 성장인 만큼, 권력의 탄압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비공개 방식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시절, 저는 사회당 당원들이 주축이 된 비공개 청년조직에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론을 학습했고, 운동가의 태도를 배웠으며, 많은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열정만 넘치던 시절이지만 무겁고 진지하게 평생의 운동을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제가 지금까지 운동가로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201212, 김순자 대선과정에서 알바노동자운동에 대한 발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고 권문석 동지를 비롯한 알바연대 집행부 동지들, 김순자 캠프로 활동한 동지들이 함께 이 운동을 설계해 갔습니다. 우리는 최저임금1만원, 기본소득과 같은 미래의 노동이슈를 주도할 대중운동을 열망했고,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최전선에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주목했습니다. 알바노조 활동 과정에서 때때로 비공개 청년조직의 운영자를 만났고 정세나 운동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20157, 노동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더 이상 비공개 청년조직 운영자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당에서는 선배활동가 및 의견그룹, 그리고 다양한 평당원들과의 협력과 소통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청년당원들과 소통이 필요할 때는 청년학생위원회나 청년대중조직의 대표자를 만났습니다. 20175월경, 함께 활동하던 동지들을 통해 비공개 청년조직 내부에 여러 비판이 있었으며 결국 해산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급작스러웠지만 저와 비공개 청년조직과의 관계는 이렇게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청년조직 이외의 비공개 조직에 참여한 바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 사회당으로 활동해 온 당원들과 20여년 가까운 오랜 친분을 가지고 있고, 이 분들이 함께했던 당내 의견그룹인 신좌파당원회의의 회원이었습니다. 알바노조 위원장과 노동당 대표시절에도 사회당 운동을 대표해 온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동지들과 협력하며 활동해 왔습니다.

 

많은 동지들의 지적과 같이 저 또한 비공개 조직이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영자에게 권한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정보가 유통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고, 비판이 내부에서 수용되지 않을 경우 이를 관철할 수단이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이번 일로 비공개 청년조직의 자기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다만 이 한계에 대해 많은 동지들이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바꾸고자 여러 경로의 노력이 진행되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새로운 기획, 청년들의 열정, 선배 당원들의 지원을 받아 알바노조는 단기간에 입지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 토대는 허약했습니다. 조합원은 늘어났지만 조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조합원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할 일은 늘어나는데 감당할 사람들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소수의 활동가들이 많은 일을 떠맡아야 했습니다.

 

노동당의 상황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민주노동당 시절의 반목에서부터, 2010년 심상정·노회찬 탈당, 2015년 나경채 당 대표와 지방의원 등의 탈당까지, 많은 당원들은 배신감과 무력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대선으로 형성된 소위 사회당 출신당원들에 대한 두터운 불신은 이후 대선과는 상관없는 알바노조의 노동당 당원들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저는 알바노조운동의 성과로 당 대표에 당선되었고, 당원들은 당의 전면에 청년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비공개 청년조직은 이를 자기 사명으로 받아 안았을 것입니다. 또한 사회당 출신에 대한 불신을 성과로서 넘어서려는 의지도 생겼을 것입니다. 청년들은 당직 선거에 출마하는 등 활동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견고한 불신의 벽을 뚫고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비공개 청년조직이 처해 있던 이 환경이 그들을 압박했을 것입니다.

 

당원과 활동가를 늘리고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급함이 청년들을 몰아붙였고, 지금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알바노조 위원장과 노동당 대표로 활동한 저의 부족함이고, 비공개 조직의 한계일 것입니다.

  

4.

 

시대는 변했고 주체도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조직의 틀과 전략을 꾸준히 혁신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지체되었고, 저 또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익숙함에 안주했습니다. 결국 이 구조를 견딜 수 없었던 구성원들이 폭로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번 문제제기는 저를 둘러싸고 있던 관성과 안일함을 산산이 깨뜨려 주었습니다.

 

조직의 근본적인 변화는 구성원들이 자기 과오와 솔직하게 마주할 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사회당이라 표현되는 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불신과 혐오의 근원을 저부터 마주하겠습니다. 그리고 사회당을 넘어서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합당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안들에 대해 공개적인 평가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당 내에서 사회당이라 불리는 당원들은 활동의 시기와 경험이 각자 다릅니다. 90년대 말부터 청년진보당 운동을 해온 당원들도 있고, 알바노조의 청년 당원들처럼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이후 활동을 시작한 당원들도 있습니다. 각자의 다른 경험에 근거해 지난 운동을 평가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5.

 

저는 알바노조 위원장과 노동당 대표로 활동하며 공식 의사결정체계를 통해 조직을 운영했습니다. 공식적이지 않은 자리에서 나눴던 의견들 중 조직운영에 반영하고자 하는 사항은 모두 공식회의에서 논의해 추진여부를 결정했습니다. 조직운영에 있어 구성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공론을 잘 형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가능하지만, 소위 비선에 의해 알바노조와 노동당이 좌지우지되었다는 비판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미 불신이 있는 상태에선 절차를 지키는 것만으로 신뢰가 쌓이지는 않습니다. 또한 비공개 조직이 존재했고 이것이 폭로를 통해 드러난 상황에서, 오해와 비난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포함해 미처 제 글에 담기지 않은 의문들까지, 진상조사과정에서 최대한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에게, 그리고 당원여러분에게, 알바노조와 노동당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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