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퍼슨웹 이성형 인터뷰

by 김성원 posted Mar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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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no.85
2002-01-01

이성형, 남미 연구자,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의 저자 
인터뷰어:

편집장: 고메즈


인터뷰를 하고 글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쓰고 있던 글의 1절과 3절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순전히 아르헨티나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불과 2주 사이에 대통령을 5번 갈아치우며 세계기록을 수립하고, 세계를 상대로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보르헤스와 게바라, 마라도나의 고국은 그렇게 '망'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태」가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은지, 한국의 모든 매체가 아르헨티나 사태를 다루고 있다. 다루되  그냥 「팩트 fact」만이 아니라, 뭔가 저마다 해석을 곁들이고 태도를 갖추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실 글을 처음과 전혀 다르게 쓰게 만든 건 아르헨티나 때문이라기보다 아르헨티나 사태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태도와 관련된다. 이 해석적 태도는 비단 아르헨티나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머리 속에서 막연히 뭉뚱그려보는 남미 라틴아메리카 전반에도 걸쳐 있다. 일단 이를 편하게 「남미 담론」이라 불러보는데, 「담론」이 된 남미에는 결코 편하지 않은 「한국의 상황」이 「낑겨」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담론을 둘러싼 조용하지만 결코 간단치 않은 싸움을 이성형 선생과의 인터뷰를 기록하는 일의 중심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성형 선생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도 한국에서의 「남미 담론」이 갖는 양상이 중요한 화제이기는 했다. 그러나 처음 인터뷰하기로 했을 때나, 두 번째 만날 약속을 잡았을 때나 특히 아르헨티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게 될 줄을 전혀 몰랐다. 두 번째 만남을 약속했을 때도 처음 만남이 「차(車)」 때문에 건조하게 끝난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술 한 잔」을 약속한 것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에서 몇 안 되는 남미 전문가의 한 사람인 이성형 선생은 아르헨티나 사태 때문에 아주 바쁜 연초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 선생은 약속한 토요일 저녁에도 「CBS 시사쟈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왔으며, 우리에게 와서도 신문 기고문 하나를 다듬어 전송하고 나서야 술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다 아르헨티나 사태 「덕분」이었는데, 그 자리들에서 『조선일보』를 위시한 한국 신문의 사태 「왜곡과 무지」를 「씹어주고」 왔다고 했다.

한국의 언론은 입맛대로 저 먼 나라에 대해 「팩트」 자체를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다. 이러한 왜곡이나 의도된 무지에 대해 싸우는 것이 이성형 선생 자신의 중요한 과제이며 임무라 생각한다고 지난 번 만남에서도 밝혔다.

 한국에서는 <남미>라는 코드를 둘러싼 좌우파의 담론이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우파 담론은 한 마디로 "남미처럼 되지 말자!"는 말로 집약되는데 (특히 경제 문제에 있어) 남미를 피하거나 닮지 말아야 할 어떤 것으로 상정하고요, 반대로 좌파의 경우에는... 사실 남미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제3세계적인 정체성으로 바라보고, 종속이나 파시즘의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제기하는 것과 관계 깊었거든요. 70년대나 80년대에 특히 그랬었죠. 우리를 제3세계라고 규정하는 것이 허구적인 제1세계인의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대항적인 정체성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이전에는 남미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좌우가 다 그것을 굉장히 정치적인 담론으로 사용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미라는 <코드>에서 정치적인 색깔이 많이 탈색되고, 문화적인 착색이 많이 됐거든요. 북한의 몇 안 되는 맹방이라는 "쿠바"음악을 들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물론 포퓰리즘 문제는 또 좀 다르지만요.

  이성형> 남미라는 하는 땅이 "정체와 종속"이라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도 맞지요. 실제로 남미의 정치경제적인 모델은 대부분 실패, 파산해왔고요. 그래서 "남미병"이 객관적인 실재로 인정이 되죠. 또 그 안에서도 "아르헨티나 병"도 있고 "베네수엘라 병"도 있어요. 이런 말들은 학술적으로 정립이 되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과연 「그 병의 기원이 뭐냐?」 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 문제에 있어 신비화가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아주 통속적인 답으로는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 병의 원인이 포퓰리즘(populism)이나 노동조합이다... 그러죠. 사실 굉장히 익숙한 담론이죠.

 아래 두 글을 보면 한국의 보수언론이 아르헨티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2002년 경제 위기의 원죄가 1940년대의 정권과 그에 의하여 시행된 정책에 있다는 기괴한 논법이다. 사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건 그 논법보다도 「동아일보」와 「한국경제신문」의 사설 담당자가 얼마나 서로 입이 잘 맞는가 하는 점이다. 발상법과 표현이 너무 유사하여 한쪽이 표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1930년대까지 세계 7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나라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된 데는 한 두 정권의 정책실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죄(原罪)'같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1940년대에 노조세력을 바탕으로 집권한 후안 페론의 포퓰리즘 정책이 두고두고 후대에 고통을 물려주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페론은 집권내내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과 연금확대 등의 요구를 수용하는 등 노동계층에 편중된 각종 사회·경제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국력을 탕진했다. 생산력은 도외시한채 분배에만 관심을 두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사회에 무절제한 욕구와 이기주의를 증폭시키게 됨을 페론주의는 확인시켜 주었다. 연이은 쿠데타와 집권세력들의 부정부패가 국가기강을 무너뜨리게 되었던 것도 페로니즘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경제신문 사설] (1월 4일자) "아르헨사태 病根은 무엇일까"

 20세기 중반까지 손꼽히던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한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죄(原罪)’ 같은 이유가 있어 아르헨티나가 경제난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누적된 과거 정부의 잘못과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 사회에 가득 찬 불신, 이기주의가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노조세력의 지지를 바탕 삼아 집권한 후안 페론은 집권 내내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하는 등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으로 일관해 후대에 고통을 물려준 대표적 지도자로 꼽힌다
- 동아일보 「사설」(12월 21일자) "아르헨 사태 강 건너 불 아니다"

 

이성형> 그런데 실제로 제가 싸우고 싶은 게 바로 그런 겁니다. 과연 남미병이란 게 그래서 만들어진 거냐? 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의 포퓰리즘도 그렇게 역사적으로 간단한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페론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에 뿌리깊은 왜곡된 토지소유구조 - 극소수가 대규모 토지와 부를 편중되게 갖고 있는 - 가 온존할 때 대통령이 되었는데, 대중의 열망을 실제로 등에 업고 있었어요. 물론 그 사람이 실수를 많이 했고 그 실수가 경제 실패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실수는 부차적인 거고, 본질적으로는 지주과두제의 시스템을 고치고 깨기 위해서 나온 것이 포퓰리즘이예요. 또 본질적으로는 대중의 사회경제적 욕구를 표출한 것이고요. 이런 맥락을 다 빼버리고 이야기하면 안 돼죠. 그건 주객을 전도시키는 거잖아요. 그렇게 단순화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죠. 물론 포퓰리즘도 예산 낭비라든가, 잘못된 사회 행태를 만들어낸 문제아라는 점도 인정하지만요.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후보라는데, 저러다가 출전 못하는 거 아녜요? 어떻게 전망하세요?
이성형> 아르헨티나는 사실 미래가 없는 나랍니다. 정말 크게 망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중산층이 거의 몰락해가고 있거든요. 아르헨티나를 규정하는 단어가 '르쌍티망(resentment)'일 겁니다. 계급 계층간에, 또 정치적 파벌간에 원한 감정이 있는 거죠. 예컨대 페론주의자와 반페론주의자 같은 대립 세력들 사이에 절벽 같은 게 놓여져 있어요. 서로 대 놓고 이야기는 안 하지만, 뒤에서는 서로 죽이려 그러죠. 에비타만 해도 그렇거든요. 한쪽은 에비타를 성녀라고 하고, 다른 쪽은 창녀라 부릅니다.

이성형> 참으로 놀라운 일인데 아르헨티나는 한 번도 State Building(국민국가 형성)을 이뤄보지 못한 나랍니다. 헤게모니를 가진 계층은 자기네들을 무슨 유럽인인양 착각하고요, 최상층 지배계층이나 최고위직 관료들이 유럽 나라(이탈리아, 독일 등)의 국적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이런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도 않고요.

대부분의 매체가 아르헨티나 사태의 '원인(原因? 遠因?)'으로 페로니즘을 드는데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원인이 뭔가요?
이성형> 한마디로 「잘못된 개방 정책」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오늘 사태의 원인이지요. 개방 정책이 잘못되면서 국제 투기자본이 어떤 규제나 룰없이 단물만 쏙 빼먹고 토껴도 되는 데가 된 거죠. 그게 가장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포퓰리즘에 대해 의도된 「단순화, 무지한 척」이 많은데요. 원론적으론 문제에 대한 그러한 단순화가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한 방법이겠죠.
이성형> 예. 실제로 남미병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병의 원인에 대해서 왜곡하지 말라는 겁니다. 칠레의 기적에 대해서도 왜곡이 많아요. 그런 걸 제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오늘, 「남미 담론」에 「낑겨 있는」 한국의 상황이란 무엇일까?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평생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말까한 나라의 사태가 신자유주의 개방·개혁 정책의 공과, 인민주의(포퓰리즘 populism)와 페론주의(peronism)에 대한 역사 해석, 김대중 정권의 성격과 그 정책에 대한 평가에 대한 담론 투쟁과 결부되어 있다.

지난 여름 이후 우리는 「남미 담론」이 한국의 좌/우 대결(?)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생생한 실례를 볼 수 있었다. 정치인과 한국의 언론인들이 라틴아메리카산(産) 포퓰리즘을 놓고 논란을 벌인 것이다. 논란은 김만제라는 기업 회장 출신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김대중 정권의 언론개혁과 세무정책을 "남미식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매우 상투적이고 악의적인 용어사용과 역사 해석에 기반한 이런 선동은 정부와 전쟁을 벌이던 조중동에 의해 매우 크게 다루어졌다. 당시 보도는 "김만제정책위의장, 언론탄압, 남미식 선동정치 정점"이라는 식으로 「미다시」를 뽑았고, "김 의장은 포퓰리즘은 서민 노동자 시민단체를 선동적으로 동원해 재정을 마구잡이로 퍼 쓰는 것이라 규정하고 현 정권은 국론을 개혁과 반개혁으로 분열시키면서 세몰이를 하고 있다"(2001년 7월 4일 한국경제신문)는 주장까지 여과 없이 실었다. 이런 주장은 곧 정권의 정책에 대한 색깔론으로 이어져나갔다. 포퓰리즘은 곧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정권측도 이에 맞서서 포퓰리즘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았는데, 제일 들을만했던 것은 노동부장관의 설명이었다. 김호진 장관은 "노동정책 포퓰리즘 아니다"는 제목이 달린 통신문을 보내 "정치권 일부에서 노동정책을 포퓰리즘이나 심지어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과 실증성이 없는 소모적 정치논란"이라고 반박하고 "그는 노동관련 대학교수를 지낸 장관답게 포퓰리즘의 의미와 사례 등을 들며 아르헨티나 페론정권이 군사쿠데타의 위협 앞에 전전긍긍하고 배우 출신의 영부인이 대중의 열광과 환호를 즐기는 가운데 그 나라는 고통과 희생이 따르는 경제살리기보다는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포퓰리즘의 길을 택했다"(8월 6일 연합뉴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이란 용어가 동원된 참으로 쓸 데 없는 말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중에서 우리를 가장 「즐겁게」 하는 용례는 한나라당과 관계가 틀어진 자민련이 쓴 방법이다. 좌-우가 아니라 「보수 반동」 「저거끼리」 벌어진 정쟁에서도 「포퓰리즘」이 동원된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는 함부로 만들어진 '남미'의 부정적 이미지가 얼마나 무책임한 '말'로 사용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민련 대변인 정진석이라는 사람이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은 한때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는데, 표피적인 여론에 이끌려 교육정책(교원 정년 연장 문제)을 대권 전략화하는 이회창 총재의 자세야말로 신포퓰리즘의 전형"(12월 4일 인터넷 중앙일보) 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정말 지하의 페론을 모독하는 언사가 아닐 수 없다.


    - 미래를 향한 남미라는 상상력 -

 왼쪽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면요... 80년대에는 식민지자본주의나 사회성격 논쟁에서도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이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논의가 되었고, 아옌데 정권이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같은 것이 가진 상징성도 대단히 크게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좌파들에게 있어서도 남미는 많이 의미가 달라졌죠?
이성형> 그렇죠, 그동안 남미 자체가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과 담론에 따라 죽 왔었고 또 그게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었죠. 오히려 요즈음은 신자유주의 개혁 실패의 반면교사로서 남미가 중요해졌는데요, 근데 그런 것에 대한 분석은 많이 된 것은 아닙니다.

 좌파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데요. 사파티스타 운동과 쿠바의 미래...
이성형> 사파티스타 운동의 경우, 지금 세기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둘로 정리되는데요... 하나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극단적인 폐해와 그 효과에 관한 것인데요. 살리나스 정부의 농지개혁이란 게 기존에 공유지였던 것을 다 민영화하고 야만적인 시장의 논리에다 맡긴 거잖아요.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으라는 식으로. 거기에 적응할 수 없었던 농민들이 그런 식으로 반발을 하고 나온 것이고요.

두 번째로는 망각되었던 인디언들의 세계의 복원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인디언들은 끊임없이 수탈당하고 자기들의 정체성을 해체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살아왔는데요. 5백년간의 저항과 수탈의 역사가 있었던 거죠. 이 사람들이 일어나면서 내건 중요한 단어가 "존엄성'입니다. 자기들이 이어온 언어, 생활방식, 문화의 존엄성을 위해 투쟁한다는 거거든요. 이거는 멕시코에서 그동안 수없이 시도되었던 진행되어온 서구적 근대화 논리에 저항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근대화라는 게 당신들만의 논리가 모두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습속이 있고, 합리성이 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유토피아 프로젝트도 있다 - 이거를 내세운 거죠. 일종의 공동체주의이기도 한데요. 그런 것들을 한쪽에 강하게 내세운 거죠. 그걸 대변하는 이데올로그로 마르코스가 나온 거고요.

기존의 근대화논리에 대항하는 굉장히 강력한 새로운 유토피아 담론이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것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논리는 아니고 그 사람들의 지역적인·국지적인 논리이기에 어디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건 다원주의 질서 안에서 우리 목소리를 인정해달라, 한편으로는 문화적 권리선언이기도 한 거고요. 자기들 아이덴티디가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기획이기도 하죠.   

 마르코스의 말에서 사회학적 해방적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는데요, 말씀처럼 마르코스가 말하는 것이 분명히 그 민족과 지역적 정체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기는 한데, 분명 기존의 서구의 진보 운동 - 서구의 68이나 신사회운동, 또 남미의 좌파 운동 등의 논리와 전통을 종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마르코스가 인텔리 출신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나라에서도 마르코스의 책이 많이 팔리고 대학생들이 좋아한 이유가 그의 논리가 보편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이성형> 서양 지식인들이 마르코스에게서 다시 보는 것은 잃어버린 68세대의 새로운 얼굴이 아닐까요? 68세대가 추구했던 유토피아 프로젝트 같은 거는 지금은 다 파산했고 지금은 생동감 있게 그걸 추구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그런 걸 보면서 대리충족을 하는 게 아닐까요. 사실 그런 서구 지식인의 시각에 대해서 멕시코 지식인들은 정작 비판적인 게 많죠, "너희는 우리에게서 고귀한 야만(bon sauvage)를 보고 싶어하는 것일 뿐이다"는 비판이죠.

어쩌면 왼쪽에서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 같은 거네요?
이성형> 그렇죠. 실제로 그렇게 비판을 하죠. 로헤르 바르트라(Roger Bartra)라는 유명한 인류학자가 그런 비판을 했어요.

쿠바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이성형> 『아바나』에서도 그런 이야길 썼지만 사실 쿠바란 나라가 가진 조건이 열악하지요. 인구도 1100만밖에 안되고, 생산하는 자원도 아주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수입에 많이 의존해야돼요. 대단한 산업국가가 되리라고 생각이 되지도 않고, 탄탄한 경제구조를 가진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미국이 규제만 풀면 충분히 먹고 살고 잘 살 수 있어요. 원래 그 나라는 사탕수수나 담배, 그리고 음악 - 이런 거 해서 먹고 살 수 있거든요. 관광이나 야구선수도 그렇고...  

이전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할 부분이 생길 텐데, 그래도 쿠바 혁명 이전의 나라로 돌아가진 않을 거예요. 혁명 이전에는 사실 나라가 미국의 창녀촌 비슷하게 굴러 갔거든요. 그런 데로 다시 돌아가진 않을 거고요. 사회복지, 의료, 교육 같은 것이 잘 갖춰져 있어요. 그래서 심지어 카스트로가 없어진다 해도 쿠바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 같은 것이 잘 보존된 사회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개방이 되더라도. 최소한 사회복지정책은 유지되면서 민주화되는 사회로 이행할 가능성이 크죠. 그건 무엇보다 쿠바 국민들이 그동안 40년동안 하나의 '국민됨'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특히 최근에는 쿠바의 경제 사정 자체가 좋아졌고요.

 남미가 가진 문제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종속, 특히 대미 종속인데요. 남미에 있어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거라 생각해야 됩니까?
이성형> 종속이라는 게 다양한 차원일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종속된 거야 부인할 수 없을 거고요  그러나 단순히 미국이라는 존재 때문에 그 사회가 엉망으로 되었다고 단순화시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외국세력과 유착되어 있는 국내의 과두제 세력이 더욱 문제이죠. 그런 세력이 또 내외 독점자본과 연합 종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그런 시스템 때문에 종속이 내면화되어 있는 거죠.  문화적 종속을 매스미디어 부문에 있어 많은 논의를 해 왔는데, 남미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 안됩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남미 문화라는 것은 끈질깁니다. 미국문화에 저항하고 자기 정체성을 보존하는 능력은 대단하다고 봅니다. 음악이나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그런 경제적 종속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런 것들은 종속이라는 쉬운 한 단어로 말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반면교사로서의 남미를 말씀하셨는데요. 경제적 구조의 취약함 때문에 신자유주의 개혁이 실패하거나 희생이 가중되었을 듯한데요. 신자유주의 개혁과 관련하여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어떤 방향을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성형> 20여년간의 과정을 죽 보면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교범에 충실하게 따른 나라들이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등입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굉장히 심하게 망가졌고, 멕시코는 중간정도로 망가졌죠. 칠레는 성공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 경우는 시장개혁 자체가 성공한 것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국가가 굉장히 강력하게 규제를 행한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동아시아적인 모델과 가깝다고 할 정도로 시장 개혁과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결합된 거죠. 그런데 「칠레의 기적」을 말할 때 시카고보이 이야기만 하는데, 사실은 잘못된 이야깁니다. 시카고보이의 잘못된 점을 정정했을 때 경제가 나아졌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도 정확하게 소개될 필요가 있습니다.

 

 Tip for you  * 워싱턴 컨센서스 = 미국식 시장 경제체제의 대외 확산 전략을 뜻하는 말.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존 윌리엄슨이 지난 89년 자신의 저서에서 제시한 남미 등 개도국에 대한 개혁 처방을 "워싱턴 컨센서스"로 명명한 데서 유래됐다. 이후 90년대 초 IMF와 세계은행, 미국내 정치경제 학자들, 행정부 관료 들의 논의를 거쳐 "워싱턴 컨센서스"가 정립됐다. (야후 경제용어 사전) 워싱턴 컨센서스는 개발도상국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시행해야 할 구조 조정 조처들을 담고 있다. 이 조처들은 정부 예산 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 인하,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 우량기업 합병·매수 허용,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여덟 가지다.

 

 

 

 




- 카리브적 지식을 위하여 -

 

애초에 우리가 만나려 한 사람은 '아르헨티나 전문가'가 아니라, 지난 가을에 발간된 한 책의 저자였다. 표지 장정이 아주 매력적인 이 책은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라는 독특하고도 낭만적인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도 한국인의 손으로 씌어진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였다. 이 책을 두고 우리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편하게 들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빼면 이성형 선생을 만나고 난 뒤에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경계 없고 자유로우며 전방위적(全方位的)인 지식」에 대하여 생각하여야 했다. 화제가 되었던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창작과 비평사, 2001, 이하 『아바나』로 줄임)에서 이성형 선생의 해박은 음악·신화·문학 등등을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 전반에 대한 소개에서 이미 드러나 있지만, 직접 만나서 본 그것은 호사나 개론(槪論)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그날 나는 전혀 '문외(門外)'인 인류학에서 시작하여, 이성형 선생을 따라 보들레르에서 도정일에 이르는 세계의 문학가들과 살만 루쉬디의 『악마의 시』에서부터 황석영의 근작 『손님』에 이르는 세계 문학 작품을 따라다녀야 했고, 마르크스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에 이르는 여러 대가들의 책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느라 바빴다. 책 읽는 데 게으르며, 쓸데없이 많은 지식이야말로 때로 생(生)에 진짜 해(害)가 된다고 믿기도 하는 나로서는 이런 대단하고 자유로운 넘나들기와 뛰어다니기가 어디에서 왔는가/올 수 있는가 하는 의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무엇보다도 우선 - 그가 생각하는 자기 전공학문, 즉 지역연구(Area Studies)가 가져야 할 요건이 넘나듦이었다. 제대로 된 "지역(地域)"연구는 국지(局地)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글로벌(Global)'스럽게 구성된 지식세계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했다. 그것을 위해서 대상 지역과 나라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에 대한 '기본'적 지식 뿐 아니라, 세계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문학·음악·영화로 된 자료들을 섭렵하여 그에 대한 형상적 지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그 공부를 위한 요건을 어떤 사람이든 다 가질 수도 없고, 다 가진 것도 아니다. 모든 지역 연구자나 인류학 전공자가 그처럼 넘나들고 섭렵하지는 않기는 때문이다. 뭔가 타고난 「끼」와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성형 선생은 이를 가진 듯했다. 그리고 여기까지라면, 내가 이렇게 많은 지면(화면)을 할애하여 어떤 이의 해박과 유식에 대한 문장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식세계의 일꾼들 중에는 박식한 사람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하는 어떤 사람을 가리켜 '참 해박하다'고 하는 것이 결코 칭찬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성형 선생은 차고 넘치는 그저 박식한 사람의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인데, 다시 이는 그가 지역연구가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지역연구는 다른 「공부」처럼 방구석에 틀어 박혀 수만 권의 책과 씨름한다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발로 뛰며 사람들 속에 자주 부지런히 섞임으로써 가능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 지식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과 말과 그들이 호흡하는 살아 있는 공기와 그 역동을 통해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 속에서 그러한 지식은 그의 세계관 자체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성형 선생은 넘나듦을 삶과 앎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로 삼은 그것을 '카리브적 감수성'이라 썼던 것 같다.(이성형, <위기의 지식사회에 묻는다 - 우리만의 지식은 있는가>, 『중앙일보』, 2001년 10월 25일자 참조) 좁고 편협한 국수주의적 태도와 동전의 양면이 되어 있는 편협한 서구-미국 지향성을 넘어서는 것이 한국 지식사회의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아바나에 이르기까지 -

이성형 선생은 1959년생. 부산대 회계학과를 1982년에 졸업했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987년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문화를 공부하기 시작하여 「라틴아메리카 사회구성체 논쟁 : 1960∼1980년대의 논의를 중심으로」(1990)로 박사 학위를 땄다. 1997-2000년에 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교수를 지내다, 멕시코에 1년 나가 있으면서 그만 두었다고 한다.
이 때의 경험을 중심으로 해서, 지난 해 10월 하순,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라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기행기가 책으로 묶였다. 현재 초판 4천부를 다 팔고 2쇄 2천부를 '소화'중이라는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라틴아메리카를 제대로 소개하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기념비적 저작"(손호철, 「서평-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시민의 신문』)으로 꼽히며 선생을 유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귀국한 이후 이 선생은 서울대 국제지역원과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우리가 만난 날도 서울대 대학원의 2학기 막바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국내에 라틴아메리카 관련 강의가 얼마나 개설되어 있나요?
이성형> 사실 별로 없지요. 가끔 '중남미 정치론'이 간헐적으로 개설되긴 하는데요. 서문학과에서 중남미 역사나 문화 강의가 한 두 과목 개설되는 편이고요.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아직 우리한테는 라틴아메리카란 게 굉장히 생소하고 먼 대륙이니까요. 서울대의 경우에도 문학 전공자외에는 관련 전공 교수가 하나도 없지요. 반면에 학생들의 관심은 꽤 큰 것 같아요.

 주로 중남미 정치 관련 강의를 하시는 거죠?
이성형> 예, 그런 편인데 국제지역원에서는 중남미 역사도 강의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그 쪽을 전공한 사람이 없어서요. 저도 공부를 해 가면서 강의를 했어요. 저한테는 큰 다행이었고, 도움이 많이 됐지만, 처음에 강의를 들은 학생들한테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왜 명의가 되려면 사람을 많이 죽여야 된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하하하. 아직 저는 명의는 아닙니다만. (웃음)

그래도 늘 "라틴 아메리카 전문가"라 손꼽혀 일컬어지시는데요.
이성형> 하하, 그 말이 웃기는 게. 워낙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저 혼자 노는 거지요.  

<라틴아메리카 학회>가 있는 걸로 아는데요.
이성형> 예-. 거기 문학하는 사람도 많이 있고, 인류학, 정치학 하는 사람들도 좀 있는데요. 그렇지만 관련된 논문을 매년 1-2편씩 쓰는 사람은 희소합니다. 중남미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도 한국정치를 주 전공으로 하면서 곁가지로 그걸 다루는 경우가 많지요.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나 공부를 하는 이들은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드문 "라틴아메리카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캐물었다.
이 선생은 부산상고와 부산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우등생들이 빨리 자립하기 위해 가는 학교 중에 하나가 이전의 부산상고였는데, 처음부터 관심은 딴 데 있었다고 한다.

이성형> 대학 다니기 시작한 79년이나, 80년때는 학교 문이 닫혀 있었어요. 거의 수업을 안 했어요. 81년도에도 그랬던 것 같고. 매일 레포트나 내 주고 그랬죠. 전공 과목에 관심이 없어서 그 쪽 과목은 다 C, D만 받았는데, 다행히 수업을 거의 안 하니까 그냥 혼자서 읽고 싶은 책만 읽는 거예요. 전두환의 은덕을 받은 셈이죠. (웃음)

 그래서, 어떤 책을 주로 읽었나요?
이성형> 문학 책을 많이 읽었어요. 소설책, 시집 등 이것저것. 보들레르나 랭보에서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어학 공부겸 원어로 읽었지요. 역사 책 읽는 것도 참 좋아했어요. (선생은 지금도 '애들 기죽일 때' 보들레르나 랭보의 시를 불어로 왼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학 공부를 하려고 대학원에 간 것은요?
이성형> 그 때는 또 정치의 시대였잖아죠. 정치학과 과목을 청강했는데 그걸 공부해 봐야겠더라고요. (보충이 필요한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대학원을 가지말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갔고요.
생각해보니까 '전공'을 제대로 한 게 없는 거 같네요. 대학원 가서도 정치학이 아니라 주로 맑시즘 공부했지 뭐, 정치학과 전공 공부를 팠던 건 아니거든요
.

그 때는 대학원생들도 모여서 세미나 많이 했죠? 어떤 걸 주로 읽었어요?
이성형> 예. 주로 복사본으로 된 원전을 많이 읽었죠. 하하하. 마르크스부터 시작해서요. 레닌, 알튀세르까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런 공부가 어쩌면 학문을 황폐화시킨 면도 있는 듯한 것 같고 그래요. 시대가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남이 하면 다 같이 하나만 하잖아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사실 알튀세르 『자본을 읽자』가 사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잖아요? 그 서문이야 재미있지만 본론 부분은 지금 하나도 기억이 안 나거든요. 『마르크스를 위하여』 는 비교적 흥미롭게 읽었지만요. 당시는 레닌주의의 정통이니 해서 모두 알튀세르를 읽었지요. 도그마티즘이 강했던 시대였지요. 세미나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기도 하죠. 오소독스(정통)를 따지는 것도 우습고요.

"정통"을 따지던 시대였죠, 정말.
이성형>  정통에 대해서 한마디 할께요. 제가 학부 졸업할 때에는 종속이론이 유행했고, 좀 지나니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프랑스의 조절 이론 책들이 소개되더라고요. 또 동시에 유럽의 현존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유로코뮤니즘 계열의 저작들도요. 제가 대학원 석사과정 공부를 할 때에는 지적인 분위기가 비교적 개방적이었고, 토론도 자유로왔지요. 그렇지만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갑자기 언로가 경색되면서 소위 '정통' 시비가 벌어지더라고요. 세계체제론도 가짜고, 조절이론은 변절한 사민주의자들의 푸념이라는 둥, 사이비 시비가 점차 확산되더라고요.
그 다음 유행한 것이 레닌의 저작물들, 나아가 맑스의 원전 읽기로 확장되었지요. 20세기 말의 정보화 사회에서  레닌의 저작으로 호흡을 하려했으니,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이에요. 물론 경색된 정국이나, 차갑게 얼어붙은 학원가의 분위기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겠지요. 그러나 주변에는 그런 획일성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이게 아니다"라고 외친 사람은 참 드물었어요.    
요즘 생각하니, 학부 때 공부했던 것 - 소설책이나 역사책이나, 평전들이 머리에 많이 남고, 지금도 많이 써 먹는 것 같아요. (웃음)

처음부터 라틴아메리카 정치를 전공하고자 서울대 대학원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석사논문(「국가개입에 관한 한 연구 : 8·3조치(1972년)를 중심으로」)도 전혀 다른 영역의 것이었다. 논문은 제3공화국 말기의 사채 동결령을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중요하고 결정적인 삶의 많은 순간이 그러하듯, 라틴아메리카를 전공하게 된 데에도 우연의 옷을 입은 '운명'과 계기가 찾아왔다.

이성형> 제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 조교를 했는데, 그 때 소장님이 김세원 선생님이었어요. 조교를 마칠 때쯤 그동안 수고했다고 외국여행을 보내주신데요. 유럽에 갈 수도 있었는데... 미국과 남미로 가볼 기회가 생겼어요. 우연한 선택이었어요. 남미를 한 번 그냥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브라질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너무 멀고 그래서 브라질까지 가는 여비는 반납하고 멕시코까지만 가서 한 3주정도 있었어요. 그게 제가 한 첫 번째 외국여행이었어요. 그게 멕시코였다는 게 박사논문을 그 쪽으로 쓰게 된 계기죠.

첫 남미(멕시코)여행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길래 그랬습니까? 무엇이 운명적인 힘으로 작용했나요?
이성형> 아무래도 서점에서 만난 책들이었던 것 같아요. 스페인어 책을 읽을 수는 있어서 거의 매일 서점가를 돌았는데, 제가 처음 접한 지식 세계여서 거의 황홀한 기분이었어요. 참고로 스페인어권은 4억이 넘습니다. 그래서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에서 나온 주요 서적들이 금방 번역되어 나오고, 또 자체의 언어권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적 성과도 대단합니다. 그 다음 반한 것이 라틴 음악이었어요. 당시 멕시코에는 중남미에서 망명온 수준높은 음악인들이 다수 있었고, 이들이 연주하고 노래부르는 <알 라 뻬냐> 라는 술집이 있었어요. 그곳에 두어 번 갔었는데, 저녁 8시에 가면 꼭 연주가 끝날 새벽 1-2 시쯤에 돌아왔지요. 물론 구할 수 있는 테이프와 음반도 꽤 샀지요.
아마도 여비로 받은 대부분의 돈으로 책만 샀지요. 당시 소개받았던 선배집에서 숙식을 해결했기에, 꽤 많이 샀지요. 책 짐이 약 100kg 정도 되었지요. 짐 끌고 다니느라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려니 고생 많이 했죠. 국내선 탈 때는 오버차지 40 달러 정도를 내기도 했고요. 돌아와서  그 책들을 정리하고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지요.
그러다 박사 학위 논문 준비를 하게 됐는데, 사회과학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중남미를 전공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이런 공부를 시작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88년에도 다시 멕시코로 가셨다면서요.
이성형> 예, 그 다음에는 88년인데, 논문을 쓴다는 목적의식을 좀더 분명히 하고 주제를 정하고요, 조교하면서 모아뒀던 돈을 다 털어서 갔다왔죠.

제가 '이성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지금껏 기억하는 게 선생님이 『현실과 과학』 같은 잡지에 쓰신 글 때문인데요. 그 때 이야기를 해 주세요.

호랑이 담배 피던, 1988년에 창간된 『현실과 과학』이라는 무크(아마 1500원쯤 했을 거다)를 알면 당신은 구세대다. 이 잡지는 1991년까지 발간되며 당시 PD 그룹의 가장 강력한 이론적 지렛대 구실을 했다. 윤소영, 이진경, 서관모 등의 이론가가 편집을 맡았던 발간 초기에 이 잡지의 반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른바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 즉 AIAMC_R을 알기 위해 대학생들은 이 책을 들고 '공부'를 하곤 했다. 1988년 겨울에 나온 『현실과 과학』의 제2호는 "사회구성체의 이론적 규명"을 특집으로 했고, 이진경·서관모·윤소영·이성형의 글을 차례로 게재했다.

 이성형> 제가 『현실과 과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은 아니고요ㅡ 라틴아메리카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해 기고해달라고 부탁이 왔어요. 알다시피 윤소영, 서관모 같은 분들이 편집을 했잖아요, 참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죠. 근데 저는 그때 생각하면 약간 쓰라린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요?
이성형> 부끄러웠어요. 제가 살아온 연륜, 무게에 맞지 않는 글들을 썼다는 약간의 자괴감이 있기 때문이지요. 직접 운동권에 속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마치 운동에 자그만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착각도 있었던 것 같았고요. 여하튼 글과 삶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임영일 선생하고 같이 낸 『국가란 무엇인가』(한울, 1985)가 알려져 있던데요. 어떤 책입니까?
이성형> 예... 편역인데 풀란차스 논쟁 같은 거 다룬 거거든요. 그 책은 최근까지도 조금씩 나간다고 합디다.  

그럼 인세를 받으셨겠네요?
이성형> 아뇨, 석사과정 당시 그 때는 거의 매절이었어요. 1984년도에 2,500원씩 받은 거니까 잘 받았죠, 그걸로 아마 한 학기 등록금도 내고 술값으로도 좀 쓴 것 같아요.

박사논문 쓴 과정을 돌아 보시면요...?
이성형> 중남미에 대해서 누군가로부터 배우면서 공부한 게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처음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할지부터 힘들더라고요. 그러다가 그 쪽 지성사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대단한 업적을 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쿠바혁명 이후 2-30년간의 지성사의 흐름을,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 세계를 지배하는 좌파 지식인의 사상을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제 박사논문이고요.

아무도 공부하지 않은 분야에 뛰어들 수 있었던 데는 그전부터 그가 기본적으로 스페인어를 읽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성형 선생은 영어와 스페인어 외에도 불어, 포르투갈어, 등을 읽고 쓴다.

 공부라는 게 원래 '혼자'하는 거긴 하지만, 선생님처럼 특히 거의 동학이나 선배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공부한다는 게 뭘까 궁금해집니다. 책을 읽다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구한테 물어보고, 뭘 쓰면 누구한테 검토를 받아보고 하는 일이 일종의 공부하는 방법 자체이기도 한데 말이죠.
이성형> 전혀 없었는 건 아니죠. 문학이나 인류학 쪽에도 한두 명씩은 있고. 자그마한 커뮤니티도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사회과학 쪽 특히 정치학 쪽에서는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를 잘 하면서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혼자 하는 거니까 책 구하고, 읽어 내는 일도 벅찼지요. 1997년부터 대학원에서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 수업을 했는데, 닥치는 대로 읽었지요. 혼자 하는 거니까 그런 어려움도 있지만 장애물이 없어서 좋은 점도 있고요, 심심하기는 하지만 걸리는 건 없고, 넓은 바다에 혼자 헤엄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오히려 노는 물이 괜찮은 거라 할 수 있는 거죠.

일본 같은 경우엔 전통적으로 남미와 관계가 많은데, 공부하시면서 일본 책을 많이 참고하셨는지?
이성형> 일본 같은 경우에는 남미 연구 전통이 상당히 오래되었죠. 그 역사나 연구자들 숫자도 대단하고요. 뭐 비교할 수 없는 정도죠. 이런 예를 들면 될 것 같은데, 일제시대 때 경성제국대학에도 남미연구자가 있었어요. 서울대 도서관 구장서관에 가면 1930년대 아르헨티나 일간지가 보관되어 있는 정도니까요.  

아 그래요?
이성형> 저도 깜짝 놀랬는데, 일간지를 받아볼 정도였으니까 그 시스템이나 연구자들의 수준이 대단한 거죠.

 여기서는 어떤 학생들이 남미 관계 수업을 듣는지요?
이성형> 어문학 전공하는 학생들이 국제지역원에 많이 오지요. 어학능력이 있으니 사회과학 쪽 공부를 대학원에서 하고 관련 분야에 취직을 하려는 학생들이죠. 취직은 잘 되는 것 같아요. 라틴아메리카 쪽은 사실 직업과 관련해서는 기회가 많이 있어요. 재벌기업들도 많이 뽑고요. 삼성, SK부터 은행에 이르기까지.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남미에 많이 팔고 있거든요. 최근 통계는 못 봤지만 멕시코만 해도 20억 달라정도 흑자를 남길 걸요.

박사학위를 쓰고 난 뒤에, 멕시코에는 몇 번 더 다녀오셨나요?
이성형> 멕시코는 학위 논문을 끝난 뒤 평균 2년에 한번 꼴로 다녀왔어요. 1990년대에 들어와서 교육부의 해외지역연구비가 대폭 늘어서 현지연구 기회가 많았거든요. 1993년부터 4번의 현지조사를 거쳐 낸 것이 1998년도에 서울대 출판부에서 낸 <> 이었어요.

멕시코 초빙연구원 시절(2000. 3.-2001. 2)에 관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성형> 멕시코 방문은 멕시코 외무부에서 주는 연구비로 다녀왔지요. 원래 6개월을 예정하고 연구비를 신청했는데, 예정된 3월에 나가려는 2월 20일이 되었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아요. 안된 것도 아니래요. 그러다가 신학기 전에 보길도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멕시코 대사관에서 두 주 후의 비행기표가 도착했으니 받아가라나요. 황당하기도 했지만, 놓칠 수도 없는 기회라서 무리를 해서 갔지요. 6개월간은 <멕시코 혁명 벽화에 대한 정치적 독해> 라는 주제로 연구를 했지요. 나중 논문을 외무부에 제출했고요. 이 부분의 연구결과는 멕시코 기행부분에 반영이 되어 있어요. 벽화 운동 세 거장의 차이점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이지요. 과달라하라에 있을 때 이 논문을 조그만 학자들 소모임에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흥미를 표하더군요. 아직 멕시코 잡지의 지면에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허락하면 손질을 해서 보내려고 합니다.  
6개월을 보내고 나니, 좀 아쉽더군요. 뭘 제대로 구경도 못했는데, 떠날려니... 그래서 국제지역원에 폐를 끼치기도 그렇고 해서 사표를 내고 6개월간 더 멕시코 시티에 머물렀지요. 그 이후는 쿠바, 페루, 칠레 등지에 여행을 다녔고, 그 기록이 바로 <<아바나>> 입니다.

2000년에서 2001년까지, 정확히 말하면 9.11 테러 이전까지 표피적인 것에 가까운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에는 "라틴 붐" 비슷한 게 일었다. 라틴 댄스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비롯한 쿠바 음악, 게바라 평전 등을 중심으로.

 『아바나』 자체가 기획된 것도 그런 라틴붐과 무관하지 않은 듯한데요. 그래서 아마 9.11 테러가 없었으면 라틴 붐은 더 확대되었을 수도 있고 『아바나』는 더 많이 팔렸을 것이다, 는 말들을 하기도 하던데요.

이성형> 그런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작년에 그는 멕시코에 있었다), 저는 국내사정과 관계없이 책을 썼고요. 라틴 음악이나 댄스붐 같은 것은 어쩌면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거라고 할 수도 있어요. 춤바람은 언제나 라틴댄스 바람이었잖아요. 정비석의 <자유부인> 에 나오는 댄스 열풍도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맘보, 차차차, 탱고 같은 거요. 게바라 평전 같은 경우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사실 전 약간의 불만이 있어요. 그 게바라 평전은 그 많은 전기 가운데서도 족보에 쳐주지 않는 것이거든요. 근데 아마 몇 10만부가 팔렸다죠?

 저도 그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에서 발간된 빨간색 표지의 책)읽고서 좀 문제가 많다고 느꼈는데요. 왜 하필 그 책이 번역되었을까요? 게바라 평전 중에 유명한 건 따로 있죠?

 이성형> 게바라 전기를 전부 조사해서 고른 것이 아니라서 그랬겠지요. 여하튼 많이 팔려서 다행입니다. 책도 운명이 있는 모양이지요. 게바라 평전 중에 유명한 거는요, 멕시코 기자인 따이보 2세(Taibo II)가 쓴 것이나, 현재 외무부 장관을 하고 있는 호르헤 가스따녜다(Jorge Castaneda)의 것을 최고로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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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관심 많은 사람들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 같은데요. 일반독자들한테서는 어떤 반응이 왔는지요?
이성형> 예, 반응이 있어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반응도 많았고요. 약간 어렵다는 반응도 많았어요. 특히 교수들에게서도 어렵다는 반응을 받았을 때 약간 실망스러웠죠. 요즘 지식인이란 게 너무 전문적인 분야에만 매몰되어 그런지... 그렇지만 여성 독자로부터 점수를 많이 받은 거 같아요.(웃음) 특히 교수들한테 책을 주면 자기가 직접 안 읽고 일단 부인한테 먼저 주거든요. 아무래도 학부 학생들이 읽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좀 있을 거예요. 학부 수준에서는 좀 접해 보기 힘든 인류학이나 음악 이야기 같은 게 많은 있는 편이니까요.

책 안에서 쿠바여행 가이드북의 '과장'(쿠바에서는 남녀 물문하고 눈을 맞추지 말라)을 지적하셨던데, 어떤 책이었어요? 『Lonely Planet』은 아니고.....?
이성형> 『Lonely Planet』은 아니고 그 비슷하게 많이 팔린 책이 있어요. 『Lonely Planet』이야 아주 좋은 책이죠.

『아바나』는 쿠바, 멕시코까지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런데 세 번째 부분까지는 보통 설명하고 말하는 투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부분은 "그러면 당신은 어디로 갈 것이다..."는 식의 2인칭으로 씌어져 있는 걸 보고 뭐가 좀 다르다고 느꼈는데요. 멕시코 부분에서 서술체가 달라진 이유가 있어요?
이성형> 예-. 멕시코는 상대적으로 너무 오래 있었으니까요. 너무 익숙하고 자주 봤고 하니까요, "내가 어느 날 어딜 가서 무엇을 봤고..."하는 식으로 쓰지를 못하는 거예요. 실제로 내가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위해 가이드를 몇 번 하기도 했거든요. 그 분들에게 풀었던 이야기를 써 놓은 거라 보면 돼죠. 아직 멕시코에 못 가보신 분들을 위해 가이드북처럼 쓴 것이기도 하고요. 그 부분은 먹물 좀 먹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라 보셔도 됩니다. 하하하.

책의 멕시코 부분에 보면 토도로프가 한 해석을 뒤집어 설명하는 부분이 나왔는데요, 이런 부분이 저한테는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

 

Tip for You... 구조주의 문예이론가이며 저명한 기호학자인 츠베탕 토도로프는 『아메리카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아즈텍 문명이 유럽인들에게 쉽게 절멸한 이유를 '커뮤니케이션의 실패'에 있다고 설명한 것이다. 글쓰기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고 낮은 단계의 커뮤니케이션 체계만이 있었기에, 타자성이 있는 대인적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한 유럽 정복자들에게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아즈텍인 = 낮은 단계의 문명 / 유럽인 = 높은 단계의 문명」과 같은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고야말로 유럽중심적이며 오리엔탈리즘적인 것이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아바나』, 224-5쪽)

 

이성형> 츠베탕 토도로프 같은 경우는 워낙 유명한 학자이니까요, 그 권위가 대단하죠. 그 사람이 해석한 걸 보고 저도 처음엔 "참 잘 썼다, 기호학으로 정복사를 그렇게 쓸 수 있다니"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나중엔 그래도 정복은 전쟁이고 힘 문제인데 기호론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심을 좀 해봤어요. 정복사에 관심을 갖고 이 책, 저 책을 읽어보니까 거짓말 같아요. 처음부터 정복자들이 이긴 전쟁이 아닌 거거든요. 첫 번째는 실패했지요. 두 번째에 와서 주변의 동맹을 잘 활용하고, 또 무엇보다 무기의 압도적인 우세를 앞세워 쓰러뜨린 것이지요. 전쟁하는 방식도 다른 것도 중요했지요. 아스텍 사람들은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상대방을 생포하려 했지, 칼로 사람들을 한 방에 죽이는 그런 개념의 전쟁에 익숙하지 않았지요. 전쟁사를 조금만 읽어보면 토도로프 논리는 상당한 과장이라는 걸 알게 되죠. 그래서 구체적인 역사 분석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저는 칠레에 대한 서술에서, 다른 라틴아메리카인들과 구별되는 칠레인들의 국민성이랄까요, 그것이 기실 정치적 무의식의 발로이며 역사적 연원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서술이 인상적이고도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혹시 이 부분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이성형>  칠레의 근현대사는 광업의 역사입니다. 초석 광산과 구리 광산이 이 나라 국민들의 밥줄이었던 셈이지요. 최근에는 과일과 포도주 산업이 부가되었습니다만. 광산 경기란 것은 세계자본주의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흥청망청하다가도 금방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이지요. 어쩌면 칠레 노동자들은 맑스주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예요. 게다가 광산주는 대부분 외국인들이었으니. 개인의 삶은 항상 경기부침에 따라 격변하니, 자연히 계급주의적인 사고가 노동자들에게 깊숙이 파고듭니다. 반면 광산주들이나 지주들 역시 이런 거친 민중세력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니, 자연히 억압과 폭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칠레 정치는 19세기부터 날카로운 대립의 계급정치를 학습했고, 또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이를 제도화하려고 노력을 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아옌데의 인민연합, 그리고 그를 뒤이은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20세기 후반에서 그런 학습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것이지요. 민주화가 되어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지배층의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랑, 민중의 투쟁적인 전통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나라라고 평가할 수 있어요.

 멕시코 외에 다른 나라들 관련해서 어떻게 준비를 하셨는지?
이성형> 그동안 이 책 저책 가리지 않고 읽었지만, 여행을 가기 직전에 다시 한번 정리를 하기도 했지요. 쿠바의 경우에는 가장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해 미국 학자가 쓴 책을 한권 읽었고요. 제가 있던 콜레히오 데 메히코의 쿠바 관련 장서들도 많이 참고했어요. 쿠바 음악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평소에 관심 갖던 것이어서 새로울 게 없었지요. 페루의 경우는 잉카 제국의 역사 책 몇 권을 뒤졌어요. 칠레는 대학원 수업에서 가끔 다루었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고요.

 

 

공부는 공부할 대상과 공부하는 사람과의 '순수하고 맑으며 고독한' 대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일종의 제도라서, 공부하는 주체들은 그 한계와 제약과 구차스러 보이는 여러 '조건'들과 대결하고 교호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우리는 이 선생이 하고 있는 <공부>의 이면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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