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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이 같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이 글의 주소는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8107.html입니다.



진짜 ‘세금 폭탄’이 필요하다


세금을 적게 걷고도 좋은 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비법을 발견한 나라는 없다. “임기 내 총조세부담률과 사회복지 지출을 오이시디 평균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이런 수위의 증세 이슈가 선거 구도를 형성하지 않는 한 한국인의 고달픈 삶을 규정짓는 체제의 성격이 평화롭게 전환될 가능성은 없다.

 

세금을 폭탄으로 비유하는 습관이 있는 한국 보수 세력의 경제적 신념에 따르면, 절세와 탈세 사이 어디쯤에 있는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처신은 비난보다 칭찬을 받을 일에 가깝다. 상속증여세법과 소득세법의 취지에 충실하게 세금을 몽땅 내야 했다면 그의 부동산 투자는 회피되었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모이면 투자, 고용, 소비 등 거시경제에 안 좋은 효과를 낸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의 세금에 관한 기본 태도이다. 아서 래퍼 교수는 세율이 높으면 경제 활력이 떨어져 오히려 세수가 줄어든다는 ‘래퍼 곡선’을 통해 세금 내기 싫은 사람들의 이해를 경제 이론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래퍼 곡선을 좋아하는 세력들이 주로 문제 삼는 것은 홍 후보자의 탈세 의혹이 아니다. 그들은 후보자의 언행불일치를 집중 공격한다. 그러자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도 기사 쓴 대로 살라”고 맞받는다. 세금 문제에 관한 ‘위선’이 공격의 창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기도 하는 진풍경을 후진적인 정치 문화로 일축할 수만 없다. 조세제도 자체가 부유층의 합법적인 탈세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법 전체에 비대하게 발달한 비과세 감면 제도를 대폭 정비하고 탈세 목적의 여러 편법을 막을 장치를 구비했다면, 홍 후보자의 평소 증세 소신은 합법적 탈세의 유혹 앞에서 좌절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법을 정비할 힘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은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 그래서 홍 후보자의 인사 청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탈세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되풀이될 운명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세금의 미세조정에 불과한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예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작은 정부가 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며 국가의 주도적인 경제 역할을 강조했다. 한국의 총조세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2016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약 150조원의 증세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연평균 증세 규모는 12.2조원이었다. 이조차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거치며 연 5.5조원으로 절반도 넘게 깎여 나갔다. 지금의 정부 여당이 야권이었을 때 ‘증세 없는 복지’라 공격했던 박근혜씨의 대선 공약의 증세 규모가 9.6조원이었다. 복지 재정은 늘었는데 증세는 줄었다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는 문재인 정부 들어 더 강화된 셈이다. 결국 아무리 멋진 수사를 써서 포장하더라도 조세 정책으로 평가하는 문재인 정부는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의 연장일 뿐이다.


래퍼 곡선을 받들어온 미국의 경제는 세계 최강 군사력에 의지해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유지한 덕분에 연방정부 재정의 파산을 가까스로 막아왔다. 최고 소득세율이 70%에서 35%로 반쪽이 되는 과정에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복지가 축소돼 대다수 미국인의 경제적 삶은 추락했다. 그럼에도 감세 정책을 옹호하는 래퍼 교수의 신념은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다. 소득세가 있는 미국의 주들이 소득세 없는 주들에 비해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는 2014년 그의 주장도 그런 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0년 7월 미시간, 오하이오, 사우스다코타 등 미국의 많은 주가 아스팔트 도로를 유지할 정부 예산이 없어 자갈 도로로 대체하는 현실을 실었다. 래퍼 교수가 소득세 없는 주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 사우스다코타주는 160㎞에 달하는 도로를 아스팔트에서 자갈로 대체했다.


덴마크는 사회보험료를 포함해 지디피의 거의 절반인 49.6%를 조세로 걷는다. 우리보다 부담률이 낮은 오이시디 국가로 칠레(19.8%), 멕시코(15.2%) 단 두 나라가 있다. 래퍼 곡선에 따르면 덴마크 경제는 오래전에 망했어야 하고 칠레와 멕시코는 경제 활력이 넘치는 나라가 됐어야 한다.


부담률과 누진율이 핵심인 조세제도는 사람의 유전자처럼 그 나라의 고유한 사회경제체제를 특징짓는다. 그리고 조세제도가 자리 잡은 이래 세금을 적게 걷고도 좋은 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비법을 발견한 나라는 없다. “임기 내 총조세부담률과 사회복지 지출을 오이시디 평균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적어도 이런 수위의 증세 이슈가 선거 구도를 형성하지 않는 한 한국인의 고달픈 삶을 규정짓는 체제의 성격이 평화롭게 전환될 가능성은 없다. 한국에 정말 필요한 것은 강력한 세금 폭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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