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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겨레신문에 홍세화 노동당중앙당 후원회장이 같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원래 글의 주소는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2100.html입니다.



[홍세화 칼럼] 이 혐오감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홍세화

장발장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대표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다 돌아온 나는 한국 땅을 찾은 난민들을 보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난민 처지가 된 것도 엄청난 불행인데 참으로 마지막 운도 없구나. 유럽이나 캐나다가 아닌 한국 땅에 오다니! 난민 인정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2% 수준으로 ‘난민이 난민으로 인정받는’ 게 ‘신의 일’로 여겨지는 나라, 기적처럼 난민으로 인정받아도 노동허가제가 아닌 고용허가제여서 노동권이 없고 고용주에게 ‘간택되어야’ 겨우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곳, 하필이면 수많은 나라 중에 여기 왔을까”라고.


그러면서 내가 난민 자격심사를 받았던 곳은 프랑스 외무부 산하 ‘난민과 무국적자를 위한 보호실’(OFPRA)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법무부 산하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나는 제네바 협약에 따라 인종, 종교, 국적, 사회적 신분,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심사하기 위해서는 난민신청자 출신국의 정황을 가까이 알 수 있고 신청자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도 외무부에서 관장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다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 법무부 관할로 둔 것은 난민을 보호하려는 의지보다 통제하고 되도록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등 정부의 난민정책을 주로 비판해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내 생각은 짧은 것이었다. 제주도에 온 예멘 출신 난민들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혐오감정 표현에 나는 격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떼로 쳐들어온 성폭력 범죄집단으로 비치기까지 했다. 독일처럼 한 해에 80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밀려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오스트리아처럼 내국인 출생자 수보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인원수가 더 많다는 이유로 극우 정치세력에게 ‘정체성 공포’의 빌미를 주는 정도가 아닌 고작 500여명….


그런데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제기된 ‘제주도 불법 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증,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 허가 폐지/개정’ 청원 요구에는 6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댓글 중에는 차마 옮길 수 없는 내용이 적지 않다. 내 귓가에는 벌써 “인권 감성팔이, 집어치워!” “네 집이나 내줘!” 따위의 소리가 들린다. 이 거대한 혐오감정은 어디서 분출된 것일까?


이 공격성에 짓눌린 탓일까. 일부 언론의 방어적 보도는 안간힘처럼 느껴졌다. 나만의 일이었을까. “난민이라면서 스마트폰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가족, 친지와 소통할 길이 그뿐이라고, “왜 남성이 훨씬 더 많으냐?”는 질문에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가족 중에 먼저 떠나야 했기 때문이라고 그들 대신 답변해준 기사, 전 재산이 8만원뿐인 난민이 67만2천원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 미담 기사, 또 2013년 영종도에 난민지원센터가 들어선 뒤 지금까지 난민 범죄행위가 없었고 주변 집값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으며 오히려 서글픔이 밀려왔던 것은.


여기서 수오지심과 함께 측은지심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꼽은 맹자님의 말씀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또 “오, 위대한 영(靈)이여!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라는 한 인디언 부족의 기도문에 담긴 역지사지를 본받아 예멘인들의 자리에서 생각해보라고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다. 부부 사이도 서로 설득되지 않아서 다른 생각을 가진 채로 평생 살아가는데 남을 설득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다만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이 있다. “만나보지도 않고 겪어보지도 않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혐오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내가 시대변화에 둔감한 순진한 로맨티시스트여서일까, “알지 못한 채 사랑한다”는 말은 어렴풋이나마 이해되는데 “알지 못한 채 혐오한다”는 말은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다만 인종주의 언행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나와 다른 인종, 종교, 문화를 가진 대상을 차별, 배제, 억압하고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을 때 혐오의 단계로 넘어가는 게 순서일 듯싶은데, 어떻게 그런 과정이 생략된 채 바로 혐오하는 것일까. 기억력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3년 전 세살짜리 시리아 어린이 알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 죽은 채 떠밀려온 사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가질 수도 있었던 측은지심은 가령 그의 아버지, 그의 아저씨가 제주도 난민으로 왔을 때엔 혐오감정으로 돌변하는 것인가. 아니면, 화면으로 만나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인가. 마치 <레미제라블>을 관람할 때 바리케이드의 소년 가브로슈에겐 환호하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불량(이라고 규정된)소년들은 혐오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각자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본다. 예멘 출신 난민들을 향한 혐오감정은 그들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 지적했듯이, 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글로벌 가족’이고 비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다문화 가정’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는 ‘지디피(GDP) 인종주의’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신주의와 인종주의가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교묘히 결합된, 우리보다 지디피가 높은 나라 사람들에겐 받는 것 없이 올려다보고 낮은 나라 사람들에겐 주는 것 없이 내려다보는 정신자세를 말한다. 여기에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강력히 결합되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또 믿고 싶어 하는 얘기만 들으려 하는 확증 편향도 있겠는데, 그래도 이것들만으로 이 폭발적으로 증오감정을 유발시킨 공포와 불안의 정체, 특히 그 공격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 나머지 부분은 혹시 우리가 손해 보는 일로, 약자·패배자의 몫인 양 서로 다투어 내팽개친 친절과 환대, 배려와 연대 대신에 채운, 공격성을 띤 힘에의 의지 아닐까. 오랫동안 국가폭력에 익숙해진 우리는 오로지 물적 조건으로 힘의 크기가 규정되는 사회에서 맘몬의 숭배자, 힘의 숭배자가 되었다. 폭력 행사는 강자, 가진 자의 권리였다. 억울하게 당한 자가 법에 호소해보았자, 최근까지 양승태 대법원이 보여주었듯이 법이란 크로폿킨의 말 그대로 ‘힘센 자의 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갑’은 ‘을’에게 행사하고 ‘을’은 당한 만큼 ‘병’에게 풀어내는 방식이 자리 잡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성소수자들 사이의 연대가 거의 일방적으로만 유효하듯이, 젠더 폭력의 오랜 피해자인 여성들 대부분이 더 약한 소수자인 난민들에게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더 공격적인 혐오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난민은 자기가 속했던 국가와 사회를 떠나야 하고 가족, 친지, 동료, 이웃과도 멀어져야 하는, 그러면서 물설고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고 가슴 먹먹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언제나 소수자이고 약자인 그들에게 잠시 편견과 혐오감정을 내려놓고 눈길 한번 주면 안 될까. 감성을 가진 사회적 동물이어서 사소한 냉대와 불친절을 당해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갖는 게 인간이지만, 한순간의 눈길 교환만으로도 상대방이 겪은 삶의 층위를 느낄 수 있고, 그 깊이와 폭에 대한 공감, 아니 공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뢰를 느낄 수 있는 게 인간이기에.


나의 과거 모습을 오늘 보여주고 있는 당신들, 부디 꿋꿋하게 살아내시길…. 비록 소수지만 오늘도 제주도에서 “타자를 존중하고 타자와 윤리적 관계를 맺어야 ‘나’라는 존재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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