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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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자 용혜인
출마명부 비례대표 선거 후보
소속당부 서울특별시당 동대문당협
주요경력 - 1990년 출생 (만 25세)
- 세월호 참사 추모 침묵행진 ‘가만히 있으라’ 제안자*
- 416연대 운영위원
- 노동당 청년학생위원장
-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대표
- 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
- 전 삼척핵발전소 반대,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동막7리 마을대장
- 전 알바노조 대학팀장
- 전 세월호 1주기 PROJECT 토크콘서트 ‘사람들’ 기획단장
출마의 변 스무 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인생게임에서 한 칸을 더 나간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영화에나 나올듯한 파격적인 신분상승을 꿈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연인을 만나 결혼하는 정도의 좋은 엔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도와 대학은 분명 그런 상징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즈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강남에 있는 예식장에서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이게 사회경험을 위한 일시적인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바가 아니라 직원이 되고 싶다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20대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그의 꿈은 나와는 다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레바퀴 밑에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계속 알바를 해야했습니다. 법정 최저 시급이 3,800원이던 시기에 저는 3,500원을 받고 일했습니다. 하루 14시간 동안 구두를 신고 7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날랐습니다. 그렇게 온종일 일하면 4만5천 원 정도를 벌 수 있었습니다.

2학년 즈음에는 안산에서 서울 회기동까지 통학하기가 너무 힘들어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창문이 없지만 다른 방보다 조금 넓은 방이어서 3만 원 더 비싼 27만 원짜리 방이었습니다. 비록 침대에 누우면 다리가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작은 방이었지만 처음에는 나 혼자만의 공간이 생겼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남녀공용이었던 고시원이라 어쩌다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던 남성과 마주쳐야 했고, 아침마다 복도 끝 방에서 누군가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지 않으면 함께 잠에서 깨야 했고, 옆방에 살던 사람이 새벽에 들어와 씻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저와 고시원에 살던 누군가는 저의 핸드폰 벨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누구한테 따질 수도 없는 방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당연한 것’이거나, ‘개인적인 불행’이었습니다. 저는 우연히 굴러온 수레바퀴 밑에 홀로 깔렸을 뿐이고, 여전히 한 칸 전진한 상태라고 믿었습니다.

나만 열심히 노력해서 내 처지를 바꾸면, 여전히 앞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저를 짓누르고 있는 작은 수레바퀴 아래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 칸 전진한 세상’에서 계속 마주쳐야 했던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학생들과 대도시의 빈민들이었습니다. 한 칸 뒤로 가건 심지어 한 칸 더 앞으로 가건, 다들 모양만 다른 수레바퀴 밑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태도로 깔려 있느냐 부정적인 태도로 깔려 있느냐의 차이 정도는 있고, 세상은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깔려 있으면 행복해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어느 칸에 와 있는지 보다 수레바퀴에 집중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내 발 밑에 있는 칸 보다, 내 앞에 보이는 다음 칸보다 다른 사람들을 짓누르는 수레바퀴들이 훨씬 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받으며 야간알바를 하느라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알바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부산에서 두 명의 동료를 잃고도 또다시 불어닥친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맞서,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크레인 위에 올라가 홀로 농성을 하는 여성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 싶다며 죽음의 핵발전을 멈추라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목숨을 던져 싸우던 밀양의 할매, 할배들을 만났습니다. ‘개인적인 불행’으로 보였던‘각자의 수레바퀴’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수레바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났습니다

2014년, 수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잊지 못하거나 애써 잊었던 세월호 참사를 만났습니다. 저 역시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뉴스를 검색하고 세월호 소식을 찾아보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며칠을 보냈습니다. 물론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곳이 안산이었던 탓도 있습니다. 제가 자랐고, 모든 관계들이 얽혀있는 곳이었으니까요. 여전히 제가 한 칸 더 전진했다고 믿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동정 이외의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강남의 예식장에서 20대 청년 알바를 만났을 때처럼 말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리에 나와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이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행진을 시작했습니다. 1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해주었습니다. 수천 수만의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였습니다. 수레바퀴 밑에 깔린 사람들이 나와 너를 확인했을 때, 그들에게 붙여져야 할 진정한 이름은 ‘우리’였습니다.

‘절망 라디오’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더 많은 ‘우리’를 만났습니다. 스무 살을 빚으로 시작해서 20대의 기간을 악성부채를 갚는데 다 써야 하는 우리, 허름한 자취방 월세를 알바로 유지하다가 하루아침에 철거민이 되어버린 우리, 가족이 일을 하다가 크레인 사고로 죽고나서 배상금을 깎아서 재협상하자는 사장님에게 시달려야 하는 우리,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입원했지만 누구도 책임질 필요 없다는 법정판결에 무너진 우리. 수레바퀴 밑에 깔린 우리.

‘청년좌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또 다른 ‘우리’를 만났습니다. 경제성장이 지고의 가치인 시대에 “이윤보다 인간”이라고 말하는 우리. 노동개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IS”나 마찬가지라고 꾸짖는 정부에 맞서 “정권의 평화가 아니라 노동자의 평화를”이라고 외쳤던 우리, 강력한 1인 통치의 정부가 들어선 지금 이 땅에 세상을 바꿀 “출구는 없다”고 진단하면서도, “넘을 수 없는 벽”을 향해서 계속 나아갔던 우리. 수레바퀴 밑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사람들.

정치의 안에 ‘우리’가 없었을 뿐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여-야의 원내대표와 세월호 유가족이 만났던 2014년의 하루를 기억합니다. 당시 세월호유가족들이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600만 명의 서명을 모아냈지만, 3만 명의 표를 받아 당선된 여당의 대표는 “협상의 전권을 야당에 주시라”며 거들먹거렸습니다. 제1야당의 대표는 여당과 마음대로 합의한 후, 유가족들과 ‘협상’하려 했습니다. ‘우리’를 위한 정치가 없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정치의 안에 ‘우리’가 없었을 뿐입니다.

언제나 정치는 정치가가 하는 무엇이었습니다. 정치가는 하나의 직업이었고, ‘나’와‘우리’와는 다른 ‘그’였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긍정적인 태도로 수레바퀴 아래에 깔려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하는 일은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듣지 않으면 ‘IS 같은 행위’라는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해져버린 오늘, 수레바퀴는 차별과 혐오와 배제와 착취를 먹고 무럭무럭 커져가고 있습니다.

스물 일곱이 된 지금, 저는 더 이상 수레바퀴 밑에서 빠져나가겠다고 마음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칸 더 가겠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수레바퀴를 들어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과 같은 흔하고 의미 없는 수사로 ‘우리’를 지칭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 알고,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알고, 이 글을 읽는 ‘우리’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레바퀴를 이고 가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거리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치에서는 존재 자체가 지워진 이들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몸부림쳐왔습니다. 수백 일씩 길바닥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을 자고, 광고탑 위에서 전자파와 싸우며 수백 일을 버티고, 물과 소금만으로 연명하며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고, 거리로 나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것이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었습니다.

차별과 혐오와 배제와 착취를 먹고 자라는 정치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함’을 잃지 않기 위해 거리의 정치를 이어왔습니다. 이제 거리의 정치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진짜 정치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리의 정치를 이고 갈 셈입니다. 기어이 이고, 기어이 가야겠습니다.

노동자의 당을 대표하여, 우리를 대표하여
대한민국 20대 국회의원선거 입후보를 선언합니다.
넘을 수 없는 벽을 기어이 넘기 위해, 수레바퀴를 이고, 단호하고 정직하게 나아가겠습니다.

2016년 2월 5일 금요일
노동당 비례대표후보 출마를 알리며,
용혜인 드림
공통질문 1) 1. 한국 사회의 위기가 여러 층위에서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노동당이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현재의 정세는 무엇이며, 그러한 정세 인식에 따라 향후 2-3년의 시간 범위 안에서 당이 집중해야 할 전략 과제를 설명해 주십시오.

지금 한국사회에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의 ‘절망’입니다. 헬조선이나 죽창, 흙수저 같은 ‘청년 담론’들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아무리 ‘노오력’해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미래가 없다는 현실인식, 절망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학가고, 취업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취업한 후에도 저임금에 시달리느라 10년 뒤 삶을 꿈꾸지 못하고, 청년시기부터 대출을 받아 생활하며, 당장 오늘의 주거와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노동만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인간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망하는 이들을 대표하는 정치적 세력으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이들의 절망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해야 하며, 그 대안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만한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우선 지금 너무 낮은 임금으로 인해 당장의 생계 이외에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는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저임금-불안정노동체제를 전환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노동당이 이야기해온 최저임금 1만원, 기본소득,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가 필요합니다.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일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학자금 대출 등 대다수가 청년시기부터 안고 시작하는 부채의 문제, 악성부채탕감 역시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 대안들을 알려내는 사회운동을 벌여나감으로써 절망하고 있는 이들, 그러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것, 그것이 제가 계속 언급하는 ‘우리’의 정치가 가진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노동당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2. 노동당에게 2016년 총선의 의미, 얻어야 할 목표가 무엇이며, 그 목표를 위해 비례대표 후보로서 자기 역할과 포부를 밝혀주십시오.

2016년 총선은 당 내/외적 조건들을 모두 따져보아도 결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떤 일을 해도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깨지지 않고 있고 야당들은 의미 있는 지지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당도 사회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것은 물론이고 작년 대표단을 비롯한 당원들의 탈당을 경험했고, 다시 대표단을 선출한지 반년도 되지 않았으며 아직도 당을 수습하고 있는 상태에서 총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선거는 정당이라는 정치세력의 정세인식과 대안을 대규모로 알려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3월 31일부터 시작되는 본선뿐만 아니라, 비례대표 선출 경선기간부터 시작해서 노동당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후보로서 언론기고, 인터뷰, 유권자 만남 등을 통해 노동당의 존재를 알리고, 노동당의 주장을 알리는 데에 주력을 다 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청년세대의 문제가 ‘청년기’라는 특정한 시기에 누구나 겪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지난 50년 동안 쌓아온 불평등의 문제가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청년세대에게서 가장 격렬하게 터져 나오는 것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청년 복지’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것임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청년당사자로서, 청년에게 복지를 조금 더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 한국사회의 불평등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인으로서 비례대표선거에 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이번 4.13총선에서 노동당이 이야기하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저의 이야기로서 더 잘 알려내고 이를 통한 지지를 확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3. 어떤 계기,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 노동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서게 됐으며 당 운동의 확장 발전이나 자신의 운동의 성장을 위한 계획이나 희망을 밝혀 주십시오.
(12포인트 / A4 3장 이하)

작년부터 총선을 앞두고 오랫동안 고민이 많았습니다. 비례대표가 아니더라도 4월 총선에서 입후보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스스로도 마음이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청년들을 조직하는 운동을 해 왔고, 또 당 내외의 청년들과 함께 그런 사회운동을 만들고자 했기에 불안정한 이들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불안정한 이들을 조직하는 정치세력으로서 노동당과 제가 성장하는 총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한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알바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정치세력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선거로 만들겠습니다. 이번 선거 한번을 통해 제가 가진 것을 모두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선거를 통해 제가 가진 자산들을 늘리고 정직하게 운동을 형성하는 선거로 만들겠습니다. 같은 크기라고 하더라도, 점점 성장하고 있는 세력과 점점 줄어들고 있는 세력의 미래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당의 외연이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는 지금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당이 가진 정치적 기반을 확장하는 선거로 만들겠습니다.

매일 일상을 짓누르는 각자의, 모두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우리는 그 수레바퀴를 함께 들어올리겠다고 계속해서 선언해야 합니다. 절망 속에서 꿈꾸는 이들의 사회운동을, 그런 노동당을 만들겠습니다.

  1. 비례대표 선거 후보

    수레바퀴 밑에서

    Date2016.02.20 후보자용혜인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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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례대표 선거 후보

    최저임금1만원, 이제 국회로 보내주십시오.

    Date2016.02.20 후보자구교현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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