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위원회 논평] 우리의 사랑은 성별도 체제도 넘는다

작성자
노동당
작성일
2025-05-24 13:34
조회
3966


우리의 사랑은 성별도 체제도 넘는다

- 범성애 가시화의 날을 맞이하며


 매년 5월 24일은 범성애 가시화의 날이다. 가시화란 단지 보이는 것을 넘어, 학교 교육, 미디어, 공공정책 속에 존재를 드러내고 설명할 언어와 자리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가 그렇듯, 덜 보이는 존재는 권리를 말하기가 어렵다. 일반 대중에게 동성애와 양성애,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어느 정도 알려졌다. 그러나 범성애는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가 규정한 이분법적 성별 체계 안에 갇혀, 그 존재조차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범성애가 가시화되지 않는 한, 정책은 우리 성소수자의 삶을 배제할 것이고, 혐오는 침묵을 강요할 것이다. 

 범성애는 때로는 양성애와 혼동되고는 한다. 범성애란 모든 성별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는 정체성으로, 두 개의 성별에 끌리는 양성애와는 그 차이가 분명하다. 사람들이 범성애자들을 일상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별을 오직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으로 고정해온 역사 속에서, 범성애자들은 설명 불가능한 존재로 여겨졌고, 그로 인해 침묵을 강요받았다. 이는 비단 범성애자뿐 아니라 성소수자 대다수가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심지어, 겉보기에 ‘정상성’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양성애자와 함께 모욕을 듣는 범성애자도 있다.

 우리는 왜 범성애를 논해야 하는가. 그것은 범성애를 포용하는 일이 사회 전체의 해방, 곧 민주주의와 평등의 진정한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범성애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일은 단지 성소수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이분법적 성·가족 질서에 저항하며, 모두가 자기답게 존재할 권리를 열어가는 싸움이자,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다. 정치란 누군가의 삶이 드러나고,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함께 찾는 일이다. 자신이나 파트너의 법적 성별이 이유가 되어 법적 가족을 꾸릴 수 없는 범성애자가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때로는 모든 범성애자가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추구하는 ‘폴리아모리’로 오인되어, 두 소수자 집단 모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다. 명백히 다르지만 양립할 수 있는 정체성을 그저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혐오하는 사회가, 범성애에 대한 무지와 오개념으로 점철된 사회가 그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 성소수자위원회는 사람이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해방 사회라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보고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그 정치적 의지가 결국 사회를 바꾸는 출발점이다. 범성애를 넘어 모든 성소수자, 그리고 억압받는 이들도 사람답게 사는 그날까지,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그 억압에 맞서 선봉에 서서 성소수자 해방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5년 5월 24일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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