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특집: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특집: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홍세화 선생 '체제 전환' 강연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오늘 강의는 인문학적 접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의식 속 ‘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고, 인간과 인간 사이는 물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목표는 성장이었다.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소유와 성장'을 넘어 '관계와 성숙'이라는 개념으로 변혁해야 한다.
해방의 조건은 관계의 성숙
한국 사회는 총체적 위기에 몰려 있다. 이 위기는 임계점에 가까이 왔다. 두 가지 위기가 있다. 자연과 기후의 생태적 위기, 그리고 기술 혁명으로 인한 체제 자체의 위기다. 곧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좀비’와 같은 처지로 인간이 전락할 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인류는 극소수의 슈퍼엘리트와 절대 다수의 하류 인간으로 구분될 것이다. <1984>와 <멋진 신세계>의 제조되는 인간상, 그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학자들은 거기까지 10~20년을 말한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우리 당의 모토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한 소유의 문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현실에 있다. 노예의 반란이 성공해도 주인만 바뀔 뿐이지 노예는 노예로 남는다. 지난날 촛불 혁명에 이은 오늘 정치 현실을 보라. 이런 현실을 기대한 것인가. ‘노예’를 ‘인민’으로 바꾸어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까지 계속 혁명과 투쟁을 말해 왔던 사람들도 권력을 다시 소유하려고 한다. 반 혁명은 물론이고 혁명조차도 권력을 소유하려고 한다. 소유에 매몰되어 있을 때 지배, 착취, 정복이 정당화된다. 소유는 주체와 객체를 필연적으로 구분하고 객체를 타자화하는 폭력성을 띤다. 우리가 싸우는 과정은, 싸움을 통해 획득하려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해방의 조건을 이제 '소유와 성장'이 아닌 '관계의 성숙'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문제는 소유다
그동안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기대를 걸었다.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지배를 인간의 혁명으로 극복할 수 있을 지 비관해 왔던 것이다. 오늘의 위기는 총체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단독의 위기가 아니라 인류의 위기 그 자체다. 인류가 지금까지 자연과 맺어 왔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거시적으로 보겠다. 원시 공산 사회가 있고 나서 노예제, 그리고 봉건 사회, 그 다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했다. 그 다음을 우리가 전망해 보자. 원시에 자연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인간 간의 관계는 그래서 자연스러운 연대로 나아 갔다. 40~50명 되는 밴드에서 첫 번째 두려움이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두 번째는 밴드 일원이 죽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숫자가 줄어들 때 내가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두려움. 그것이 그들을 뭉치게 만들었다. 아무리 무지하고 야만적인 시대라 하여도 그것을 원시 ‘공산 사회’라고 부를 수 있었던 배경이다.
농업 혁명으로 잉여 생산물을 생기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소유에 집착하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게 되면서 동시에 다른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결국 소유와 지배가 한 걸음 같이 나아가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말할 것도 없이 극한으로 갔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는 더욱 더 강력해 지고,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거의 농노제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이제는 인간이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인간과는 달리 자연에 스스로 귀의함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 사이의 관계 역시 재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갖는 희망의 근거는 그것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혁명이 발생하며 그 관념이 깨졌다. 초인간이 등장하여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절대 다수의 인간은 좀비로 갈지 모른다.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너무 쉽게 기댄 것은 아닌지 생각하였다.
생산 수단의 사회화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제 남은 해법은 무엇인가. 생산 수단의 사회화가 답이다. 앞서 얘기한 여러 문제는 결국 생산 수단의 사회화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부르주아 지배 세력이 인민에게 가짜 의식을 심어 주는 문화적 헤게모니 수단을 사용한다. 학교, 기성 정당, 교회, 미디어가 그렇다. 노동 자체도 추락하고 있다. 일자리, 질 모든 면에서 추락한다. 마르크스는 19세기에, 자본에 대항하는 무산계급 힘의 원천이 숙련 노동이라고 봤다. 자본이 숙련 노동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 기술에 의하여 숙련 노동 자체가 쓸모없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생산 수단으로 자본이 점유하고 있다.
투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어렵다.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에서 정신적 무기를 얻고 철학은 프롤레타리아에게서 물리적 무기를 획득해야 한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부르주아 지배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교육의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는 교육 받으며 생각을 주입 받았다. 정답을 암기하는 교육을 받아서, 마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의식 세계가 완성된 관계에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배고프지만 생각은 고프지 않다. 한국 사회는 선동은 가능한데 설득이 없는 사회다. 기존에 가진 생각을 증폭할 수는 있지만 생각을 변화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정치 운동과 체제 변혁 운동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관계성의 회복으로 극복하자
관계성으로 극복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간을 착취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생산 수단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했다. 혁명, 반혁명, 그리고 소유라는 틀에 갇혀 사회적 관계를 경제적 관계로 한정하는 담론이었다. 특히 우리 젊은 세대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불안이 크다. 사회적 동물 인간을 경제 동물로 축소 시키는 것은 불안과 욕망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관계의 중요성, 풍요로움, 돈독함, 품격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설득을 쉽게 포기했는지 모른다. 나도 설득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내 가족, 이웃, 친구부터 설득해 나가야 한다. ‘나’의 관계 설정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소유에 대한 불안으로 관계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는 고집스럽고, 미디어라는 부르주아 헤게모니의 지배를 받고 있고, 정답을 주입하는 학교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포기했던 것을 벗어나 스스로 공부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직하라, 학습하라, 선전하라. 다들 알고 있을 레닌의 3단계가 결국은 답이다. 노동 운동, 진보 정치 운동 모두 설득이 요원한 사회이기 때문에 학습과 선전이 어려운 환경이다. 한국의 진보 정치 운동론은 그 두 가지를 건너뛰고 조직에 나섰다. 운동의 목적이 권력 투쟁이 되어서, 조직을 동원하는 것이 곧 운동인 양 되었다는 것이 현 실태이고, 오늘날 진보 정치 운동과 노동 운동이 표류하고 지리멸렬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운동이 건강성을 상실한 것은 우리가 설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모색은 게을리 하고 소유에 집착해 왔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관계의 풍요로움, 관계의 성숙에 초점을 맞춰야 그 길이 열린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계급적 정체성과 조우하며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 ‘선배를 잘못 만나서’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만하다. 몇 권 책을 읽은 것으로 모든 걸 다 파악한 양 한다.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지 않는다. 이런 점을 반성하며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집요해야 한다.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 ‘총화’이다. 그것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 생활 자체에서 스스로를 혁명하고 바꾸는 것이 체제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소유는 곧 지배, 착취의 폭력성을 띠고, 모든 관계를 주체와 객체로 나눠 버린다. 우리는 설득을 통하여 자본주의 체제와 싸워 나가고, 그 과정 속에서 생산 수단을 사회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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