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37호 202109
작성자
미래에서 온 편지
작성일
2021-09-29 22:43
조회
3236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바쿠라우>

박수영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브라질 북동부의 페르남부쿠 주의 외딴 도로를 달리던 급수차는 빈 관이 잔뜩 실려 있는 사고난 화물차 옆을 지나치게 된다. 급수차가 향한 곳은 댐으로 막혀진 작은 강으로, 그들은 이 댐으로 인해 물 공급이 끊겨버린 작은 마을 바쿠라우에 쓸 물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이다. 물을 채울 곳을 찾아보던 일행에게 댐을 지키던 누군가가 총을 쏘고, 이들을 황급히 몸을 피한다.

 이들이 출발한 마을인 바쿠라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무장한 무리들에 의해 봉쇄되어 있으며, 댐을 지어 물 공급을 막아버린 시장은 선거 때에만 찾아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료품과 마약성 진통제, 헌 책들을 적선하듯이 던져 놓고 사라진다. 인터넷 지도에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소형 UFO가 마을 주변을 맴돌며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한다. 급수차는 총격을 받아 구멍이 뚫리고, 마을 외곽의 말 농장은 정체 모를 습격을 받아 몰살된다. 농장의 상태를 확인한 후 황급히 마을로 돌아가려는 두 청년의 앞에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바이커 두 명이 나타나고, 이들이 목격자를 처리하는 과정은 UFO를 통해 낯선 무리들에게 전송된다. 급작스러운 습격을 마주하게 된 주민들은 물 공급을 끊어버린 댐을 파괴하려 한다는 혐의로 현상수배된 범죄자 룽가와 함께 이 침입자와 맞서게 된다.



 지난 9월 2일 개봉한 영화 <바쿠라우>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줄리아누 도르넬리스 공동 감독의 브라질 영화이다. 황량한 브라질 북동부의 작은 마을 바쿠라우에서 펼쳐지는 존재를 지우고자 하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웨스턴, 그 중에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난다.

 세르지오 레오네를 필두로 하는 일군의 이탈리아 감독들이 1960년대 이후 양산해낸 ‘스파게티 웨스턴’이 존 웨인, 존 포드로 대표되는 정통 웨스턴과 구별되는 지점은 인물과 무대이다. 선악이 분명한 정통 웨스턴과는 다른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 주역이라는 점, 미국 원주민 (인디언)이 주로 등장하는 미국 서부가 아닌 텍사스 – 멕시코 국경 분쟁의 주무대인 미국 남부가 배경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감독들은 무솔리니 독재를 경험하며 좌파적 성향을 진하게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스파게티 웨스턴 역시 좌파적 경향이 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1910년의 멕시코 혁명 (사파타 혁명)의 영향으로 '좌파적 민족주의' 흐름도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부패한 군부와 결합한 미국 '백인'들에 대한 민중들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항이라는 서사는 대부분의 스파게티 웨스턴, 특히 사파타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하위 장르인 '사파타 웨스턴'의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같은 남미의 국가인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 역시 이런 스파게티 웨스턴의 문법과 배경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본적인 인프라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표만 가져가면 된다는 태도의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게 되자 아예 마을 자체를 송두리째 없애 버리려고 하며, 영화에서 명백하게 '미국인'으로 호칭되는 외부의 침입자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브라질 남부의 '유사 백인'들이 저지른 월권 행위에 총질로 보답한다. 정치인과 결탁한 이들 외부 세력이 본격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사냥'하기 시작하자,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에서 서로 반목하고 싸우던 마을 주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초와 마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오래된 무기들을 통해 이들 외부 세력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이런 ‘맞서 싸움’은 스파게티 웨스턴 특유의 핏빛 자욱한, 그러나 전혀 통쾌하지는 않은 건조한 화면으로 다가온다.



 주민들이 몇 번 씩 반복해서 “보고 가라”고 말한,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마을 역사 박물관의 실체는 영화 말미에 확인할 수 있다. 바쿠라우 지역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반란과 진압, 투쟁의 역사를 모아 놓은 이 박물관은 그 자체로 이 영화를 설명해 준다. 그토록 많았던 저항을, 그토록 잔인하게 진압해 왔을지라도, 또다시 저항을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에든, 또는 그보다 더 먼 미래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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