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4호] 특집 : 기후위기와 체제전환
■ 미래에서 온 편지 34호(2021.06.)
□ 특집 : 기후위기와 체제전환
기후위기와 체제전환
김현우 동지 강연 정리
1.5도 티핑포인트
'1.5도 티핑포인트'라는 개념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정도 상승했다. 그런데 0.5도 더 상승하면 임계점이 넘어가서 온난화와 기후 변화가 더욱 크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만 년 전부터 기후 변화의 폭을 보면 섭씨 평균 8~10도 정도다. 기온이 낮을 때는 빙하기, 높을 때는 간빙기라 하는데 지금은 간빙기보다도 온도가 높다. 온도 변화에서 중요한 건 변화의 속도다. 몇만 년 동안 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1도가 변했다는 것은 생태계에 대단한 충격이다.
10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가 지구상에 살았다. 현생인류는 우리와 같은 유전자와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한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지구 온도가 낮아 기후가 열악했기 때문이다. 12,000년 전부터 기온이 올라가면서 꾸준히 온화한 기온이 유지되고 있다.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 지금과 같은 대륙 모양이 생겨났다. 빙하가 녹은 물이 비옥한 땅, 이를테면 삼각주를 형성했다. 농경 생활의 시작을 추동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현생 인류가 전세계에 지금 같은 문명을 형성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을 신생대 제4기 가운데 충적세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 충적 평야가 생겨난 까닭이다.
한데 지금의 온화한 기온이 산업혁명 이후 급상승하고 있다. 또 이산화탄소 농도가 따라 상승하고, 온실효과를 만들고 있다. 산업혁명 시작 시기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60PPM이었으나 지금은 410PPM으로 늘어났다.
인류세, 인터스텔라를 초래할 것인가
지질 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생물종의 큰 변화다. 생물종의 95% 이상이 사멸하는 '대멸종'은 대개 기온 변화가 초래했다. 일군의 대기화학자들은 지금이 '충적세'를 넘어선 '인류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1945년 7월 16일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부류의 과학자들이 있다. 미국 사막에서 핵폭발 실험이 최초로 이루어진 날이다. 그 이후 지층을 조사하니 세늄 137이나 스트론튬 같은 인위적 방사능이 발견되었다. 인간이 새로운 원소를 지층에 새겨 넣은 것이다. 또 플라스틱, 인간이 만든 고분자 화합물 역시 지층에 새겨져 있다. 한반도를 집중 조사하면 '닭뼈'가 엄청나게 발견된다. 닭을 엄청나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물종을 멸종시킬 뿐 아니라 개체 수도 늘려놓고 있다. 지구상 포유동물의 총 무게 가운데 인간이 차지하는 무게는 36% 정도로 추정된다. 나머지에서 60%는 인간이 기르는 가축이다. 나머지 4%만이 야생 포유류의 총 무게다. 60%의 가축 중에는 50억 마리의 소가 있다. 인간이 생물종을 그만큼 크게 바꿔 놓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가스 등이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류세'라고 칭함이 당연하다.
그리고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과 결과는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로 인한 변화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대멸종을 불러올지 모른다.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는 미증유의 일이 될 것이다.
날씨가 온화해지는 것만이 기후 변화는 아니다. 북극권이 더워지면 시베리아의 제트기류가 느슨해지고, 그것이 중위도로 내려와 서울을 춥게 만든다. 지구 온난화는 기후 격변을 의미한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이 늘어나고 자연재해의 예측도 불가능해진다. <설국열차>나 <투모로우> 영화처럼 하루이틀 사이에 지구 전체가 빙하가 되지 않는다. 가장 비슷한 영화는 <인터스텔라>다. 가뭄과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만 재배하고, 시민들이 공장에서 의무 노동을 하고, 야구경기 중 모래폭풍이 불어 닥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물론 오늘처럼 맑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일상적인 나쁜 날씨가 너무 길게, 예기치 못하게 올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뉴 노멀'과도 같다.
시리아의 난민 문제도 기후변화가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기후 변화로 러시아 밀 재배에 흉작이 들어 밀 가격이 올랐다. 주민들의 자생력이 없어졌다. 종족 간의 분쟁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이를 피해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다. 유럽에서는 이들 때문에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환경 문제로 녹색당이 득세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삶터를 잃고 난민이 된 것이 기후 난민이다. 1년에 2,500만명 정도의 기후 난민이 발생한다. 이렇게 정치적 변화도 연관이 크다.
'티핑포인트'를 넘어가면 인터스텔라의 나날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어떠한 사회, 동네, 정부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기후 회의론
기후변화에서 확실한 것은 탄소 농도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 뿐이다. 화석연료를 채굴해서 연소시키면 탄소 농도가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농도가 440~450PPM이 되면 얼마나 온도가 상승할지 불확실하다. 북극, 남극이 얼음으로 덮여 있을 때는 태양빛을 반사하지만, 검은 바다가 되면 열을 흡수할 것이다. 시베리아의 동토층에는 엄청난 메탄이 묻혀 있는데 빙하가 녹으면 이것이 드러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10배 이상의 속도로 온실효과를 촉진한다. 그나마 탄소를 흡수하는 것이 숲인데, 온도가 올라가니 큰 산불이 빈발하여 숲이 없어진다. 바다가 지닌 이산화탄소가 공기중으로 방출된다. 빙하도 천천히 녹지 않고 '찢어지듯' 녹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과학자들의 예측 모델에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해수면, 바람, 온도 등의 변수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인 변화가 어떤 사회의 변동을 가져올 것인가? 이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인과관계와 경향은 분명하다. 대응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것도 확실하다.
왜 대부분의 정부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세인들의 인식도 미비한가? 대응의 효과가 불확실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보통 사람들의 인식 프레임 바깥에 있는 문제다. 생산 방식, 소비 방식을 바꿔야 한다. 기후 변화를 막으려면 'everything'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한 행동'이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이론, 지식뿐 아니라 심리학과 정치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전형적인 기후 회의론이 두 개 있다. 먼저 전세계 7위의 온실가스 다배출국이지만 비율로 보면 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미국, 중국에 비해 무의미하며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수출 경쟁력만 깎는 일이란 것이다. 또 티핑포인트 역시 이미 넘어섰고, 이 흐름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반박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루아침에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몇십년 동안 만성적인 고통, 준전시, 비상사태가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듯 그런 경우에는 가장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다. 어떻게 하면 혼란과 고통의 상황을 가급적 예방하거나 연대를 통해서 막아내고, 더 나은 삶으로 이어나갈 기회로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감내할 고통
2050년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전세계적 목표다. 역사적으로 큰 경제 사회 위기 때 에너지 소비가 줄었다. 스페인 독감, 대공황... 그러나 그 위기가 끝나면 배출량이 늘었다. 그리고 1950~1970년대에 폭발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늘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생산과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석유파동 두 차례 때 줄었다가 또다시 늘었다. 2000년대 국제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코로나 사태로 5~10% 정도 줄었다. 2050년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들려면 지속적으로 이런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에너지 소비량이 14% 줄었던 적이 있다. 1998년 IMF 시기다. 경제성장률이 -5.2%였던 시기다. 기업이 도산하고, 노동자가 정리해고당하고, 자살이 속출하는 정도로 경기가 위축되어야 14%다.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거나 외환위기 정도 충격을 20년 동안 감수해야 가능한 수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소비와 경기부양으로 코로나 시대의 해결책을 내고 있다. 다른 한편 코로나 사태는 리허설이기도 하다. 어떻게 불필요한 이동, 생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으며 공기 질을 높이고 삶을 쾌적하게 만들 수 있을지 힌트를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린뉴딜' 얘기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예산을 제일 많이 쓰는 것은 전기차, 수소차 보급 지원이다. 이를 보급하면 온실가스가 줄어드는가? 아니다. 가솔린과 디젤 차량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세컨드카가 되고 있다. 또 결국 석탄, 석유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세 도입이나 전기요금 인상 따위는 다음 정부로 넘겼다.
그럼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진단하고 대안을 강구할 것인가? 마르크스의 시대에 자연환경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공기, 물 땅은 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태사회주의자들의 최근 주장은 다르다. 자연과 생산조건들이 점점 자본의 확대재생산에 한계로 작용한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 뿐 아니라 생산 조건과 자본 사이의 모순이 더 크게 일어날 것이다. 자본주의의 2차 모순이라고 일컫는다.
기후위기는 체제의 문제다
어떤 학자들은 '자본세'를 얘기한다. 인류가 아닌 자본주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자본주의 이전엔 그렇지 않았는가? 순환경제였기 때문이다. 유지하면서 나눠 쓰는 경제. 봉건제까지는 노비는 착취를 당했지만 체제가 생태계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고농도의 화석연료를 태우는 '편리한' 활동이 기후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생물종을 위계화하고 자연과 다른 종을 착취, 남용한다는 점에서 가부장제의 문제, 산업주의의 문제가 닿는다. 그랬을 때 해결 주체의 관계 문제도 노동운동, 페미니즘 운동과 맺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자본주의 한계 내에서 해결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안에서 전세계적 통치권력이 가능하다는 이론이 '기후 리바이어던'이다. 유엔 협약같은 국제 레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잘 안 된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그대로 두고 세계가 따를 수 있는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소고기의 문제는 유엔 기후변화 어젠다에 들어가지 않는다. 미국인에게 햄버거는 영혼 그 자체이니까. 반자본주의 모델 '기후 마오'는 어떤가? 중국은 군대와 당이 나서서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 다만 이것은 동아시아에서만 가능한 모델이라고 본다. 동원이 가능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전환의 큰 전제로서 '탈성장'이 필요하다. 이윤을 위한 확대재생산이 탄소 순환의 균형을 깨트린 것이므로, 경제의 확장을 전제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탈성장은 반성장과 다르다. 이미 인류의 생산 총량은 충분히 분배와 복지에 필요한 양에 도달했다. 수단으로서 참여적 계획경제, 자립과 살림의 확대, 연대와 민주주의 3가지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국가적 자원 배분과 규제가 필요하다. 지금도 수단은 많다. 기업을 압박하는 정부가 선진국, 강대국에 많아질수록 좋다. 국가적 참여적 계획경제, 그리고 자립과 살림의 일상화가 지역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연대민주주의로 확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것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녹색 새마을 운동'이라고 일컫는다. 일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했던 것이 지금 필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 도농의 역할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었고 당시 국가 예산에서 새마을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로 컸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데는 이만큼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기획원 수준의 역할을 할 정부기구가 필요하고, 여기에 부응해 개헌도 필요하다. 국회와 별도의 기후시민위원회도 필요하다. 우리가 벌여왔던 기후농민운동, 기후도시운동, 기후생협운동 등도 빠질 수 없다.
사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은 거의 제로성장에 이르렀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이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통념들. 식량 민주주의 주거 에너지 교육 같은 것들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의 자동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생산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이 깨어진다. 질소와 인의 축적, 생물종 다양성 파괴, 오존층 파괴 등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정부정책과 계획,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은 축구보단 야구에 가깝다. 9회 말, 10회 말, 20회 말... 한국은 정부정책이든 기후 운동의 상황이든 2회 초에서 2회 말 정도의 상황이다. 아직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발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연대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는 2회, 3회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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