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정세: 5월의 정세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정세: 5월의 정세
정세 (1) - '경제회복'의 뒤에 가려진 것들
김석정
2020년 시작과 함께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많은 익숙한 것들과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또한, 리오데자네이로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미국의 허리케인과도 같은 의외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지난 일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지식은 늘어났으며,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방백신과 치료제들이 만들어졌다. 또한, 어떤 방역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경험들도 쌓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 바이러스의 창궐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하는 점에 대한 단초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몇 회에 걸쳐 이러한 단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와 다른 변화 중 하나는 질병의 확산과 그에 대한 방역의 성공 정도를 경제성장률이라는 지표에서 추출하는 것이다. 물론, 2020년 초기 확산기에는 국가별 전체 확진자 수와 인구 10만명당 확진자 수가 주요한 지표였고, 아직도 국가별 질병의 확산 정도를 나타낼 때 이런 지표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질병의 방역 정도 그 자체보다는 여러 정책과 우연의 조합인 경제성장률을 성공적인 방역의 척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드러내는 것과 가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의 경제성장 물신주의를 쉽게 드러낸다. 평소에도 경제성장률과 1인당 GDP 등의 양적 지표에 과도하게 매달려온 사회가 이번에는 질병에 대한 대처 정도까지도 국가별 경제성장률 비교(어느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더 적게 떨어졌는지의 경쟁)로써 파악하려고 한다. 그 이면에 코로나19 대확산이 불러 온 국제적 가치사슬의 교란과 이미 그 이전에 취약해져 공황적인 상황으로 내닫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경제성장률로 대표되는 '경제의 회복'은 질병의 확산 방지와는 상관이 없고, 인민대중들 생활의 회복 또는 향상으로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다.
몇몇 우연과 겹친 한국의 선방(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면 국내에 마스크 제조업체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었을까?) 또는 몇몇 국가의 불운(마스크 공장이 남아 있지 않던 유럽에서는 스카프와 손수건에서부터 비옷까지 무엇이든 가릴 것이라면 둘렀다던지, 호주처럼 국내에 화장실용 휴지 제조시설이 없어 사재기가 일어났다던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지난 수십년간 극단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걸어간 자본주의 체제가 연결한 세계경제라는 것이 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주요 국가들의 '리쇼어링(해외로 진출한 제조업체를 국내로 다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것)' 정책에서 보이듯 신자유주의적 노선은 이제 무엇인가 다른 노선으로 전환되고 있고, 그러한 전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의 회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대확산의 대처에 경제성장률(의 회복)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연명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 중국에서 우한을 봉쇄하자비판에 나섰던 많은 국가들이 곧이은 확산기에 자국을 전체적으로 봉쇄(락다운)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면적인 이동제한이 없는 방역을 추구한 이유가 이동권, 자유권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뒤이어 나오는 방역 조처들 중 거의 무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범위의 역학조사, 방문지 추적 및 방문자 등록을 보면, 비교적 ‘개방적이고 유연한 방역’은 우리 사회가 딱히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서라기보다는, 위험을 각 개인들에게 돌리고 산업은 계속 가동하여 자본의 이익 창출에 멈춤이 없도록 하기위해서였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경제성장률에 따른 경제회복에 대한 관심은 정작 보여주어야 할 것을 가린다. 가장 먼저, 아래의 OECD 경제전망에서 보듯, 2020년 한국의 경제후퇴는 상대적으로 유럽 주요국보다는 덜했다. 하지만, 임대료 및 락다운 기간의 임금보조를 비롯한 각종 지원을 받은 그 국가들의 인민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인민들은 실질적으로 경제의 상대적으로 낮은 하강에서 얻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보다 심한 경기후퇴를 경험한 나라들에 비하여 이러한 상대적으로 나은 경제성장률은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룬 것이라는 것을 성장률 수치는 가려버린다.
(부분/전국민) 재난지원금, (소급 적용 여부를 다투는) 영업제한에 따른 손실 보상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이러한 논의는 주요 기업들에 제공된 막대한 금융 지원과 또한 그에 따라 파생된 금융자산 부문(주식, 암호화폐, 등)과 부동산 부문에서의 막대한 이익이라는 전체적인 배경은 소거한 채, 단지 지원액의 많고 적음과 그것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를 다투는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그러한 지원과 보상이 생존권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라는 왜곡된 논의는 결국 국가가 정작 보호하려는 이익이 보통 인민들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경제성장률과 회복에 대한 관심은 소외된 남반구 인민들에 대한 관심을 소거하는 역할도 한다. 이미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국제적 백신 공조체인 COVAX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고, 그에 따라 소외된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백신접종률이 무의미할 정도로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심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동의 대처가 아니라 경제의 회복에 맞추어지면, 경제적 영향력이 작은 그들은 금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지 경제성장률의 회복이 아닌, 전면적인 위기상황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생존권적 측면의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일부 피해 보상을 위한 법안들이 아니라, 빼앗긴 삶의 터전을 다시 마련하고 그들의 삶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여, 그러한 바탕 위에서 또다른 노선의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지구적 차원에서 우리의 역할을 하여, 소외된 지역의 인민들과 함께 바이러스를 극복하여 나가겠다는 결단 역시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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