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4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 미래에서 온 편지 34호(2021.06.)
□ 역사 : 경성의 재발견
경성의 재발견 01
- 노동자의 도시, 경성
현린
복고가 대세라고 합니다. [써니](2011), [건축학개론](2012), [응답하라 1997](2012) 등을 통해 주로 1980~90년대를 겨냥하던 이른바 ‘레트로retro’ 또는 ‘뉴트로newtro’ 경향은, [암살](2015), [덕혜옹주](2016), [미스터 션샤인](2018) 등과 함께 이제는 1920~30년대 전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50년 전은 물론이고 100년 전의 의상과 소품, 건축까지 영화 세트나 사진 스튜디오를 벗어나 골목으로, 일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복고 경향 속에서,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를 살아냈던 사람들의 자취는 그들이 걸었던 길과 함께 지워지곤 합니다.
복고의 소비는, 그 시대를 이미 경험한 세대에게는 향수와 그리움을, 그 시대를 처음 경험하는 세대에게는 낯섦과 놀라움을 선사한다고 하죠. 너무 빠른 속도의 변화에 지쳐 있는 현대인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소비하며 안정감을 느낀답니다. 게다가 복고 문화의 소비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것이 일상화된 시대에 필요한 특별한 배경과 소품을 마련해 줍니다. 100년 전 경성의 ‘모던보이’나 ‘모던걸’의 의상을 입고 ‘전차’를 타고 도착한 ‘다방’에 앉아 ‘가베’를 마시는 ‘경성레트로’도 그 중 하나입니다.
가까운 과거로의 복고와 달리, 경성레트로는 세대와 세대 사이가 아니라 해방을 경계로 시대와 시대 사이를 뛰어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시대에 태어난 우리가 경성레트로를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은, 경성레트로가 담고 있는 민족주의 서사에 우리가 이미 친숙한 탓입니다. 또한 오늘날의 감각으로 세련되게 재해석한 당시의 경성스타일은, 개방 이후 경성에 들어오기 시작한 국제 문물의 매력과 더불어 식민지 시대라는 현실과는 모순적인 민족주의적 긍지까지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경성의 실제는 결코 친숙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았습니다. 1920년 경성에는 이미 400여개의 공장이 있었고 이는 10년 뒤 1300여개로 늘어납니다.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경성으로 모이기 시작하고, 이들 새로운 노동자 대부분은 신당동, 아현동, 홍제동 등 도성 밖 공동묘지나 국유지에 토막을 짓고 삽니다. 1920년 25만 여명이었던 경성 인구는 1929년에는 34만으로 늘어나는데, 대부분이 토막민이었을 경성 외곽 인구가 14만이었다고 하니, 당시 실상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경성 공장의 절대 다수는 일본 자본 소유의, 일본 시장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공장에서는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인 노동자가 함께 일했지만, 조선인 성인남성 노동자의 임금은 일본인 임금의 절반이 되지 않았고, 조선인 성인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다시 조선인 성인남성 임금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조선인 노동자의 절반 정도는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했고, 특히 방직공장 노동자는 80% 이상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하고 받은 임금은 가족들의 한 끼 식사를 준비하기에도 부족했습니다.
반인간적 착취에 맞서 투쟁을 선도한 것은 조선인 여성노동자들이었습니다. 경성에 산재해 있던 신발, 양말, 방직 등 경공업 사업장에서 시작된 투쟁은 점차 지역별, 직종별 투쟁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예컨대, 1923년 7월 3일, 광화문 인근의 네 고무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삭감된 임금의 정상화를 요구하며 동맹파업에 돌입합니다. 이 파업은 경성의 양말직공조합, 인쇄직공친목회, 양화직공조합 작업부 등 조선노동연맹회 소속 단체와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오사카의 조선노동동맹회의 연대에까지 힘입어 열흘 만에 승리합니다.
1923 경성고무 연대파업에 들어간 여공들이 1923년 7월 3일 각황사(현재 조계사 옆)에 모여 토론중이다.(동아일보 1923년 7월 5일자)
노동자들의 도시 경성, 산업도시 경성은, 복고 경성과는 다른 서사와 스타일의 도시입니다. 이후 민족은 해방됐으나 노동자는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공장과 토막을 허문 자리에 쇼핑몰과 아파트를 세우며, 인구 25만의 경성은 인구 1천만의 서울로 성장했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착취당하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100년 전 경성은, 우리들 골목과 일상 어느 한편에 버려지고 숨겨지고 지워졌습니다. 이제 이 지워진 경성을 찾아 길을 떠나려 합니다. 다시 찾은 경성은, 그러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불온하고 또한 투박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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