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정세: 5월의 정세

33호 202105
작성자
미래에서 온 편지
작성일
2021-05-07 12:16
조회
5565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정세: 5월의 정세


정세 (1) - '경제회복'의 뒤에 가려진 것들


김석정


  2020년 시작과 함께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많은 익숙한 것들과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또한, 리오데자네이로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미국의 허리케인과도 같은 의외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지난 일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지식은 늘어났으며,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방백신과 치료제들이 만들어졌다. 또한, 어떤 방역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경험들도 쌓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 바이러스의 창궐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하는 점에 대한 단초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몇 회에 걸쳐 이러한 단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와 다른 변화 중 하나는 질병의 확산과 그에 대한 방역의 성공 정도를 경제성장률이라는 지표에서 추출하는 것이다. 물론, 2020년 초기 확산기에는 국가별 전체 확진자 수와 인구 10만명당 확진자 수가 주요한 지표였고, 아직도 국가별 질병의 확산 정도를 나타낼 때 이런 지표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질병의 방역 정도 그 자체보다는 여러 정책과 우연의 조합인 경제성장률을 성공적인 방역의 척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드러내는 것과 가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의 경제성장 물신주의를 쉽게 드러낸다. 평소에도 경제성장률과 1인당 GDP 등의 양적 지표에 과도하게 매달려온 사회가 이번에는 질병에 대한 대처 정도까지도 국가별 경제성장률 비교(어느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더 적게 떨어졌는지의 경쟁)로써 파악하려고 한다. 그 이면에 코로나19 대확산이 불러 온 국제적 가치사슬의 교란과 이미 그 이전에 취약해져 공황적인 상황으로 내닫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경제성장률로 대표되는 '경제의 회복'은 질병의 확산 방지와는 상관이 없고, 인민대중들 생활의 회복 또는 향상으로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다.

  몇몇 우연과 겹친 한국의 선방(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면 국내에 마스크 제조업체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었을까?) 또는 몇몇 국가의 불운(마스크 공장이 남아 있지 않던 유럽에서는 스카프와 손수건에서부터 비옷까지 무엇이든 가릴 것이라면 둘렀다던지, 호주처럼 국내에 화장실용 휴지 제조시설이 없어 사재기가 일어났다던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지난 수십년간 극단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걸어간 자본주의 체제가 연결한 세계경제라는 것이 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주요 국가들의 '리쇼어링(해외로 진출한 제조업체를 국내로 다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것)' 정책에서 보이듯 신자유주의적 노선은 이제 무엇인가 다른 노선으로 전환되고 있고, 그러한 전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의 회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대확산의 대처에 경제성장률(의 회복)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연명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 중국에서 우한을 봉쇄하자비판에 나섰던 많은 국가들이 곧이은 확산기에 자국을 전체적으로 봉쇄(락다운)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면적인 이동제한이 없는 방역을 추구한 이유가 이동권, 자유권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뒤이어 나오는 방역 조처들 중 거의 무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범위의 역학조사, 방문지 추적 및 방문자 등록을 보면, 비교적 ‘개방적이고 유연한 방역’은 우리 사회가 딱히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서라기보다는, 위험을 각 개인들에게 돌리고 산업은 계속 가동하여 자본의 이익 창출에 멈춤이 없도록 하기위해서였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경제성장률에 따른 경제회복에 대한 관심은 정작 보여주어야 할 것을 가린다. 가장 먼저, 아래의 OECD 경제전망에서 보듯, 2020년 한국의 경제후퇴는 상대적으로 유럽 주요국보다는 덜했다. 하지만, 임대료 및 락다운 기간의 임금보조를 비롯한 각종 지원을 받은 그 국가들의 인민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인민들은 실질적으로 경제의 상대적으로 낮은 하강에서 얻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보다 심한 경기후퇴를 경험한 나라들에 비하여 이러한 상대적으로 나은 경제성장률은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룬 것이라는 것을 성장률 수치는 가려버린다.



  (부분/전국민) 재난지원금, (소급 적용 여부를 다투는) 영업제한에 따른 손실 보상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이러한 논의는 주요 기업들에 제공된 막대한 금융 지원과 또한 그에 따라 파생된 금융자산 부문(주식, 암호화폐, 등)과 부동산 부문에서의 막대한 이익이라는 전체적인 배경은 소거한 채, 단지 지원액의 많고 적음과 그것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를 다투는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그러한 지원과 보상이 생존권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라는 왜곡된 논의는 결국 국가가 정작 보호하려는 이익이 보통 인민들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경제성장률과 회복에 대한 관심은 소외된 남반구 인민들에 대한 관심을 소거하는 역할도 한다. 이미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국제적 백신 공조체인 COVAX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고, 그에 따라 소외된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백신접종률이 무의미할 정도로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심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동의 대처가 아니라 경제의 회복에 맞추어지면, 경제적 영향력이 작은 그들은 금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지 경제성장률의 회복이 아닌, 전면적인 위기상황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생존권적 측면의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일부 피해 보상을 위한 법안들이 아니라, 빼앗긴 삶의 터전을 다시 마련하고 그들의 삶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여, 그러한 바탕 위에서 또다른 노선의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지구적 차원에서 우리의 역할을 하여, 소외된 지역의 인민들과 함께 바이러스를 극복하여 나가겠다는 결단 역시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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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4 | 조회 14690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복간사 : 다시 쓰는 편지 □ 축사 □ 특집 :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 정세 : 5월의 정세 □ 사람 : 러빙 속초 버닝 속초 ‘김종숙’ □ 리뷰 :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 포토에세이 : C씨의 적당한 식단 ■ 편집위원: 김석정, 나도원, 안보영, 이용규, 적야, 현린

Date 2021.05.07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복간사: 다시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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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3 | 조회 6958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복간사: 다시 쓰는 편지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를 다시 씁니다. 2016년 6월 32호 이후 5년 만의 복간입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를 다시 쓴다는 것은 자본주의 너머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당의 사유를 다시 모아 내고 실천을 이어 간다는 것입니다. 끊어졌던 편지를 다시 쓴다는 것은 끊어졌던 선을 다시 잇는다는 것입니다. 흩어져 있던 점들을 이어 다시 광장을 연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쓸모 없다며 사회주의라는 과거를 폐기하지만, 불가능하다며 사회주의라는 미래를 포기하지만, 그리하여 자본주의라는 반인간적, 반민주적, 반사회적 체제 속에 안주하지만, 노동당은 다릅니다. 노동당은 다른 시간에 대한 사유를 놓지 않습니다. 노동당은 다른 공간을 위한 실천을 놓지 않습니다.   선이 끊어질 때, 점들은 고립되고 마침내 소멸합니다. 반면에 선을 이어갈 때, 점들은 면으로, 공간으로 확장합니다. 당원과 당원 사이의 선, 지역과 지역 사이의 선, 당 안과 밖 사이의 선,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와 현재 사이의 선들을 이어 활성화할 때, 노동당의 광장 또한 다시 열리고 다시 확장해 갈 것입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김석정, 나도원, 안보영, 이용규, 적야, 현린 6인의 편집위원이 우선 시작합니다. 이갑용, 임수태, 홍세화 고문과 김일규, 김종숙 동지를 비롯한 당원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미래에서 온 편지] 복간호인 33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당원 동지들이 함께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현린 노동당 대표

Date 2021.05.07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축사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축사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축사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0 | 조회 6169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축사 홍세화 고문    안녕하세요?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의 복간 첫 호(온라인) 발간을 당원 여러분과 함께 축하합니다. 미래는 기어이 우리에게 도래한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우리의 사유와 실천을 세상에 알리는 장으로, 또한 우리 함께 학습하고 토론하는 텃밭으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조직하라, 학습하라, 선전(홍보)하라”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시들 수 없는 명제입니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또 보냈습니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다시 끌어 올리려고 신들메를 동여 매는 마음가짐으로 <미래에서 온 편지>와 함께 하기 바랍니다. 임수태 고문    ‘미래에서 온 편지’가 복간된다니 기쁩니다. 기관지가 당원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침체된 당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활력소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기관지를 통해 우리를 내외에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갈수록 심해 지는 불평등과 환경 파괴, 기후 위기 등은 자본주의 체제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공당은 우리 노동당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노동당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기관지가 우리 노동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갑용 고문    노동당 기관지 복간을 바라 보며, 당대표 시절 '미래에서 온 편지'를 폐간하면서 소중한 자료이며 자랑이 될 기관지를 재정 문제로 폐간을 하던 날이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담겨 있는 소중한 이야기들 한 권이라도 더 살리려고 사용하지 않는 복도에 보관을 했습니다. 그러다 당사를 줄이며 책들마저도 둘 공간이 없어 폐기 처분했습니다. 아픔이 많은 기관지 복간에 감회가 새롭기는 하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 더 이상 당세가 줄어들 일은 없을 것이기에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장서 복간을 준비하신 동지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기관지가 복간되면 당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여 노동당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가는 노동당의 미래를 기관지 복간으로부터 시작합시다.

Date 2021.05.07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특집: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특집: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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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2 | 조회 6460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특집: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홍세화 선생 '체제 전환' 강연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오늘 강의는 인문학적 접근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의식 속 ‘소유’의 개념에서 벗어나고, 인간과 인간 사이는 물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목표는 성장이었다.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소유와 성장'을 넘어 '관계와 성숙'이라는 개념으로 변혁해야 한다. 해방의 조건은 관계의 성숙    한국 사회는 총체적 위기에 몰려 있다. 이 위기는 임계점에 가까이 왔다. 두 가지 위기가 있다. 자연과 기후의 생태적 위기, 그리고 기술 혁명으로 인한 체제 자체의 위기다. 곧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좀비’와 같은 처지로 인간이 전락할 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인류는 극소수의 슈퍼엘리트와 절대 다수의 하류 인간으로 구분될 것이다. <1984>와 <멋진 신세계>의 제조되는 인간상, 그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학자들은 거기까지 10~20년을 말한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우리 당의 모토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한 소유의 문제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현실에 있다. 노예의 반란이 성공해도 주인만 바뀔 뿐이지 노예는 노예로 남는다. 지난날 촛불 혁명에 이은 오늘 정치 현실을 보라. 이런 현실을 기대한 것인가. ‘노예’를 ‘인민’으로 바꾸어도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까지 계속 혁명과 투쟁을 말해 왔던 사람들도 권력을 다시 소유하려고 한다. 반 혁명은 물론이고 혁명조차도 권력을 소유하려고 한다. 소유에 매몰되어 있을 때 지배, 착취, 정복이 정당화된다. 소유는 주체와 객체를 필연적으로 구분하고 객체를 타자화하는 폭력성을 띤다. 우리가 싸우는 과정은, 싸움을 통해 획득하려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하지 않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해방의 조건을 이제 '소유와 성장'이 아닌 '관계의 성숙'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문제는 소유다    그동안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기대를 걸었다.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지배를 인간의 혁명으로 극복할 수 있을 지 비관해 왔던 것이다. 오늘의 위기는 총체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단독의 위기가 아니라 인류의 위기 그 자체다. 인류가 지금까지 자연과 맺어 왔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거시적으로 보겠다. 원시 공산 사회가 있고 나서 노예제, 그리고 봉건 사회, 그 다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했다. 그 다음을 우리가 전망해 보자. 원시에 자연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인간 간의 관계는 그래서 자연스러운 연대로 나아 갔다. 40~50명 되는 밴드에서 첫 번째 두려움이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두 번째는 밴드 일원이 죽는 것이었다. 공동체의 숫자가 줄어들 때 내가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두려움. 그것이 그들을 뭉치게 만들었다. 아무리 무지하고 야만적인 시대라 하여도 그것을 원시 ‘공산 사회’라고 부를 수 있었던 배경이다.   농업 혁명으로 잉여 생산물을 생기면서, 미래를 도모하는 소유에 집착하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게 되면서 동시에 다른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결국 소유와 지배가 한 걸음 같이 나아가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말할 것도 없이 극한으로 갔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는 더욱 더 강력해 지고,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거의 농노제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이제는 인간이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인간과는 달리 자연에 스스로 귀의함으로써 자연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 사이의 관계 역시 재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갖는 희망의 근거는 그것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 혁명이 발생하며 그 관념이 깨졌다. 초인간이 등장하여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절대 다수의 인간은 좀비로 갈지 모른다.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너무 쉽게 기댄 것은 아닌지 생각하였다. 생산 수단의 사회화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제 남은 해법은 무엇인가. 생산 수단의 사회화가 답이다. 앞서 얘기한 여러 문제는 결국 생산 수단의 사회화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일찍이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부르주아 지배 세력이 인민에게 가짜 의식을 심어 주는 문화적 헤게모니 수단을 사용한다. 학교, 기성 정당, 교회, 미디어가 그렇다. 노동 자체도 추락하고 있다. 일자리, 질 모든 면에서 추락한다. 마르크스는 19세기에, 자본에 대항하는 무산계급 힘의 원천이 숙련 노동이라고 봤다. 자본이 숙련 노동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 기술에 의하여 숙련 노동 자체가 쓸모없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생산 수단으로 자본이 점유하고 있다.   투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어렵다.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에서 정신적 무기를 얻고 철학은 프롤레타리아에게서 물리적 무기를 획득해야 한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부르주아 지배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 교육의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는 교육 받으며 생각을 주입 받았다. 정답을 암기하는 교육을 받아서, 마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의식 세계가 완성된 관계에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배고프지만 생각은 고프지 않다. 한국 사회는 선동은 가능한데 설득이 없는 사회다. 기존에 가진 생각을 증폭할 수는 있지만 생각을 변화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 정치 운동과 체제 변혁 운동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관계성의 회복으로 극복하자    관계성으로 극복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간을 착취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생산 수단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했다. 혁명, 반혁명, 그리고 소유라는 틀에 갇혀 사회적 관계를 경제적 관계로 한정하는 담론이었다. 특히 우리 젊은 세대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불안이 크다. 사회적 동물 인간을 경제 동물로 축소 시키는 것은 불안과 욕망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관계의 중요성, 풍요로움, 돈독함, 품격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설득을 쉽게 포기했는지 모른다. 나도 설득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내 가족, 이웃, 친구부터 설득해 나가야 한다. ‘나’의 관계 설정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소유에 대한 불안으로 관계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는 고집스럽고, 미디어라는 부르주아 헤게모니의 지배를 받고 있고, 정답을 주입하는 학교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포기했던 것을 벗어나 스스로 공부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직하라, 학습하라, 선전하라. 다들 알고 있을 레닌의 3단계가 결국은 답이다. 노동 운동, 진보 정치 운동 모두 설득이 요원한 사회이기 때문에 학습과 선전이 어려운 환경이다. 한국의 진보 정치 운동론은 그 두 가지를 건너뛰고 조직에 나섰다. 운동의 목적이 권력 투쟁이 되어서, 조직을 동원하는 것이 곧 운동인 양 되었다는 것이 현 실태이고, 오늘날 진보 정치 운동과 노동 운동이 표류하고 지리멸렬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운동이 건강성을 상실한 것은 우리가 설득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모색은 게을리 하고 소유에 집착해 왔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관계의 풍요로움, 관계의 성숙에 초점을 맞춰야 그 길이 열린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계급적 정체성과 조우하며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어느 시점에 ‘선배를 잘못 만나서’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만하다. 몇 권 책을 읽은 것으로 모든 걸 다 파악한 양 한다.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지 않는다. 이런 점을 반성하며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집요해야 한다. 쉽게 포기해선 안 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 ‘총화’이다. 그것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 생활 자체에서 스스로를 혁명하고 바꾸는 것이 체제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소유는 곧 지배, 착취의 폭력성을 띠고, 모든 관계를 주체와 객체로 나눠 버린다. 우리는 설득을 통하여 자본주의 체제와 싸워 나가고, 그 과정 속에서 생산 수단을 사회화 해야 한다. 

Date 2021.05.07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정세: 5월의 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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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정세: 5월의 정세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1 | 조회 5565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정세: 5월의 정세 정세 (1) - '경제회복'의 뒤에 가려진 것들 김석정   2020년 시작과 함께 번지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많은 익숙한 것들과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보이도록 만들기도 했다. 또한, 리오데자네이로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미국의 허리케인과도 같은 의외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직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지난 일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지식은 늘어났으며,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방백신과 치료제들이 만들어졌다. 또한, 어떤 방역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경험들도 쌓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이 바이러스의 창궐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하는 점에 대한 단초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몇 회에 걸쳐 이러한 단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와 다른 변화 중 하나는 질병의 확산과 그에 대한 방역의 성공 정도를 경제성장률이라는 지표에서 추출하는 것이다. 물론, 2020년 초기 확산기에는 국가별 전체 확진자 수와 인구 10만명당 확진자 수가 주요한 지표였고, 아직도 국가별 질병의 확산 정도를 나타낼 때 이런 지표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질병의 방역 정도 그 자체보다는 여러 정책과 우연의 조합인 경제성장률을 성공적인 방역의 척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드러내는 것과 가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의 경제성장 물신주의를 쉽게 드러낸다. 평소에도 경제성장률과 1인당 GDP 등의 양적 지표에 과도하게 매달려온 사회가 이번에는 질병에 대한 대처 정도까지도 국가별 경제성장률 비교(어느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더 적게 떨어졌는지의 경쟁)로써 파악하려고 한다. 그 이면에 코로나19 대확산이 불러 온 국제적 가치사슬의 교란과 이미 그 이전에 취약해져 공황적인 상황으로 내닫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경제성장률로 대표되는 '경제의 회복'은 질병의 확산 방지와는 상관이 없고, 인민대중들 생활의 회복 또는 향상으로 나타나지도 않을 것 같다.   몇몇 우연과 겹친 한국의 선방(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면 국내에 마스크 제조업체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었을까?) 또는 몇몇 국가의 불운(마스크 공장이 남아 있지 않던 유럽에서는 스카프와 손수건에서부터 비옷까지 무엇이든 가릴 것이라면 둘렀다던지, 호주처럼 국내에 화장실용 휴지 제조시설이 없어 사재기가 일어났다던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지난 수십년간 극단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노선을 걸어간 자본주의 체제가 연결한 세계경제라는 것이 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주요 국가들의 '리쇼어링(해외로 진출한 제조업체를 국내로 다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것)' 정책에서 보이듯 신자유주의적 노선은 이제 무엇인가 다른 노선으로 전환되고 있고, 그러한 전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가 단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의 회복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대확산의 대처에 경제성장률(의 회복)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연명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 중국에서 우한을 봉쇄하자비판에 나섰던 많은 국가들이 곧이은 확산기에 자국을 전체적으로 봉쇄(락다운)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면적인 이동제한이 없는 방역을 추구한 이유가 이동권, 자유권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뒤이어 나오는 방역 조처들 중 거의 무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범위의 역학조사, 방문지 추적 및 방문자 등록을 보면, 비교적 ‘개방적이고 유연한 방역’은 우리 사회가 딱히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서라기보다는, 위험을 각 개인들에게 돌리고 산업은 계속 가동하여 자본의 이익 창출에 멈춤이 없도록 하기위해서였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경제성장률에 따른 경제회복에 대한 관심은 정작 보여주어야 할 것을 가린다. 가장 먼저, 아래의 OECD 경제전망에서 보듯, 2020년 한국의 경제후퇴는 상대적으로 유럽 주요국보다는 덜했다. 하지만, 임대료 및 락다운 기간의 임금보조를 비롯한 각종 지원을 받은 그 국가들의 인민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인민들은 실질적으로 경제의 상대적으로 낮은 하강에서 얻은 것이 없었다. 오히려, 보다 심한 경기후퇴를 경험한 나라들에 비하여 이러한 상대적으로 나은 경제성장률은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룬 것이라는 것을 성장률 수치는 가려버린다.   (부분/전국민) 재난지원금, (소급 적용 여부를 다투는) 영업제한에 따른 손실 보상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이러한 논의는 주요 기업들에 제공된 막대한 금융 지원과 또한 그에 따라 파생된 금융자산 부문(주식, 암호화폐, 등)과 부동산 부문에서의 막대한 이익이라는 전체적인 배경은 소거한 채, 단지 지원액의 많고 적음과 그것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를 다투는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그러한 지원과 보상이 생존권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라는 왜곡된 논의는 결국 국가가 정작 보호하려는 이익이 보통 인민들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경제성장률과 회복에 대한 관심은 소외된 남반구 인민들에 대한 관심을 소거하는 역할도 한다. 이미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국제적 백신 공조체인 COVAX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며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고, 그에 따라 소외된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백신접종률이 무의미할 정도로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심이 바이러스에 대한 공동의 대처가 아니라 경제의 회복에 맞추어지면, 경제적 영향력이 작은 그들은 금새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지 경제성장률의 회복이 아닌, 전면적인 위기상황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생존권적 측면의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일부 피해 보상을 위한 법안들이 아니라, 빼앗긴 삶의 터전을 다시 마련하고 그들의 삶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여, 그러한 바탕 위에서 또다른 노선의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지구적 차원에서 우리의 역할을 하여, 소외된 지역의 인민들과 함께 바이러스를 극복하여 나가겠다는 결단 역시 중요할 것이다.

Date 2021.05.07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사람: 러빙 속초 버닝 속초 ‘김종숙’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사람: 러빙 속초 버닝 속초 ‘김종숙’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사람: 러빙 속초 버닝 속초 ‘김종숙’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1 | 조회 5708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사람: 러빙 속초 버닝 속초 ‘김종숙’    지난 3월, 서울 평창동의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화가이자 노동당 당원이신 김종숙 동지의 전시회 [러빙 속초 버닝 속초]가 열렸습니다. 이 전시회를 찾아, 김종숙 동지와 속 깊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Date 2021.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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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리뷰: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리뷰: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리뷰: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4 | 조회 7488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리뷰: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초보자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떤 체제가 더 바람직한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모든 이에게 임승수 작가의 『자본주의 할래? 사회주의 할래? - 임승수의 방구석 경제수업』을 추천한다.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나소유’와 ‘오평등’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배경 지식을 쌓기 위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제공한다. 우선 자본주의의 탄생 배경을 ‘생산 관계’와 ‘계급’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다음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인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 가격과 노동 가치론, 노동력의 대가와 노동의 대가, 노동 시간과 잉여 가치 등을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소개한 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체제로 사회주의를 소개한다. 사회주의의 핵심으로는 생산 수단을 특정 개인이 아닌 공공이 소유한다는 것과 생산의 동기가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 구성원의 필요 충족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찬반 토론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를 찬성하는 나소유의 핵심 논리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며 자본주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으로 이 원동력을 극대화하여 물질적 풍요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또 다른 장점으로 노예제나 봉건제 시대와는 달리 (사적 소유권에 기반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오평등은 자본주의로 인한 빈부격차의 심화와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인간 본성은 이기심이 아닌 협동심인데 자본주의는 협동심이 아닌 이기심을 부추겨 인간 본성에도 어긋난다는 점,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주기적인 공황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점 등을 반대 근거로 제시한다.   다음으로 3부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찬반 토론이 진행된다. 우선 사회주의를 찬성하는 오평등의 핵심 논리는 인간의 경제 활동이 이윤 추구가 아닌 인간의 행복 추구를 목표로 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 체제는 생산 수단의 공공 소유를 기반으로 완전 고용과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반면 나소유는 사회주의가 평등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인간의 경제 활동 의욕이 떨어져 결국 세상의 (경제)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철저한 계획 경제는 공무원 사회에서 볼 수 있듯 경직성, 비효율성, 무책임을 발생시킨다는 논리를 펼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나소유와 오평등이 각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다. 나소유는 경제적 평등보다는 공정함을 중요시해야 하고, 공황의 원인인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줄여야 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기본소득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오평등은 자본주의로 인한 빈부격차, 노동 착취, 환경 오염 등의 심각한 문제는 자본주의의 극복으로만 해결할 수 있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발전이 자본가의 이윤이 아닌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다양한 기초 지식과 생각할 거리를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알기 쉽고 명쾌하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 바로 내용의 깊이이다. 하지만 어떤 영역이든 고급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입문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법이며 이 책은 바로 이제 막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한 초심자에게 가장 적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초심자는 아니지만 이 글의 서두에서 던진 질문들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명확’하게 답할 자신이 없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매우 유용할 것이라 확신한다.   참고로, 호기롭게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주의 선언, 변증법적 유물론 공부를 시작했다가 며칠(혹은 몇 시간) 못 가 포기한 이들에게는 임승수 작가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주의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을 추천한다.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더없이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김일규(강원도당 영동당협)

Date 2021.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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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포토 에세이: C씨의 적당한 식단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포토 에세이: C씨의 적당한 식단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 포토 에세이: C씨의 적당한 식단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5.07 | 추천 1 | 조회 5686
■ 미래에서 온 편지 33호(2021.05.) □ 포토에세이: C씨의 적당한 식단   그는 한 동안 구로역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건설기계 자격증을 얻기 위해 그 근방의 학원을 다녔고 점심시간이 되면 학원 근처 한식부페에 갔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맛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주는 카드로 식권을 받아 언젠간 나도 고급 노동자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식판에 먹을 것을 담았습니다.   그는 단 하루도 반찬을 남긴 적이 없었습니다.   '이게 내 삶에 도움이 될까? 이게 과연 벌이가 될까? 일을 하다 다치면 심하게 다치겠지, 죽을 수도 있을거야.' 등의 생각 또한 그의 반찬이었죠.   남들보다 괜히 더 많은 밥을 담은 날, 우스워서 그는 가지런히 놓여진 식판을 조용히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구로의  C씨

Date 2021.0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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