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내란수괴 전두환 - 505보안대 수사관의 생생한 기록

작성자
홍조 정
작성일
2021-08-22 23:41
조회
750


5.18 내란수괴 전두환 - 505보안대 수사관의 생생한 기록

허장환 지음 | 멘토프레스 | 2020년 10월 26일 출간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역사/문화 > 한국사 > 근현대사 > 군사정권과민주화운동

‘용기 있는 자’만이 세상을 바꾼다!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하는 책!


1981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을 담은 원고뭉치를 안기부에 빼앗긴 뒤, 보안사에서 19일간 온갖 고문을 견뎌내며, 1988년 12월 6일 평민당사에서 5·18가해자로서 최초의 ‘양심선언’을 하기까지 39년 동안 사장되었던 허장환의 생생한 기록이 재탄생한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 홍남순 변호사가 인증한 책!

1980년 5월 광주사태 당시, 인권변호사인 홍남순 변호사가 김대중과 엮이며 ‘내란수괴자’로 몰려 505보안대에 끌려온다. 허장환은 당시 직속 상관이던 서의남(전 505보안대 대공과장, 2020년 5월 18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전남도청 2층에서 헬기사격 장면을 직접 봤다”고 증언)에게 홍 변호사의 무고함을 주장하자 서의남은 자신이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어 ‘이 자식이 상관에게 항명하니 처단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허장환은 그에 맞서 ‘쏠 테면 쏴봐’ 하여 항명죄로 불명예 강제 전역을 당한다. 1998년 4월 홍남순 변호사는 5·18 당시 자신을 변호해준 허장환의 용기 있는 행동이 진실임을,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담은 이 책의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인증서’를 공증해준다.


5·18 학살자 편에 섰던 수사관이 전두환과 그 폐당들이 저지른 만행을, 그 민낯을 드러내는 최초의 책!

40년 전 광주의 현장에서 학살의 참상을 지켜보며 그때의 몸서리치던 생각,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수배되어 ‘잡히면 죽는다’라는 두려움으로 숨어 살던 그때의 기억 때문에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척 괴로웠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학살자 편에 섰던 허 수사관이 불의를 숨기지 않고 용기 있게 폭로해준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정의의 편에 서서 더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도록 적극 노력해주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역사/문화 > 한국사 > 근현대사 > 군사정권과민주화운동

‘용기 있는 자’만이 세상을 바꾼다!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하는 책!


1981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을 담은 원고뭉치를 안기부에 빼앗긴 뒤, 보안사에서 19일간 온갖 고문을 견뎌내며, 1988년 12월 6일 평민당사에서 5·18가해자로서 최초의 ‘양심선언’을 하기까지 39년 동안 사장되었던 허장환의 생생한 기록이 재탄생한다!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 홍남순 변호사가 인증한 책!

1980년 5월 광주사태 당시, 인권변호사인 홍남순 변호사가 김대중과 엮이며 ‘내란수괴자’로 몰려 505보안대에 끌려온다. 허장환은 당시 직속 상관이던 서의남(전 505보안대 대공과장, 2020년 5월 18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전남도청 2층에서 헬기사격 장면을 직접 봤다”고 증언)에게 홍 변호사의 무고함을 주장하자 서의남은 자신이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어 ‘이 자식이 상관에게 항명하니 처단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허장환은 그에 맞서 ‘쏠 테면 쏴봐’ 하여 항명죄로 불명예 강제 전역을 당한다. 1998년 4월 홍남순 변호사는 5·18 당시 자신을 변호해준 허장환의 용기 있는 행동이 진실임을, ‘5·18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담은 이 책의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인증서’를 공증해준다.


5·18 학살자 편에 섰던 수사관이 전두환과 그 폐당들이 저지른 만행을, 그 민낯을 드러내는 최초의 책!

40년 전 광주의 현장에서 학살의 참상을 지켜보며 그때의 몸서리치던 생각,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수배되어 ‘잡히면 죽는다’라는 두려움으로 숨어 살던 그때의 기억 때문에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척 괴로웠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학살자 편에 섰던 허 수사관이 불의를 숨기지 않고 용기 있게 폭로해준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정의의 편에 서서 더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도록 적극 노력해주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저자소개

저자 : 허장환

내 고향! 아니 내 태胎가 묻힌 곳은 ‘하주성’이다. 행정구역 명칭으로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서 1948년 10월 23일 출생했지만, 호적부상 등재기록에는 26일로 명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10월 26일이면 어김없이 국기를 게양한다. 이날은 1909년 안중근 의사에 의해 우리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가 격살된 날이며, 1979년 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참살된 기념비적인 역사적 날이기 때문이다. 부친은 아들이 10월 23일 출생했지만, 안중근 의사를 마음속에 새기며 10월 26일로 호적에 올린다.)

나의 본관은 김해이며 고로 나는 ‘하양 허씨’가 아닌 ‘김해 허씨’다. 다만 외조모님 살아생전 말씀하시길 “너희 조부는 유명한 의병장이었으며 왜놈들이 어린 네 아버질 볼모로 일본으로 데려갔다. 그 일로 너희 집안은 구미에서 왜놈의 눈을 피해 뿔뿔이 흩어지며 본향을 버리고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 그래서 조부가 의병을 일으킨 죄로 역적으로 몰려 구미를 떠나 하양에 터를 잡은 것이다.” 이것이 아버님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이다.

하양 동부국민학교에 입학 후, 당시 백 모 교장선생님은 “도련님!”이라 나를 불러주시며 운동장 한켠에 서 있던 큰 소나무 아래에서 하양의 유래와 하주(河州, 하양의 옛 지명)인으로서의 긍지를 고취하셨다.

“도련님이 태어난 하주성은 아주 유서 깊은 곳이지. 신라시대부터 별기군이 훈련하던 병영터가 남아 있고, 선덕여왕이 천엽놀이를 하던…… 서사리 냇가 옆 반석에 새겨진 아기 장군의 말발굽과 손자국에는 가락국의 수로왕과 허황옥 왕비의 사연이 어려 있고, 신라병들과 마지막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보이는 둣한 유물이다.” 돌이켜 보면 그 어르신께서 어린 내게 해주신 말씀이 오늘날의 나를 형성해 주었던 것 같다. 이제 70 고희를 넘어선 지금, 내 고향 하주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본다. 비록, 우리 세대가 아닐지라도 통일 조국이 세계 중심국이 되는 그날까지 미흡하지만 ‘하주인’으로서 초석이 될 것을 다짐하며, 이번 출간하는 《5·18 내란수괴 전두환》을 ‘5·18민주화운동’에 희생된 영정 앞에 바친다.


ㆍ 1980년 5·18 당시 광주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서 전남·북 계엄분소 합동수사단과 광주사태 처리수사국 국보위 특명반장을 담당.

ㆍ 1988년 12월 6일 평민당사에서 ‘광주사태 사전 조작 및 발포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라며 가해자로서 최초의 ‘양심선언’

ㆍ ‘보안사 5·11 분석반’의 회유와 협박을 받은 이후 강원도 화천에서 32년째 은둔생활

ㆍ 2019년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용장(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 씨와 기자회견을 열어 ‘5·18민주화운동’ 회고 닫기

목차

홍남순 변호사가 ‘인증’한 책

이 책을 읽기 전에… 내란수괴 전두환이 ‘살인죄’를 피해 간 법리적 해석의 차이

‘발포 명령자’와 ‘사살 명령자’는 어떻게 다른가

머리말

추천사(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전 5·18 기념재단 이사장)

추천사(김용장 전 미 군사정보관)

격려사 (남궁진 국회의원)

격려사 (철학박사 정재규)


PART1. 1980년 5월 18일 ‘피의 일요일’ 광주사태는 사전 조작된 시나리오!

◆ 광주사태 사전조작과 김대중 제거

◆ 비극의 시작 '보안사령부 긴급명령'

◆ 예비검속자 체포

◆ 보안대 육사생

◆ 상궤에 어긋난 ‘피의 일요일’

◆ 광주사태는 짜인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었다

◆ 유언비어의 진상을 폭로한다

◆ 회심의 미소를 짓는 보안사 광주사태 감독관


PART2. 국보위 지시하에 계엄에 둘러싸인 고도孤島 광주

◆ 보안사 보충대 '505 혼방사'

◆ 나는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과 이런 관계였다

◆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광주사태 기간 중 광주를 방문했다

◆ 광주교도소 매장 소문은 사실이다

◆ 도청 진압작전에 투입

◆ 남편 때문에 피난 가는 보안대원 부인들

◆ 고문에 의해 조작되는 '끼워맞추기'식 수사

◆ 도청 독침사건의 진실

◆ 박철웅 조선대총장을 체포하라

◆ 광주시는 계엄군 쌍방교전으로 불바다가 될 뻔했다


PART3. 빼앗긴 원고, 보안사에 납치…양심선언 은둔의 밤, 전두환·노태우에 고하는 글

◆ 사격(발포)명령은 누가 내렸는가

◆ 왜 평민당을 양심선언 창구로 이용했나

◆ 고양이에게 물린 고양이

◆ 죄를 지으면 꿈을 자주꾼다

◆ 은둔의 밤

◆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 5월의 시작 12·12

◆ 전두환은 과연 국난극복의 영웅인가

◆ 이학봉은 누구인가

◆ 태극무공훈장은 망월동 민주묘역에

◆ 갈등의 시대에서 화합의 시대로!

◆ ‘5·18민주화운동‘에 가담한 광주시민들은 폭도가 아니다


PART4. 행동하는 양심만이 진정한 양심 광주민주화 운동에 희생된 영령 앞에 사죄하련다

◆ 무소불위의 보안사! 그 정체는

◆ 국방부 및 보안사가 밝힌 서과장의 녹화사업 전모

◆ 전두환은 누구인가

◆ 대통령을 만드는 '하나회'

◆ 미국은 ‘5·18민주화운동’을 노코멘트로 일관하지 않았다

◆ 미국은 당시 자국의 이익과 안보만을 중시했다

◆ 진실을 진실되게 알고 진실을 바르게 행하는 자 만이 진실 속에 영원히 머문다

◆ ‘5·18민주화운동‘ 대단원의 막은 내리고 이 땅에 암흑은 깊어만 간다

◆ 암흑은 깊어만 가고 5공화국의 여명은 밝았다

◆ 군부독재의 아성속에 외로운 별! 정웅 소장은 이렇게 희생되었다

◆ 다시 만난 광주사태처리 수사국장

◆ 민주화를 위하여!


맺음말

부록

5·18 당시 군부지휘 체계도/'80.5.27 도청 내 사망자 정리 /5·18 서훈자 명단 /육본작전 상황일지(1980. 5. 19 -1980. 5. 22) /계엄 상황일지(1980. 5. 21) /'5·18편의대' 정밀투시(나의갑 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장) /전두환 관련 선고-2019가합37809 정정보도 등 /《5·18 내란수괴 전두환》의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홍남순 변호사, 정광진씨의 인증서/사망자·행불자 그리고 '암매장'에 대한 기록 /계엄부 사령관 지시사항


책 속으로

"허 수사관, 이들이 왜 광주를 대상으로 삼았는지 알겠어?" 라고 질문하고는 머뭇거리는 나의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김대중이란 놈 때문이다. 김대중이란 놈이 대통령이 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쓰고 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변칙수단으로 민중봉기를 획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46쪽

그때 갑자기 어깨가 강타되고 순식간에 팔이 뒤틀려지는 것과 동시에 큼지막한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뒷무릎에 구둣발이 와 닿으며 땅바닥에 꿇려졌다. 암호를 수하하는 구차한 방법이 생략된 실로 순간적으로 당한 일이었다. 암호가 작은 소리로 교환되고 난 순간 미안한 듯 우리를 쳐다보는 공수부대원의 히쭉이 웃는 하얀 이빨의 느낌이 광주사태가 끝난 한참 후까지 문득문득 그날의 기억을 회상토록 했다. 53쪽

검속대상자인 학생은 달포 전 시골 친구 집에 간다며 집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노모는 차분한 음성으로 사정을 전하며 도리어 밤중에 고생이 많다고 위로 조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학생의 공부방에서 수색을 하다 세계 각국의 우표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우표수집책을 발견했다. 이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가 거친 데모현장의 주동자라니……. 내가 그 학생의 우표수집책을 들여다보며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동행한 경찰관 2명과 헌병대 김중사는 벌써 건넌방에서 노모가 지어준 밥상에 머리를 쳐 박고 새벽의 시장기를 때우고 있었다. 인생의 철학 따위도 배고픈 동물적 본능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56쪽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전화국을 파괴하면 우리 광주시민은 완전히 외부와 고립됩니다. 결과적으로 전두환의 의도를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이성을 찾아 질서 있게 독재에 항거합시다. 지금 전화국을 기습하자는 놈은 간첩과 같은 놈입니다." 실로 배짱 두둑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오합지졸이라고만 여겼던 군중들은 청년의 그 말에 일제히 "옳소!"로 답했다.?난 지금까지도 그 청년의 순간적인 재치와 그때의 짧은 연설은 훈장 감이었다고 생각한다. 76쪽

이날 저녁회의에서 서과장은 '오늘 사령관님께서 다녀가셨다'고 운을 뗀 뒤 수사관들의 심리를 읽은 듯 "그런데 하사금은 가지고 오시지 않은 것 같다. 사령관님이 오셨다 가셨으니 곧 처장님께서도 내려오시지 않겠어." 라고 말한 뒤 업무사항을 이야기했다. 이날 회의에서 자위권 구사가 최종 결정되었다는 서과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곧 공식적인 발포명령을 의미했다. 89쪽

사람들은 일개 보안대 중간간부가 어떻게 그와 같은 고급 정보 내용을 알고 있느냐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보안대의 기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보안부대 요원은 시간과 장소, 출입하는 부서, 취급하는 업무 등을 타인과 타 기관으로부터 추궁받지 않도록 대통령령에 의해 법적으로 그 신분이 보장되어 있으며, 어느 곳에나 출입할 수 있다. 특히 보안과 요원은 지휘관의 동향에 대해 지휘관보다 오히려 더 잘 알아야 한다. 지휘관이 중요회의에 참석했다고 할 때 지휘관에게 회의 내용을 물어보는 보안대원은 무능한 사람이다. 90쪽

체포된 시민 가운데 특이한 경우는 광주통합병원 부근(당시 판문점이라고 했으며 이 지점이 광주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던 분계선이었음)에서 시민군이 잡아 계엄군에 인계한 전옥주 및 차명숙이었다. 이들은 체포될 때까지 광주항쟁 기간동안 마이크를 잡고 애절한 목소리로 광주시민에게 끝까지 싸울 것을 방송하다가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시민군이 체포(윤석루 광주시민군 기동대장이 체포)하여 간첩 용의자로 계엄당국에 넘긴 사람들이었다.?이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그때 광주시민들의 국가관과 투철한 반공정신은 인정하고도 남으리라 여겨진다. 91쪽

당시 교도소에 투입되어 있던 공수대원들은 애초부터 시민들이 시 외곽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광주고립 봉쇄임무를 수행한 것이었으며 결코 방호목적이 아니었음을 그때 나는 교도소 측과 언쟁 끝에 확인한 바 있다. 95쪽

다시 말해서 공수부대는 시민군의 교도소 습격을 저지하기 위해 교도소에 주둔한 것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민주화항쟁 사실을 외부와 차단시키기 위해 교도소를 노루목으로 설정, 차단임무를 수행한 것이며 교도소는 단순히 자신들의 주둔 시설물로 이용했던 것이다. 99쪽

27일 새벽, 진압작전이 막 완료된 도청에 투입되었다. 나는 시민군 지휘본부인 도청 서무과 사무실로 제일 먼저 뛰어들어갔다. 아수라장이었다. 창문에 M-16을 맞은 시체가 처참하게 걸쳐 있었다. 서류는 보이지 않았다. 2층 도지사 사무실을 거쳐 이곳저곳을 뒤지는데 어느 방에선가 캐비닛 뒤에 시체 2구가 서로 엉킨 채 쓰러져 있었다. 최후까지 항전하다 쓰러진 시민군인 모양이었다. 104쪽

이러한 연유로 광주항쟁 발발 이전이나 과정 중에도 어렴풋하게 느낀 사실이지만, 나는 광주사태 처리수사국 특명반 요원으로서 수사 체계도를 작성하는 과정, 그리고 이 무렵 태어난 국보위의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광주항쟁이 계획된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라는 심중을 굳히게 되었다. 110쪽

그리고 홍변호사는 사실 범죄사실이 없는 자이므로 '부디 사형만은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뒤, 당시 여운환이란 광주의 후배로부터 부탁받은 윤석루에 대해서도 역시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자신을 '과장님'이 아닌 '부국장님'으로 호칭해달라고 수회에 걸쳐 애원하다시피 요구했지만 줄기차게 '과장'으로 호칭하던 나는 이참에 '부국장님'이란 호칭을 자주 사용했다. 그는 몹시 흡족해하며 흥분된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극비사항의 말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이건 자네 혼자만 알고 있어." 라는 전제와 함께 "사실은 광주사태를 내란 성격으로 유지하기 위해 법에 명시된 대로 사형선고를 하려고 하는 것이지 실제로 이들을 사형집행까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야! 아마 곧 석방될 거야. 이게 바로 정치라는 것 아니겠어!" 112쪽

또 5월 29일에는 정동년 씨가 숙박했다고 내세우는 '알리바이'를 없애버리기 위해 그가 숙박한 사실이 있는 완도읍 모 여인숙의 숙박부를 찢어버리고 변조했다. 후일 그의 알리바이가 성립되면 혐의가 없어지기 때문에 조작한 것이다. 수사의 골격은 이미 잡혀 있었다. 그 체계에 맞추어 적당한 인물들을 묶어 넣으면 됐다. 이런 식의 수사가 그해 8월 29일 수사국이 공식으로 해체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116쪽

우리는 지난 과오를 은닉하고 은폐하는 졸렬함보다는 과오를 반성하는 조용한 슬기로움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뒷장에서 피력한 가시적 현상으로 광주민중항쟁을 결론 맺을 것이 아 니라 가장 원초적인 '사전조작의 필요성', 다시 말해 광주사태라는 민족의 비극사를 초래하면서까지 광주사태를 유발한 정치적 배경과 목적 등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바르게 알려야 하겠다. 127쪽

5월 18일 광주시민 학살은 이처럼 소수 정치군인들이 사전에 조작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 민족의 비극사임을 만천하에 밝혀 드리는 바입니다. 141쪽

나는 나의 젊은 시기를 대공전선에서 몸 바친 사람이다. 아마도 북괴당국은 나를 악질반동으로 점찍어두고 있을 것이다. 당국이 발표한 대로 김대중씨가 '용공분자'라면 아마도 내가 그를 용서치 않았을 것이다. 나같이 과격한 성격은 벌써 그의 이마에 총알을 박고도 남았으리라는 것을 내 주변인물들이 잘 알고 있다.?평생을 군사독재와 외로이 싸우며 외롭게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그분의 민주주의를 아끼고 갈망하는 마음을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나의 '양심의 소리'를 국민에게 바르게 전할 수 있는 창구로 그분을 택했던 것이다.?121쪽

나는 이 글이 그 시절 나에 대한 합리화나 한때 뜻을 같이했던 동료들에 대한 배신으로 각인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역사는 개인의 아픔이나 과거보다 훨씬 크고 깊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125쪽

한 인간이 인생의 황금기를 바쳐 충성한 곳으로부터 배신당했을 때의 참담한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터져 버릴 것 같은 통분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버이에게, 아니 고향에게 버림받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나는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치는 기분이었다. 160쪽

이 작전을 위해 당시 전두환을 맹종하는 사람들(보안사에 몸담았던 정치군인들)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짜 전두환에게 조언을 했다. 사전 전화도청에 의한 적정분석과 디데이 당일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위급상황에 즉각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정예부대 즉, 수도 경비사령부 장태완 사령관과 특전사의 정병주 사령관을 회식장소로 유인했다. 그것이 결국 작전의 성공을 가져오게 했다. 말하자면 모든 거사(?)는 사전에 치밀하게 모의 되었던 것이다. 어두운 80 년대의 서막이 시작된 셈이었다. 179쪽

한편, 그 회의에는 한 용감한(?) 장군이 있었다. 군수기지 사령관이었던 안종훈 장군은 그때, "이건 마치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것 같군! 국민들이 승복할까?" 라고 반발했던 것이다. 그 일로 용감한 장군은 국방부 보안부대장 백제기 준장에게 연행되었다. 사회 어느 구석이건 그런 돌연변이는 있는 법일까. 어쩌면 역사는 그런 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보존되고 지켜지는 것이 아닐까?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광주시민들처럼 말이다. 188쪽

왜 보안사는 이승만 자유당정권 때부터 박정희에 이은 군사독재에 지렛대 겸 초석을 놓아왔으며 국보위를 탄생시켰고 언론을 처형했으며 광주사태를 유발시키는 등 엄청난 사건만 일으켰고, 전두환 등 그 대에 걸쳐 대통령을 배출하는 위대성을 보일 수 있었나? 그러면 과연 보안사?



출판사 서평

■ 기획의도


5·18 당시, 서의남(전 505보안대 대공과장)은 자신이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어 “이 자식이 상관에게 항명하니 처단하겠다”고 하자, 허장환은 그에 맞서 “쏠 테면 쏴봐” 하여 항명죄로 불명예 강제 전역을 당한다. 홍남순 변호사는 광주사태 당시 보안대에서 고문 당하고 있는 자신을 변호해준, 위와 같은 허장환의 용기 있는 행동이 진실임을,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담은 《5·18 내란수괴 전두환》의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인증서’를 1998년 4월 16일 공증해준다. 허장환은 그때를 회상한다. “홍 변호사는 5·18 당시 김대중과 엮이며 ‘내란수괴자’로 몰려 505보안대에 끌려왔고, 이것이 허위사실임을 알게 된 저는 홍 변호사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11년간 몸담던 보안사에서 강제 전역되었고 이때부터 전북 진안고원을 비롯 인천, 수원, 현재의 거주지인 강원도 화천에 이르기까지 39년 간의 긴 은둔생활이 이어집니다.”

1981년 8월 보안대에서 강제 전역된 후, 5·18 그날의 기억이 희미해질까봐 매일 원고지를 메우는 것이 저자의 일상이 되었고 500매 가량 완성된 1차 원고뭉치는 안기부에 빼앗긴다. 이후 보안사에 끌려가 19일간 온갖 고문을 당하지만, 5·18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1988년 12월 6일 평민당사에서 김대중 총재를 비롯 기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광주사태 사전 조작 및 발포 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라며 가해자로서 최초의 ‘양심선언’을 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도 신변의 안전이 보장될 리 없었다. “그 새끼 죽고 싶어 환장했어! 너희 애비 장례 치를 준비나 빨리 해!” 이것은 기자회견을 가진 후 정확히 2시간 40분이 지난 뒤 그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저자의 딸이 받은 협박전화의 내용이다. “그때 이 전화를 받았던 제 딸아이는 심장병에 걸릴 정도로 공포에 질려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저 또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일본으로 피신해 있었지만, 다시금 광주의 실상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당시 재정리한 원고를 그로부터 10년 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던 해인 1998년 5월, 광주에 있는 ‘그린디자인’ 출판사에서 《비겁한 아버지는 될 수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교보문고에 깔리자마자 당일 판매순위 1위를 기록했지만, 동서화합이 요구되는 정치 차원의 시점에 해를 끼친다는 모 처의 명분제시로 출간된 지 한 달도 안 돼 전국 서점의 진열대에서 전량 회수된다. 저자는 말한다. “이로 인해 ‘그린디자인’ 출판사는 부도를 맞아 도산되었고, 트럭에 실려온 초판 1만 부 가량의 책은 화천에 있는 우리집 앞마당에 처박히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금서 아닌 금서’가 되어버린 광주의 진실이 담긴 엄청난 사록이 고물상에서 폐기처분되는 순간, 나의 심장 또한 멎는 듯했습니다.”

이러한 사연이 담긴 《5·18 내란수괴 전두환》은 정확히 말하면 그로부터 22년 만에 재출간되는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진가가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책을 추천한 박석무(다산연구소 이사장,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씨는 “이제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현재 조사가 진행되는 5·18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서는 이 자료를 참고해서라도 발포명령자를 확정하고 숨겨진 진실들을 모두 밝혀내길 바랍니다. 40년 전 광주 현장에서 학살의 참상을 지켜보며 그때의 몸서리치던 생각,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수배되어 ‘잡히면 죽는다’라는 두려움으로 숨어 살던 그때의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척 괴로웠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학살자 편에 섰던 허 수사관이 불의를 숨기지 않고 용기 있게 폭로해준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정의의 편에 서서 더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도록 적극 노력해주길 기대해 마지않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저자는 아직도 5·18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독자들에게 명확히 알리고자 한다. 이 책 서두에 ‘발포’와 ‘사살’의 차이를 언급하며 ‘내란수괴 전두환이 살인죄를 피해 간 법리적 해석의 차이’에 대한 기술에 심혈을 기울인다. 또한 현재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이던 보안사령부 광주지구 제505보안부대 복원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복원 팀이 교묘한 방법으로 ‘역사 지우기’ 작업부터 먼저 선행한 것 아닌가 의구심을 줍니다. 전두환과 그 신군부가 정권찬탈 과정상 가장 핵심 역할을 한 곳이 국보위 수사실인데, 5·18전문위원회에서는 이를 사병들 휴게실로 명명했고, 당시 그들의 온갖 음모와 악행을 지켜본 수십 년 된 고목나무들을 일거에 베어버리는가 하면, 고문의 흔적을 없애던 장소인 야외 재래식 화장실마저 일제히 철거한 점 등을 미루어볼 때 이는 모두 증거인멸을 위한 역사왜곡의 일환으로 보일 뿐입니다.”

직접 고문을 담당했던 수사관의 지적이고 보니, 반면교사反面敎師적 가치를 지닌 사료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가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5·18 내란수괴 전두환》에는 이러한 왜곡된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과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2019년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용장(전 미 정보부대 군사정보관) 씨와 함께 ‘교차검증’ 하면서 논란이 되었던 사건들, 즉 5·18 당시 전두환의 광주방문, 조작된 전남도청 독침 미수사건, 광주교도소 시체 암매장, 계엄군의 쌍방교전, 사단장 납치사건, 녹화사업의 전모, 5·18 편의대의 진실 등에 대해 5·18 당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수사관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빛나는 증언록이다. 마지막 부록에서는 5·18 진상규명을 위한 중요 자료들을 싣고 있는데 나의갑(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장) 씨가 작성한 〈‘5·18 편의대’ 정밀투시〉 내용을 그대로 실어 전두환과 그 세력들이 어떻게 ‘편의대’를 운용하여 정권을 찬탈하는지 그 기록을 상세히 담고 있다. 그밖에도 5·18 당시 군부지휘 체계도, ’80.5.27 도청 내 사망자 정리, 5·18 서훈자 명단, 육본작전 상황일지, 계엄 상황일지, 전두환 관련 선고(2019가합37809 정정보도 등), 이 책의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홍남순 변호사의 인증서, 사망자·행불자 그리고 ‘암매장’에 대한 기록, 계엄부 사령관의 지시사항 등, 《5·18 내란수괴 전두환》 책의 마지막 부록에까지 손을 놓아서는 안 될 이유가 충분히 담겨 있는 책이다.

2020년 7월 16일 전남도청 복원상 필요한 증언을 위해, 저자는 40년 동안 은밀히 감춰 있던 그날(1980년 5월 27일) 새벽의 참상을 증언키 위해 광주에 발을 내딛는다. “전남도청의 출입문을 여는 순간, 피비린내와 함께 5·18의 악몽이 되살아났고, 5·18 혼백들이 내게 영혼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텔레파시화되어 무섭도록 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이때 다시 내 머리에 총알이 관통하듯, 도청 뒤켠(도경 앞)에 가슴과 옆구리 등에 총탄을 맞아 처참히 쓰러져 있던 문용동(상무대 군軍교회의 전도사) 모습이 교차했습니다. 당시 도청 지하실에 방치돼 있던 광산용 다량의 TNT 폭약이 있음을 계엄 당국에 먼저 알린 것도 김창길을 비롯한 시민군 문용동과 김영복 등이었고, 이들이 폭약이 있는 지하실 문을 막아서며 지켜주었기에, 위기에 처한 광주시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이들은 결코 프락치가 아니며, 반드시 이들 시민군들의 억울한 죽음의 의미를 사록史錄에 되새겨 두어야 합니다. 내 남은 여생 당신들 죽음이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음을 후세에 면면히 증명함에 주저치 않겠습니다.”

《5·18 내란수괴 전두환》은 5·18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광주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5·18 민주화운동’의 본질을 알리는 ‘역사의 징검다리’가 되길 희구하는 간절함에서 재탄생한 책이다.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사전 조작’으로 광주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자는 여전히 그에 상응한 죄값을 치르지 않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일제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승만정권 때는 ‘특무대’란 이름으로 박정희정권 때부터 ‘보안사’로 이어지며 사령관에게 주어지는 막강한 ‘작전 조언권’은 80년 5월 당시에도 더욱 엄히 적용되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군명령 계통의 중심축은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이었고, 5·18기간 동안 광주에 한 번도 다녀간 적 없다는 그의 주장은 광주민 사살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자기합리화의 말에 불과합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600명 북한군 광주투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의 괴설과 진배없으며, 당시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그리고 국보위라는 국가 최고기관의 수장으로서 그는 직무유기 및 직무태만의 죄를 저지른 범죄행위자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을 사전 계획하여 자행한 행위는 내란 목적의 내란 가담 및 종사자에 해당하므로 전두환은 만고에 그 이름 석 자가 기록될 ‘내란수괴’이고 ‘폭도수괴’임이 자명합니다. 지금까지 군의 내규나 법령에 해박한 군사전문가나 연구원들이 있음에도 지난 세월 전두환의 어설픈 자기합리화를 눈감아준 보이지 않는 세력들의 힘에 솔직히 필자는 아직도 공포를 느낍니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이고, 《5·18내란수괴 전두환》은 5·18진상규명의 첫 포문을 여는 책입니다. 40년 동안 더 깊숙이 감춰 있는 ‘5·18민주화운동’의 실체를 드러내는 2탄의 책을 준비 중입니다.”

《5·18 내란수괴 전두환》은 여전히 ‘용기 있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진리를 머리와 가슴에 새기고 있는 허장환 작가의 ‘반면교사적인 기록’의 위대성이 깃든 책이다. 그리하여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입증하는 책으로 자리매김하길 희구하는 바이다.


■ 중요내용


《5·18 반란수괴 전두환》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1980년 5월 18일 '피의 일요일' 〉에서는 1980년 5월 17일에 내려졌던 계엄확대와 그 당시의 상황, 그리고 보안부대 내에서 일어난 긴박했던 순간을 다뤘다. 1970년 10·26을 기점으로 12·12 군사반란 사태를 거쳐 국민들이 부푼 기대를 가졌던 ‘서울의 봄’으로 불리던 1980년 5월. 당시 전국은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었지만 여러 곳에서 군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불만으로 산발적인 시위가 발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적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실질적인 통치기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속칭 ‘국보위’의 실세였던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전국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전국 확대 조치이지만 저자에 의하면 ‘이번 5·17계엄확대조치는 광주에 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을 전언으로 듣는다. 5·18 당시 저자 허장환은 광주의 중심에 있었으며 다양한 정보망에 접근할 수 있었던 소수 가운데 하나였다. 갑작스럽게 확대되는 계엄과 특히나 ‘광주에 특정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발언, 그리고 미리 하달된 예비검속자 명단과 당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던 김대중 선생을 목표로 삼은 것, 치밀하게 사전에 계획된 수순을 밟아가는 모양새를 감각적으로 느꼈다. 저자가 이러한 의문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순수하게 시위에 참여한 일반인들에 대한 군인들의 행동이었다. 저자는 시가지 전체가 파악 가능한 ‘비공식 은거지’인 호텔 객실 5층에서 시위와 진압 방식을 본 결과 ‘군인들이 시위대를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이고 비극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제2부, ‘국보위’ 지시하에 계엄에 둘러싸인 고도孤島 광주〉에서는 계엄확대 이후 외로운 섬이 된 광주와 소문으로 알려지고 추후 사실로 확인된 것 중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했다.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광주사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광주 방문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흥분된 군중들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청에서 발생했던 ‘독침사건’의 진실에 대해 말한다. 자칫하면 광주가 불바다가 될 뻔했던 계엄군간의 쌍방교전 사실, 조선대 총장 체포사건에 얽힌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술했다. 저자는 무엇보다 최근에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광주교도소의 시체 암매장’ 소문이 있던 광주교도소를 5·18 당시 직접 방문한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교도소에 도착해서 임무수행한 사실을 기술하면서 그 참혹한 광경을 목도하고 이렇게 설명했다. “교도소에 도착해보니 이들은 30평 규모 작업장의 시멘트바닥에 수용되어 있었으며 이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유탄을 맞아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만큼 살이 썩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곧 숨이 끊어질 지경에 놓인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죽어야 볼 수 있는 지옥의 모습을 그때 나는 볼 수 있었다.”


〈제3부, 빼앗긴 원고, 보안사에 납치…양심선언〉에서는 ‘광주사태’ 이후 저자 허장환 씨가 겪었던 비교적 사적인 부분에 대해 기술했다. 다짜고짜 이루어진 강제 불명예전역을 시작으로 저자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악의로 가득찬 가짜 투서에 의한 것인데, 거짓으로 판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수기관원의 자질부족’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로 불명예스러운 강제전역을 당했다. 이후의 삶은 누구나 상상하듯 피폐하고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복수나 동료를 배신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에게 쏟아붓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질문들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로 살아야 했다. 공포와 분노, 두려움과 잔혹함이 지배했던 그 계절이 되면 저자 허장환은 고통 속에 번민했다. 역사의 증인이 되어 죄 없이 죽어간 영혼들에게 사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상황에 관심 많던 후배의 부주의로 쓰던 원고가 안기부에 넘어가고 보안사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출판을 약속하던 출판사는 하나 둘씩 등을 돌렸다. 결국 그는 1988년 12월 6일 ‘양심선언’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지만 그의 발언은 큰 파장을 몰고 오지 못했다. 전두환과 군부의 힘은 당시까지도 막강했기 때문이다.


〈제4부, 행동하는 양심만이 진정한 양심〉에서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게 된 점을 다룬다. 우선 보안사의 역사와 그들의 정체성과 정신적 배경을 통해 보안사가 가지는 태생적 한계와 성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대통령을 만들어낸 군부 내의 사조직 ‘하나회’와 내란수괴 전두환이란 인물을 분석하고 그 민낯을 드러낸다. 저자의 다양한 임무수행 과정에서 알게 된 미국과의 관계와 정치적 입장에서 본 미국의 반응 등을 거시적 관점에서 다뤘다.


〈부록〉 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장인 나의갑 선생이 작성한 〈‘5·18 편의대’ 정밀투시〉에서는 전두환과 그 세력들이 운용한 편의대에 관한 기록이 중심을 이룬다. 편의대란 편의공작대의 줄임말로 군인이 사복을 입고 적지에 침투하여 첩보수집, 교란, 선동 등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지칭한다. 5·18 당시 광법하게 운용되었던 자들에 의해 퍼졌던 유언비어와 공작들이 그들에 의해 자행되었으며 저자인 허장환 씨의 증언이 여러 부분 증언, 인용되었고 보다 기록적인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실었다. 그밖에도 5·18 당시 군부지휘 체계도, ’80.5.27 도청 내 사망자 정리, 5·18 서훈자 명단, 육본작전 상황일지, 계엄 상황일지, ‘5·18편의대’ 정밀투시(나의갑 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장 서술), 전두환 관련 선고(2019가합37809 정정보도 등), 이 책의 내용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홍남순 변호사의 인증서, 사망자·행불자 그리고 ‘암매장’에 대한 기록, 계엄부 사령관의 지시사항 등, 5·18 진상규명에 중요한 자료들을 수록하고 있다.

저자는 행동하는 양심이 올바른 길이라 믿으며 진실, 그 진실 속에 머무르고자 한다. 발발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절망스럽지만, 저자는 5·18 당시 희생된 영혼이 위로받을 수 있을 때까지 진실되게 행동하며 진정으로 사죄하고자 한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그 출발점이며 그것이 그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온라인 노동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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