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9호] 영화 : 연상호가 바라보는 세상 - 지옥
■ 미래에서 온 편지 39호(2021.11.)
□ 영화 : 연상호가 바라보는 세상 - 지옥
박수영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갑자기 거대한 천사가 등장한다. 천사는 당황하는 사람에게 앞으로 얼마 후, 모월 모일 모시에 지옥에 갈 것이라는 “고지”를 남기고 사라지고, 그 시간이 되면 흉측한 지옥의 사자가 등장해 고지를 받은 사람을 산 채로 태워 죽이는 “시연”을 벌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보여지며, 사진 촬영이나 영상 녹화, 심지어 실시간 방송도 할 수 있다.
신흥 종교인 “새진리회”는 이런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 빠르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현상은 인간 세상에 만연한 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신이 내리는 직접 개입이다, “고지”를 받은 인간은 자신이 저지를 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만인 앞에 낱낱이 고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시연”을 받아야 한다, 만일 자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고지”를 받는다면 가족들 모두가 그의 죄를 고백하고 함께 뉘우쳐야 하며, 죄인을 감싸고 감추는 것 역시 신의 뜻을 거스르는 죄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 해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새진리회는 엄청난 규모의 교세는 물론, 정계 및 사법 영역에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강한 조직이 된다. 새진리회는 자신의 이 권력을 바탕으로 “고지” 및 “시연”에 대해 자신들과 다른 해석을 하는 모든 사람과 집단을 억압하고 파괴한다.
지난 11월 19일 넷플릭스 체널을 통해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위와 같은 상상을 통해 “사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야말로 지옥인 것인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져준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당사자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고지”나 정해진 때만 되면 장소에 상관없이 벌어지는 “시연”은 현 시기에도 인터넷에서 만연하고 있는 “좌표찍기”, “조리돌림”이 바로 연상되기도 한다.
이 드라마의 직접적인 원작은 2019년부터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지만, 기본 모티브는 연상호 감독의 대학교 졸업작품인 <지옥: 두 개의 삶>이다. 천사에 의해 지옥(part 1), 또는 천국(part 2)에 가게 된다는 고지를 받은 주인공의 현재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연상호 감독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하는 원인에 대한 탐구”라는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이 주제의식은 웹툰과 드라마를 거치며 고지받은 당사자를 넘어서 주변 인물, 사회 전반으로까지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사람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관심은 그의 다른 전작, 특히 <돼지의 왕>, <창>, <사이비> 같은 작품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중학교, 군대, 소멸을 앞두고 있는 농촌 마을 등 제한된 상황에서 비대칭적 정보를 통해 권력을 구가하는 기득권과 그 기득권을 혁파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대립을 큰 축으로 하는 이들 전작은 주인공들이 기득권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질서에 순응하거나 적극적 가담자가 되는 주변인물들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 늘 따라다니는 “염세적 세계관”을 완성하게 되고, 이는 감독의 주요한 인장으로 인식되게 된다.
<지옥> 역시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구성을 보다 강렬하고 힘있게 밀어붙인다. 새진리회는 자신들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시연을 조작하는가 하면, 시연의 생중계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무력감과 공포감을 순식간에 전파시켜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질서에 빠르게 종속시킨다. 종속된 대중들 중 일부는 극단적 선동자의 지령에 따라 자신들의 교리에 조금이라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 자들을 린치하는 “자발적 홍위병”이 되고, 이들에 의해 린치당한 신질서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이 신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또 다른 시연의 생중계를 준비한다. 기득권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기득권의 수단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들의 강변에 뭐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느낀 것은 필자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을 겁주고 벌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시겠다? 그런 데가 하나 더 있죠. 지옥이라고” 극 후반부의 주인공인 배영재 PD(박정민 분)의 대사야말로 연상호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해석과 조금이라도 다른 주장은 모두 “죄”이니 “벌”을 받아야 한다며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곳, 이곳이야말로 진짜 지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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