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AIDS는 범죄도 상품도 아니다
HIV/AIDS는 범죄도 상품도 아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전파매개행위죄 폐지하라! 핑크워싱 규탄한다!
오늘 12월 1일은 HIV 감염인 인권의 날이다. 1988년 WHO에서는 매년 12월 1일을 ‘세계 에이즈의 날’로 지정했고,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 날을 “HIV 감염인 인권의 날”로 부르며 HIV/AIDS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없애고, 감염인 및 감염 취약 계층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의 날로서 기념하고 있다. “침묵은 죽음”이라는 HIV/AIDS 인권운동의 오랜 구호를 되새기며, 노동당은 다음과 같이 소리 높여 외친다:
HIV/AIDS 혐오를 멈춰라! 병력과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막을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HIV/AIDS는 범죄가 아니다! 전파매개행위죄 즉각 폐지하라!
HIV/AIDS는 상품이 아니다! 성소수자의 목숨값으로 장사하는 제약회사의 핑크워싱 규탄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HIV 감염인의 날 제정 이후 36년, 우리 사회는 아직도 HIV/AIDS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다. 2018년 제7차 세계가치관조사 결과 한국인 중 92.9%가 ‘만약 이웃이 HIV 감염인이라면 같이 지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이러한 혐오적 인식은 민간과 국가기관을 가리지 않는데, 가령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이전에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며 HIV/AIDS를 본인의 혐오적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포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지난 10월 열린 보수개신교 세력의 ‘1027 기도회’에서 또한 마찬가지 주장이 집회의 주요 구호로 사용됐고, 이러한 혐오적 언설들은 거름망 없이 그대로 언론화되어 많은 성소수자들, 그리고 HIV 감염인들의 일상을 위협했다.
HIV/AIDS 혐오는 또한 HIV 감염인들의 일터에서의 자리조차 빼앗는다. 질병관리청 역시 “에이즈는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감염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고, 감염경로와 관련이 있는 업무환경이 아니라면 전파가능성이 없으므로 HIV 감염인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로금지 및 제한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HIV/AIDS 관련 병력은 취업, 그리고 노동의 지속에 대한 차별 요건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2017년, 경기도 소방재난본부는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119 구급대원에게 사직을 강요, 직장에서 쫓아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의 복직 권고와 법원의 차별행위 인정에도 불구하고 해당 구급대원은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공공기관에서조차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게 되는 한국 사회, HIV 감염인의 노동권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는 너무나 열악하다.
HIV/AIDS에 대한 공적인 혐오를 막고, 이를 이유로 하는 권리의 침해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병력과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러한 차별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 HIV 감염인에게 차별금지법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동앗줄이다. 지금 당장,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전파매개행위죄 폐지하라
HIV/AIDS에 대한 사회적 혐오는 일부 혐오세력들의 일탈적 행위가 아니다. 국가 기관의 시각과 제도부터가 HIV/AIDS 혐오적 시각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법률은 HIV 감염인들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다.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바이러스 미검출 = 전파불가)라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은 “전파매개행위의 금지”(제19조) 및 벌칙(제25조 제2항)을 통해 HIV 감염인의 성적 권리를, 아니 HIV 감염인 그 자체를 범죄화하고 있다.
전파매개행위죄는 누군가의 존재를 범죄화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반인권적이며, 오히려 HIV 예방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전파매개행위죄는 HIV/AIDS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재생산하며, 이러한 낙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HIV 감염상태를 명확히 인지하기를 외면하거나 두려워하게 만듦으로서 조기 검진, 치료, 궁극적으로는 예방을 방해한다. 법적 처벌이 HIV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밝혀진 바 없지만, 빠른 검진과 치료가 HIV 전파 차단과 감염인의 일상 회복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상황에서 전파매개행위죄가 존속해야 할 이유는 전무하다. 지금 당장, 전파매개행위죄를 폐지해야 한다.
핑크워싱 규탄한다
HIV 감염인의 삶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조건은 비싼 약값이다. 길리어드 사이언스와 같은 초국적 거대 제약회사들은 의약품 연구개발을 직접 하는 대신,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연구개발된 신약물질을 특허권 이전이나 인수합병하여 신약을 개발한다. 인수합병, 영업 활동, 마케팅 등을 거치며 불어나는 약값은 고스란히 감염인에게 전가된다. 특허권이 만료된 이후에도 복제약 생산까지 2~3년은 더 기다려야 하며, 에버그리닝(분할 특허출원을 통한 특허권 보장 기간 연장) 때문에 이조차도 어렵다.
2004년 HIV 치료제 푸제온이 국내에 수입될 당시, 제약사인 로슈는 푸제온의 약값으로 보건복지부가 정한 연간 1800만원의 약값을 거부하고 연간 3200만원의 약값을 부르며 푸제온 공급을 거부했고, HIV 감염인들의 항의에 “해당 국가 국민이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공급이 결정된다”고 답변했다. 예나 지금이나, ‘약을 살 돈이 없으면 죽어라’라는 것이 제약회사들의 논리이다.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의 목숨값으로 장사하는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서울퀴어문화축제 등 여러 성소수자 자긍심 행사들의 후원사로 참여하며 ‘성소수자들의 친구’인양 굴고 있다. 이러한 ‘성소수자 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감염인들에게 전가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성소수자 자긍심과 HIV 감염인의 생존권은 상품이 아니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핑크워싱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제2차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관리대책(이하 2차 대책)을 발표했다. 2차 대책은 PrEP(Pre-exposure prophylaxis for HIV, HIV 노출 전 예방요법) 확대를 과제로 삼으며, 이전까지의 HIV/AIDS 범죄화와 처벌 중심의 관점에서 보다 진일보한 관점을 보여줬다. 이는 U=U 캠페인을 통해 과학적 사실과 감염인 인권 보장을 주장했던 감염인 당사자들과 인권운동의 성과이다. 투쟁의 성과를 딛고, HIV/AIDS 혐오 철폐, HIV 감염인의 존엄한 삶의 권리와 노동권의 완전한 보장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멈추지 말고 나아가자. 침묵은 곧 죽음인 HIV 감염인의 삶을 생각하며, 노동당도 침묵하지 않겠다. 우리의 요구를 외치길 주저하지 말자.
2024.12.01.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