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작성자
홍조 정
작성일
2021-07-18 11:07
조회
155

남부군 _ 최초로 공개된 지리산 빨치산 수기

이태 지음 | 두레 | 2014년 09월 20일 출간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정치/사회 > 국방/군사 > 한국전쟁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고 죽어 간 젊은이들의 비극적 실화!

『남부군』은 6.25 전란 중 남한 빨치산을 대표하던 '남부군'을 주제로 한 체험적 수기이다. 북한 정권에게마저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간 비극적 영혼들의 메아리 없는 절규, 냉혹한 자가숙청 등 빨치산 사회 내부의 적나라한 모습과 한계속에서 드러나는 벌거벗은 인간의모습 등 베일에 가려진 지리산 빨치산에 관한 첫 실록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50년 9월 26일 추석부터 1952년 3월 19일 토벌대에 체포되기까지 1년 5개월간 지리산 빨치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일화를 적어 내려간다. 저자의 경헙에 입각해 있는 만큼 리얼리티와 신빙성을 준다. 인물들의 대화와 빨치산 용어들, 서슬 선 칼날 위를 걷는 듯한 하루하루의 그들 생활, 극단적인 정황 속의 남녀관계와 애환 등 극명한 실감을 안겨준다.



저자소개

저자 : 이태

저자 이태는 본명은 이우태(李愚兌)로, 충북 제천군(당시는 중원군)에서 아버지 이석영(李錫永) 씨와 어머니 김진수(金振秀)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경성제일고보(경기고의 전신) 졸업반 재학중 3?1운동에 참가, 그가 태어날 때는 아버지가 공주교도소에서 6개월간 복역한 뒤였다. 청주고등학교 시절에 교내 백일장에 작품을 투고하면서 문학의 길을 꿈꾼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일제의 ‘의용군’으로 끌려가 일본에서 ‘수치스러운 1년’을 보내고 해방을 맞이한다.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했던 그는 ‘조선신문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국학대학(우석대학의 전신, 우석대학은 나중에 고려대학교에 흡수되었다) 국문과를 2년 만에 졸업하고, 1948년에 ‘조선신문학원’을 졸업했다. 그해 서울신문 기자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뒤 8개월간 일하다가 ‘합동통신’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던 중 6?25를 맞는다. ‘인민군’의 서울 진입 후 평양의 조선중앙통신사 기자로 흡수되고, 곧바로 전주로 내려가 통신업무를 맡는다. 이것이 그의 운명을 뒤바꿔 놓은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인민군’은 통신사를 무엇보다 먼저 점령지에 설치했다. 그때가 1950년 초가을이었다. 9월 20일 군산 앞 바다 오식도에 연합군이 상륙하면서 전주지사 기자들은 전북도당 간부들을 따라 전북 순창군 구림면 무명골짜기에 들어가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대원이 됐다. 이때 그의 나이 28살이었고, 그해 추석이 [남부군]의 시작이다. 그후 회문산 ‘독수리부대’를 거쳐 당시 남한 빨치산의 상징적 존재였던 이현상의 ‘남부군’에 편입되어 죽음의 낮과 밤 사이를 오가는 17개월을 보낸다. 그러던 중 1952년 3월 19일 05시 50분 분대에서 낙오된 후 닷새를 굶은 끝에 지리산 기슭 덕산에서 체포되어 인간이 사는 세계로 내려온다. 체포 후 단성면 지서 유치장, 남원수용소 등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중학교 동창이었던 이성우 사령관 덕분에 남원 경찰서에서 ‘도민증’을 받는다. 거듭되는 연행과 조사, 감시 그리고 군대 징집(한 달 만에 귀향조치), 연탄장사, 숯가루 납품 등의 평탄하지 않은 생활을 거듭하던 중 정해영 의원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후 정해영 씨의 스피치 라이터, 윤보선 씨의 선거 선전활동 등을 하게 된다. 정해영 씨와의 인연으로 6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임기를 마친 후에는 다시 어려운 생활로 돌아간다. 1975년 5월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내가 입을 다물면 그들(지리산 빨치산)은 영영 잊혀진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퇴원 즉시 ‘남부군’은 쓰기 시작하여 1년여 만에 1,800매 분량의 원고를 탈고한다. 하지만 자료조사와 사실확인 등의 이유로, 그리고 엄혹한 출판규제를 통과할 자신이 없어 발표하지 못한다. 1981년에는 ‘민주산악회’를 만들고 총산악대장이 되어 대원들을 이끌었으며, 여러 민주화운동 집회에 열심히 참가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88년 7월 11일, 마침내 [남부군]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민주화 바람을 타고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에는 정지영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고령에도 창작에 대한 열의만큼은 청년 못지않았다. ‘역사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이기에 패자의 기록도 남겨져야 한다’며 [남부군]에 이어 또 하나의 패자의 기록인 홍경래의 난을 소재로 소설화하려는 뜻을 오랫동안 품어왔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는 미처 저자의 말을 쓰지도 못한 유고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를 남기고 1997년 3월 6일 급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남부군] 외에 [한글공문편람], [여순병란], [천왕봉], 수필집 [기다림], 유고집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 등이 있다.



목차

보완판을 내면서

머리말: 나는 왜 이 기록을 썼는가

이 수기를 읽고 - 이호철(소설가)


  1. 엽운산채의 두령들


  1. 섬진강의 만추


  1. 독수리병단 시절


  1. 가노라 희문산아


  1. 덕유산의 먹구름


  1. 남한 빨치산 약사


  1. 소백산맥의 여름


  1. 지리산 아흔아흡 골


  1. 노호하는 설원


  1. 궤멸하는 남부군


  1. 인간이 사는 세계로


후기: 그후의 남부군

저자 이태(본명 이우태) 연보



출판사 서평

한국전쟁 당시 남한 빨치산을 대표하던 ‘남부군’을 다룬 첫 체험적 수기

남과 북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채 죽어간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실화!

50만 부 넘게 판매되고, 지리산 답사 열풍을 일으킨 [남부군]의 개정판!


"이 책은 6·25전란 중 남한 빨치산을 대표하던 ‘남부군’을 주제로 한 체험적 수기이다....... 피아 2만의 생명이 희생된, 그 처절함이 세계 유격전 사상 유례가 드문 이 엄청난 사건에 실록 하나쯤은 남겨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죽음이 모든 것을 청산한 지금, 그렇게 죽어간 그 많은 젊은 넋들에게 이 기록이 조그만 공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이 기록을 통해 북한 정권에 의해서마저도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간 비극적 영혼들의 메아리 없는 절규를 적어보고 싶었다....... 냉혹한 자가숙청 등 빨치산 사회 내부의 모습을 목격한 그대로 적어봤다. 그것은 주의, 사상은 물론 전쟁 그 자체와도 아무 상관없는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들이었기 때문이다." ― ‘머리말’ 중에서

"이 수기는 이때까지 내가 읽은 수기나 소설들을 통틀어서 가장 역사의 현장에 가까이 가 닿아 있다. 그 생활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면 도저히 상상만으로는 써낼 수 없는 것들이다."

- 이호철 / 소설가


지리산 빨치산에 관한 최고의 실록!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한계상황이란 점에서 볼 때 세계 유격전 사상 그 가혹함과 가열성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리산 빨치산. [남부군]은 북한 정권에게마저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간 비극적 영혼들의 메아리 없는 절규, 냉혹한 자가숙청 등 빨치산 사회 내부의 적나라한 모습, 한계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 일그러진 세계의 이야기라 하여 어디에도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베일에 가려진 전사 등 지리산 빨치산에 관한 첫 실록이다.

"기록은 소재이지 역사 자체는 아니다. 소재에는 주관이 없다. 소재는 미화될 수도 비하할 것도 아니다. 의도적으로 분식된 것은 기록이 아니라 창작이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 사실보도를 업으로 하는 기자였다. 되도록 객관적으로 모든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자 노력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저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를 보태지도, 줄이지도 않고 기술"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적 기록 때문에 "픽션이 없으니 흥미롭고 드라마틱한 극적 전개도 없을 수밖에 없다"며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는 저자의 우려와 달리 오히려 그 어떤 소설보다 독자들에게 흥미와 감동을 주는 책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빨치산 투쟁을 다룬 기록 [노새를 탄 영웅]을 읽고 인간이 과연 이러한 극한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고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남부군]을 읽고 유고슬라비아의 이 빨치산 기록이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고통을 넘어서는가 하는 치열성에서 지리산의 빨치산 기록에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의 2014년 개정판!

1988년 7월 11일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 50만 부가 넘게 판매되면서 198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로 남아 있다. 1980년대를 넘어 90년대까지 한동안 지리산 답사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이 책은 전후 세대들에게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해준 귀한 이정표가 되는 기록이기도 하다. 판매량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이 책은 그동안 여러 번의 수정과 보완을 거쳤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지리산 주변도와 회문산 주변도 등 지도들을 다시 그리고, 본문의 오탈자 등을 바로잡고, 본문 디자인을 새로 작업했다. 또한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기존의 판형보다 작은 판형으로 만들었다.


‘남부군’은 어떤 부대인가?

‘남부군(南部軍)’은 토벌 당국에 의해 남부군단 혹은 이현상(李鉉相)부대 또는 나팔부대라고 불리던 게릴라 부대를 말한다. 정식 호칭은 조선인민유격대 ‘독립 제4지대’이다. 남부군은 한국전쟁 당시 소위 ‘남한 빨치산’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남한 최초의 조직적 좌익 게릴라 부대였고, 유일한 순수 유격부대였고, 특히 남한 빨치산의 전설적 총수 이현상의 직속부대였기 때문이다. 남부군은 비극의 상징이기도 한 이름이다. 남한 빨치산 중 가장 완강했던 무력집단이었고, 그래서 가장 처참하게 스러져갔으면서도, 북한 정권에 의해 버림받고 마는 비운의 병단이었기 때문이다.


처절하게 죽어간 젊은 넋들을 위한 진혼가!

이 책은 1950년 9월 26일 추석부터 1952년 3월 19일 05시 50분 토벌대에 체포되기까지 1년 5개월간을 지리산 빨치산(남부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수기이다. "대장 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주세요. 그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주세요." 대학생이던 한 빨치산 대원이 산중에서 저자에게 했던 이 말은 살아가는 내내 저자의 귓전을 맴돌았고, 결국 이 기록이 탄생하는 데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이 수기 속에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오빠를 학살당하고 복수의 악귀가 된 한 소녀는 자신마저 박격포탄에 찢겨 겨울산에서 죽는다. 백설 위에 선지피를 뿌리며 숨져가던 그녀가 마지막에 경련하는 입술로 무엇을 말하려 했던가를 나는 적어 남겨야 했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남원수용소에서 나는 더욱 진실한 내 나름의 시각에서 사실에 접근하고자 간신히 손에 넣은 몽당연필을 들고 나 자신의 체험을 자세히 메모하는 한편 산중에서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들은 얘기를 화선지 휴지 조각에 메모했다. 이 회상기에 나오는 나 이외의 개인적인 기술은 대부분 이때 보고 들은 얘기들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죽음이 모든 것을 청산한 지금, 처절하게 죽어간 그 많은 젊은 넋들에게 조그만 공양이라도 되길 바라는 지은이의 바람이 깊게 배어 있다.


남과 북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빨치산

저자가 이 기록을 남긴 이유 중의 또 하나는 "이 기록을 통해 북한 정권에 의해서마저도 버림받은 채 남한의 산중에서 소멸되어간 비극적 영혼들의 메아리 없는 절규를 적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그들에게 가혹한 희생만을 요구했을 뿐 그들의 생명에 대해서 조그만 고려도, 관심조차도 피력한 적이 끝내 없었다. 이 더할 수 없는 잔학(殘虐)을 나는 고발하고 싶었다. 53년 7월, 그 민족적 비극을 마무리하는 휴전협정문서에는 각 상대방 후방에 남겨진 물자와 장비의 철거, 심지어 전사자의 시체 발굴과 반출에 관한 조문까지 있지만 후방에 남겨져 있는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다만 휴전회담 막바지에 유엔군 측이 남한 후방의 게릴라의 안전철수를 요구했으나 북한 측이 그것을 묵살했다고만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무렵에도 남한의 산악에는 수백의 인간들이 일체의 정보로부터 차단된 가운데 절망적인 항전을 계속하고 있었으니 만일 북한당국이 인명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아니 추호의 동지적 정의(情誼)라도 있었다면 그 절망 속의 생명을 구출할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던 것이다."

만약 북한 정권이 빨치산을 사지에 방치하지만 않았더라면 "수백의 생명과 그후에도 토벌전에서 전몰한 상당수 전경대원의 희생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며 저자는 아쉬워한다. 그리고 빨치산은 북한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장차 재건할 지하당이나 게릴라의 뿌리로서 정전협정에 구애받지 않는 무력을 남겨두려 했음일까? 불원간 절멸할 운명에 있던 이들에게 아마도 그런 기대를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태여 말한다면 남로당계의 유일한 거점인 남한 빨치산이 사멸되는 것을 북한 당국은 막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남한 빨치산의 소멸과 함께 일체의 기반과 발언권을 상실한 월북 남로당계 간부들은 전쟁의 초연도 채 가시기 전에 무자비한 숙청으로 뿌리를 뽑히고 만다. 그리고 남한 빨치산은 도리어 그 숙청의 이유의 하나로 꼽히게 된다. 어쨌든 정치적 목적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만에 하나 살아남을 가능성 없는 생명들을 방치했다는 것은 다시없는 배신이며 인간을 수단시하는 잔학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기록에서 이에 관련된 대목은 얘기의 줄거리에서 벗어나는 줄 알면서도 좀 장황하게 기술했다.“



[온라인 노동자신문]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6239087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74431006&orderClick=LEa&Kc=#N




전체 1

  • 2021-08-09 01:25

    이 책이 재출간되었군요. 참 재밌게 봤던 책인데... 잊혀지지 않고 재출간 되었다니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