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쫓는 척하는 사람들 - 민중경선, 혹은 진보후보 단일화라는 신기루

작성자
담쟁이
작성일
2021-12-06 15:34
조회
1638

꿈을 쫓는 척하는 사람들
- 민중경선, 혹은 진보후보 단일화라는 신기루

무지개를 쫒아서 먼 산을 넘어서 여행을 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어릴 때 어떤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아마도 교과서였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자고 하는 이야기이니까 긍정적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동화 속의 교훈을 현실에서 적용할 때는 차원이 달라진다. 그 꿈의 내용이 정말 꿀 만한 것인지, 더구나 자기 혼자 꾸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그 희망을 퍼뜨려서 고생을 시켜야 할 경우라면 과연 어느 정도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중경선을 통해서 대선후보를 뽑자는 민주노총의 수 십 년 된 꿈이 그렇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위원장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민중경선과 현재 민주노총이 5개 정당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후보단일화가 다르다고 혹자는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발상에 있어서는 하등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민중경선 혹은 후보단일화로 혼용해서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의 단일화 압력에 시달리던 운동권이 그 단일화 전술을 내부(?)에서도 강요한다.(‘내부’라는 표현도 사실 적당하지 않다. 하나의 당에 있다가 아주 더럽게 지지고 볶으면서 차이를 확인하고 분열을 겪어서 각자 다른 정당으로 분리정립해 있는데, 그걸 ‘내부’라고 인식하는 것도 신기루이기는 마찬가지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폭력이다.)

이 놈의 단일화 전술이 묘한 게, 소위 운동권 내에서 민주당의 단일화 요구에 대해서 겉으로는 진보운동의 독자성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에 눌려서 조용히 있거나 반대하는 척 하다가 선거 막판에는 결국 민주당 손을 들어주는 세력들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최근 보수정당인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를 선언하며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사퇴한 이수호, 조준호, 김영훈, 신승철... 이 자들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있을 때 역시 그랬다.

진보운동은 분열 때문에 약화된 게 아니다. 민주노총에 이런 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더군다나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약화되는 것이다.

솔직히 생각해보자, 오늘이 대선 투표일이고 민주노총 조합원이 투표를 한다면 조합원들은 누구에게 투표를 할까?

윤석열 36.1%, 이재명 35.5%, 심상정 4.1%, 안철수 4.1%, 이렇게 나올 것이다. 어떤 근거로? 12월 첫째 주 현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모든 여론조사를 전수 분석한 결과가 이렇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이 여론조사 결과와 다를까?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정치교육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수호, 조준호, 김영훈, 신승철 같은 사람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이게 민주노총의 현 주소다. 한국노총보다 눈꼽 만큼 진보적일 수는 있다. 급진적인 간부와 활동가들이 과대 대표되어서 겉으로 보이는 목소리는 커 보이는 덕에 약간의 착시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조합원의 정치의식은 한국노총과 다를 게 하나 없다.

선거 때만 되면,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를 외치는 민주노총 집행부, 누가 되든 참 변함이 없다. 조합원들 정치의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평소에 대책과 실천은 없고, 선거 때만 되면 후보 단일화를 외친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민주당의 단일화 각설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올해 대선은 이재명이 윤석열에게 열세이니까 더 극성일 것이다. 아마 또 유시민이 ‘동’ 뜨면, 문빠 각설이들이 온라인 상에서 개떼 같이 몰려들어서 융단폭격을 해 댈 것이다. 진중권이 또 신나서 게거품 물면서 활약하겠군...)

민주노총 110만 조합원의 투표로 단일화를 하겠단다. 민중경선에 참여했던 그 110만 조합원이 그럼 나중에 선거 때가 되면 진보후보 찍을까? 안 된다는 거 벌써 여러 번 경험했지 않은가? 장사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110만 조합원을 팔아서 민주노총 집행부의 위세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비겁한 건 소위 사회주의좌파 후보를 내세우자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서 민중경선에 관심을 보이는 일부의 시각이다. 정의당 심상정과 진보당 김재연이 아닌 좌파후보가 단일후보로 될 수도 있다면서 해 보자는 거다. 어처구니 없는 표계산법이지만, 그래 그렇게 되었다고 해 보자. 자기 후보가 되었으니까 다른 정치세력이야 반대하건 말건 사회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할 것이다.

다수결 독재를 하겠다는 발상에 기초를 둔 기만적 전술이 아닐 수 없다. 이건 평소에는 원칙을 외치다가 선거 때만 되면 실리적인 계산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지만, 정의당과 진보당도 마찬가지다. 진보당이 되면 이석기 누명 벗기기 행보, 뜬금없는 친북·통일운동이 단일화에 참여한 다른 정치세력의 반대를 뭉개고 등장할 것이다. 정의당이 되면 민주당과 야합하는 정책들이 폭주할 것이다.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을 믿어 보자. 그러면 이제 단일화에 참여한 각 정치세력이 타 정치세력의 후보를 자기 후보처럼 생각하고 선거운동에 뛰어들 수 있을까? 정의당 당원들은 통합진보당의 악몽을 떨치고 진보당의 김재연을 자기 대선후보로 생각하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까? 노동당 당원들은 진보신당 시절에 당원들을 배신하고 뛰쳐나간 정의당의 심상정을 자기 후보로 생각할까? 진보당 당원들은 노동당의 이갑용이나 박성철이 후보가 된다면 선거운동 하는 척 하면서 자기 조직의 확장이나 도모하던 그동안은 못된 습성을 하루아침에 고칠까?

안 그래도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분열의 역사를 거치면서 상호 신뢰가 없는 세력들이다. 없던 신뢰가 단일후보 한 명 뚝딱 만들었다고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결과적으로 상호신뢰는 더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진보당과 정의당의 대선후보가 단일후보로 결정될 경우에 민주당의 이재명과 단일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이건 역사적으로 이미 선례가 있다. 심상정은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사퇴한 바 있고, 대선후보도 사퇴한 바 있다. 진보당은 그 뿌리가 같은 통합진보당의 이정희가 이미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올해는 더욱 더 단일화 유혹에 시달릴 것이라는 점은 이미 말했다.(올해 더욱 더? 이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한다. 단일화는 언제나 민주당에게는 절박한 요구이다. 설령 선거에서 자기들이 우세한 경우라고 해도 막판에 지지자들의 경계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언제나 단일화 요구는 절박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단일화론자들은 언제나 여기에 넘어간다. 혹은 설득된 척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런 결과를 막을 수 있을까? 내심 바라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진보진영의 통일단결을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렇다면, 민주노총과 각 정치세력들은 그동안 공동실천을 통해서 신뢰도 쌓고, 과거의 앙금들을 털어내기 위한 행보 혹은 앞으로의 예방책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애쓰는 중인가? 그리고 민중경선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추진되는 것인가?

개뿔, 단지 선거가 앞에 있을 뿐이다.

각 정치세력은 자기 후보가 아닌 단일후보는 생각도 안 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 부르니까 회의석상에는 나타나겠지만, 세부적인 투표방식을 논의하는 단계에서 파탄 낼 궁리만 할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집행부대로, 파탄 나도 크게 신경 안 쓸 것이다. 그래도 선거 때 나름 무언가 일을 하기는 했다는 자족감을 충족시키는 선에서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가 되면 민중경선 주장이 또 다시 등장할 것이다.

현실에서 실현되는 꿈은 하나 뿐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행패 부려서 밥 얻어 먹는 꿈.

다른 사람에게 함께 꿈을 쫓자고 이야기할 때는 생각 좀 해 보고 말을 꺼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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