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특집 : 지역 순환 경제, '밑에서부터의 대항'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특집 : 지역 순환 경제, 민주적 로컬의 글로벌화
[기획강연 '체제전환' 6부 양준호]
'지역순환경제, 민주적 로컬의 글로벌화-관료제적 중앙-독점자본에 대한 '밑에서부터의' 대항'
지역순환경제란
반갑습니다. ‘지역순환경제’라는 개념을 아실 것이다. 지역에서 돈이 순환하는 흐름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지역화폐 같은 것이 구체적인 사례다. 그런데 이것이 계급적으로 진보적인 개념이다. 지역 안에서만 돈이 돌고, 지역의 소득이 지역에서 소비되고 지역의 기업이 지역 내 다른 기업으로 재투자하는 완결적 지역순환경제가 구축된다는 것은, 지역을 잠식하는 글로벌 독점 자본이나 대기업과의 대항관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지역이 피폐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이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경제적 생명력이 있는 방안으로 대항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도 지역순환경제는 글로벌화에 대한 대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역순환경제는 지역이 자주적, 자치적 측면에서 지역의 경제와 사회를 편성하고 기획하는 운동이다. 관료제적 중앙에 대한 대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 경제는 피폐해져 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지역 경제가 피폐해져 있다. 지역 경제를 떠받칠 동력이 모두 지역 밖으로 유출되는 상황이다. 서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의 경제적 동력이 서울로 빨려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인천 시민 소득의 52.8%가 서울로 빠져나가는 중이다. 오히려 서울에 가까운 수도권이기에 경제적 동력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일본의 도쿄 옆에, 꼭 인천 같은 요코하마가 있다. 80년대 중반 신요코하마역에서 도쿄역까지 40분만에 가는 특급 전철이 만들어지자 요코하마 시민들이 동경에 자주, 쉽게 나가게 되었다. 이러면서 요코하마 경제의 30%가 도쿄로 흡수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역류 효과’다. 서울 중심의 한국 사정을 고려하면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그 성장 동력을 서울로 빼앗기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다음으로 우리 나라의 지자체들이 대기업 유치 만능론에 빠져 있다. 피폐화된 지역 경제를 살리려고 대기업 본사도 아닌 분공장을 유치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 부산 보궐선거가 그랬다. 그러나 본사는 절대 지역으로 가지 않는다. 대기업의 분공장이나 RND 센터를 유치한다는 수준인데, 우리 지자체가 지역 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대기업을 유치했더라도 낙수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가능성도 없다.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삼성 바이오로직스가 있다. 이 때 대단히 효과가 있을 것처럼 포장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천의 사업체로 재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다. 원재료나 중간재를 인천 기업들로부터 납품받는다든지 하는 현상이 있어야 하는데, 대기업들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상법상 대기업의 브랜치(Branch, 계열사)들은 자신의 모회사에 해당 지역에서 번 돈을 그대로 헌납하게 되어 있다. 지적 재산권 사용료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서류상 본사는 인천이 아니다. 페이퍼 컴퍼니란 말이다. 인천에서 행정, 재정 지원을 받아서 인천에서 돈을 벌어도 그 돈을 다른 곳에 있는 본사로 송출하는 것이다.
지역 공동체가 해체된 지도 오래되었다. 지역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동일한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웃 간의 호혜 체제가 해체된 지는 대단히 오래되었다. 지역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생태는 어떤가. 산이 골프장으로, 갯벌이 경제자유구역으로 바뀐다. 지역의 환경과 생태는 자본의 가치 증식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은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역의 ‘실용적’ 담론으로서 기업주의 담론이 또 성행한다. 도시 공간을 기업과 같이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도시에 대한 마케팅을 하거나, 투자 자본을 유치해서 역동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시가 투기자본에 포획되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농촌은 또 어떤가. 농촌은 거의 소멸 위기다. 급격한 고령화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농가소득은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지역의 공간에 관한 의사결정의 주도권은 이른바 지역 성장연합이 갖고 있다. 기업주의적인 도시를 지향하고 대기업 유치 만능론에 빠진 지역 성장연합들이다. 이들이 지역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을 독점하고 있다.
중앙 담론만 있는 한국 사회
한국 사회는 문제 의식이 지나치게 일국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다. 최근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서도 지역에 관한 담론은 없고 정권심판론만 가득하다. 독일의 경우, 독일인들은 지지 정당이 중앙 담론을 어떻게 발전시키는가보다는 지역 현안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독일 사회가 좋은 의미로 분산된 반면 한국 사회는 중앙 집중화되어 있다. 진보정당들도 담론 자체를 지역적으로 가져가지 못한다. 담론이 워낙 일국화되어 있다. 현상에 대하여 세계적, 일국적, 지역적 차원으로 인식 층위가 다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지역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추진하는 지역 정책은 어떤가. ‘국가 균형 발전’ 용어는 좋다, 그런데 그게 고작 정부기관을 각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지점은, 우리나라가 각 지역에 ‘혁신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 계열의 국가균형발전은 혁신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각 지역에 혁신 도시가 생겨나면 그 주변에서도 서울에서 역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혁신 도시 언저리의 농촌을 더욱 피폐화하는 역설이다. 또 이것은 토건 사업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지역 정책들이 지역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대항의 기조
본인은 일본 공산당원이다. 일본 공산당은 지역에 착목한 운동, 연구, 정치를 한다. 일본도 우리처럼 정치적 담론이 중앙화 되어 있다. 일본 공산당은 지역 운동에 역량을 쏟아붓는다. 지역 주민 아무개의 집에 수저가 몇 개 있다는 것까지 아는 게 일본 공산당의 민세 운동이다. 대학의 민세 운동가들은 포섭 대상 학우가 몇 과목을 듣고 어느 과목에서 힘들어하는 지 파악하고 있다. 우리 한국의 진보 좌파 세력은 지역에 착목한 담론 발산에 인색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대항의 기조는 무엇인가. 담론의 지역화라고 본다. 일국 차원에서 큰 사태가 벌어져도, 그 사태의 본질 이면에 있는 지역적 차원의 맥락을 짚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에 초점을 맞춘 실천을 위한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사안이라도 그 사안에 대하여 글로벌(세계적), 일국적, 지역 차원의 층위가 중층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환이 필요하다. 그다음 지자체와 지역 성장 연합, 독점 자본의 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진보적 시민들의 운동과 연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지역 민주주의의 실질적 제도화가 구축되어야 한다. 민주적 주민 자치, 주민 참여 시스템, 재정 분권 운동 등이 제도화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경제의 작동 방식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독점 자본, 관료화된 중앙과의 싸움,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의 싸움, 지역 경제를 살려내는 실용적 성과를 동반하는 운동, 진보적 계급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대항 방식이 중요하다.
지역 경제의 민주적 소유
이런 대항 운동의 기조 전환으로서 지역 순환 경제를 유도하기 위해 유럽의 좌파, 또는 영국 노동당처럼 급진적 리버럴들은 어떤 운동을 펼치고 있는가. 지역 내 공적 기관들의 거대한 발주와 조달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를 시민, 또는 노동자 협동조합이 민주적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일본 공산당 계열의 미야모토 겐지 교수 그룹이 1980년대부터 지향했다.
여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역 내 민간 독점 자본의 조달력과 자산도 민주적으로 소유하는 운동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대구의 사례를 보자. 대구의 대형 은행들은 대구 사람들을 상대로 예금을 받아 돈 장사를 하는데, 그 예금자들 중에서 신용, 소득, 담보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투자, 융자를 하지 않고 신용 등급이 좋고 담보 능력이 있고 고용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 융자를 하다 보니 지역의 예금 자본들이 지역 밖으로 다 유출된다. 지역 자금을 지역 밖으로 유출하는 민간 독점 금융자본들에 대해서는 조례 등을 통해 지역 내부의 주에들에게 자금을 투자할 것을 의무화하는 조치가 중요하다. 미국이 신자유주의의 메카라고 하나 지역으로 들어가면 진보적인 시도도 많다. 1977년 제정된 미국의 지역 재투자법이 그렇다. 지역에서 돈벌이를 하는 대형 금융 독점 자본에게 지역 내의 투융자를 의무화하는 연방정부 차원의 법이 1977년도에 제정되었다. 이런 것이 생산 수단의 소유 주체를 전환시킨다는 측면에서 계급적으로 진보적인 정책, 운동이라고 본다.
또 실질적인 주민의 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지역 경제를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다음 지역의 생태에 문화, 복지가 맞물려서 작동되는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를 기획하는 운동들이 앞으로 대항의 기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지역순환경제로 기조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론이 필요한가.
먼저 지역화폐가 중요하다. 한국의 지역화폐는 변종이다.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해서 지역의 소비를 진작하는 것인데, 원래는 지역 화폐 발행에서부터 지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책을 지역화폐하고 한다. 그래서 로컬(Local)이 아닌 시티즌 커런시(Citizen Currency)다. 우리도 원점을 잘 찾아서 시민이 직접 경영하고 발행하는 화폐 체제로 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두 번째는 지역의 공적 앵커 기관의 조달력과 민간 독점자본이 축적하는 조달력이 지역에서 재투자되도록 하는 조례 운동이 필요하다. 부산에서는 최근 ‘부산광역시 지역 재투자 조례’를 만들어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대기업, 대형 독점 유통 자본, 금융 자본들이 의무적으로 지역에 재투자하고 지역에서 납품하게 만드는 조례가 제정되었다. 결국은 독점 자본을 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에서 산업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의 재투자를 담보하는 지역 정책, 그것을 제도화하는 운동이 중요하다.
지역 시민들의 자금 수요에 적극적으로 매칭하여 자금을 공급하는 지역 공공 은행 같은 존재도 필요하다. 지자체가 100% 출자하는 것이다. 금융 체제에서는 다 배제되는 저신용등급자들, 저소득층, 담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감싸안는 공공적 금융이다. 광역자치단체들이 모두 지역신용보증 정책을 펼치는데, 이는 공공 금융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다 신용 등급 1등급에서 3등급인 소상공인이 줄을 이루고 있다. 시장 금융의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운동이 중요한 키워드다.
일본 공산당 계열의 운동가들이 또 ‘커뮤니티 웰스 빌딩’이란 개념을 내고 이를 미국과 영국에서 수입해가서 제도화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클리블랜드에 가면 클리블랜드 클리닉이라는 대형 병원이 있다. 이 조달을 외부로부터 않고 지역 내부로부터 조달하게끔 지역의 운동가들이 강제, 의무화 시켰다. 대형 병원은 엄청난 규모의 세탁 사업을 발주할 수 있는데, 이만큼의 세탁을 할 수 있는 사업체가 클리블랜드에 없었다. 이 사업을 결국 영위하게 된 것은 클리블랜드 노동자 협동조합이었다. 지역 앵커 기관의 조달력을 지역의 사업자들에게 매칭시키는 것이 커뮤니티 웰스 빌딩 운동이다. 주로 노동자 소유 기업, 노동자 협동조합이 이런 발주 사업을 맡도록 지역에서 키우는 것이다. 사업에서 지역적 자기완결성을 갖추는 프로세스를 포괄하는 운동이 지역 경제 선순환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조정, 계획경제로의 체제전환
지역순환경제 얘기를 하다 보면, 이를 너무 경직된 지역주의 아니냐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보다는 세계화에 대항하는 여러 도시와 지역들 간의 수평적인 연대를 지향하는 것이다. 각 지역이 서로 연대해서 지역 사이에 경제적 선순환을 추구하면 글로벌에 대한 로컬의 의존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한 지역이 경제를 홀로 영위할 수도 없다. 요는 수평적인 지역간 연대로 글로벌화에 맞서는 체제인 것이다.
일본의 지역 좌파 지역경제순환론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이, 지역 내 수급을 중시하는 지역 경제 경영을 통해 지역의 수요 수준을 초과하지 않는 생산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지역 내 소비자들을 조직화하고, 생산자들도 조직화한다. 생산자 협동조합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되어 조직화된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격을 사전 결정하고 생산량과 판매량을 사전에 결정하는 체제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 핵심인 시장경제를 뛰어넘는 일종의 계획 경제다. 그런데 주체가 국가가 아닌 시민인 것이다. 이 운동의 출발점은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조직화다. 이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사회적 조정’이라는 계획 경제적 개념이 필요하다. 주류 경제학의 핵심은 무정부적 생산과 무정부적 소비다. 보이지 않는 손이 생산량을 저절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방식이 이런 체제를 뛰어넘는 것이다. 이것이 실현될 때 지역 순환 경제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지고 민주적 계획 경제의 가능성을 지역에서부터 발산할 수 있다.
일본 공산당 지역 운동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왔고 전 세계가 주목한 지역순환경제운동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나가노 현 서부의 ‘사카이 마을’의 사례다. 그 지역의 소비자들은 100% 조직화되어 있다. 사카이초는 임업, 가구, 목공, 일반 농업, 서비스 산업이 주 산업이다. 이 생산자들이 모두 조직화되어 있다. 이것을 민생 운동가들(민민, 민청)이 조직했다. 이 소지역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합작하여 사카에촌 유안공사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협동조합들이 지역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전량 매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조직화된 시민 사회와 조직화된 소비자들과 협의하여 필요에 따라 판매, 분배한다. 1990년대 초반 데이터를 보면, 이렇게 모두 분배하고 나니 70%가 잉여로 남았다. 이것을 지자체가 전량 매수해서 지자체가 공적 사회 서비스에 필요할 때 현물로 사용하게끔 했다. 100%에 가까운 수급 균형이다. 일국 차원에서는 이같은 조정이 어렵지만 지역 차원에서는 중요한 방법론이 된다.
오늘 지역순환경제에 대한 설명이 어떠셨나. 지역화폐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 진보적 의미가 있는 계급이라는 것을 이해하셨으리라. 그리고 로컬의 글로벌에 대한 대항, 독점 자본에 대한 대항이라는 것도 이해하셨으리라.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 조정 방식은 일국 차원에서 한번 뒤집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본 공산당이 1970년 이래 지역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담론도 지역화되었고. 운동도 지역화되었고 좌파적인 마르크스 경제학 체계도 지역화되기 시작했다. 소지역에서 지역순환경제 운동을 전개해 나갈 때 민주적 지역경제, 계획 경제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본 공산당 좌파의 현실 인식이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강조드린다. 일본 공산당 좌파 세력들의 현실 인식이 백그라운드로 저는 작용 했다라고 하는 점을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강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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