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정세 :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정세 :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생태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다
이승무 정책위원
1. 생태경제 이론들의 배경
최근 국내외적으로 생태사회주의, 기후 중립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주장들이 지금의 생태 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 시스템 또는 경제 운용 원리의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각각이 상당한 고민의 결과이면서 나름의 사상적인 배경들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주류 경제학은 생산 요소를 노동과 자본, 부존 자원으로 추상적으로 파악하고 시장경제의 균형 체계를 수립한 다음에 역시 추상적인 가치물인 화폐와 금융을 가지고서 경기 변동과 거시 경제를 설명하는 쪽으로 이론을 발달시켰다.
물질적인 노동 과정과 기술에 따른 물질의 흐름을 화폐와 가치의 흐름과 병행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설명하는 이론의 핵심에서 파악하려고 노력한 것은 카를 마르크스 경제학의 중요한 공로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 위기 이론에 기초를 둔 생태사회주의와 물질 대사 이론에 기초를 둔 생태마르크스주의의 출발 배경을 살펴보고, 기후 위기와 같은 생태 환경의 위기로 인한 체제 전환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서 최근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움직임에 대하여 검토해 보려고 한다.
철저한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폴란드 출신의 헨릭 그로스만은 1929년도에 출간한 《자본주의 체제의 축적과 붕괴의 법칙》이란 저서의 이론적 결론 부분에서 “그리하여 자본주의 체제는 그 내적인 경제적 메카니즘을 통해 진보하면서 그리고 자본 축적에 따라서 쉼 없이 그 종말을 향해 가며 ‘자본 축적의 엔트로피 법칙’(Entropiegesetz der Kapitalakkumulation)에 의해 지배 받는다.”라고 하여 아무런 이론적 설명 없이 엔트로피 법칙을 꺼내 놓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경제 내의 물질의 흐름과 순환의 관점을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서는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경제학에 적용한 것은 1971년에 《엔트로피의 법칙과 경제 과정》이란 책을 출간한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뢰겐이라는 루마니아 출신 경제학자다.
산업 사회의 물질적 전제 조건을 문제시하는 생태 경제학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게오르게스쿠-뢰겐의 엔트로피 경제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사실로서 전제되고 있다. 생산에 투자되는 자본 중에서 노동자의 인건비에 투자되는 액수에 비하여 생산 수단과 원재료 등 물적 요소에 투자되는 액수의 비율이 기술 발달에 따라 계속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설명이 된다. 첫째, 생산 현장에서 같은 수의 노동자들이 일한다고 할 때 갈수록 이 노동자들이 더 많은 물자들에 둘러싸여 일을 하게 된다는 실물 측면에서의 구성의 고도화다. 둘째로는 노동자들의 생활에 필요한 식량 등의 생활 필수품 부문에서 기술 혁신이 일어나서 이러한 소비재들이 저렴해져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락하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된다. 반면에 생산 수단이나 원재료에 해당하는 물자들의 희소성이 높아져서 이를 조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품의 생산과 판매가 발생하여 생산의 물적 요소들을 보충해 넣고 또 기술 혁신에 따라 새로운 물적 생산 수단을 개발하여 생산에 투입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잉여가 사용되게 된다. 이것을 축적의 진행이라고 한다. 그러한 추세가 계속 진행되다 보면 결국에는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고용하는 데 들어갈 자본도 보충이 안 되어 실업자가 늘어가게 되고, 자본가들의 생계 유지에 필요한 잉여 부분도 사라져 버리게 되어 자본주의 경제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붕괴의 위기를 뒤로 늦추어 주는 것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 속도를 늦추어 주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서 해외로부터의 저렴한 원재료의 조달, 저렴한 노동력의 조달, 임금을 낮추어 줄 수 있는 식량과 같은 저렴한 생활 소비재의 조달 같은 것들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이윤율이 높은 저개발국으로의 자본 수출도 이에 기여한다. 물론 투입하는 노동 임금에 비한 이윤의 크기인 잉여 가치율이 높아지는 것도 이러한 붕괴 위기를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에 대한 해결책들은 위기와 붕괴의 도래를 늦추어주는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로스만의 자본주의 붕괴 이론은 여러 생산 요소들 중에 오로지 노동에서만 잉여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전제, 임금 총액에 비한 이윤의 크기인 잉여 가치율에는 기술적,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한계가 있다는 것, 기술의 발달 상태에 의해 주어지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계속해서 높아지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 노동자 인구의 증가는 그보다 낮은 한계를 가진다는 것 등의 전제들을 고수한 데서 유도된다.
이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과소 소비론 또는 실현 불가능 이론과 다른 잉여 가치의 과소 생산이란 방향에서의 자본주의의 불균형 이론이고 제국주의적 팽창의 경향을 설명해 주고 있다. 카우츠키, 힐퍼딩, 투간-바라노프스키 등의 다른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들은 자본주의 경제 자체에 내재적인 붕괴 경향이 없으며 생산재 생산 부분과 소비재 생산 부문 간의 적정한 비율이 정교하게 유지된다면 무한한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전개하는 데 비하여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로스만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필연적으로 불균형과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것을 재생산 도식을 통해서 논증하려고 했다. 그중에서 이론 구조상 엔트로피 경제 이론과 같은 방향으로 접목될 수 있는 쪽은 그로스만의 잉여 가치 부족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Paul Mattick을 거쳐서 Michael Löwy 등의 주창한 생태사회주의 계통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국내에 많이 알려진 John Bellamy Foster는 생태적 마르크스주의라는 조류를 대표하며, Kautsky 등에 의해 조명된 도시와 농촌의 물질 대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Paul Sweezy의 사상을 계승하는 독점 자본주의 이론가다.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붕괴 이론을 사실상 내포하고 있으며, 생태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그런 측면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붕괴 이론은 경제의 내적인 모순으로 붕괴가 임박한 결정적인 시점에 노동자들이 자본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체제를 세운다는 정치 전략을 내포한다. 그런 이론이 있었다고 해도 오늘날 그렇게 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나 생태 위기가 전쟁의 발발(勃發)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은 과거부터 많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문명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어 왔다. 그것은 거대 제국의 지배 계층이 일으키는 전쟁이 아니고 생태 문제, 식량 문제로 압박을 받은 변방 민족들의 이동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제국의 지배 계층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제국이 붕괴하고 역사의 방향이 크게 달라져 왔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로마 제국이 멸망, 몽골의 유럽 진출, 투르크족의 유럽 침략 등이 그런 예들이다. 제국의 지배 계층도 당면한 경제위기를 모면하고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도발할 동기를 가진다. 십자군 전쟁과 같은 종교 전쟁들, 20세기의 세계 2차 대전은 주로 그런 이유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2. 기후 위기와 체제 전환의 가능성
기후 위기의 시대에 제국의 변방 지대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고향을 등진 난민들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 생태 위기가 심해지면서 그 피해가 큰 지역들로부터 제국의 중심부로의 인구 이동이 일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멕시코 국경 봉쇄와 같은 사태와 분쟁, 전쟁의 가능성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 추세로 간다면 거의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고, 제국의 중심부에서 군사적인 대비를 한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는 추세가 될 것이다. 그러한 진통을 거쳐서 지금의 자본주의 문명과는 성격이 다른 더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문명과 체제가 생겨나면 다행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를 위해서 철저하게 전략을 세우고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런 것이 생태사회주의적인 집권 전략이 될 것이다.
이 입장에서 보자면, 기후변화의 진행을 억제하도록 노력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런 변혁을 위한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파국을 맞이하여 희생자들만 생겨나고 더 나은 체제로 갈 수 있는 보장이 없게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기 위한 시간을 벌고 질서 있는 이행(移行)을 할 수 있기 위해 기후변화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필요한 정도일 것이다. 지금의 생태 위기나 기후 위기의 의식과 염려는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 지속하기 위해서 가지는 염려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나마 탄소 중립이라는 것도 체제가 스스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허구적인 구호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3. 전환 과정에 필요한 노력
사회주의 사상을 품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을 희망해서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을 기울일 이유는 없다.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더 인간적이고 더 평등하고 더 생태적인 체제로의 전환을 찬성한다고 보아야 하며, 그에 덧붙여서 누구도 피를 흘리거나 희생되지 않는 평화로운 체제의 전환 과정을 찬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 헌법 체제에서 사람들의 취향이 달라져서 선거에 의해 그런 체제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금의 추세에서는 기후와 생태의 파괴로 인해 앞으로 전쟁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평화가 지켜지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을 통해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럴 때 그런 시도를 폭로하고 평화를 외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물론 지구촌의 현 상태를 전쟁 없이 유지해 가자는 것은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더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며, 이는 결정적인 위기의 시점에 도달했을 때 자본주의의 착취와 기후, 생태의 변화에 가장 취약하게 피해를 당하고 프롤레타리아화 된 다수의 민중이 신속하게 사태를 장악하고 급속한 체제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연적 위기는 소수의 과학 기술자들만의 혁신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생태계를 이루는 모든 생물 종의 생존 양태로 미루어 본다면, 다수 인구의 필사적이고 지속적인 협동적 노력에 의해서만 커다란 비극 없이 풀려갈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와 제국 문화가 어떻게 생태 위기를 가져왔는지, 이론적으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다른 어떤 체제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를 학습하고 교육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중국인 등 유색 인종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구미 극우 세력들의 준동이 기후 난민에 대한 통제, 기후 위기의 유발에 대한 서구 제국 문화의 책임 회피 등을 내포하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기후 위기와 탄소 중립을 이야기하면서 자본을 살리기 위해 민중에게 고통을 떠넘기려는 경향을 잘 감시해야 한다. 다수 민중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의식주의 수단을 확보하고 기후의 급변에 따라 더위와 추위로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냉난방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온실가스를 절감하기 위해 빈약한 주거지에서 더위와 추위를 견디라고 하는 것은 전혀 기후 대책이 될 수 없다. (석탄이 온실가스를 많이 발생시키는 화석 연료라고 해서 겨울철에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이웃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충분한 영양과 쾌적한 주거 및 노동 환경에서 창조적인 노동의 역량을 발휘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윤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지구상의 가난한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활 조건이 보장되도록 물적 향상과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기후 위기라는 이유로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화석연료, 특히 석유는 수요를 줄이면서 이와 병행하여 공급을 통제하지 않으면 아무런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석유 수요가 낮아지면 공급 조건이 같은 상황에서 유가가 낮아지게 되고, 그러면 석유를 더 방만하게 사용하는 쪽으로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산유국들은 기후 위기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 석유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규제가 심해질 것을 예상해서 그 안에 많은 부(富)를 축적해 놓기 위해 석유 생산에 더 열을 올리게 되는 역설이 벌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를 green paradox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정유 회사들은 모두 외국의 석유 재벌들과 연계된 국내 재벌 회사들이고, 이들에 대한 가격 및 생산의 통제권은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 정책을 추진해 온 막강한 관료 조직이다. 산업 정책은 값싼 연료와 원료의 조달을 통한 수출 위주의 성장 정책이었다. 이 산업 정책 자체가 폐기되어야만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를 해체하고 순환 경제부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이 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처럼 민간과 공공의 대표들이 다수 참여하여 석유 수요를 줄이는 것과 병행하여 정유회사들의 생산량과 가격을 통제하도록 해야만 믿을 수 있는 탄소 중립 정책을 실시할 수가 있다.
한국의 다소 성급하게 작성된 그린 뉴딜 정책은 전기에너지를 통한 디지털 기술로 경제 구조를 혁신시킨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수소 자동차도 전기에너지를 기초로 하는 것이고, 이 수소의 생산은 우라늄 연료에 의한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디지털 기술이 마치 온실가스도 줄여주고 미래의 먹을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디지털 기술이 쓰레기를 분리 선별하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 불결하고 힘든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작업을 자동 기계가 대체하는 등 산업 재해를 줄이는 쪽에 중점을 둔다면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인건비를 줄이고 이윤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플랫폼 노동 등과 결부되어 노동자들을 더 심하게 착취하고 자원 낭비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4. 결론
사회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주의자들의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체제 안정화 노력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제국의 우산 아래 묶인 국가와 기업의 기후 대응 정책에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하고, 비판적인 관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기후 이변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 농민, 에너지 취약 계층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서 이들이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상기후에 대한 책임은 인간 일반이 아니라 제국과 산업과 자본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태 위기, 자본 축적의 위기 등 복합적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세계 평화에 불안을 가중시키고 전쟁 위협을 가하는 제국의 책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수 인구의 건강한 생존과 역량의 발휘를 통해 자본의 번창이 아니라 지구 전체 생명계의 건강한 번창을 이루어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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