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8호] 도서 : 장애학 : 과거, 현재, 미래
■ 미래에서 온 편지 38호(2021.10.)
□ 도서 : 장애학 : 과거, 현재, 미래
장애 해방의 화두, '장애학 : 과거·현재·미래'를 소개하면서
임수철(장애해방운동 활동가)
한국사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의 시작은 당사자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자각과 계급적 해방에 있지 않고, 철저하게 사회사업의 “대상”중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시작되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가 생긴 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이 마치 복지(welfare)가, 고아를 비롯한 유가족, 전상자들, 그리고 전쟁피폐로 인한 가난까지 해결할 요결처럼 확산되었듯이, 6.25 전쟁이 만들어 낸 문제의 해결을, 대전이후 많은 나라들이 시도했던 “사회사업”이라는 체계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도, 그저 “문제 대상의 사회적 해결“을 ”사회사업“에 두었던 것이며, 이 시기의 한국사회에는 “복지”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한편 우리 사회의 민중들이 군사정권과 이를 토대로 발전한 재벌에게 계급적 자각 없이 기본권의 행사마저 빼앗기면서 암흑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좌파 정당이나 정치조직에 의해 사회복지를 넘어 사회정책이 사회적 문제 해결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공유하고, 국가제도에 반영하고 시행하였으며, 마침내 장애 대중 앞에는 계급적 자각을 근간으로 한 ”장애학“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을 한군데로 모은 것이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와 렌 바튼(Len Barton)의 '장애학 : 과거·현재·미래'이며 윤삼호가 번역 출간하였다. 이 책은 1987년에 창간된 영국의 장애학 잡지인 ‘장애와 사회 Disability & Society' 10주년 기념 논문집으로 1987년부터 1997년까지의 전 세계 장애학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총 19편의 논문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논문집 발간 당시(1997년) 새로 발표된 논문 7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2부는 ‘장애와 사회’라는 책자에 이미 발표됐던 논문들 가운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논문 6편을 다시 실었다. 3부는 논문은 아니나 앞서 다루지 못한 이슈들에 대한 찬반 논쟁을 다루고 있다. 번역본에서는 3부는 수록하지 않았다. 다양한 이론 틀을 활용해 여러 각도에서 장애를 분석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1)
장애학은 장황하지 않다. 마치 여성학이 그렇듯이, 관점과 화자를 ”장애인“에 두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원인이 정치, 문화, 경제적 불평등에 있고, 이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 구성과 재생산“에 두지 말고, 장애인과 장애를 문제해결의 중심에 두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한국의 좌파 정당 안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은 배제되거나 고려되지 않기 일쑤였으며, 이는 정치적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을 ”배려“의 대상으로만 보고,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문화“가 또한 다반사였으며, 가난한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장애인 당원의 자존을 역시 고려하지 않은 ”경제적 배제“가 있어왔다.
장애학의 기본은, 장애와 장애인을 의학적인 관점이나 손상(서평자는 ”고장난 존재“로 부르고 싶다)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상황적인 요인까지도 고려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관점은 세게보건기구의 장애의 정의에도 반영되어 있고, 이를 근거로 일부 북유럽국가들은 임신부도 ”일시적 장애인“으로 보고, 사회정책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 30년 전부터 작성된 논문, 논쟁들의 집합체인 '장애학 : 과거·현재·미래'는 유럽과 미국의 일부에서는 이미 주류학의 하나가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소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치 장애인을 떠올리면, 몸에 고무판을 깔고 시장바닥을 기어가면서 구걸하는 ”걸인“으로 인식하듯이... 이 책은 쉽지 않다. 게다가 비매품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약자인 장애인을 이해하고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독, 혹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음성파일로 들어보시길 권한다. 장애해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과 함께할 때 완성되기 때문이다.
1) 2007.01.20, 에이블 뉴스, 주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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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2021-12-11 12:04이 댓글을 읽을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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