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4호] 특집 : 기후위기와 체제전환

34호 202106
작성자
미래에서 온 편지
작성일
2021-06-26 18:38
조회
5983


■ 미래에서 온 편지 34호(2021.06.)


□ 특집 : 기후위기와 체제전환



기후위기와 체제전환


김현우 동지 강연 정리


1.5 티핑포인트

 '1.5도 티핑포인트'라는 개념이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정도 상승했다. 그런데 0.5도 더 상승하면 임계점이 넘어가서 온난화와 기후 변화가 더욱 크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만 년 전부터 기후 변화의 폭을 보면 섭씨 평균 8~10도 정도다. 기온이 낮을 때는 빙하기, 높을 때는 간빙기라 하는데 지금은 간빙기보다도 온도가 높다. 온도 변화에서 중요한 건 변화의 속도다. 몇만 년 동안 변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1도가 변했다는 것은 생태계에 대단한 충격이다.

 10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가 지구상에 살았다. 현생인류는 우리와 같은 유전자와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한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지구 온도가 낮아 기후가 열악했기 때문이다. 12,000년 전부터 기온이 올라가면서 꾸준히 온화한 기온이 유지되고 있다.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해 지금과 같은 대륙 모양이 생겨났다. 빙하가 녹은 물이 비옥한 땅, 이를테면 삼각주를 형성했다. 농경 생활의 시작을 추동한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현생 인류가 전세계에 지금 같은 문명을 형성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을 신생대 제4기 가운데 충적세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 충적 평야가 생겨난 까닭이다.

 한데 지금의 온화한 기온이 산업혁명 이후 급상승하고 있다. 또 이산화탄소 농도가 따라 상승하고, 온실효과를 만들고 있다. 산업혁명 시작 시기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60PPM이었으나 지금은 410PPM으로 늘어났다.


인류세, 인터스텔라를 초래할 것인가


 지질 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생물종의 큰 변화다. 생물종의 95% 이상이 사멸하는 '대멸종'은 대개 기온 변화가 초래했다. 일군의 대기화학자들은 지금이 '충적세'를 넘어선 '인류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1945년 7월 16일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부류의 과학자들이 있다. 미국 사막에서 핵폭발 실험이 최초로 이루어진 날이다. 그 이후 지층을 조사하니 세늄 137이나 스트론튬 같은 인위적 방사능이 발견되었다. 인간이 새로운 원소를 지층에 새겨 넣은 것이다. 또 플라스틱, 인간이 만든 고분자 화합물 역시 지층에 새겨져 있다. 한반도를 집중 조사하면 '닭뼈'가 엄청나게 발견된다. 닭을 엄청나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물종을 멸종시킬 뿐 아니라 개체 수도 늘려놓고 있다. 지구상 포유동물의 총 무게 가운데 인간이 차지하는 무게는 36% 정도로 추정된다. 나머지에서 60%는 인간이 기르는 가축이다. 나머지 4%만이 야생 포유류의 총 무게다. 60%의 가축 중에는 50억 마리의 소가 있다. 인간이 생물종을 그만큼 크게 바꿔 놓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메탄가스 등이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류세'라고 칭함이 당연하다.

 그리고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과 결과는 대기중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로 인한 변화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대멸종을 불러올지 모른다.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는 미증유의 일이 될 것이다.

 날씨가 온화해지는 것만이 기후 변화는 아니다. 북극권이 더워지면 시베리아의 제트기류가 느슨해지고, 그것이 중위도로 내려와 서울을 춥게 만든다. 지구 온난화는 기후 격변을 의미한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이 늘어나고 자연재해의 예측도 불가능해진다. <설국열차>나 <투모로우> 영화처럼 하루이틀 사이에 지구 전체가 빙하가 되지 않는다. 가장 비슷한 영화는 <인터스텔라>다. 가뭄과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만 재배하고, 시민들이 공장에서 의무 노동을 하고, 야구경기 중 모래폭풍이 불어 닥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물론 오늘처럼 맑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일상적인 나쁜 날씨가 너무 길게, 예기치 못하게 올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뉴 노멀'과도 같다.

 시리아의 난민 문제도 기후변화가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기후 변화로 러시아 밀 재배에 흉작이 들어 밀 가격이 올랐다. 주민들의 자생력이 없어졌다. 종족 간의 분쟁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이를 피해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다. 유럽에서는 이들 때문에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환경 문제로 녹색당이 득세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삶터를 잃고 난민이 된 것이 기후 난민이다. 1년에 2,500만명 정도의 기후 난민이 발생한다. 이렇게 정치적 변화도 연관이 크다.

 '티핑포인트'를 넘어가면 인터스텔라의 나날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어떠한 사회, 동네, 정부인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기후 회의론


 기후변화에서 확실한 것은 탄소 농도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 뿐이다. 화석연료를 채굴해서 연소시키면 탄소 농도가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산화탄소 농도가 440~450PPM이 되면 얼마나 온도가 상승할지 불확실하다. 북극, 남극이 얼음으로 덮여 있을 때는 태양빛을 반사하지만, 검은 바다가 되면 열을 흡수할 것이다. 시베리아의 동토층에는 엄청난 메탄이 묻혀 있는데 빙하가 녹으면 이것이 드러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10배 이상의 속도로 온실효과를 촉진한다. 그나마 탄소를 흡수하는 것이 숲인데, 온도가 올라가니 큰 산불이 빈발하여 숲이 없어진다. 바다가 지닌 이산화탄소가 공기중으로 방출된다. 빙하도 천천히 녹지 않고 '찢어지듯' 녹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과학자들의 예측 모델에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해수면, 바람, 온도 등의 변수가 너무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인 변화가 어떤 사회의 변동을 가져올 것인가? 이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인과관계와 경향은 분명하다. 대응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것도 확실하다.

 왜 대부분의 정부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세인들의 인식도 미비한가? 대응의 효과가 불확실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보통 사람들의 인식 프레임 바깥에 있는 문제다. 생산 방식, 소비 방식을 바꿔야 한다. 기후 변화를 막으려면 'everything'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한 행동'이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이론, 지식뿐 아니라 심리학과 정치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전형적인 기후 회의론이 두 개 있다. 먼저 전세계 7위의 온실가스 다배출국이지만 비율로 보면 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 미국, 중국에 비해 무의미하며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수출 경쟁력만 깎는 일이란 것이다. 또 티핑포인트 역시 이미 넘어섰고, 이 흐름은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반박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루아침에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몇십년 동안 만성적인 고통, 준전시, 비상사태가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듯 그런 경우에는 가장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다. 어떻게 하면 혼란과 고통의 상황을 가급적 예방하거나 연대를 통해서 막아내고, 더 나은 삶으로 이어나갈 기회로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찰해야 한다.


감내할 고통


 2050년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드는 것이 전세계적 목표다. 역사적으로 큰 경제 사회 위기 때 에너지 소비가 줄었다. 스페인 독감, 대공황... 그러나 그 위기가 끝나면 배출량이 늘었다. 그리고 1950~1970년대에 폭발적으로 에너지 소비가 늘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생산과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석유파동 두 차례 때 줄었다가 또다시 늘었다. 2000년대 국제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코로나 사태로 5~10% 정도 줄었다. 2050년 온실가스를 '제로'로 만들려면 지속적으로 이런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에너지 소비량이 14% 줄었던 적이 있다. 1998년 IMF 시기다. 경제성장률이 -5.2%였던 시기다. 기업이 도산하고, 노동자가 정리해고당하고, 자살이 속출하는 정도로 경기가 위축되어야 14%다.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거나 외환위기 정도 충격을 20년 동안 감수해야 가능한 수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소비와 경기부양으로 코로나 시대의 해결책을 내고 있다. 다른 한편 코로나 사태는 리허설이기도 하다. 어떻게 불필요한 이동, 생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으며 공기 질을 높이고 삶을 쾌적하게 만들 수 있을지 힌트를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린뉴딜' 얘기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예산을 제일 많이 쓰는 것은 전기차, 수소차 보급 지원이다. 이를 보급하면 온실가스가 줄어드는가? 아니다. 가솔린과 디젤 차량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세컨드카가 되고 있다. 또 결국 석탄, 석유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세 도입이나 전기요금 인상 따위는 다음 정부로 넘겼다.

 그럼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진단하고 대안을 강구할 것인가? 마르크스의 시대에 자연환경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공기, 물 땅은 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태사회주의자들의 최근 주장은 다르다. 자연과 생산조건들이 점점 자본의 확대재생산에 한계로 작용한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 뿐 아니라 생산 조건과 자본 사이의 모순이 더 크게 일어날 것이다. 자본주의의 2차 모순이라고 일컫는다.


기후위기는 체제의 문제다


 어떤 학자들은 '자본세'를 얘기한다. 인류가 아닌 자본주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자본주의 이전엔 그렇지 않았는가? 순환경제였기 때문이다. 유지하면서 나눠 쓰는 경제. 봉건제까지는 노비는 착취를 당했지만 체제가 생태계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고농도의 화석연료를 태우는 '편리한' 활동이 기후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생물종을 위계화하고 자연과 다른 종을 착취, 남용한다는 점에서 가부장제의 문제, 산업주의의 문제가 닿는다. 그랬을 때 해결 주체의 관계 문제도 노동운동, 페미니즘 운동과 맺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자본주의 한계 내에서 해결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안에서 전세계적 통치권력이 가능하다는 이론이 '기후 리바이어던'이다. 유엔 협약같은 국제 레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잘 안 된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그대로 두고 세계가 따를 수 있는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소고기의 문제는 유엔 기후변화 어젠다에 들어가지 않는다. 미국인에게 햄버거는 영혼 그 자체이니까. 반자본주의 모델 '기후 마오'는 어떤가? 중국은 군대와 당이 나서서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 다만 이것은 동아시아에서만 가능한 모델이라고 본다. 동원이 가능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전환의 큰 전제로서 '탈성장'이 필요하다. 이윤을 위한 확대재생산이 탄소 순환의 균형을 깨트린 것이므로, 경제의 확장을 전제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탈성장은 반성장과 다르다. 이미 인류의 생산 총량은 충분히 분배와 복지에 필요한 양에 도달했다. 수단으로서 참여적 계획경제, 자립과 살림의 확대, 연대와 민주주의 3가지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국가적 자원 배분과 규제가 필요하다. 지금도 수단은 많다. 기업을 압박하는 정부가 선진국, 강대국에 많아질수록 좋다. 국가적 참여적 계획경제, 그리고 자립과 살림의 일상화가 지역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연대민주주의로 확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것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녹색 새마을 운동'이라고 일컫는다. 일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했던 것이 지금 필요한 것과 다르지 않다. 도농의 역할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었고 당시 국가 예산에서 새마을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로 컸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데는 이만큼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기획원 수준의 역할을 할 정부기구가 필요하고, 여기에 부응해 개헌도 필요하다. 국회와 별도의 기후시민위원회도 필요하다. 우리가 벌여왔던 기후농민운동, 기후도시운동, 기후생협운동 등도 빠질 수 없다.

 사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은 거의 제로성장에 이르렀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이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통념들. 식량 민주주의 주거 에너지 교육 같은 것들이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장의 자동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생산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이 깨어진다. 질소와 인의 축적, 생물종 다양성 파괴, 오존층 파괴 등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정부정책과 계획,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은 축구보단 야구에 가깝다. 9회 말, 10회 말, 20회 말... 한국은 정부정책이든 기후 운동의 상황이든 2회 초에서 2회 말 정도의 상황이다. 아직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궤도에 오르면 발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연대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는 2회, 3회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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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특집 : 코로나 이후 세계 체제 코로나 이후 세계 체계 강연 : 박노자 교수 정리 : 이용규 편집위원  호주의 친구들에게 듣기로,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호주는 현재 내가 태어난 소련과 똑같은 출국허가제를 운영한다. 입국도 마찬가지로, 호주 국민이라도 입국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가 국경을 관리하고 인권이나 기본적인 시민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조치들을 호주 국민의 대부분이 지지한다는 것이다.  호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와 함께 상당히 새로운, 그러나 사실 새롭지도 않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국가 본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로 가시화되었지만 예전에도 그 지점이 보였다. 분수령은 2008년 자본주의의 전체적 위기 상황이었다. 그 뒤로는 세계 총생산에서 세계 무역의 비율이 꾸준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국가나 지역 블록 위주의 경제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 금융이 아닌 실물 경제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이제 더이상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제조업과 농업 등 실물경제에서는 그렇다. 통계를 보면 중국도 역시 국민총생산에서 무역의 비율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 내수시장 위주 경제로 전환이 예고된다. 국가화 시대  국가화 시대의 도래 조짐이 13년 전부터 보이고 있었다.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가 얼마든지 시장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돈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태까지 미국 정부가 코로나 지원에 쏟아낸 돈이 4조 달러 정도이다. 한국 국민총생산의 세 배 정도 되는 돈. 한국도 재난지원금 등을 분배하지만, 한국의 재난지원금은 산업화된 나라 치고는 별로 크지 않다. 한국 재정 관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인 에토스를 내면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유럽에서 가장 타격이 큰, 이탈리아 같은 경우 지원금의 볼륨이 국민총생산의 49%에 달한다. 한국의 추경예산이 사상 최대라고 하지만 이 정도에 못 미친다. 한국은 오히려 더 신자유주의 도그마에 더 얽매이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차라리 국가 채무를 키워가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코로나 국면에서 가계빚이 늘어나는 반면 국가채무는 여전히 40퍼센트 이하다. 국가 대신 개인이 빚지게 만드는 구조다. 한국 재정 관료들이 그런 구조를 좋아하는 듯 하다.  우리 시대 세계 체제 경향을 보면, 그것은 국가화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앞으로 20-30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는 분명 국가 위주의 자본주의일 것이고, 그것은 미국 블록이나 중국 블록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블록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동구권 국가들이 몰락하고 미국의 일극체제가 시작되었다. 사실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완전한 일극 체제는 예외적 상황에 속한다. 이토록 드문 상황이 1991년부터 가능해졌다. 20년 이상 가던 상황이 지금 양극 체제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금융은 여전히 미국이 제패하고 있지만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에서 중국이 미국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생산을 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본격적 양분이 시작된 것이다. 역시 실물 경제의 이야기인데, 이 부분에서 미국 대비 중국과 거래량이 더 많은 나라들이 더 많다. 일극 세계 체제에서 양극 체제로의 전환이 조금씩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로 이루어지는데, 실물경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위치가 대단히 추락했다. 과거의 패권을 되찾겠다는 식산흥업적 발상이 미국에서 나오는데 그 성패여부를 알 수는 없다. 금융업은 지금 달러를 기축으로 해서 아직 미국과 그 동맹, 즉 서유럽 전통 열강과 일본 중심의 경제가 장악하고 있다. 지금 결제통화 비중을 보면, 유로와 달러의 강세가 아직 두드러지고 중국 위안화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한데 여러가지 치명적 허점들 역시 노출되고 있다. ‘직장 복귀율’로 본 세계는 어떤가. 얼마나 많은 경제 활동 인구가 직장에 빨리 복귀해서 생산할 수 있었느냐, 하는 지표가 있다. 이것은 각국 행정 조직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직장복귀율과 행정력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구미권보다 동아시아들이 ‘모범적 방역’을 보였다. 일본이 아닌, 한국, 대만, 싱가폴이 그렇다. 구미권에서는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정도만이 비견될 만 하다. 전통 열강의 금융 지배는 여전하지만 그들의 약점이 또 노출되는 것도 재미있는 특징이다. 닫힌 국경의 시대  너무나 슬픈 특징도 하나 있다. 한때 상당히 열렸던 국경들이 다시 닫히기 시작한 것이다. ‘닫힌 국경의 시대’다. 대한민국의 출입국 정책은 비교적 온화한 편인데, 본인이 거주하는 노르웨이만 해도 정책이 잔혹하다. 노르웨이에서 무비자로 살아온 유럽 각국 시민 같은 경우에는 노르웨이를 떠나는 경우 다시 들어올 수 없다. 초강경 정책인 셈이다. 작년 트럼프의 미국은 미국으로의 모든 이민 완전 정지를 명했다. 코로나가 시작되자마자, 집권 정치인들이 배제주의, 배타주의적 정서를 자꾸 자극하면서 본인들의 연임을 시도했다. 트럼프 같은 경우 방역에 있어서 실패의 폭이 매우 커서 떨어진 것이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연임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배타주의적 정서가 그 정도로 크다.  한국의 경우 부분적 국경 봉쇄에 속하지만, 적어도 한때 완전 국경 봉쇄를 택한 나라도 절반에 가깝다. 그렇다 하여도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완전히 방역에 실패했다. 국경 봉쇄가 만병통치약이 아닌데도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그랬는데, 한국과 일본 자유주의 정권의 정책은 그에 비해 상당히 온건했다. 한국 경제의 외국 노동력 의존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경제가 그 정도 크지는 않다. 한국의 경우 출입국을 완전 봉쇄하면 제조업, 농업이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관광객 수가 엄청나게 떨어졌고, 기본적으로 여행이 너무 어려워졌다. 가장 여행자의 수가 떨어진 곳은 동아시아다. 중국의 여행 시장이 잠정적 봉쇄된 효과다. 국제 이동 인구가 60-70% 정도 수준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소위 필수인력, 즉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래도 올 수 있다. 한데 피난민, 과경 소수자, 이민자 등 이동인구에게는 배타주의적 폭력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부분이 매우 큰 문제다.  작년 3월부터는 국가화, 국경 통제의 시대, 폭력, 혐오, 배제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지금 구미에서 아시아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대단히 고역이다. 지역과 계급에 따라 다를 것이나 60-80%의 재미 아시아인들이 혐오 사건을 적어도 간헐적으로 경험한다. 한국은 어떤가. 대체로 드러나는 폭력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한국의 극우 보수는 타자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국가가 외국인을 쫓아내거나 입국을 억제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본인들의 손으로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들도 보수이든 온건 자유주의자이든 배타주의적 민심을 이용하려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재난지원금에서 일부 외국인들이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 취업 비자로 들어온 조선족에게는 지급하지 않거나 차등지급하는 경우 등이 그렇다. 일본은 더한데, 이를테면 마스크를 배포하면서 조선 학교를 제외했다. 그야말로 잔혹함인지 유치함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동아시아 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중국에서 제일 심하다. 중국 공산당이 1인 지도 체제로 전환되고, 중앙 집권화가 강화되고, 지정학적 긴장이 빈발하며 중국 공산당의 민족 정책이, 마오주의의 민족정책-민족문화 보존 및 정치적 통합-에서 일제 말기의 강경 동화책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금 시진핑 정부의 정책은 과거 국민당 정책에 가깝고 마오주의나 레닌주의적 정책과는 다르다. 서방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위구르족에 대한 강제노동수용. 따위가 있는가 하면 민족학교에서의 보통화도 문제다. 전체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민족정책이 엄청나게 퇴보하고 있다. 네 가지 주요 경향  첫 번째는 ‘자본 권력 위에 국가 권력이 선다’는 것이다. 국가 본위 자본주의로의 귀환이 가장 큰 경향이다. 국가 본위의 자본주의는 1914년 1차대전부터 70년대 말까지 세계 체제의 기본 상태였다. 박정희 시대의 관치금융, 관치개발이 거기에 속했다. 그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자본 권력이 국가보다 위에 섰고 지금은 그것이 다시 역전되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경향 중의 하나다.  두 번째는 ‘세계화 대신 지역화’다. 큰 경제의 블록이 형성되는 것이다. 중국 같은 경우도, 실물경제의 패권을 기반으로 해서 지금 중국 본위의 유라시아 블록을 편성하고자 한다. 라오스, 북한, 네팔, 카자흐스탄은 물론 동유럽까지도 광의의 유라시아 블록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실물 거래를 보면 지난 2년 간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대중 무역 비중이 매우 늘어났다. 계속해서 유라시아 경제 블록의 편성 과정이 척척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요 경향 중 하나다.  세 번째는 중국, 베트남식 ‘국가관료자본주의의 각광’이다. 당-국가가 자본을 총괄하면서 잉여를 수취해서 적절히 재투자한다. 성장 자체 뿐 아니라 부가가치 체제에서의 자국 위치를 자꾸 올릴 수 있는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다. 당-국가가 시장을 지배하는 체제다. 중국식 체제를 성공적으로 벤치마킹하는 나라는 카자흐스탄, 터키, 헝가리를 꼽을 수 있다. 이를 따라하려다 실패한 것이 버마(미얀마)의 군-국가이다. 버마 군부는 당-국가를 건설할 능력이 없다. 소수민족과 시민의 저항에 부딪혀 통치력을 국토의 상당부분에서 잃은 것이 아닌가 싶다.  네 번째는, 주권과 국경의 절대화다. 코로나 이전에는 국제적 인권 레짐(국제기구의 인권 감시 역할)이라는 것이 있었다. 국경 관리를 통제하려는 시도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레짐이 정지된 상태다. 호주의 극우 정부가 최근 채택한 법률-인도에 체류한 적이 있다면 호주 국민이라 하더라도, 제3국을 통해 귀국을 시도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을 부과한다는 법률-은 국제 인권 레짐 차원에서 대단히 부적절하고 기본권 침해이다. 유엔을 위시한 국제 단체들이 이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다. 국경과 국가 주권의 절대화 속에서 국제적 인권 레짐이 무력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직력의 약화, 그러나 불안노동의 조직이 희망  우리의 투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프랑스의 황색 조끼 투쟁 같은 것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런 투쟁들은 파편화된, 조직이 되지 않은 투쟁이었다. 강렬하고 치열했지만 지속성이 떨어졌다. 집권자로 하여금 일부의 악법을 철회하거나 약간의 양보를 하게끔 만들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인민의 투쟁력은 여전히 크고 신자유주의 파산 이후로 오히려 더 강해졌으나, 조직력이 너무 약하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반자본 운동의 큰 희망 중 하나는 불안노동의 조직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새로운 무산계급-불안노동계급-이 나타나 본격적인 투쟁 무대에 진입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이 계급의 투쟁력이 어느 정도 조직화되면 반자본주의 운동의 희망이 될 것이다.  한데, 새 시대의 가장 큰 위험도 있다. 양극화 속에서 궁핍화되는 대중들이 급진화될텐데, 그 방향이 오른쪽으로도 간다는 것이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가장 궁핍한 노동자, 특히 실업자들이 가장 많이 투표하는 정당이 국민전선이다. 프랑스 같은 경우 정치적으로 육체노동자의 표 절반이 국민전선으로 간다. 좌파는 고학력 중간계급의 표에 기댄다. 매우 위험한 상황. 독일은 연립내각 위주의 중도정치가 되겠지만 프랑스는 극우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유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것이다.  희망은 있다. 한국의 미얀마에 대한 연대에서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본다. 미얀마 사태는 장기화될 것이고 실질적 도움을 주기 어렵겠지만 상징적, 심정적 연대의 정서가 돈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한국은 이미 국제연대가 일상이 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한 것 아닌가. SNS 시대의 긍정적 일면이다. 우리는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국가의 위치가 강력해지며 국가가 인민을 탄압할 여지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들의 애정을 보면 희망도 엿보인다. 감사하다.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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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정세 : 생태사회주의의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정세 : 생태사회주의의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정세 : 생태사회주의의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0 | 조회 3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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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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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2 | 조회 3980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이상덕 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  아시아나 케이오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 되고 길 위에서 투쟁한 지 벌써 500일이 넘었습니다. 김계월 지부장 동지, 박정남 부지부장 동지, 김정남 전지부장 동지, 기노진 감사 동지, 김하경 동지 다섯 분의 동지들은 복직을 위해 서울고용노동청을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투쟁문화제를 열고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로 복직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분은 길 위에서 정년을 맞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수백조원 규모의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자본가들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여기에는 기간 산업이라는 이유로 항공 산업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을 받은 항공 산업에서 4,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아시아나 케이오는 해고 회피의 어떠한 노력도 없었습니다. 300여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 퇴직 신청과 무기한 무급 휴직 시행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희망 퇴직과 무급 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민주노조 조합원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2020년 지노위, 중노위에서 부당 해고 판정이 났습니다. 지난 8월 20일 서울 행정법원 심판에서 부당 해고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사측은 법률회사 김앤장과 1억 원 이상 변호비를 지출하며 대법원 소송까지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현시점에서 복직 판결 이행 비용은 2억 + α원이지만, 소송 등으로 3억 원 가량 부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9월 3일 사측에서 제시한 첫 번째가 <해고자에 대한 복직 이행, 단 복직한 당일 퇴직을 전제로 함>이었습니다. 정말 악랄한 부당 노동 행위이고 노조 말살 행위입니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초기 한 개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 지키십시오. 아시아나 케이오 부당 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법조차 지키지 않는 금호아시아나재단에게 엄중하게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당 서울시당은 코로나를 핑계로 자행되는 대량 해고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나아나 케이오지부 해고 노동자 동지들이 현장으로 복귀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덧) 서울시당은 2021년 1월부터 공대위에 참여하며 아시아노 케이오 복직 투쟁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1일 기노진 감사 동지가 노동당에 입당하셨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아시아나 케이오 노동자들 복직까지 끝까지 투쟁!!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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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2 | 조회 4024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투쟁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밥 한 끼에 연대의 마음을 담아내는 현은희 동지를 만났습니다.  ‘저희 복직됐어요.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이제 집회 안 해도 돼요.’라고 적힌 편지를 받았을 때, ‘연대가 저분들에게 정말 희망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좋은 거에요. - 인터뷰 中에서 - 안보영, 적야 편집위원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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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3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3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3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0 | 조회 3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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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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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도서 : 19호실로 가다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도서 : 19호실로 가다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도서 : 19호실로 가다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1 | 조회 4340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도서 : 19호실로 가다 19호실로 가다 윤정현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그 작가가 어느 해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뉴스에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자연스럽게 <런던스케치>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18편의 단편 중에 마음에 남은 작품은 '참새들'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참새들'은 어느 카페의 아침 풍경을 묘사한 이야기인데, 아기 참새의 성장과 자식의 독립을 지지하려고 노력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같이 엮어내었습니다. 성장의 이야기는 늘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동네 여성주의 모임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한 권의 여성주의 책을 선정해서 같이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는데 돌아가면서 책을 추천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을 추천해서 같이 읽었습니다. '19호실'이라는 단어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도리스 레싱이라면 뭔가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19호실로 가다』는 11편의 중·단편 모음집이고, '19호실로 가다'는 이 책에서 가장 긴 소설입니다. 도리스 레싱은 1994년에 이 단편집을 내면서 수록된 이야기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서문에 적었습니다. 서문만 읽어도 이 이야기들이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감은 오지만, 그래서 본문을 읽을 때 작가의 도움으로 어떤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가 쉽기도 합니다.  '19호실로 가다'는 자기만의 방을 만든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방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어떤 부분은 공감이 되고 어떤 부분은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하지만, 어느 나라건 (배경이 영국입니다.) 어느 시대건 (4-50년 전 이야기이죠)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 삶이란 다 비슷하다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읽고 내린 결론입니다. 작가는 오히려 자신도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을 쓰게 된 건, 「우리 시대 많은 여성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장소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여자들의 이야기 뿐 만 아니라 세대 간의 이야기, 또 남자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4-50년 전 영국 이야기라 남의 이야기처럼 가볍게 즐길 수도 있지만, 그런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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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1 | 조회 3950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바쿠라우> 박수영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브라질 북동부의 페르남부쿠 주의 외딴 도로를 달리던 급수차는 빈 관이 잔뜩 실려 있는 사고난 화물차 옆을 지나치게 된다. 급수차가 향한 곳은 댐으로 막혀진 작은 강으로, 그들은 이 댐으로 인해 물 공급이 끊겨버린 작은 마을 바쿠라우에 쓸 물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이다. 물을 채울 곳을 찾아보던 일행에게 댐을 지키던 누군가가 총을 쏘고, 이들을 황급히 몸을 피한다.  이들이 출발한 마을인 바쿠라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무장한 무리들에 의해 봉쇄되어 있으며, 댐을 지어 물 공급을 막아버린 시장은 선거 때에만 찾아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료품과 마약성 진통제, 헌 책들을 적선하듯이 던져 놓고 사라진다. 인터넷 지도에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소형 UFO가 마을 주변을 맴돌며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한다. 급수차는 총격을 받아 구멍이 뚫리고, 마을 외곽의 말 농장은 정체 모를 습격을 받아 몰살된다. 농장의 상태를 확인한 후 황급히 마을로 돌아가려는 두 청년의 앞에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바이커 두 명이 나타나고, 이들이 목격자를 처리하는 과정은 UFO를 통해 낯선 무리들에게 전송된다. 급작스러운 습격을 마주하게 된 주민들은 물 공급을 끊어버린 댐을 파괴하려 한다는 혐의로 현상수배된 범죄자 룽가와 함께 이 침입자와 맞서게 된다.  지난 9월 2일 개봉한 영화 <바쿠라우>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줄리아누 도르넬리스 공동 감독의 브라질 영화이다. 황량한 브라질 북동부의 작은 마을 바쿠라우에서 펼쳐지는 존재를 지우고자 하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웨스턴, 그 중에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난다.  세르지오 레오네를 필두로 하는 일군의 이탈리아 감독들이 1960년대 이후 양산해낸 ‘스파게티 웨스턴’이 존 웨인, 존 포드로 대표되는 정통 웨스턴과 구별되는 지점은 인물과 무대이다. 선악이 분명한 정통 웨스턴과는 다른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 주역이라는 점, 미국 원주민 (인디언)이 주로 등장하는 미국 서부가 아닌 텍사스 – 멕시코 국경 분쟁의 주무대인 미국 남부가 배경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감독들은 무솔리니 독재를 경험하며 좌파적 성향을 진하게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스파게티 웨스턴 역시 좌파적 경향이 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1910년의 멕시코 혁명 (사파타 혁명)의 영향으로 '좌파적 민족주의' 흐름도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부패한 군부와 결합한 미국 '백인'들에 대한 민중들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항이라는 서사는 대부분의 스파게티 웨스턴, 특히 사파타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하위 장르인 '사파타 웨스턴'의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같은 남미의 국가인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 역시 이런 스파게티 웨스턴의 문법과 배경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본적인 인프라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표만 가져가면 된다는 태도의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게 되자 아예 마을 자체를 송두리째 없애 버리려고 하며, 영화에서 명백하게 '미국인'으로 호칭되는 외부의 침입자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브라질 남부의 '유사 백인'들이 저지른 월권 행위에 총질로 보답한다. 정치인과 결탁한 이들 외부 세력이 본격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사냥'하기 시작하자,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에서 서로 반목하고 싸우던 마을 주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초와 마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오래된 무기들을 통해 이들 외부 세력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이런 ‘맞서 싸움’은 스파게티 웨스턴 특유의 핏빛 자욱한, 그러나 전혀 통쾌하지는 않은 건조한 화면으로 다가온다.  주민들이 몇 번 씩 반복해서 “보고 가라”고 말한,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마을 역사 박물관의 실체는 영화 말미에 확인할 수 있다. 바쿠라우 지역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반란과 진압, 투쟁의 역사를 모아 놓은 이 박물관은 그 자체로 이 영화를 설명해 준다. 그토록 많았던 저항을, 그토록 잔인하게 진압해 왔을지라도, 또다시 저항을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에든, 또는 그보다 더 먼 미래에든.

Date 2021.09.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0 | 조회 3869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적야, 정상천 편집위원  9월 11일 정기당대회. 제법 무거운(?) 안건으로 회자되었던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준비위원회 구성의 건‘이 상정되어 있었다. 많은 격론이 예상되는 상황. 당대회 준비팀의 바쁜 움직임과 진지한 집중력은 당대회장의 긴장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 슬로건 아래 당대회가 시작되었다. 각 지역과 부문에서 추천된 당원들에게 상장이 수여되었고, 안건 토론을 위한 출정식(?)을 신호로 본 대회가 시작되었다. 당대회가 끝나고 슬로건은 이제 과제가 되었다.

Date 2021.09.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5019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편지를 띄우며 안부를 묻는 것이 조심스러울 만큼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확산하고, 폭염에 이어 폭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범람하기 전부터 이미 파괴되고 있던 우리들 일상 곳곳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들 일상을 유지해오던 노동의 가치는 더욱 분명해졌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은 나아진 것이 없고, 착취의 강도는 더욱 커졌습니다.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이러스 때문에라도,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는 까닭입니다. 이 투쟁의 중심에 노동당 당원이 있습니다. 또한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와 노동당의 미래는 결국 바로 지금 여기 현장의 투쟁 속에 있고, 투쟁을 통해 만들어야 합니다. 해서, 미래에서 온 편지는 이번 호부터 ‘현장’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주요 투쟁 소식을 전합니다. 첫 ‘현장’은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과 승리입니다. 9월 11일에는 2021년 노동당 정기당대회가 열립니다. 현장의 투쟁들을 체제전환을 위한 정치투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노동당은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하고 결정합니다. 기획 편에서 자세한 소식을 전합니다. 당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위원회 김석정, 나도원, 안보영, 이용규, 적 야, 현 린   [제목을 누르면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편지를 띄우며   □ 기획 : 중심에 서다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를 소개합니다   □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 정세 : 팬데믹 바이러스의 ‘기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   □ 현장 :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와 좌파의 역할   □ 사람 : 현장을 바꾼 30년의 실천과 연대 - 고미경   □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2   □ 도서 : 마르셀 모스 [증여론]   □ 영화 :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감춰지고 사라지는 노동에 관한 관찰기   □ 사진 : 자본 범람 지대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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