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36호 202108
작성자
미래에서 온 편지
작성일
2021-08-30 18:27
조회
4552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 :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
정리 : 이용규 편집위원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여의도 맞은편에 마르크스 사진이 걸린 건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상징성이 크다. 한국처럼 이렇게 이념이 통제 및 억압 당하는 경험을 가진 나라가 없다. 몇 년 전 마르크스가 태어난 독일 트리어에 방문한 적이 있다. 연구소 차원에서 매년 <아카데미 유로파>에 참가한다. EU가 주관하는 행사로, 유럽에 대해 여러가지를 배우는 2주간의 아카데미다. 맑스 생가를 방문하는 것이 아카데미 프로그램 가운데의 하나다. 매우 상징적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맑스는 유럽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인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맑스라면 아직 금기의 영역이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세계적 흐름에 뒤쳐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당에서 맑스 사진을 걸고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맑스를 혐오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상적 후진성, 퇴행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사 외벽의 빨간 걸개를 보면서 노동당이 한국 사회를 계몽시키는 사상적, 문화적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어떤가. 답답하고 우울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 코로나는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우울함을 던졌지만 중요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것을 코로나 옐로우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정상이라 알고 살아온 이 모든 것이 대단히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체제가 근본적으로 비정상적인 체제일지도 모른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슬로건은 그래서 매우 시의적절하다.


코로나의 첫 번째 경고: 사회 없는 사회

 어떤 경고를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고 있나. 우리가 가장 코로나를 통해 분명하게 인식한 것이 뭔가.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모두가 다 행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의 행복, 모든 사람의 안전, 모든 사람의 건강이 나의 행복, 나의 안전, 나의 건강의 전제라는 걸 배웠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경고이다. 한국 사회에는 그러한 가치가 너무 결여돼 있다. ‘더 소셜The Social’,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가 한국처럼 결여된 나라가 없다.

 한국 사회를 ‘소사이어티 윗아웃 더 소셜Society without the Social’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인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각자도생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자들의 무리다. 거의 모든 지표가 보여주고 있다. OECD의 사회관계지수라는 것이 있다. 한 개인이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얼마나 깊은 결속을 맺고 사는가를 측정한다. 한국이 계속 꼴찌다. 평가항목 가운데 ‘타인에 대한 신뢰’는 압도적으로 꼴찌. 한국은 ‘사회’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사회다. ‘더 소셜’이라는 가치가 불온시되는 사회라고 봐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라는 어떤 곳에서는 ‘social’이란 말을 당명에 붙일까 말까를 놓고 1년 동안 고민했다. 정말 이상한 사회다. 어떤 사회가 이런가. 이를테면 독일은 이와 정 반대다. 독일에서는 ‘소셜’하지 않다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다. 독일 말로 ‘Asozialität’. 상대방에게 이러면 싸움난다! ‘인간 이하다, 미쳤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런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프랑코 벨라르디라는 이탈리아 철학자가 한국을 방문하고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사회는 이해하기 어렵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리듬의 초가속화라는 네 가지 특징이 한국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외국 철학자가 한국 사회를 이다지도 잘 볼 수 있을까 놀랐다. 한국사회의 끔찍한 측면이 그정도로 보인다는 것이겠지.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가장 강력한 경고는 그것이다. 그런 사회적이라는 가치,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코로나의 두 번째 경고: 공공 없는 공화국

 두 번째는 이 한국이라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 선거를 했다. 선거가 무엇인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개선하는 일종의 과정이다. 한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코로나로 인한 양극화와 저소득층의 위기다.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생존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진 적이 있나? 없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었나? 민주당이라는 정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도 없다. 이 정당을 견제하는 정당은 더 없다. 이것이 쟁점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존재가 없고 취약하기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나라 구실을 못하는 나라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세월호를 두고 ‘이게 나라냐’라고 했다. 지금은 더하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

 ‘리퍼블릭 윗아웃 더 퍼블릭republic without the public’. 공화국은 공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 그런데 공적인 가치가 없다. 이게 무슨 공화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조항은 임시정부를 만들었던 선각자들이 건국강령 1조로 넣은 것이다. 그들이 꿈꾸던 국가는 이런 게 아니었다.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공적인 가치가 부재한 나라다. 코로나가 이걸 너무나 분명하게 폭로해 준 것이다.

 국민들이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에 공공병원이 10%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공공병원 비율이 가장 적은 나라다. 심지어 미국도 공공병상이 20%다. 초기에 대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병상이 없어서였다. 어떻게 된 것인가? 공공병상이 없었다. 대구 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에 있는 빅5 병원(삼성, 아산, 세브란스, 카톨릭, 서울대) 가운데, 국립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하고 빅4에서 내놓은 병상은 단 7개였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해내지 않고 완전히 시장에 내맡긴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전세계에서 고등교육의 공교육 비중이 제일 낮다. 우리 대학의 87%가 사립대학이다. 이런 나라가 없다. 실제로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자 독일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코로나 대응 자금을 재정 편성한 것인다. 국가 재정의 3분의 1을 편성했다. 1조 유로, 우리 돈 1350조였다. 이를 위해 독일 정부가 약 20% 이상의 부채를 졌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와 손해, 부담의 90%까지 국가가 감당했다. 임대료, 인건비 따위의 90%를 감당해줬다. 우리는 4차 긴급 재난지원금으로 20조를 편성했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착한 임대료 운동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9시 뉴스 끝나고 이웃돕기 성금을 모은다. 군사독재 시절에 하던 일들이다. 신파극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잡아대는 퇴행적 행동. 돌아다니며 계속 비판했는데 지금 없어졌다. 이건 무능인가 직무유기인가. 그러다 보니 재경부 장관이라는 자가, 국가부채가 45% 수준이라며 ’재정이 건실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선진국 평균 국가부채는 135%다. 그 대신 우리의 가계부채가 108%다. 국가부채는 가장 낮고 개인부채는 가장 높은 게 대한민국이다. 이 위기에서 국가는 아무것도 안하고 개인이 은행빚으로 살아남고 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공적 가치가 아니라 사적 이해밖에 없는 공동체다. 공공의 책임, 공공의 가치를 국가가 인식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다.


코로나의 세 번째 경고: 생태 없는 경제

 세 번째는 ‘이코노미 윗아웃 이콜로지economy without ecology’.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나. 경제가 생태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생태적인 상상력이 완전히 없다. 전세계에서 가장 생태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연구소 연구원이 재작년 베를린을 다녀와서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취리히에 있는 친구를 베를린에서 만났다는 거다. 취리히에서 베를린에 오는데 기차로 8시간, 요금은 150유로가 든다. 비행기를 타면 1시간이고 50유로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취리히에 사는 친구가 기차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 이해가 안 된다, 시간도 요금도 더한데. 그런데 그 취리히 친구는 베를린으로 간 친구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생태적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유럽에서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유럽에서 이미 ‘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e’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비행기 타는데 대한 부끄러움이다. 기본적인 생태적 관점을 갖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없다는 게 유럽은 상식이다. 유럽은 그러한 인식 때문에 독일인의 82%가 생태 보호를 위해 소비를 포기할 수 있다, 는 명제에 동의한다. 소비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 소비는 지금의 욕망 때문에 미래 생태를 포기하는 것이니까.

 한국은 어떤가. 독일 아이들의 대다수가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는데, 한국은 ‘소비하는데 일자리가 생긴다, 경제가 돌아간다, 국가가 부강하다’고 한다. 경제논리의 전일적 지배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 유럽에서는 ‘21세기는 오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인류가 최후의 인류가 될 것이란 것. 나는 살만큼 살았지만 내 자식, 손주는 어쩌면 마지막 인류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다행히 마지막 인류가 아니더라도, 이 파괴 속에서 대단히 고통스러운 삶은 살다가 갈 것은 확실하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기후깡패’라고 불린다. 이번(2021년 4월 세계기후정상회의)에도 구체적인 감축 목표를 내놓지 못했다. 투표장에 가서 보니 ‘녹색당’이 아예 없었다. 독일에서는 9월 총선이 있을 것이다. 문명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것과는 정반대로 세상이 구성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녹색당이 제1당으로 집권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저지하자는 정당이 녹색당이다. 지금까지의 성장과 발전은 죽음으로의 성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저 녹색당은 ‘항의정당Protest Party’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수권을 논할 정도가 됐다. 놀라운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는 녹색당, 사민당, 좌파당 3개 좌파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재작년 유럽의회선거를 보면, 유럽 전역에서 녹색당이 득표 2위를 했다. 작년에 있던 프랑스 지역 선거에서도 녹색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는 생태적 상상력이 도착하지 못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녹색당이 1%도 득표를 못했다. 지금의 정치지형이 매우 세계적 흐름과 유리되어 있다. (엮은이 주: ‘9월 총선’은 2021년 9월 26일 시행되는 독일 연방하원 선거를 말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 선거를 끝으로 총리직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2021년 8월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대체로 기민련/기사연(여당)이 25%,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이 각각 18~20% 가량 득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한국 사회는 함께 사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공적 가치를 중시하는 책임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태국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가치, 공공적 가치, 생태적 가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미래가 없다.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한국이란 사회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한국은 외부에 있는 외부인들, 외국 학자들에 의하면 매우 놀랍고 경탄할 만한 사회다. 본인 연구소에서 전체 컨퍼런스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배울 기회다. 한국은 많은 외국 학자들이 존경하는 나라다. 우리가 가진 존경할만한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왜 그런가? 가장 큰 까닭은 ‘민주주의’. 특히 중국, 일본 학자들에게서 그렇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 항의하는 시위 규모를 보면 정말 얼마 안 된다. 일본은 봉건, 하류 민주주의다. 역동성을 상실한 미래가 없는 나라. 중국은 어떤가. 베이징대학 교수들이 어느 순간부터 말을 조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양심적 학자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정말 한국 민주주의를 부러워한다. 시진핑 이후 중국 민주주의는 완전히 퇴행 중이다. 그러면서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 민주주의도 위기다. 시리아 사태로 난민들이 몰려들자 극우 정치인들이 이를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했고 이게 먹혀들었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겪었고 프랑스에선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결선투표까지 올라갔었다. 미국도 트럼프에 의해 준파시즘 국가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2016년 광화문에서 촛불을 통해 대통령을 탄핵하고 이를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외국의 많은 학자들이 놀라워했다. 전세계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독일의 <Die Zeit>(옮긴이 주: 독일의 진보 성향 주간지)의 칼럼에서 이르길, “이제 유럽과 미국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 민주주의의 시대는 저무는가 하는 상황에서 유라시아대륙 끝의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다시 타올랐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외부에서 크게 인정한다. 오히려 우리들이 우리 민주주의를 그렇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필요한만큼 평가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수출국가다. 오늘날 아시아 독재국가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공부한다. 본인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모두 대학에서 겪었다. 주로 일본 책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공부했다. 우리가 지금 그런 모델이 되어 있다. 우리가 우리 민주주의를 충분히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4.19혁명은 ‘20세기의 제3세계 가장 위대한 민주혁명’이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은 그정도로 평가 못한다. 4.19는 1960년 일어나서 그 다음해 육군 소장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부정당했다.

 1979년의 부마항쟁, 1980년의 광주항쟁, 87년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촛불까지 이어지는데, 나는 일련의 반독재 연속혁명이라고 부른다. 군사독재의 후예까지 완전히 청산하는 과정이었다. 부마와 광주항쟁은 육군 소장 전두환에 의해 짓밟혔다. 87년 역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며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2016년 촛불 항쟁에서도, 육군 소장 조현천이라는 자가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 왜 이 자를 잡아들이지 않나. 이해하지 못하겠다. 단호하게 응징할 필요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는 육군 소장들의 반란의 역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의식이 있다면 육군 소장이라는 직위를 ‘파 버릴 줄’ 알았다. (엮은이 주: 조현천 예비역 소장은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국군기무사령관이었다. 그가 탄핵 기각 상황을 상정하고 계엄령을 공포하고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려고 했다는 기무사령부 문건이 공개된 바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나 외국에서 도피중이다.)

 우리의 경제성장 역시 놀랍다. 외국에 나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부유한지 느낀다. 매년 다르다. GDP가 작년 7위다. 그건 맞다. 한국은 엄청난 부자나라.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명을 달성한 국가)이라고 하는데, 우리를 포함해 일곱 국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한 경제성장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그러나 이면은 어떤가. 18년 째 자살률이 세계 1위다. 두 번 2위 했다. 자살의 내용도 안 좋다. 노인 자살률이 너무 높다. 어떤 해는 평균의 10배까지 나올 정도. 자연사를 앞둔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노인 빈곤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대체로 매년 48~52% 수준이다. 유럽은 3~5% 사이다. 이런 나라가 없다. 부산, 광주 등지에 강연을 하러 가는 일이 잦다. 오전 10시에 강연하러 가면 오전 6시에 집을 나서는데, 그 시간에 폐지 줍는 노인들이 정말 많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잘 산다는 나라에서 노인들이 폐지를 주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가 힘이 처지면 목숨을 끊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우울증 발병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아이들은 온 세상이 궁금하고 즐거워야 한다. 한국 아이들은 기적적으로 우울해. 우리가 다 아는 바이다. 그 어린 나이부터 경쟁을 시키고 지식을 주입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하다. 자산, 부동산 불평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상위 1%가 50.5%를 가지고 있다. 상위 10%가 96.4%를 가지고 있다. 하위 90%가 3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정태인 씨는 “한국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공동체다.”라고 했다. 그 말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정도로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노동시간을 보면 어떤가. 작년 독일의 노동시간이 1,300시간이다. 지금 한국 노동자들은 2,000~2,100시간이다. 5개월 더 일한다. 노동 기계라고 봐야 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떤가. 가장 심각한 주제다. 소위 산업재해 사망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산업재해가 아니라 기업살인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고 24년째 1위다. 2000년부터 2020년까지 4만 명이 넘게 죽었다. 일 년에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다. 작년에 2,400명 죽었다. 이 정부 들어서 더 늘고 있다. 이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이것이 정상 상태인가. 이것은 내전이다. 자본과 노동의 내전이 일상화된 것이다.

 영국이 유럽에서 기업살인으로 가장 악명이 높다. 영국은 계속 유럽 1위였다. 이것이 너무 크게 사회적 문제가 되어 2008년에 법을 개정했는데, 산업재해법이 아니라 기업살인법(엮은이 주: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살인에 준하는 단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중대재해처벌법을 누더기 법으로 만들고, 오히려 노동자가 더 많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자식을 낳지 않는다. 출산율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인류 역사상 합계출산율 ‘1’이하가 2년 연속 지속된 적이 없는데 우리는 4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가르치는 여학생들에게 ‘아이들을 안 낳을 생각이냐’고 물으면, 전원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이유를 물으면, 이 지옥 속에 내 아이를 넣을 자신이 없다고 한다. 너무 처절한 말이다. 다른 학생들이 다 공감한다. 이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 사회에 묻는다. 이렇게 훌륭한 민주주의를 하고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까지 된 나라가, 모든 국민들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해놓고 있는 나라가, 지옥같은 일상을 만들어냈는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그래서 주식과 가상화폐에 의존하는 카지노 자본주의에 빠져 있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나.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도 되었는데 한국사회는 왜 이런가? 우리 일상은 왜 지옥으로 가나. 잘못된 정치에 그 원인이 있다.


수구-보수 과두제

 우리 삶을 규정하는 법을 만드는 이들이 여의도에 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가. 국회의원 300명 중 294명이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한다. 이런 나라는 전세계에 없다. 자유시장경제는 인간과 같이 못 간다. 이 점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좋은 걸로 한국인들은 안다. 놀라운 오해다. 시장경제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물론 있다. 그걸 이미 봤다. 지난 세기 내내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경쟁했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왜, 어떻게 이겼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인간은 사회주의를 할 수 없는 동물이다.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은 계몽주의 이래 근대의 선각자들이 꿈꾸었던 이성의 기획이다. 모든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고 그 인간들이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인간의 탐욕에 기대서 생겨난 체제가 자본주의, 이성에 기반해 구성된 체제가 사회주의다. 그런데 인간이 이러한 이성의 기획을 수행할 정도의 존재가 아니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동유럽을 중심으로 붕괴했다.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비효율적으로 작동한 것이다. 효율성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이겼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효율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놓아두면 인간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야수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사자, 호랑이, 표범… 야수들은 멋있고 매혹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을 잡아먹는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이 가장 정곡을 찌른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은 ‘현혹’이다. 눈을 부시 게 해서 정체를 못 보게 한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그처럼 꿰뚫는 말이 없다.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야수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면 자본주의를 유용하게 쓸 것인가. 효율성을 살리되 야수성은 통제해야 한다. 이 야수에게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채워서 통제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시장경제’. 독일은 메르켈의 보수당이 그렇게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체제 내에 필연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실업과 불평등이다. 자본주의를 잘 활용하려면 실업과 불평등 문제, 그에 따르는 불안과 빈곤을 국가가 책임지고 풀어야 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국가가 개입해서 자본주의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어떤 수단으로 하는가. 당연히 조세다. 사회복지국가는 조세국가다. 정의로운 조세를 통해서 조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실업은 어떤 문제인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본다. 우리처럼 실업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독일 연방의원 가운데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300명 가운데 294명이다. 이것이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든 것이다. 지난 선거에서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유민주당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보수 정당인 기민당/기민련이 사회적(social)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독일의 사민당은 사회주의적(socialistic)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시장경제를 인정하지만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사는데 조건이 되는 영역은 시장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 주거, 의료. 독일에서는 대체로 의료체제의 70% 이상이 공공병원이고 대학은 96%가 국립대학이다. 이보다 더 왼쪽에 있는 녹색당 역시 시장경제를 인정하나 자연 생태계를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또 한 당은 좌파당이다. 좌파당만은 시장경제에 반대한다. 시장경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한다. 그런 정당도 8% 가량 득표했다. 지난번 의회에는 이런 4개의 정당이 있었다. 이런 의회에서 어떤 정책을 만들까?

 그러나 한국 국회는 전부 인간을 잡아먹는 법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다. 민주주의, 정권 교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치 지형과 체제가 잘못되었다. 아무리 선거를 해도 우리의 불행은 해결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진보고 국민의힘이 보수라는 인식은 당연히 잘못이다. 한국 정치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경쟁 구도가 아니다. 수구와 보수의 70년 과두 지배 체제라고 보아야 한다. 수구와 보수가 4대 6, 6대 4로 구도를 형성하는 체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좋은 보수가 없다는데 있다. 보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다. 여기서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자유주의다. 보수는 그래서 가장 근원적인 공동체, 민족을 중시한다. 이런 공동체의 과거, 현재, 곧 문화와 역사를 중시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가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공동체’를 주장하면 빨갱이라고 지탄받는다. 민족은 친북이라고 공격받는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 도망가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한다. 이런 보수는 세계에 없다. 이런 자들은 보수가 아니다. 수구라고 불러야 한다.

 문재인 정부 정도가 그저 보수와 유사한 정도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사명은 좋은 보수가 되는 것이라고 항상 말해왔다. 그래야 보수를 참칭하는 자들이 사라진다. 그런데 진보를 자칭하니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진보를 갉아먹는 것이다. 좋은 진보가 등장할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사명인데 끊임없이 진보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를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진보세력의 잠재력만은 매우 크다. 정치지형의 불리함과 국민 인식을 넘어선다면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정치지형이다. 김종인씨가 한국 정치 전면에 등장해 있다. 그것은 그가 계몽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 국민들이 자꾸 헛갈린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다른 정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김종인씨가 몇 번을 왔다갔다 했나? 두 당이 같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 정당의 차이는 하나다. 김정은에 대한 시각 뿐이다. 그러나 이재용을 어떻게, 한국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똑같다. 대북정책이 조금 바뀌는 것 뿐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이제는 정발 대안적인 정당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핵심적인 문제다.

 가장 중요한 해법은 선거법 개정이다. 민주당의 작년 선거법 개정은 추한 일이었다. 민주당의 자기부정이며 기회주의적인 행태라고 칼럼을 쓴 뒤 공격을 당했었다. 독일처럼 사표가 발생하지 않는 선거법, 민심이 표심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선거법이 만들어진다면 한국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20% 이상 득표할 것이라 본다. 환경, 생태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정당도 5% 이상 얻어서 여의도가 다양한 정치세력이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지금 두 개의 정당이 야합하는 수구-보수 과두 체제가 한국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고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될 것이다. 강연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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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특집 : 코로나 이후 세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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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특집 : 코로나 이후 세계 체제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1 | 조회 3984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특집 : 코로나 이후 세계 체제 코로나 이후 세계 체계 강연 : 박노자 교수 정리 : 이용규 편집위원  호주의 친구들에게 듣기로, 옛날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호주는 현재 내가 태어난 소련과 똑같은 출국허가제를 운영한다. 입국도 마찬가지로, 호주 국민이라도 입국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가 국경을 관리하고 인권이나 기본적인 시민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조치들을 호주 국민의 대부분이 지지한다는 것이다.  호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와 함께 상당히 새로운, 그러나 사실 새롭지도 않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국가 본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로 가시화되었지만 예전에도 그 지점이 보였다. 분수령은 2008년 자본주의의 전체적 위기 상황이었다. 그 뒤로는 세계 총생산에서 세계 무역의 비율이 꾸준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국가나 지역 블록 위주의 경제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 금융이 아닌 실물 경제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이제 더이상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제조업과 농업 등 실물경제에서는 그렇다. 통계를 보면 중국도 역시 국민총생산에서 무역의 비율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 내수시장 위주 경제로 전환이 예고된다. 국가화 시대  국가화 시대의 도래 조짐이 13년 전부터 보이고 있었다.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가 얼마든지 시장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돈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태까지 미국 정부가 코로나 지원에 쏟아낸 돈이 4조 달러 정도이다. 한국 국민총생산의 세 배 정도 되는 돈. 한국도 재난지원금 등을 분배하지만, 한국의 재난지원금은 산업화된 나라 치고는 별로 크지 않다. 한국 재정 관료들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인 에토스를 내면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유럽에서 가장 타격이 큰, 이탈리아 같은 경우 지원금의 볼륨이 국민총생산의 49%에 달한다. 한국의 추경예산이 사상 최대라고 하지만 이 정도에 못 미친다. 한국은 오히려 더 신자유주의 도그마에 더 얽매이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차라리 국가 채무를 키워가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코로나 국면에서 가계빚이 늘어나는 반면 국가채무는 여전히 40퍼센트 이하다. 국가 대신 개인이 빚지게 만드는 구조다. 한국 재정 관료들이 그런 구조를 좋아하는 듯 하다.  우리 시대 세계 체제 경향을 보면, 그것은 국가화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앞으로 20-30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는 분명 국가 위주의 자본주의일 것이고, 그것은 미국 블록이나 중국 블록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블록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동구권 국가들이 몰락하고 미국의 일극체제가 시작되었다. 사실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완전한 일극 체제는 예외적 상황에 속한다. 이토록 드문 상황이 1991년부터 가능해졌다. 20년 이상 가던 상황이 지금 양극 체제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금융은 여전히 미국이 제패하고 있지만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에서 중국이 미국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생산을 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본격적 양분이 시작된 것이다. 역시 실물 경제의 이야기인데, 이 부분에서 미국 대비 중국과 거래량이 더 많은 나라들이 더 많다. 일극 세계 체제에서 양극 체제로의 전환이 조금씩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실물경제와 금융경제로 이루어지는데, 실물경제에 있어서는 미국의 위치가 대단히 추락했다. 과거의 패권을 되찾겠다는 식산흥업적 발상이 미국에서 나오는데 그 성패여부를 알 수는 없다. 금융업은 지금 달러를 기축으로 해서 아직 미국과 그 동맹, 즉 서유럽 전통 열강과 일본 중심의 경제가 장악하고 있다. 지금 결제통화 비중을 보면, 유로와 달러의 강세가 아직 두드러지고 중국 위안화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한데 여러가지 치명적 허점들 역시 노출되고 있다. ‘직장 복귀율’로 본 세계는 어떤가. 얼마나 많은 경제 활동 인구가 직장에 빨리 복귀해서 생산할 수 있었느냐, 하는 지표가 있다. 이것은 각국 행정 조직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직장복귀율과 행정력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구미권보다 동아시아들이 ‘모범적 방역’을 보였다. 일본이 아닌, 한국, 대만, 싱가폴이 그렇다. 구미권에서는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정도만이 비견될 만 하다. 전통 열강의 금융 지배는 여전하지만 그들의 약점이 또 노출되는 것도 재미있는 특징이다. 닫힌 국경의 시대  너무나 슬픈 특징도 하나 있다. 한때 상당히 열렸던 국경들이 다시 닫히기 시작한 것이다. ‘닫힌 국경의 시대’다. 대한민국의 출입국 정책은 비교적 온화한 편인데, 본인이 거주하는 노르웨이만 해도 정책이 잔혹하다. 노르웨이에서 무비자로 살아온 유럽 각국 시민 같은 경우에는 노르웨이를 떠나는 경우 다시 들어올 수 없다. 초강경 정책인 셈이다. 작년 트럼프의 미국은 미국으로의 모든 이민 완전 정지를 명했다. 코로나가 시작되자마자, 집권 정치인들이 배제주의, 배타주의적 정서를 자꾸 자극하면서 본인들의 연임을 시도했다. 트럼프 같은 경우 방역에 있어서 실패의 폭이 매우 커서 떨어진 것이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연임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배타주의적 정서가 그 정도로 크다.  한국의 경우 부분적 국경 봉쇄에 속하지만, 적어도 한때 완전 국경 봉쇄를 택한 나라도 절반에 가깝다. 그렇다 하여도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완전히 방역에 실패했다. 국경 봉쇄가 만병통치약이 아닌데도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그랬는데, 한국과 일본 자유주의 정권의 정책은 그에 비해 상당히 온건했다. 한국 경제의 외국 노동력 의존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경제가 그 정도 크지는 않다. 한국의 경우 출입국을 완전 봉쇄하면 제조업, 농업이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 관광객 수가 엄청나게 떨어졌고, 기본적으로 여행이 너무 어려워졌다. 가장 여행자의 수가 떨어진 곳은 동아시아다. 중국의 여행 시장이 잠정적 봉쇄된 효과다. 국제 이동 인구가 60-70% 정도 수준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이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소위 필수인력, 즉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래도 올 수 있다. 한데 피난민, 과경 소수자, 이민자 등 이동인구에게는 배타주의적 폭력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부분이 매우 큰 문제다.  작년 3월부터는 국가화, 국경 통제의 시대, 폭력, 혐오, 배제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지금 구미에서 아시아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대단히 고역이다. 지역과 계급에 따라 다를 것이나 60-80%의 재미 아시아인들이 혐오 사건을 적어도 간헐적으로 경험한다. 한국은 어떤가. 대체로 드러나는 폭력은 없다고 봐도 좋다. 한국의 극우 보수는 타자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국가가 외국인을 쫓아내거나 입국을 억제하기를 바라는 것이지 본인들의 손으로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들도 보수이든 온건 자유주의자이든 배타주의적 민심을 이용하려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재난지원금에서 일부 외국인들이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 취업 비자로 들어온 조선족에게는 지급하지 않거나 차등지급하는 경우 등이 그렇다. 일본은 더한데, 이를테면 마스크를 배포하면서 조선 학교를 제외했다. 그야말로 잔혹함인지 유치함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동아시아 내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중국에서 제일 심하다. 중국 공산당이 1인 지도 체제로 전환되고, 중앙 집권화가 강화되고, 지정학적 긴장이 빈발하며 중국 공산당의 민족 정책이, 마오주의의 민족정책-민족문화 보존 및 정치적 통합-에서 일제 말기의 강경 동화책으로 전환되고 있다. 지금 시진핑 정부의 정책은 과거 국민당 정책에 가깝고 마오주의나 레닌주의적 정책과는 다르다. 서방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위구르족에 대한 강제노동수용. 따위가 있는가 하면 민족학교에서의 보통화도 문제다. 전체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민족정책이 엄청나게 퇴보하고 있다. 네 가지 주요 경향  첫 번째는 ‘자본 권력 위에 국가 권력이 선다’는 것이다. 국가 본위 자본주의로의 귀환이 가장 큰 경향이다. 국가 본위의 자본주의는 1914년 1차대전부터 70년대 말까지 세계 체제의 기본 상태였다. 박정희 시대의 관치금융, 관치개발이 거기에 속했다. 그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자본 권력이 국가보다 위에 섰고 지금은 그것이 다시 역전되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경향 중의 하나다.  두 번째는 ‘세계화 대신 지역화’다. 큰 경제의 블록이 형성되는 것이다. 중국 같은 경우도, 실물경제의 패권을 기반으로 해서 지금 중국 본위의 유라시아 블록을 편성하고자 한다. 라오스, 북한, 네팔, 카자흐스탄은 물론 동유럽까지도 광의의 유라시아 블록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실물 거래를 보면 지난 2년 간 헝가리, 폴란드, 체코의 대중 무역 비중이 매우 늘어났다. 계속해서 유라시아 경제 블록의 편성 과정이 척척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요 경향 중 하나다.  세 번째는 중국, 베트남식 ‘국가관료자본주의의 각광’이다. 당-국가가 자본을 총괄하면서 잉여를 수취해서 적절히 재투자한다. 성장 자체 뿐 아니라 부가가치 체제에서의 자국 위치를 자꾸 올릴 수 있는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다. 당-국가가 시장을 지배하는 체제다. 중국식 체제를 성공적으로 벤치마킹하는 나라는 카자흐스탄, 터키, 헝가리를 꼽을 수 있다. 이를 따라하려다 실패한 것이 버마(미얀마)의 군-국가이다. 버마 군부는 당-국가를 건설할 능력이 없다. 소수민족과 시민의 저항에 부딪혀 통치력을 국토의 상당부분에서 잃은 것이 아닌가 싶다.  네 번째는, 주권과 국경의 절대화다. 코로나 이전에는 국제적 인권 레짐(국제기구의 인권 감시 역할)이라는 것이 있었다. 국경 관리를 통제하려는 시도에도 한계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레짐이 정지된 상태다. 호주의 극우 정부가 최근 채택한 법률-인도에 체류한 적이 있다면 호주 국민이라 하더라도, 제3국을 통해 귀국을 시도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을 부과한다는 법률-은 국제 인권 레짐 차원에서 대단히 부적절하고 기본권 침해이다. 유엔을 위시한 국제 단체들이 이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다. 국경과 국가 주권의 절대화 속에서 국제적 인권 레짐이 무력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직력의 약화, 그러나 불안노동의 조직이 희망  우리의 투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프랑스의 황색 조끼 투쟁 같은 것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런 투쟁들은 파편화된, 조직이 되지 않은 투쟁이었다. 강렬하고 치열했지만 지속성이 떨어졌다. 집권자로 하여금 일부의 악법을 철회하거나 약간의 양보를 하게끔 만들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인민의 투쟁력은 여전히 크고 신자유주의 파산 이후로 오히려 더 강해졌으나, 조직력이 너무 약하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반자본 운동의 큰 희망 중 하나는 불안노동의 조직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새로운 무산계급-불안노동계급-이 나타나 본격적인 투쟁 무대에 진입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이 계급의 투쟁력이 어느 정도 조직화되면 반자본주의 운동의 희망이 될 것이다.  한데, 새 시대의 가장 큰 위험도 있다. 양극화 속에서 궁핍화되는 대중들이 급진화될텐데, 그 방향이 오른쪽으로도 간다는 것이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가장 궁핍한 노동자, 특히 실업자들이 가장 많이 투표하는 정당이 국민전선이다. 프랑스 같은 경우 정치적으로 육체노동자의 표 절반이 국민전선으로 간다. 좌파는 고학력 중간계급의 표에 기댄다. 매우 위험한 상황. 독일은 연립내각 위주의 중도정치가 되겠지만 프랑스는 극우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유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것이다.  희망은 있다. 한국의 미얀마에 대한 연대에서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을 본다. 미얀마 사태는 장기화될 것이고 실질적 도움을 주기 어렵겠지만 상징적, 심정적 연대의 정서가 돈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한국은 이미 국제연대가 일상이 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한 것 아닌가. SNS 시대의 긍정적 일면이다. 우리는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국가의 위치가 강력해지며 국가가 인민을 탄압할 여지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들의 애정을 보면 희망도 엿보인다. 감사하다.

Date 2021.09.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정세 : 생태사회주의의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정세 : 생태사회주의의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정세 : 생태사회주의의 과제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0 | 조회 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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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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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2 | 조회 3667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현장 :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500일 길거리 농성의 대답 이상덕 노동당 서울시당위원장  아시아나 케이오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 되고 길 위에서 투쟁한 지 벌써 500일이 넘었습니다. 김계월 지부장 동지, 박정남 부지부장 동지, 김정남 전지부장 동지, 기노진 감사 동지, 김하경 동지 다섯 분의 동지들은 복직을 위해 서울고용노동청을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투쟁문화제를 열고 안 해본 투쟁이 없을 정도로 복직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 중 두 분은 길 위에서 정년을 맞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수백조원 규모의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자본가들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여기에는 기간 산업이라는 이유로 항공 산업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을 받은 항공 산업에서 4,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아시아나 케이오는 해고 회피의 어떠한 노력도 없었습니다. 300여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 퇴직 신청과 무기한 무급 휴직 시행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희망 퇴직과 무급 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민주노조 조합원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2020년 지노위, 중노위에서 부당 해고 판정이 났습니다. 지난 8월 20일 서울 행정법원 심판에서 부당 해고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럼에도 사측은 법률회사 김앤장과 1억 원 이상 변호비를 지출하며 대법원 소송까지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현시점에서 복직 판결 이행 비용은 2억 + α원이지만, 소송 등으로 3억 원 가량 부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9월 3일 사측에서 제시한 첫 번째가 <해고자에 대한 복직 이행, 단 복직한 당일 퇴직을 전제로 함>이었습니다. 정말 악랄한 부당 노동 행위이고 노조 말살 행위입니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초기 한 개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 지키십시오. 아시아나 케이오 부당 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현장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법조차 지키지 않는 금호아시아나재단에게 엄중하게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당 서울시당은 코로나를 핑계로 자행되는 대량 해고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나아나 케이오지부 해고 노동자 동지들이 현장으로 복귀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덧) 서울시당은 2021년 1월부터 공대위에 참여하며 아시아노 케이오 복직 투쟁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1일 기노진 감사 동지가 노동당에 입당하셨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아시아나 케이오 노동자들 복직까지 끝까지 투쟁!!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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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2 | 조회 3679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사람 : 밥연대술사 - 현은희  투쟁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밥 한 끼에 연대의 마음을 담아내는 현은희 동지를 만났습니다.  ‘저희 복직됐어요.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이제 집회 안 해도 돼요.’라고 적힌 편지를 받았을 때, ‘연대가 저분들에게 정말 희망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너무 좋은 거에요. - 인터뷰 中에서 - 안보영, 적야 편집위원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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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3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3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3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0 | 조회 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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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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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도서 : 19호실로 가다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도서 : 19호실로 가다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도서 : 19호실로 가다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1 | 조회 3971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도서 : 19호실로 가다 19호실로 가다 윤정현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그 작가가 어느 해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뉴스에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자연스럽게 <런던스케치>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18편의 단편 중에 마음에 남은 작품은 '참새들'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참새들'은 어느 카페의 아침 풍경을 묘사한 이야기인데, 아기 참새의 성장과 자식의 독립을 지지하려고 노력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같이 엮어내었습니다. 성장의 이야기는 늘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동네 여성주의 모임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한 권의 여성주의 책을 선정해서 같이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는데 돌아가면서 책을 추천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라는 책을 추천해서 같이 읽었습니다. '19호실'이라는 단어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도리스 레싱이라면 뭔가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19호실로 가다』는 11편의 중·단편 모음집이고, '19호실로 가다'는 이 책에서 가장 긴 소설입니다. 도리스 레싱은 1994년에 이 단편집을 내면서 수록된 이야기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서문에 적었습니다. 서문만 읽어도 이 이야기들이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 감은 오지만, 그래서 본문을 읽을 때 작가의 도움으로 어떤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가 쉽기도 합니다.  '19호실로 가다'는 자기만의 방을 만든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방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어떤 부분은 공감이 되고 어떤 부분은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하지만, 어느 나라건 (배경이 영국입니다.) 어느 시대건 (4-50년 전 이야기이죠)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 삶이란 다 비슷하다는 것이 내가 이 글을 읽고 내린 결론입니다. 작가는 오히려 자신도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을 쓰게 된 건, 「우리 시대 많은 여성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장소에서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여자들의 이야기 뿐 만 아니라 세대 간의 이야기, 또 남자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4-50년 전 영국 이야기라 남의 이야기처럼 가볍게 즐길 수도 있지만, 그런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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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1 | 조회 3691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영화 :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피비린내 나는, 하지만 통쾌하지는 않은 남미 서부극 <바쿠라우> 박수영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브라질 북동부의 페르남부쿠 주의 외딴 도로를 달리던 급수차는 빈 관이 잔뜩 실려 있는 사고난 화물차 옆을 지나치게 된다. 급수차가 향한 곳은 댐으로 막혀진 작은 강으로, 그들은 이 댐으로 인해 물 공급이 끊겨버린 작은 마을 바쿠라우에 쓸 물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이다. 물을 채울 곳을 찾아보던 일행에게 댐을 지키던 누군가가 총을 쏘고, 이들을 황급히 몸을 피한다.  이들이 출발한 마을인 바쿠라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는 무장한 무리들에 의해 봉쇄되어 있으며, 댐을 지어 물 공급을 막아버린 시장은 선거 때에만 찾아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료품과 마약성 진통제, 헌 책들을 적선하듯이 던져 놓고 사라진다. 인터넷 지도에서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소형 UFO가 마을 주변을 맴돌며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한다. 급수차는 총격을 받아 구멍이 뚫리고, 마을 외곽의 말 농장은 정체 모를 습격을 받아 몰살된다. 농장의 상태를 확인한 후 황급히 마을로 돌아가려는 두 청년의 앞에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바이커 두 명이 나타나고, 이들이 목격자를 처리하는 과정은 UFO를 통해 낯선 무리들에게 전송된다. 급작스러운 습격을 마주하게 된 주민들은 물 공급을 끊어버린 댐을 파괴하려 한다는 혐의로 현상수배된 범죄자 룽가와 함께 이 침입자와 맞서게 된다.  지난 9월 2일 개봉한 영화 <바쿠라우>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줄리아누 도르넬리스 공동 감독의 브라질 영화이다. 황량한 브라질 북동부의 작은 마을 바쿠라우에서 펼쳐지는 존재를 지우고자 하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웨스턴, 그 중에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난다.  세르지오 레오네를 필두로 하는 일군의 이탈리아 감독들이 1960년대 이후 양산해낸 ‘스파게티 웨스턴’이 존 웨인, 존 포드로 대표되는 정통 웨스턴과 구별되는 지점은 인물과 무대이다. 선악이 분명한 정통 웨스턴과는 다른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 주역이라는 점, 미국 원주민 (인디언)이 주로 등장하는 미국 서부가 아닌 텍사스 – 멕시코 국경 분쟁의 주무대인 미국 남부가 배경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감독들은 무솔리니 독재를 경험하며 좌파적 성향을 진하게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스파게티 웨스턴 역시 좌파적 경향이 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1910년의 멕시코 혁명 (사파타 혁명)의 영향으로 '좌파적 민족주의' 흐름도 곳곳에 드러난다. 특히 부패한 군부와 결합한 미국 '백인'들에 대한 민중들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저항이라는 서사는 대부분의 스파게티 웨스턴, 특히 사파타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하위 장르인 '사파타 웨스턴'의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같은 남미의 국가인 브라질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 역시 이런 스파게티 웨스턴의 문법과 배경을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본적인 인프라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표만 가져가면 된다는 태도의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게 되자 아예 마을 자체를 송두리째 없애 버리려고 하며, 영화에서 명백하게 '미국인'으로 호칭되는 외부의 침입자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브라질 남부의 '유사 백인'들이 저지른 월권 행위에 총질로 보답한다. 정치인과 결탁한 이들 외부 세력이 본격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사냥'하기 시작하자, 마을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에서 서로 반목하고 싸우던 마을 주민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초와 마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오래된 무기들을 통해 이들 외부 세력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이런 ‘맞서 싸움’은 스파게티 웨스턴 특유의 핏빛 자욱한, 그러나 전혀 통쾌하지는 않은 건조한 화면으로 다가온다.  주민들이 몇 번 씩 반복해서 “보고 가라”고 말한,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마을 역사 박물관의 실체는 영화 말미에 확인할 수 있다. 바쿠라우 지역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반란과 진압, 투쟁의 역사를 모아 놓은 이 박물관은 그 자체로 이 영화를 설명해 준다. 그토록 많았던 저항을, 그토록 잔인하게 진압해 왔을지라도, 또다시 저항을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에든, 또는 그보다 더 먼 미래에든.

Date 2021.09.29  | 

By 미래에서 온 편지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9.29 | 추천 0 | 조회 3610
■ 미래에서 온 편지 37호(2021.09.) □ 사진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 현장 적야, 정상천 편집위원  9월 11일 정기당대회. 제법 무거운(?) 안건으로 회자되었던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준비위원회 구성의 건‘이 상정되어 있었다. 많은 격론이 예상되는 상황. 당대회 준비팀의 바쁜 움직임과 진지한 집중력은 당대회장의 긴장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권이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 슬로건 아래 당대회가 시작되었다. 각 지역과 부문에서 추천된 당원들에게 상장이 수여되었고, 안건 토론을 위한 출정식(?)을 신호로 본 대회가 시작되었다. 당대회가 끝나고 슬로건은 이제 과제가 되었다.

Date 2021.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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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 편지를 띄우며
미래에서 온 편지 | 2021.08.30 | 추천 0 | 조회 4621
■ 미래에서 온 편지 36호(2021.08.) □ 편지를 띄우며 안부를 묻는 것이 조심스러울 만큼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확산하고, 폭염에 이어 폭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범람하기 전부터 이미 파괴되고 있던 우리들 일상 곳곳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들 일상을 유지해오던 노동의 가치는 더욱 분명해졌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은 나아진 것이 없고, 착취의 강도는 더욱 커졌습니다.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이러스 때문에라도,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는 까닭입니다. 이 투쟁의 중심에 노동당 당원이 있습니다. 또한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와 노동당의 미래는 결국 바로 지금 여기 현장의 투쟁 속에 있고, 투쟁을 통해 만들어야 합니다. 해서, 미래에서 온 편지는 이번 호부터 ‘현장’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주요 투쟁 소식을 전합니다. 첫 ‘현장’은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과 승리입니다. 9월 11일에는 2021년 노동당 정기당대회가 열립니다. 현장의 투쟁들을 체제전환을 위한 정치투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노동당은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하고 결정합니다. 기획 편에서 자세한 소식을 전합니다. 당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위원회 김석정, 나도원, 안보영, 이용규, 적 야, 현 린   [제목을 누르면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편지를 띄우며   □ 기획 : 중심에 서다 - 2021 노동당 정기당대회를 소개합니다   □ 특집 :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 정세 : 팬데믹 바이러스의 ‘기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   □ 현장 : 부산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와 좌파의 역할   □ 사람 : 현장을 바꾼 30년의 실천과 연대 - 고미경   □ 역사 : 경성의 재발견 02   □ 도서 : 마르셀 모스 [증여론]   □ 영화 :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감춰지고 사라지는 노동에 관한 관찰기   □ 사진 : 자본 범람 지대

Date 2021.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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