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7 노동당 부산시당 평등문화 침해, 관계폭력 사건을 공론화합니다.

by 은설 posted Feb 2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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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관악당협 전은창 (은설) 입니다. 글은 피해자 본인이 작성했으나 현재 당 활동이 원활치 못한 상황에 처해 있기에 대신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당원 권보현입니다.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빛 하나 없이 깜깜하고 막막한 터널을 끝없이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사건으로 인해 스무살에 관계를 맺고 유지했던 사람들과 멀어졌습니다. 난생 처음, 저의 정당한 문제제기가 묵살당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한 달 조금 덜 되는 시간 동안 몰아치듯 겪은 이후로, 저는 줄곧 까마득한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기억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무섭습니다. 저의 문제제기를 하찮은 것으로 여겼던 사람들에게 다시 문제제기하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하지만 제가 피해경험을 털어놓았을 때 지지해준 친구들과 사건 처리를 도와주겠다는 분들에게 힘을 받아, 글을 써봅니다. 글이 긴 점 미리 양해 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십시오.

 

201588일부터 11일까지, 주변 사람 몇몇의 권유로 노동당 청년학생위원회에서 주최한 청년정치학교에 참여했습니다. 사건 당일이 행사 마지막 날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하루의 일정이 마무리된 후 여성 숙소에서 진행된 페미하우스에 함께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 자리엔 대구, 부산, 서울 등 여러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함께 앉아있었습니다.

 

저는 이야기 중에, 다른 지역은 상호 존대/반말하며, 연장자라고 해서 무조건 존댓말로 대우받는 등의 일이 덜한데, 유독 부산은 이런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다, 권위주의와 나이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너무 없다,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낀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즈음부터 부산에서 오신 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던 듯합니다. 제가 이야기를 튼 후, 부산에서 활동했던 씨가 가세해 부산이 유독 심한 것 저도 알아요, 많이 힘들죠.”라고 말을 받아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고민과 속상함에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 감격스러웠던 저는, 제가 부산에서 활동해오며 부당하다고 느꼈던 일들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반말을 한다든가, 화장을 안 하면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해보이냐, 아프냐.”라는 식으로 너무도 서슴없이 이야기한다든가, 일상적으로 외모 지적을 한다든가, 매사 권위적이라든가. 그 와중 제가 문제적이라 느끼고 있던 부산시당의 활동가 중 한 명인 장서현 씨가, 불쑥 지금 보현이가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부산시당의 활동가 중 누군가는 보현이가 이 얘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이에 씨와 씨는 그게 지금 무슨 소리냐, 부당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입을 왜 막으려고 하냐, 고 반박했습니다.

 

이후 페미하우스를 제안했던 김윤영 씨가 그 자리에서 저와 장서현 씨 간의 언쟁을 빨리 수습하고, 상황을 일방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본인이 나섰던 것도 의아했지만, 김윤영 씨가 나서서 사건을 정리하려 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저는 더 의아했습니다. 김윤영 씨가 선배 활동가격 되는 사람인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 때 김윤영 씨는 장서현 씨가 했던 말대로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을 듣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자.” 라고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페미하우스에 참여한 사람들 중 부산에서 온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전반적으로 저의 이야기에 동의하고 공감해주었기에, 제 의아함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귀가하는 봉고차에서부터 저와 씨를 대하는 다른 부산 사람들의 태도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습니다. 저와 씨를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식사를 할 때 따돌린다든지 말입니다. 귀가 중 휴게소에 들렀을 때, 장서현 씨는 저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장서현 씨 본인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며 이제부터는 언니라는 말을 떼고 반말을 하라고 이야기해서 그러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캠프에 가서 제가 여태껏 고민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았고, 문제 삼을 만 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쁜 동시에 문제적인 관습을 그대로 따랐던 부산시당의 동지들에게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제가 문제제기까지 한 상황에서 저의 발언권마저 빼앗으려고 한 그들의 태도는 솔직히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고 사람을 도구로 쓰지 않겠노라 매일 말하는 사람들이 저의 문제제기를 듣고 고민의 여지도 없이 제게 등을 돌리는 듯한 모습에, 여태껏 쌓아왔던 관계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음날인 812, 녹색당에서 초청받은 김조광수 씨가 하는 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장서현 씨와 부산시당의 선배활동가들 중 한 사람인 정유진 씨도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두 분 모두 왠지 제게 차갑게 대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정유진 씨에게 말을 걸며, 노동당 부산시당의 마초적인 문화를 같이 바꿔나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정유진 씨는, ‘본인은 항상 준비가 돼 있는데 제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생각 좀 더 제대로 정리해서 오라고 하시더군요.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되어야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본인이 항상 되어있다는 그 준비는 무엇인지, 그렇다면 여태껏 왜 내가 느낄 수 있는 어떤 변화도 없는지 묻고 싶었지만, 위압적인 표정과 말투로 그런 말을 하니 더 캐묻지도 못하겠고, 한편으론 황당하고 무안해서 우선은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 날인 813, 매주 진행하는 생탁 택시 결의대회에서 부산시당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페미하우스가 진행될 당시 제게 큰 힘이 되어줬던 씨와 그 자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유은지 씨가 다가와서, 제게 할 말이 있다고, 그런데 이런 곳에서 할 게 아니라 따로 자리를 내야 할 만큼 중요한 이야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냐, 내용이라도 대충 설명해 달라 청했습니다만 말을 이리저리 돌리며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순간 등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어 문제제기냐고 물으니까, “맞는데하면서 말을 흐리더니, 하지만 너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는 문제제기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 전까지는 막연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느낌이 실체화되는 듯 해 위압감과 불안함,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그 후 결의대회의 뒤풀이 자리에까지 참여했습니다. 정유진, 김진만 씨, 씨 그리고 저, 이렇게 네 명이 앉은 테이블에서 정유진 씨가 크게 소란을 피웠습니다. 어쩌다가 그리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생각나는 것을 적어두자면, 그 즈음 자리에서는 서로의 운동 얘기, 힘든 얘기 등을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받아 저의 이야기를 하자, 정유진 씨는 제게, 본인을 사랑하고 좀 더 솔직해지라고, 문제제기를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고,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앞에서 직접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와 제가 언제나 권력적으로 동등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직접 말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정유진 씨가 소리를 지르며 제게 화를 내셨고, 저는 놀라서 울었습니다. 이에 씨는 정유진 씨에게, 사람이 상처받아서 울고 있는데 어떻게 거기에 소리를 지르며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냐고 맞서 따졌습니다. 정유진 씨는 씨에게,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왔다, 어떻게 감히 내게 소리를 지를 수 있냐, 당신이 나한테 소리 지르면 안 된다, 나이 차이도 열 살 나고 당신이 나이나 운동 경험에서나 나보다 어린데 이럴 수 있느냐.” 이런 식으로 소리 지르면서 줄곧 위압적으로 굴었고, 함께 앉아있던 김진만 씨를 포함해 그 자리의 누구도 그런 정유진 씨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새벽에 먼저 저와 씨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저는 씨 외 같이 술자리에 있었던 부산시당 사람들까지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심각하게 부당한 정유진 씨의 행동을 두고 그 누구도 잘못됐단 말을 보태지 않았으며, 배제가 결국 과 저를 그 공간에서 나가게 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따돌리고 왕따를 시키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며칠 후인 815, 유은지 씨가 저번에 언급한 문제제기 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밤늦게 갑자기 동래역으로 왔습니다. 유은지 씨는 평소에는 제게 일방으로 반말을 했지만 이 날은 서로에 대한 오해가 없게 하기 위해 상호존대를 하자며 존댓말을 썼습니다. 제가 페미하우스에서 한 얘기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문제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선배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시작이었습니다. 추측하기로는 그 선배 중 하나가 김진만 씨였던 것 같은데, 연락을 받을 때 김진만 씨가 우연히 페미하우스에서 제가 문제제기할 무렵 가해당사자로 생각하고 있던 씨와 같이 있다기에 유은지 씨는 김진만 씨와 씨 모두에게, 제가 페미 하우스에서 한 발언들을 모두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씨는 아 이거 내 얘기네, 라고 하셨고, 김진만 씨는 권보현이 한 말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그리고 페미하우스를 처음 제안한 김윤영 씨도 그 자리에서 제가 했던 말들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울산에서 차를 몰고 부산까지 와서 제 행동에 대해서, 이것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유은지 씨 자신과 함께 논의를 했다고 했습니다.

(대리인 첨언: 사실관계 확인 결과, 김윤영 씨가 울산에서 부산까지 가 페미하우스 당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논의한 것은 사실이나 피해자의 발언에 문제가 있었다든지, 피해자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논의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유은지 씨는, 서울에서는 상호 존댓말이나 호칭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부산에선 그런 논의가 없었다며, 어쨌든 나이 많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선배 활동가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제 주장과 그 날 했던 모든 발언들은 부산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명맥을 이어 온 모든 선배들과 열사들을, 나아가 부산의 운동을 모조리 모욕하고 무시한 것이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현 씨를 상벌위에 제소할지 사과문을 쓰게 할지 김윤영 씨랑 논의해봤는데, 아직 그건 정하지 못했다, 이제 당신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과하고 다니면 된다.” 그런 후, 당신이 나한테 존댓말 하고 내가 당신한테 반말 한다고 해서 실제로 내가 당신에게 권위적이라거나 문제적으로 행동한 적이 있었냐고 질문했습니다. 이전에 제가 요청했던 여성주의 세미나, 나이주의 세미나는 할 수 없겠다고도 했는데, 그걸 제안한 제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저를 일방적으로 가해자화하는 몇 시간 뒤부터 저는 무서움과 혼란으로 가득 차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와중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과하고 다니면 된다.”는 말을 기괴하게도 지키려 애쓰는 행동을 보여, 818일 경 장서현 씨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그와 따로 만났습니다. 만난 자리에서 장서현 씨는 유은지 씨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두 분께서 입을 맞추신 것 같다는 느낌을, 김윤영 씨 역시 이 모든 이야기를 전달받고, 저에 대한 따돌림과 관계폭력 가해에 공모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서현 씨는 이에 덧붙여, 한테 유진 선배에게 사과하라고 전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정유진이 선배인데 이 건방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제게 하면서, 장서현 씨와 유은지 씨 두 분 모두 제게 상호존대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문제가 해결됐다는 의미에서 예전처럼 계속 반말-존댓말 하자며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사실 당연히 저는 그들로부터 존댓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로 인해 그 제안은 본인들의 잘못을 깨달아서가 아닌 네가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웠으니 그냥 그렇게 해줄게처럼 들렸고, 저는 그런 분위기에서 무섭고 긴장한 나머지 감히존대해달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련의 사건 이후 유은지 씨와는 개인적으로 자주 만났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알바노조 여성주체가 장서현 씨로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선 저는 그러한 사람을 정하는 데에 있어 조합원과 일절의 협의도 없이 내부에서의 임의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너무도 경악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 당시의 장서현 씨는 페미니스트도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절차에 대해 바로 문제제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유은지 씨가 전해준 얘기로는, 당시 동아대분회 분회장인 박규상 씨가 알바노조 임원급 되는 사람들 중 여성에게 전화 돌려서, 가능하다고 답한 사람이 맡아도 괜찮다고 했고, 그 사람이 장서현 씨 뿐이라 여성주체가 장서현 씨로 정해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유은지 씨는, 당연히 활동을 많이 했고 사람을 많이 알고 있는 오래된 활동가가 그런 것을 맡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얘기했습니다.

 

장서현 씨가 여성주체로 정해지던 날 이전에, 저는 알바노조 연대 집회 중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알바노조의 사람들은 다들 그것을 방조했고, 당연히 사건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상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알바노조에서 연대하러 갔던 집회였고 집회 장소는 하단역이었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저는 큰소리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지만 주변 사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유은지 씨가 무슨 일이냐고 한참 뒤에 물었고 저를 그냥 집회 장소 안쪽으로 데려다주는 정도로만 조치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너무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모두의 관심이 멀어진 채 집회는 집회대로 진행됐고, 알바노조 사람 중 누군가는 심지어 쟤는 왜 또 저렇게 화를 내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받았던 기억 역시 있습니다. 제가 방금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집회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진행되었기 때문에, ‘집회라는 대의에 제 성폭력 사건이 묻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알바노조 사람들에게 따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니 다들 그냥 재수없는 일을 당했다는 정도의 반응에서 그쳤습니다.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서 이후 명확하게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집회 때 외부인으로부터의 공격에 여성이 취약한 게 사실이고 타깃이 되기 쉬운데, 실제로 오늘 사건이 일어났고 외부인이 어떻게 하는 건 막을 수 없어도 그 뒤에 피해자가 확실히 소리를 지르고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렸음에도 대충 넘어가는 주변 사람들 반응은 견디기 힘들었고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정도의 문제제기로 기억합니다. 문제제기 이후, 사건이 있었던 날 밤 유은지 씨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사실이지 않느냐, 자기가 어떻게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 외부인이 가해자라서 사건 처리는 사실상 힘들다, 조직이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어야 했냐 등의 이야기를 전화 너머 그저 듣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거대한 벽 앞에 선 듯 무력감만을 느꼈고, 그 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저는 한동안 모든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상처 입어 참담한 와중 장서현 씨가 여성주체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이제 받을 상처 다 받은 것 같던 생각을 바로 집어넣을 만큼 너무 경악스럽고 절망스러웠습니다. 당시 알바노조의 부산지부장이었던 김진만 씨에게 바로 문제제기를 했지만, 김진만 씨는 그러면 보현이 네가 맡을래?’라고 무책임하게 대꾸했습니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반응 앞에서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다는 생각에 멍해졌습니다. 여성주체를 다시 뽑고 사과도 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어떤 연락도 대응도 없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깨달았습니다. 조직의 일원인 제가 어떠한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저처럼 경력도 없고 능력도 증명되지 않은 사람의 반발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의미도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이라는 걸.

 

당시 저의 삶의 중심에는 운동만이 있었고, 학교에서도 운동하는 사람 외에는 관계맺은 친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제가 믿었던 제 세계의 전부가 통째로 저를 내팽개치고, 저를 날카롭게 적대한다는 감각, 완벽하게 고립되고 배제당했다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내가 그간 쌓아왔던 인간관계가 이렇게 모조리 망가지는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극심한 자살사고로 고통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제 생각에 대한 확신은 있었습니다. 권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에게 일방적으로 반말하는 일과, 나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틀렸다는 확신은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부산시당 사람들 모두가 제 생각이 틀렸다고 하니, 정말 무섭고 소름 돋게도, 저도 모르게 어쩌면 그들 말이 맞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생각이 맞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시간이 계속됐습니다. 이후 저는 그들과 멀어졌고, 권위주의와 여성주의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실천하고 싶어서 다른 단체를 찾다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전에 알던 사람들과 애써 멀리하며 살던 중, 작년 말 갑작스럽고 난데없이 전화와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습니다. 장서현 씨와 정유진 씨가, 얄궂은 우연인지 뭔지 비슷한 시기에 제게 사과한다며 먼저 연락해온 것입니다. 장서현 씨는 텔레그램으로, 정유진 씨는 문자와 전화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두 분 모두 제게 두서없이 사과 아닌 사과를 전달하셨는데, 모두 하나같이 이후 생각을 해보고 결론을 내렸는데, 내가 많이 잘못했으니 미안하다.”는 일방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였습니다. 정유진 씨의 경우, 그 분에게 전화가 온 것을 보고 도대체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것인지, 욕을 퍼붓지는 않을지, 페이스북에 그간 부산시당에서 겪었던 일을 썼던 것에 대해 화를 내지 않을지 두렵고 피하고 싶은 감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페이스북을 보니 제가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연락을 했다고, 전화로 대화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괜찮다고 했더니 전화가 왔고 제 페이스북을 보고 걱정이 되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본인도 지금 처리중인 사건이 있고 힘들다며 나도 그렇게 힘들어 보여서 연락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작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태까지는 본인이 저를 위해서 한 충고였고 그래서 그것이 정당했다고 합리화를 했지만 이제는 본인이 그게 틀렸음을 인식했고 사과하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당황했었던 것 같고 기억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 부산에 돌아오면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했고 저는 그러자고 하고 통화는 끝이 났던 것 같습니다.

 

일방적으로 본인이 내적 결론을 내린 후 연락해온 것도 그렇지만, 갑자기 그가 저에게 전화를 건 것이 매우 폭력적이고 위협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저와의 관계에서 그는 언제나 본인이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확인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그냥 좋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서현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쪽에서 문제제기하거나 사과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버린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사과했으면 됐으니까 이제 따지지 말라는 느낌이었고, 매우 부적절하고 기분 나쁜 연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같은 시당에서 활동할 사람이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넘어가자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만큼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을 대할 때 저의 태도는 전과 같이 저자세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움츠러든 채 웃는 낯인 양 그들을 대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닫습니다.

 

그랬던 게 몇 달 전인데, 최근에는 제 문제를 저 없는 자리에서 논의하며 저를 문제적이라 이야기했다던 김윤영 씨가 여성위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된 것을 보고 나서 다시금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그 일을 겪고 난 후, 사람들이 그 일로 뒤에서 저를 비난한다거나, 활동을 함에 있어서 정당하지 못하게 배제한다거나 하는 상황을 늘 두려워했고,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줄곧 눈치를 봐왔습니다. 지금 새로 관계 맺는 사람들과 만날 때도 그런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한참 전의 일이지만, 저의 시간은 여전히 2015년 여름에 멈추어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러한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믿었기 때문에 운동사회에 머무르기로 다짐했는데, 그 다짐이 곧게 뿌리내리기도 전에 저의 존재와 신념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그것도 동지라고 생각하여 믿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당시의 충격과 고통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이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채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시간이 흘러 20172월이 되었지만, 가해자들은 이것이 왜 문제적인지, 이 가해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에 대해 일말의 자각조차 없는 듯합니다. 가해자들은 본인들이 몸담은 당 내 나이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해 전혀 성찰하고 반성하지 못하였으며, 이로써 조직 내 억압과 부조리를 유지재생산하고 강화했습니다. 겨우 용기 내어 이를 문제제기한 저를 1년 반 동안 매도하고, 배제하고, 찍어 누르고, 밀어냈습니다. 그런 가해 끝에 메시지 몇 개, 전화 한 통이면 일이 해결되는 양 끝까지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당한 세상을 바꾸고 억압과 폭력에 반대하고 저항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들의 모임 안에서 억압과 폭력을 재생산한다면,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이 세상을 아프고 고통스러운 곳으로 만드는 억압자와 기득권자들에게 매섭고 떳떳하게 일갈하고 저항할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제 죄를 제대로 뉘우치는 법조차 알지 못하는 무능한 가해자들이 모인 운동조직을 신뢰하여 지지와 연대로써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제 사건 그리고 제 사건과 유사한 경우, 많은 가해자들은 스스로의 가해를 가해가 아니라고 여기거나, 가해라고 어렴풋이 인지하고는 있더라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가볍게 사소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기까지의 과정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관계폭력입니다. 관계폭력이란 관계 내 권력 구도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폭력을 일컫습니다. 모든 관계는 필연적으로 권력차를 전제합니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쪽에서 이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한다면, 이를 문제라 인지하더라도 해결할 의지를 세우지 못하거나, 문제라 생각할 여지를 스스로 차단해 은폐하게 될 것입니다. 제 사건의 가해자들이 그랬기에, 이 사건은 평등문화 침해 사건임과 동시에 관계폭력 사건입니다. 2015년 여름 이후 줄곧 저를 힘들게 한 노동당 부산시당 활동가들 및 현 노동당 여성위원장은 관계폭력의 가해자고, 2차 가해자입니다. 스스로의 가해를 외면하고, 그것을 사소하며 별 것 아닌 양 축소하고 방치하는 것은 모두가 익히 아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행동입니다.

 

운동사회 내 패착과 부조리를, 그 사회의 일원인 당사자 활동가들이 방관하고 은폐했을 때 어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어떤 해악이 재생산되는지 저는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운동사회 내 성폭력과 조직 내 반여성주의적 문화로 인해 지쳐 소진되고 나가떨어진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이야기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아득합니다. 구태여 멀리서 찾지 않아도, 당장 작년 이맘때쯤 당 내 반여성주의적 분위기와 이로 인해 반복되는 젠더-섹슈얼리티 폭력을 견디다 못해 많은 여성당원들이 탈당했습니다.

 

확신하건대, 이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 비단 저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하지만 저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가해자들로 인해 고통받고, 가해자들의 반복적인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문제제기를 후회하며 모든 것이 괜찮은데 나 혼자만 예민한 것이 아닌가, 사실 그들 말대로 문제를 일으킨 잘못된 사람은 나 하나뿐이며, 나 하나만 조용히 사라지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지지 않을까생각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부당한 고통과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침묵의 유혹을 뿌리치고 저항했던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인해 변화해 왔습니다. 그것은 당과 운동이 제게 가르친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를 포함해서, 그러한 우리들이 옳다고, 우리가 잘못했고 문제의 원흉이라는 가해자들이야말로 틀렸다고 몇 번이고 강변하고 싶습니다.

 

작년에 집단적으로 탈당했던 그들처럼 저 역시 지칠 대로 지쳤고, 이곳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조직에서 상처받아 그득해진 환멸감을 안은 그대로 저는 이곳을 떠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잠시 탈당을 하기도 했지만, 완전히 마음을 돌려 연을 끊을 수는 없어 다시금 당에 들어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없던 일처럼 기억 속에 묻고 살아갈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유의미한 인간관계의 시작과 끝이 이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이곳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나마, 미약하게나마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나가떨어질 만큼 지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끔찍한 피해의 기억과 가해자들의 존재 자체로 인해 저는 여전히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완전히 지쳐버리기 전에 남은 힘을 끌어 모아, 이 부당한 수직적 위계질서와 권위주의적이고 나이주의적인 조직의 문화를 바꾸고자 합니다. 마지막 용기를 가다듬어 공론장 위로 저의 피해를 공유하는 마음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부디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싸우고 저항하면 무엇이든 더 좋게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을 함께 만들어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요구사항

 

가해자들에게 요구합니다.

 

하나, 정유진, 유은지, 장서현, 김진만, 김윤영 씨는 본인의 가해 및 2차 가해 행위에 대한 사과문을 작성, 당 게시판 및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개인 SNS에 게시하십시오.

 

하나, 정유진, 유은지, 장서현 씨는 각자의 공식적 활동 전반을 6개월 간 그만두십시오.

 

하나, 노동당 부산시당 차원에서 평등문화(반나이주의, 반권위주의) 교육을 진행하고, 교육 내용과 사건 당시 부산에 소재했던 가해자들의 교육 이수 확인이 가능한 자료를 피해자에게, 피해자 대리인을 경유해 제출해 주십시오.

 

하나, 노동당 부산시당 차원에서 성폭력 사건 대응 교육을 진행하고, 교육 내용과 사건 당시 부산에 소재했던 가해자들의 교육 이수 확인이 가능한 자료를 피해자에게, 피해자 대리인을 경유해 제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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