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 - 갈매기가 많이 아프다

by 기마봉 posted Jun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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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장에 갔다가 갈매기 소식을 들었다. 하혈을 너무해서 응급으로 강릉 아산병원으로 실려갔단다. 

 

"미친년......내 그럴 줄 알았지. 그리 술 처먹더니....잇빨 빠진년이 빨래로 처먹더니......"

 

나는 이미 그녀의 결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작년 말인가, 술이 취해 집에 가다다 공사장 쌓아놓은 목재에 걸려 넘어져 이빨이 빠져서 치과에 다니면서도 빨대로 술을 처먹던 그녀였다. 그녀가 처음 와서 술집에 다닐 때, 손님이 없으면 내가 대신가서 매출도 올려주고 그녀에게 팁도 주었고, 가끔은 대낮에 그녀와 술도 마시던 처지였다.

남자를 잘 못 만나, 남자의 아내에게 머리채 잡혀서 시장 골묵길을 개 끌리듯 끌려다니고, 간통으로 고소 당하고, 그러다가 그 남자에게 돈 떼이고, 그것도 모자라 얻어터지고, 두 년놈들에게 어지간히도 고통을 받았을 때도, 나는 그녀와 함께였다. 참으로 많은 조언도 해주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5년 전인가, 그녀가 묵호항에 나타났다. 방파제 끝에서 어민들과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가 묵호항 술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 술집에 들락거리던 나와 인연이 되었다. 자기 말로는 부산 영도 출신이고, 오빠도 자갈치 시장에서 횟집도 하고, 형제 자매가 많다고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오빠 일이나 도와주라고 했다. 그녀는 내 말을 무시했다. 내가 해주었던 삼십대 후반의 그녀의 처지에 꽤 쓸만한 조언들이 깡그리 무시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그녀에게 짐작 가는 일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부터 엄청난 학대를 받아왔을 거라는. 그래서 사람을 무척 그리워 한다는. 그래서 되먹지 않는 놈에게 정을 주고 떼지 못하는. 전문적으로 뭐라던가 외상후 무슨 증후군인가 하는. 학대 증후군인가 하는.

그녀의 말은 항상 갈팡질팡했고, 그는 그런 그녀에 대해 어렴풋이 내 나름의 짐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오빠로 나를 잘 따랐다. 가끔은 나를 실망시켜 야단도 치면서 그녀와 술 친구로 5년을 지냈다. 그러다가 최근에 목욕탕 떼밀이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갈매기 몸이 말이 아니래요. 삼십대 얘가 몸이 칠대 할머니 같다니요."

 

그때, 나는 이제 갈매기가 죽을거라고 판단했다. 죽을 줄 알면서 스스로 자기의 몸을 술로 학대하는 거라고.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술을 마시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 마무리로 이곳 묵호항으로 결정했다는.

 

나는 술을 마시며 새벽녁에는 글을 쓰면서, 마치 갈매기 그녀처럼 이곳 묵호항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세상에 대해 애착을 가지다가,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내가 세상을 버렸다. 내가 세상을 버렸기에 나는 너무나 편안하다. 갈매기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의 돈을 떼먹고 멀리 떠난 되먹지 못한 그녀의 남자를 잊지 못하는 그녀다. 정이 그렇게 많은 그녀는 온갖 세상살이에 상처 받고 살아왔나보다. 그래서 훌훌 내려놓았나보다. 그래서 나는 빨대로 술을 먹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써 놓은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데체로 수긍을 하면서도 현실직이지 않다는 반응이 꽤 있다. 탁상공론, 이론적,그래서 어쩔건데, 말은 맞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 땅 파먹고 살자는 거냐, 심지어 극좌파라고 하거나 무식한 좌파들로부터는 극우파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또 한쪽에서는 너무나 현학적이다. 말 장난 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 때 나는, 그들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을 했으나, 지금은 거의 무시하는 편이다. 그들의 의견을 무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자존감 때문이다. 나의 삶의 방식과 철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삶의 태도가 간혹 그들로 인해 상처를 받고 스스로 자책을 하는 경우가 가끔은 있었다.

그래서, 내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 그런 거였다.



그들의 반응 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 있다. \'급진적이다!\' 라는 말.

아마, 내 글을 급진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의도 역시 위에 열거한 그런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다만 그는 급진적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이야기 했을 것이다.

급진적이라는 뜻의 영어, radical 의 어원은 root 이다. 뿌리, 즉 근본적, 근원적 이라는 말과 뜻이 통하는 말이다. 즉, 급진적이라는 말은 뿌리로 돌아가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급진적이라고 말한 사람은 마치 나를 극좌파나 극우파로 몰아가는 사람들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을지는 몰라도, 사실 그 본래의 의미는 가장 온순하고 순리적인 뜻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혹시, 내가 그를 오해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바이다.



이명박 정권 초기, 촛불 시위가 있었다. 너무나 엄청난 데모였기에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는 줄 알았다. 나 역시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약간은 들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바꿔지기는 커녕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설사, 그 때, 데모에 성공하여 이명박 정권이 무너졌다고해도 내 판단으로는 세상은 절대로 바꿔지지 않았으리라고 단언한다.

좌파들은,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잘 살게 되고 세상이 천국으로 변할 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제대로 대우를 받으면 행복한 나라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한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환경이 보전되면 우리의 삶이 비록 약간은 불편하지만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세상이 되면 제대로 된 사회가 되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행복해 질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절대로 바꿔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우리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멀리 와있다. 마치, 한쪽을 막으면 다른 한쪽이 터지듯이, 장마철의 무지막지한 홍수처럼 문제점들은 널려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혼란스러워 무엇이 문제인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다.

진보적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글은 가끔은 그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방향을 못 잡고 있다고 건방진 소리까지 했다. 내가 그렇게 오만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그런 단기적인 처방만으로는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점을 절대로 잡을 수 없다는 노파심과 안타까움에서 였다.



진보신당의 아이콘이었던 노심조가 배반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들의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 만큼은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방법이 어떤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정치는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오로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아야지만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딜레마가 숨어 있는 것이다. 현실 정치인이었던 그들은, 바로 그 현실을 쫒아갈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저지른 짓들은 너무나 괘씸하지만 정치라는 양아치 짓거리를 잘 알고 있기에 그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법과 제도로서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진보정치 운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 없다. 물론, 법과 제도로서 어느 정도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 가지는 한계성은 너무나 명백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노무현 정권의 대표적 치적 중에 하나라고 여겨졌던, 노인복지요양사 제도(정확한 명칭은 모른다), 노인복지와 여성 일자리 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절묘한 제도였다고 떠들썩 했었다. 나도 참으로 실정을 한 노무현 정권이 했던 일 중에 그 나마 괜찮았다고는 인정을 한다.(아마 실패하지 않은 정권은 없을 겁니다) 이명박 정권에 와서 그에 대한 예산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그 찬란한 빛은 많이 바래졌지만.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노인복지와 여성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주부들의 노인요양사 일은 대단히 인기를 끌었다. 비록 생계비에도 못 미칠 적은 액수이기는 했으나 주부의 수입으로 가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었기도 했고, 여자들 스스로도 봉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서 여자들의 불만이 하나 둘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불만이, 노인들의 성희롱이었다. 실제로 아내의 친구도 요양사로 일하다가 그것 때문에 그 일을 그만 두었다. 노인들 도우러 집에 들어가면, 포르노 테입을 같이 보자고 하던가, 심지어 육체적 요구까지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정신 나간 노인네는 극소수 였겠지만, 나는 여기서 법과 제도 가지는 한계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정신 나간 노인네는 왜 그런 얼토당토 않은 짓을 했을까? 자신을 도와주러 온 여자에게 왜 그런 인간 이하의 짓거리를 했을까? 그 노인은 지독히 성욕이 강해서일까? 그 노인은 전혀 도덕적이지 못해서일까? 두 가지 다 맞는 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 더한 문제점이 있다. 그것이 바로 법과 제도가 가지는 한계성이라는 거다.

얼마전, 농촌 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 동네에 혹시 돌보지 못한 노인네가 있다면, 동네 아주머니 중에 누군가가 그 노인네를 돌보았거나, 여자들이 돌아가며 교대로 그일을 했다. 과연, 그때도 노인네 중에 하나가 그런 엉뚱한 소리를 했을까? 아마, 성욕이 지독히 강했거나 도덕심이 희박한 노인네는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노무현 정부시절의 노인네가 알고 있었던 것이 있다. 자신들 도우러 온 여자는 돈을 받고 온 여자라는 것이다. 그것도 눈 먼 돈이나 다름없는 나라 돈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노인네도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자신을 도우러 온 여자는 자발적으로 진정으로 자신을 도우면서도 돈 한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진심으로 자신을 가여워 한다는 것이다. 그 때, 아무리 성욕이 강하고 천덕꾸러기 노인네라 할지라도 그런 정신나간 짓거리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법과 제도가 가지는 한계점이고, 자본이 가지는 천박함이라는 거다. 과거, 6. 25가 끝나고 그렇게 가난하고 못 살던 시절, 굶어죽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동네 방네 거지들이 득실거렸지만, 그들이 먹고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사회복지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는 요즘이 더 위험하기도 하고, 특히 정신적인 소외는 노인 자살률을 세계최고로 기록하고 있다.

국가의 제도가 또는 자본이 오히려 가장 아름다워야 할 복지를 더럽히고 말았던 것이다. 국가의 잘못은 이것 말고도 수도 없이 많다. 그 중 최고를 자랑하는 것은, 인민들이 국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불안함을 쇄뇌시킨 것이다. 북한 정권이 인민들에게 한 쇄뇌는 엽기적이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전 세계 어느 국가라도 그렇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냥 내버려두면 지들끼리 잘 살텐데, 괜히 그드을 가두워놓고 법을 만들고 돈을 걷고 교육을 시키고 말을 듣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고 살인을 저지르고.......

공동체가 살아있던 시절의 마을 자체 복지의 형태가 곳곳에 남아있고 마을 노인네들의 증언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공유지다. 서낭당은 마을의 토착신을 모시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상여를 보관했던 곳이기도 하다. 서낭당 부근의 땅은 대체로 마을 공유지였다. 그 땅에 농사르지어 마을에서 못 먹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공유지를 전부 국유화해서 자산 관리 공사라는 국영기업체를 만들어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오히려 법과 제도의 힘이 미약하면 할수록, 인민들의 자체 관습법은 그 힘을 발휘한다. 국가는 마을을 황폐화시키고 사실 가족 관계까지도 무력화 시켰다. 국가의 제도와 법은 공동체를 분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으로 원자화 시켜서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을에 남아있던 아름다운 전통과 관습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일이기도 했다. 그 증거는 현재 중국이라는 나라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과거 중국의 중앙 정부는,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던 소수 민족들을 전부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스스로 살라고 자치제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자치제도의 근간은 마을이었다. 마을 족장의 판단과 마을 자체의 회의를 거쳐서 모는일이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은 막강한 자본력에 힘 입어 중국 변방에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고 그곳에 막강한 군대를 파견하여 그들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마을 공동체에 쫒겨난 부족들은 도시에서 일용직 근로자 민공으로 전락을 하고 말았다. 만약, 그들의 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동네에서 아무런 두려움과 불안을 모르고 행복한 생활을 했음이 틀림없다.



임진왜란 때, 겁쟁이 선조임금을 대신해서 나라를 관리했던 인물은 유성룡이었다. 가장 무능했던 조선의 임금 중에 선조시대에 가장 많은 인물들이 포진했다는 것은 아이니컬 하다. 아마, 조선의 유명한 재상의 반 이상의 선조시대였을 것이다. 유성룡이 임진왜란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징비록\' 이다. 징비록을 보면, 왜군이 서울도성을 함락했을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임금이 있을 때보다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다. 서울 도성 안에는 임금을 비롯하여 고관대작과 관리들 양반들이 득실 거렸는데, 그들이 전부 도망가고 나자 머리를 굽신 거릴 누구도 없기에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왜군들이 조선민들에게 난행을 하는 것이 군법으로 엄격히 지켜졋다는 것이 정설이다. 선조가 북으로 도망을 가다가 압록강 앞에 왔을 때 선조는 조선을 버리고 중국으로 도망을 가자고 했는데, 신하들이 말려서 겨우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조선정부는 조선의 인민들을 전부 관리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철저히 주민등록으로 전산화 될 수도 없었고 그 당시의 교통과 행정체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겨우 성을 쌓아놓고 성안의 사람들만 죽어라고 괴롭혔을 것이다.

유럽에서도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은 겨우 근대 이후이다. 애국심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0년전 영국의 왕이 독일인이었고 심지어 영어도 몰랐다고 하면 놀랄 일이 아니던가. 유럽의 국가 개념은 신대륙으로부터 강탈해온 금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던 16세기 이후이고, 정확하게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이후 19세기 부터이다. 아마,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초토화시키면서 중앙정부는 전쟁을 치르면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모든 위기의 원인은 여기 있는 것이다. 인민들의 공동체를 파괴해버린 국가라는 추상적인 권력과 제 3 세계에 대한 노략질로부터 시작된 자본주의가 범인이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더욱 강고해지는 느낌이다. 아마, 유럽인들이 만들어놓은 아수라장을 미국이 확대하고 마지막에는 중국이 마무리 지어 아무 죄도 없는 인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 갈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습관적으로 몇 몇 시민단체와 환경단쳬와 정당에 아주 작은 기부를 하고 있을 뿐이다.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바져나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없다. 십 여 년 전에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돈으로 겨우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단지, 세상이 망가질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소수의 운동하는 사람들이 설 건드려서 그것의 내성과 저항성만 카워놓아 더 강하게 우리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심도 가진다.

그래서, 나는 이곳 항구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그나마 이곳 사람들은 배타적이지 않고, 내 벌어먹는 천직에 대해서 나라에서 간섭할 일은 없다.
내가 글을 이렇게 쓰는 이유도 무슨 기대를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도 대는데로 마구 쓰는 편이다. 제대로 쓴다고 해도 변할 게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만은 편하다. 이렇게 살다 가면 그만이니까 . 그것은 마치, 술주정꾼이 주사를 부리는 이유와 너무나 닮아있다.

 

장마가 시작되면, 갈매기는 동해바다에서 전부 사라진다. 저인망선이 들어오면 갑판의 생선을 훔쳐먹기 위해 구름같이 달겨들던, 어판장의 생선들을 향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날아다니던, 항구에 세워져 있던 주차장에 수 없이 똥을 싸대던 갈매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늘 어디선과 우리들과 함게 하던 그들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알을 낳아서 새끼를 부화하고 키우기 위해,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동해의 무인도 섬들로 돌아간 것이다.

아마, 독도나 일본의 오키섬이나   또는 그 보다 더 작은 동해의 무인도 바위섬 어딘가로 그들의 안식처를 정해 짝을 짓고 알을 낳고 아이를 키우고 나서 다시 동해바다로 돌아 올 것이다.

 

갈매기 그녀도 이곳 묵호항에서 곧 사라질 모양이다. 갑자기 술 생각이 났다

아! 아니다. 잘못 말했다. 나는, 내가 세상을 버린 것이지만, 갈매기는 세상에게 버린 받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는 다르게 이렇게 살아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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