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 - 농부,광부, 어부, 그리고.......

by 기마봉 posted Jun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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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산 꼭대기가 구름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를 머금은 무거운 구름은, 남서쪽에서 백두대간 백봉령을 넘고 동해바다로 뻗은 산자락이 옥녀봉에서 솓아오르고, 묵호항을 감싸고 있는 초록봉을 점령하고 사문재를 지나 드디어 악착같이 동해바다 끝까지 내뻗어 있는 동문산 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노인과 나는, 노인의 산비탈 농토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정자 천정에는 장마가 지기 전에 수확해 놓은 노인이 경작한 마늘과 양파가 매달려 있다. 노인은 불편한 몸을 하고도 기를 쓰고 산비탈에서 마늘과 양파를 캐고 짊어지고 올라왔다.

" 제가 와서 도와드려야 하는데......."

"괜찮네, 이런 정도 쯤이야 고향에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세"

노인은 아직 의기양양하다. 그렇지만 노인의 목줄기는 앙상하게 주름이 져 있고, 어깨와 가슴의 근육은 지칠대로 지쳐 축 늘어져 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지 못했지. 그래도 반에서 10 등 안에 들었는데.......소 몰고 가다 중학교 동창녀석들을 만나면, 소 등 뒤로 숨곤했지.....그러다 옆 동네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갔어.....품 삯이 일 년에 쌀 한 가마였는데, 일 년이 지나 상 일꾼이 되면 세 가마를 주었는데...... 안지어 본 농사가 없었지. 그러다 군대에 갔지"

노인은 농부였다! 게다가 상일꾼 머슴이었다.

"군대 제대해서 남의 농사 짓기 싫어서 태백 탄광 동원탄좌에 들어갔는데, 거기는 더 했지. 제일 힘든 막장에서 일해도 제일 돈을 적게 받았지. 나중에 알고보니 공고 출신 놈들이 사측과 붙어 먹고 우리 같이 무지렁이 촌놈들을 가지고 논 거야.

그래서, 친구와 둘이서 공고 놈 사무원 한 놈 두둘겨 패고 이곳 묵호항으로 도망을 왔지"

"다행히 잡히진 않았네요."

"잡히긴, 그 당시 묵호항이나, 탄광에는 수 도 없는 범죄자들이 득실거렸지"

"그리고 나서, 몇 년 후에 사북사태가 터진거야. 그 동안 곪아 있던 광부들의 불만이 터진거지. 빨개이는 무슨 빨갱이. 다 지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돕이지."

노인은 광부였다! 게다가 사북사태 그 이전에 이미 사고를 일으켰다.

"오징어 배를 탔는데, 난생 처음 바다를 보고 파도라는 것이 그렇게 어마어마 한지 몰랐어. 작업은 고사하고 똥물까지 토해내다가 선장에게 죽도록 터지고 배를 내렸지"

"그리고는 다시 배를 타지 않았어요?"

"안 탔어. 대신, 어판장에서 리어카를 끓었어.....겨우 먹고 살았지"

노인은 어부였다! 그런데, 배를 탈 수 없었다.

노인의 고향은 경상도 영천이었다. 노인의 형제들은 그 곳에서 돈을 벌기 위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형 한 명은 6.25 때 행방불명 되었다. 다행히 이곳 묵호항에서 리어카를 끌다가 군대에서 배운 운전으로 오징어 배달 용달차로 기반을 잡아 고향의 어머니를 모셔 올 수 있었고, 어머니는 이곳 묵호에서 돌아가셨다.

해방과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의 거대한 이동을 가져왔다. 고향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타국과 타향을 전전해야 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은 농토 없는 소작인들의 이동을, 전쟁은 일부 북쪽의 중산층 마저 고향을 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겨우 고향에서 연명하고 있던 가난한 농부들 마저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정책과 새마을 운동으로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다. 마치 잡초를 뽑아내듯 쑥 쑥 뽑아서 서을의 산동네로 그들을 움직였다.

새마을 운동은, 자본주의 효시가 된 영국의 엔클로져 운동과 몹시도 닮아있다. 신대륙에서 노략질한 스페인의 금을 뽑아오기 위해 프랑스는 모든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 중 하나가 프로렌스 지방의 모직 산업이었는데, 영국의 약삭 빠른 시골 영주들은 그들의 장원의 농토에 말뚝을 박고 양을 치기 시작했고, 억울 하나마 겨우 장원에서 굶어 죽지 않고 살았던 농도들이 거지떼가 되어 영국전역으로 흩어졌다. 그 거지떼들이 영국 산업혁명의 상품생산을 위한 노동력이 되었다. 플로레타리아의 탄생이었다! 칼 맑스는 그 지점에서 눈독을 들이고 자본론을 저술했다. 사실 플로레타리아의 탄생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새로운 한국형 플로레타리아가 200 년 후에 탄생했다. 노인은 플로레타리아였다!

교과서 논쟁으로 뜨겁다. 대부분의 교과서에 교과부는 수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드디어 정부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논쟁의 요점은 무엇인가?이른바, 근대화 시기와 근대화의 주체가 자발적인가 아니면 수동적인가, 그리고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아픈 역사가 따라다닌다. 뉴라이트의 역사적 인식은 일제강점기를 근대화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거기에 대해 좌파 민족주의 측에서는 근대화의 일본에 의한 수동적인 입장에서 스스로의 자발적인 시선으로 보고 싶어한다.

뉴라이트든 민족주의든 자발적이든 수동적이든, 그 모든 역사적 시선은 서양사에 머물러있다. 서양사의 근대화는 자본주의 발달사와 같다. 그래서 서양사의 근대시기에 동양은 근대화 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사가 곧 근대사라는 서양사의 인식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우리의 근대사의 시작은 어디부터일까?

일제강점기와 해방과 박정희 군사 구테타를 생각해 보자. 뉴라이트들은 일제 강점기를 한국 근대사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비록, 강제적이고 수동적이기는 하나, 자본주의 산업들이 싹트고 그나마 민족 경제의 작은 초석이라도 생겼으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뉴라이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자본주의의 완성은 절대적으로 침략적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산업 발전을 위해 남의 나라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자본주의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인 것이다.오히려 일제 강점기는 일본의 자본주의를 더욱 발달시켰다.박정희의 쿠테타는, 삼백년간 일어났던 유럽 자본주의 발전의 거의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우리나라가 완벽한 자본주의 국가로 발돋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미국의 간섭으로 인해 종속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되기는 했으나, 거의 모든 점에서는 유럽의 자본주의 제국주의와 닮아 잇었다.새마을 운동은, 영국의 엔크로져 운동과 같이 수 많은 빈농의 아들 딸들을 도시로 보내, 마치 영국의 산업혁명 처럼 일어났던 수출 주도의 공업에 공순이 공돌이가 되는 이른바, 프롤레타리아를 탄생시켰다.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반대로 화폐개혁에 실패하고 일본을 본 받아 수출 주도의 중공업을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일본으로부터의 배상금과 월남전 참전으로 인한 전쟁특수와 외자유치로 화폐의 양이 늘어난 점은 마치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노략질한 금으로 유럽의 화폐량이 확대한 점에선 같았다.수출 주도 정책은 상품의 확대를, 새마을 운동은 농지의 전용으로 이어져 전 국토가 마치, 영국의 엔크로져 운동에서 처럼 농지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돈을 버는 것에 이용되었다. 그것이 부동산 투기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공순이 공돌이의 노동력, 일본의 배상금 월남전 특수 외자로 인한 화폐, 그리고 수출 주도의 산업의 상품, 드디어 자본주의의 삼 박자가 갖추어진 것이다. 그것이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이땅에는 플로레타리아는 사라지고 없다. 물론 플로레타리아 탄생한 영국은 더욱 그렇다. 간혹, 정신나간 이땅의 좌파들은 아직도 플로레타리아 운운하며 6.10 항쟁 이후 벌어진 노동운동을 플로레타리아 운동으로 착각하는데, 6.10 항쟁은 틀림없는 부르주아 운동이었다. 유럽에 사라진 플로레타리아가 잠시 한반도에 머믈은 시기는 노인이 농부에서 광부로 어부로, 그리고 이곳 산동네로 정착하기 까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일부 좌파들 말대로 6.10 항쟁이후의 노동운동이 진정 플로레타리아 운동이었다면, 오늘과 같은 비정규직이나 파견직은 없었을 것이고 노동자들 사이에도 심각한 임금 격차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플로레타리아 운동은 전태일 열사가 마지막이다.

자본론에서 플로레타리아의 노동은 오로지 상품가격의 일부로만 존재한다는 진리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고 싶지 않다. 그러나, 급기야 자본주의는 이 땅 한반도에서도, 플로레타리아의 탄생지 영국에서도 새로운 형태로 더욱 무시무시 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영국은  EU에 안주하여 세계 경제를 겨우 안심시킬 것인가.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살아남을 것인가.

노인과 마주 앉아 노인의 과거를 듣고 이야기 하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구름이 점점 동문산 자락에서 내려 앉는다. 장마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노인과 내 술잔은 비어간다. 노인의 눈가가 풀어지면서 꼬박 잠이 들었다.

한 잠을 자고 나니, 온통 구름 속에 갇혀버렸다. 노인은 벌써 방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