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합니다.

by 문성호 posted Mar 01,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

구형구 당원님의 글을 보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내용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저는 공산주의자입니다”로 시작해 비장함이라도 있는 박정훈 당원님의 글에 비해, 구형구 당원님의 글은 재미는 없는데 노련미는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과연 선봉에서 열심히 투쟁해오신 연륜이 느껴집니다. 구형구 당원님의 표현 그대로 “사회 일반적 규범에도 미달하는” 위계와 학력 차별, 자기 결정권 침해가 일어난 사건에 대한 비판을 “KKK단의 폭력”, “마녀사냥”과 등치시킴으로써, 게다가 성역없는 비판을 존중한다면서도 마녀사냥도 섞여있다는 언급을 함으로써 비판들에 자기검열을 가하게끔 유도하는 노련함이 보입니다. 물론 스스로도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이건 오히려 본능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미투 운동이 민주당 비판 도구로 쓰일 것이라고 예언한 김어준도, 스스로는 미투 운동의 지지자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겁니다.

어쨌든 동반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십여 년 전에는 “사회당계에 부화뇌동”했던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끄집어내기 가장 고통스러운 20대의 모든 기억을 꺼내어 반성합니다.

 

2.

반성합니다.

2000년 총선이었습니다. 당시 청년진보당에서 서울 전지역구, 인천 부평을에 후보를 내며 크게 이슈가 되었습니다. 후보가 연행되는 일까지 일어나며 청년진보당과 함께하던 사람들을 크게 고양시켰습니다.

총선이 있기 전 1월 즈음, 제 언더 지도선이 제 손을 이끌고 간 곳은 제2 금융권 대출업체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먹고 살던 지방학생이었던 저는 그 전년도 학생회 선거 보투 100만원을 한 직후라 돈이 없었습니다. 언더에서 조직원 각자에게 떨어진 보투 할당량은 100만원이었습니다. 그 돈을 마련하느라 여기저기 손을 벌려보기도 했지만, 주변 운동권들은 다 가난했고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래 살다보니 그 이외의 관계들이 소원해져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언더 지도선은 제 손을 잡고 대출 업체로 향했습니다. 연 24% 금리로 100만원을 빌리고 그 돈을 갚느라 2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또 보투할 일들이 생겼거든요)

당시 서울지역 팸(당시에는 언더를 패밀리, 혹은 팸이라 불렀습니다) 조직원이 100이 넘었다는 소식을 듣던 때이니 “서울 지역”, “대학생”에게서 모인 돈만 1억이 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국 조직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돈은 예측할 수조차 없군요) 총선 출범식인가 때였습니다. 당시 청년진보당 대표는 “청년진보당은 진보정당이기에 보수정당과 다르게 국민들의 힘으로 선거를 합니다. 여러 국민들의 힘으로 이렇게 투명하게 재정이 이만큼 모였습니다. 예결산 역시 투명하게 공개할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후배 하나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 저도 100만원 냈는데 저기 왜 제 이름은 없죠?” 총선을 이유로 모았던 그 돈들이 “투명한 진보정당 예산”에 반영되지 않고 어디에 쓰였는지 저는 그 후배에게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반성합니다.

적어도 그 운동에 헌신하며 때가 되면 보투를 했던 학생들에게 그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정도는 얘기해 달라고 요구했어야 합니다. 그냥 “혁명 운동에 쓰이고 있어”라면서 자기 합리화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는데, 우리는 존재만 어렴풋이 알듯말듯 했던 “큰 형님”은 그렇게 부자였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 질문을 했던, 그 역시 가난했던 후배에게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3.

반성합니다.

2001년에 6학년 학생운동가가 되어 전학협 집행위원회를 결의했습니다. 당시 서울지역 학생운동 언더 책임자가 “너도 집행위원장 결의해야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배였던 학생운동 책임자의 말에 따라 일단 집행위원장 결의를 했습니다.

소위 “안가”에 집행위원회 결의자 전원이 합숙을 갔습니다. 다 집행위원장을 결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한 끝에 집행위원장 논의는 둘 중 하나로 모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저와 M, 둘이 유력한 가운데, 집행위원회 구성원들은 대부분 M이 집행위원장을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집행위원장을 꼭 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던지라 논의를 존중하여 집행위원장 후보를 사퇴하였습니다. 학생운동 언더 책임자, 소위 “형님”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논의가 너무 많이 진행된 것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형님”이 제가 집행위원장을 했으면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진행되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이상하게 뒤틀어 바꿨습니다. 졸지에 사퇴했던 제가 집행위원장이 되었고, M은 다른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어지러워, 반쯤 기절을 했습니다. “형님”의 뜻이 집행위원회 동지들 모두의 의사를 바꾸어 맡게 된 집행위원장 자리가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래도 “조직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집행위원장 자리를 수행하겠노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언더의 오픈에 대한 개입은 대체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만장일치”로 정해진 집행위원장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이 “형님”의 의지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집행위원회 내부의 관계는 자주 삐걱거렸고, M은 얼마 있다가 잠적하고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반성합니다.

함께 일하기로 한 사람들의 의사가 “형님” 한 사람의 개입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막았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M이 이탈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집행위원회 내부의 결속력도 더욱 높아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집행위원회 만장일치”, 내부적으로는 “형님의 뜻”이었던 집행위원장 자리 결정을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따라 완전 재논의할 것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3기 전학협 집행위원회 아무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반성합니다.

 

반성합니다.

“형님”이 오픈 운동에 자주 간섭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형님”의 의지는 반드시 관철되었습니다. 전학협에서 진행하는 큰 문화제 중 하나인 “하얀 햇살”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개최하겠다고 높은 결의를 보였던 한 대학의 결의를 무산시키고 “형님”의 뜻에 따라 문화제 개최하는 학교를 “배치”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누구보다 부르짖는 사람으로 살면서, 대중운동 단위의 의지보다 우선 순위에 뒀던 결정 구조가 있었음을 반성합니다. 그리고 "형님“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관철되는 통로가 되었음을 반성합니다.

 

4.

반성합니다.

8학년 대학생이 되고 나서(진짜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 운동”에 너무 헌신한 나머지 8년째 졸업을 못한...) “형님”이 저에게 요구한 역할은 다시 전학협 집행위원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6학년 학생운동가들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집행위원회에 8학년 학생운동가가 들어가서 “프로 학생운동가”로서 권위를 가지고 강력한 집행위원회를 만들라는 요구였습니다.

반성합니다. 6학년 학생운동가들 역시 충분히 그 조직을 책임질 수 있다고, 그들에게 맡기라고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6학년 운동가들이 자발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8학년 학생운동가로 전학협 집행위원장 역할을 맡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형님의 뜻”이 “조직의 요구”와 등치되었고, 스스로 “그 조직”과 “운동”을 등치시켰기 때문입니다. 박정훈 당원님의 글에서 보이는, “비공개 부위”와 “혁명 운동”을 등치시키는 자세를 저 역시 가지고 있었음을 반성합니다.

 

5.

반성합니다.

우리가 “우리”에 대해 최초로 비판한 시기는 2003년, 제가 전학협 집행위원장을 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2002년 대선의 패배 이후 당에는 노선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고, 그에 대한 갈등이 증폭되어 있었습니다.

사회당 당대회에서 이일재 씨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이일재 씨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큰 어른이었지만, 당시 운동사회 내 성폭력 100인위원회 사건으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전학협은 “반성폭력 운동”에 가장 철저해지고자 하는 중이었습니다. (물론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일재 씨의 발언을 “당연하게도” 2차 가해로 판단했습니다.

전학협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당시 사회당 대표였던 신석준 당원님을 만났습니다. 당대표는 학생운동의 문제의식을 알겠노라고 답했고, 조만간 사과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사회당은 “상임집행위원회에서 그것은 2차 가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성폭력 2차 가해 여부가 상임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되어도 되는 것일까요? 전학협 이름으로 입장을 발표하고 사회당을 비판했습니다.

상황은 가관으로 돌아갔습니다. 집행위원장을 사퇴하라는 압박이 들어왔고, 언더와의 연락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이제부터 내가 집행위원장 하기로 형님이랑 얘기가 됐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사실상 조직을 비판했다고 조직에서 짤린 셈이었습니다. 전학협 집행위원회가 이미 총회에서 인준되었다는 것은 언더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당 게시판을 통해서 “여자가 이런 상황에 놓였으면 당연히 다음 상황도 예측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나는 그것 성폭력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전형적인 2차, 3차 가해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에 대한 비판인지 알고자 노력하지 않은 채 “우리 운동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유만으로 들어야 했던 “이 반동노무 새끼들”이라는 욕설을 들어야 했고, 조직의 배신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나는 니가 기만적이라고 생각해”라는, 며칠 전까지 사랑해 마지않던 “동지들”의 알 수 없는 비판들... “내가 속인 것이 대체 무엇인데?”라고 물으면 “그냥 니가 기만적이라고 생각해”

도대체 집행위원회와 단절된 언더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언더는 사회당에 대해 처음 가해졌던 내부 비판을 철저히 “정파 갈등” 구조로 몰아갔고, 전학협 집행위원회는 갑자기 당시 사회당 내에서 노선 논쟁을 하고 있던 “독립 좌파”라는 사람들과 등치되었습니다. 당시까지 제가 속했던 운동은 “전학협” “사회당” 그리고 “우리 운동”(“우리 운동”은 주로 “언더”와 동의어로 쓰였습니다.) 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각자 5~8년간 “우리 운동”을 위해 헌신한 집행위원회는 최초의 비판에 의해 갑자기 운동의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사회당은 끝까지 사과를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당시 학생운동 내 가장 원칙에 충실한 분파라는 자부심으로 뭉쳐있었던 우리는 선배들과 단절하고 스스로를 해소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화운동으로, 누군가는 여성운동으로, 그리고 좌파 정당에 미련이 있던 누군가는 진보신당으로, 다른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반성합니다.

민주적 토론이 불가능한 방식의 운영과 위계에 근거한 운동, “언더의 권위”를 위해서 반성폭력 운동이라고 전개해 온 것들까지 부정하는 운동이 올바르지 않음을 우리는 애써 애둘러 표현했습니다. 그 조직의 언더를 논쟁의 가운데 놓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자기검열을 했습니다. "공개된 부분"만을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철저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 뒤에 그 속에 남은 사람들도 좀더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90년대에도 강요하지 않았던 "혼전순결, 낙태금지" 등 스스로 바깥에 내놓을 수 없는 규율이 내부로 통용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6.

이제 바랍니다.

저는 그저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그 운동에서 배신자 취급을 당한 이후, 다시 진보신당에서 제가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의 갈등 당사자들과 이야기해야 할 것들을 풀어 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운동”에 통째로 갖다 박은 20대가 억울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 그 운동을 뛰쳐나와서 새로 자기 운동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그 운동”이 예전에 우리에게 했던 방식대로, 공식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 상태로 뒤로 이상한 이야기만 돌리는 것을, 새로운 운동의 비전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배신자” 취급하는 것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운동에 대한 비판을 죄다 “마녀 사냥”으로 낙인찍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랍니다. 알바노조의 폭로자들이 새로운 운동을 개척하는 것을 같이 응원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바랍니다. 현재 그 운동에 남은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운동 방식과 다른 방식의 운동을 할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해 주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오류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하고자 하는 바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 논의 과정의 투명성을 통해 지금의 비판을 극복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사회당계 동지들에 대한 애정에 앞서, “나는 공산주의자”라는 자부심을 피력하기에 앞서, 비판에 마녀사냥 같은 딱지 붙이기에 앞서 있었던 일을 인정하고 투명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하는 것을 바랍니다. 비판에 대해 “비공개”라는 조직형식 뒤에 숨어있는 것을 중단하기를 바랍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당당하게 앞에 나서서 책임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운동” 역시 투명한 운동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Articles

5 6 7 8 9 10 11 12 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