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오, 사회당과 만난 3년의 기록 [1]

by 윤성희 posted Jan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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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원동지들께 드리는 글로 약 3년 동안 우리당에 일어난 일들에 관해 매우 신중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무수한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닌 제가 직접 목격한 것 혹은 당사자에게서 직접 들은 것만 기술하였으며 인물에 대한 존칭은 생략하였습니다. 대개 시간순으로 나열하였고 분량이 많아 2회로 나누었습니다.

차기 대표단은 저의 진술을 토대로 김길오와 연관인물들에 대한 진상조사위를 재설치해주십시오.


1. 2015년 7월 김길오와 첫만남

김길오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7월 신촌 서강대 옆의 탐앤탐스라는 카페였습니다.

당시 진보결집플러스의 집단 탈당 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면서 몇몇 활동가들 사이에 이제는 사회당과 협력하여야 하지 않겠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사회당계와 대표를 합의추대하는 방식이 이야기되었고, 마침 사회당과 대척점에 서있던 당의미래에서 대표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기에 자연스럽게 후보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중 구교현이 언급되었습니다.

당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는 상징성을 지니지 않겠냐는 의견이었습니다.


다른 동지들과 어느 정도 뜻을 모아 김길오와 만났습니다.

김길오는 구교현 대표 제안에 반색했고 ‘구교현에게 전화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화가 와서 다음 날 구교현을 신촌에서 만났습니다.

당시에는 ‘저 집단(사회당계)은 의사결정이 무척 빠르구나’라고 생각했으나 크게 개의치는 않았습니다.

구교현을 만나 구태의연한 정파 간의 대결이 아닌 새로운 당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청년들이 주도하는 선거가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2. 2015년 9월 구교현 당대표 선본

곧 알바노조 중심의 선본이 꾸려졌다며 선본 첫모임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장소는 회의실을 갖춘 신촌의 지하 스터디카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알바노조 조합원들로 구성된 구교현 후보 선본을 처음 보았습니다.

청년들이 주체가 되긴 했으나 문제는 선본이 알바노조 조합원들로만 이뤄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비당원들이 상당수였습니다.


첫 선본 회의에서 박종웅 당시 선본장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안달난 당의 사람들이 있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저를 비롯해 사회당계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비당원 여성조합원 한명이 ‘괜히 도움이랍시고 받았다가 나중에 더러운 소리 듣느니 우리끼리 하자.’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당대표 선거를 하는데 당을 배제하자니.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는 겁니다.

그 여성조합원은 구교현 대표 당선 후 입당하였다가 여성위 탈당 때 같이 당을 나갔습니다.



3. 2016년 1월 박기홍 첫 만남.

2016년의 총선은 매우 절박했습니다.

그래서 2월 14일부터 4월 14일까지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무급 당직자를 자처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우리당의 정책을 홍보하는 정책홍보였고 직책은 정책홍보팀장이었습니다.

임기가 시작하지는 않았으나 미리 비례후보를 만나 총선을 대비한 방향과 목표를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당시 청학위원장 박기홍에게 연락했습니다.

신촌 서강대 인근의 청년좌파 사무실로 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약속한 시각에 도착하니 박기홍이 ‘우리가 선본 회의를 해야 하니 기다리시라’고 했습니다.

한시간 넘게 기다렸습니다.


선본 회의가 끝나고 청년좌파 사무실 회의실에 앉자마자 박기홍이 물었습니다.

“우리 용혜인 후보를 위해 뭘 준비해오셨나요?”

우리 용혜인... 뭘 준비...?

의아한 질문이었으나 사소한 건 따지지 않았습니다.

대략 대여섯가지 생각해두었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박기홍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으흥? 으흥? 하며 턱을 까딱까딱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마치자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더 준비해오셔야겠네요.”


신촌역으로 걸어오면서 실소가 절로 터져나왔습니다.

대체 이들은 뭘까. 당을 ‘우리 아빠 회사’로 생각하는 걸까. 내가 아빠 회사 직원으로 보인 걸까?


두 달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5종의 정책홍보물을 만드느라 디자이너와 계속 메일을 주고 받고 인쇄소를 알아보고 마감 즈음엔 막차를 놓쳐 밤을 새기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홍보물을 선전하기 위한 당원 조직, 일명 ‘찌라시 유세단’을 진행하기 위해 각 지역과 부문위원장들에게 당원 조직을 요청했습니다.

박기홍의 대답은 가관이었습니다.

‘이제 개강 시즌이라 학교도 가야 하고 선배들이랑 술도 마셔야 해서 청년들이 시간이 없다. 생각해보겠다.’

나를 조롱하는 걸까, 당직자를 조롱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4. 김길오 지시를 받는 청년들

3월 23일 철도회관에서 총선출정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김길오로부터 1시간 가량 미리 좀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만나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전화 한통을 안 해?”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직자가 따로 전화드릴 이유가 있나요?”

김길오는 ‘우리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뛰고 있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개강이라 바쁜가 보던데요?”


김길오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박기홍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자네의 군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 아닌가. 협조를 좀 해주게.”

박기홍은 김길오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부동자세로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군대라서 그런가. 마치 사단장 앞에 소대장 같았습니다.

‘아니 왜? 선배들이랑 술마시느라 시간 없다는 말을 김길오 앞에서도 해보시지?’

한심했지만 한편으로는 모욕적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당의 조직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는구나.

저녁 때 박기홍은 서른다섯명 가량의 청년들의 명단을 보내왔습니다.


김길오의 위력은 꼭 돈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회당의 청년들을 자유자재로 배치했습니다.

김길오가 지시를 내리면 하루 만에 짐을 싸서 지역을 옮기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김길오 말 한마디에 마산 이원희 선본으로 파견나갔던 청년을 보았고, 울산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김길오 지시를 따라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 서울로 올라왔던 2명의 청년을 기억합니다.

김길오는 ‘지역에서 훌륭한 청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5. 가부장이 허락한 페미니즘

총선 전 저는 하윤정의 마포 출마와 관련하여 워마드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페미니즘에 대해 몇가지의 근거를 들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김길오는 “아무 걱정 말게. 전혀 걱정 안 해도 돼. 김보화는 언제나 당을 먼저 생각할 사람이야.”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시 여성위원장 김보화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이 당을 여성주의 정당으로 바로 세우게!”


사회당 조직은 저를 매번 놀라게 했습니다.

중년의 남성이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여성주의 정당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리고 여성위원장이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따르는 모습.

기괴하다 못해 참신했습니다.


여성위원장과 여성위가 전국을 돌며 여성주의 강연을 하러 다닐 때 이게 여성주의 정당으로 바로 세우는 건가 싶었습니다.

이후로도 노동당 여성위, 불꽃페미액션......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보며 냉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당내 여성주의 운동도 가부장 승인과 지지를 받아 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대체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자네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지.

임시당직자로 2016년 총선을 거치며 사회당계 활동가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제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조직이었고 기풍이었습니다.


그러나 김길오는 자신의 조직원들을 거론하면서 늘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습니다.

전 부대표 문미정을 일컬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미정은 너른 품을 가져서 후배들을 포용하는 사람일세. 문미정에게 이야기하면 서울의 청년들은 다 조직될 거야.’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 협조를 구할 때 그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당원을 조직해달라는 요청에도 ‘다른 당협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꼭 문미정 뿐 아니었습니다. 사회당계 태반이 그랬습니다.


총선이 끝난 후 김길오와 만난 자리에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말씀하신 것과 다르게 누구한테 말해도 전혀 일이 안 되던데요?”

그러자 그는 훈계하듯이 말했습니다.

“그건 자네가 우리와 역사를 공유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래. 자네가 먼저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내가 그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이 조직원들은 역사를 공유한 사람하고만 일을 같이 한단 말인가, 그 역사를 설사 모른다 해도 왜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환대하는 조직이 아닌 건 분명했습니다.



7. 처마모임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기 앞서 설명해야 할 모임이 있습니다.

‘처마모임’이라는 비공개 모임입니다.

처마모임은 진보신당계와 사회당계의 중견활동가들의 모임으로 김길오가 초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회원수는 약 24명이었고 그 중 상당수는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 전원이 모인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처마 모임에서 일종의 간사로 날짜, 장소 등을 공지하여 참석인원을 체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모임은 총 예닐곱 차례 열렸고 주로 전국위 전날 고양시 화정동의 평화캠프 사무실에 모여 저녁을 간단히 먹은 후 파주 통일전망대 인근 김길오 소유의 아파트로 이동하여 술 한잔 하며 환담을 나누는 형태로 이뤄졌습니다.

주제와 상관없이 자유롭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그 모임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노땅들의 친목모임이어서 참석을 권유받고도 응하지 않으면 그만인 모임이었습니다.

기록해둘 이유가 없는 친목모임이어서 정확한 횟수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8. 시작은 호의로, 결국엔 지령으로.

김길오는 자신이 운동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나라면 그렇게 못 할텐데,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기인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자본가라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처마 모임의 일원인 김숙진이 개인 채무로 곤란해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화정의 ‘산이화’라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후 김숙진과 제가 뒤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김길오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김숙진에게 작은 쇼핑백을 건네줬습니다. 그 안에 현금이 들어있었습니다.

이게 뭐냐는 질문에 김길오는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다. 다만 언제 갚을지는 김숙진이 정해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껏 나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알며 살아왔는데 공짜가 있을 수도 있나.

생각해보면 뭐 나름 훈훈했습니다.

날씨가 추운 겨울날이었으니 2015년 말 혹은 2016년 초였습니다.


그 후 김숙진은 총선 때 서울에 올라와 김길오에게 1500만원을 역시 현금으로 받아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언니.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돈은 그렇게 덥썩 받는 게 아니에요.”

김숙진은 크게 개의치 않아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돈에는 조건이 달렸고 대가가 요구됐습니다.

“김숙진 동지. 창원을 접수하세요.”

이 말이 떨어진 후 김숙진이 마산에서 창원으로 이사갈 때 김길오는 집을 얻는 데 돈을 또 보태줬습니다.

동지에게 돈을 줄 수는 있지만 그 돈에 조건을 달지는 않습니다.

조건을 달면 그것은 매수입니다.

김길오는 자기 조직 출신이 아닌 사람들과 동지적 관계로 협력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이것은 제가 마지막으로 김길오를 만났을 때도 극명히 확인됐습니다


9. 김강호 사무총장 교체

2016년 2월경 처마모임, 늦은 밤 술자리 끝에 다른 사람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잠들고 김길오, 김강호, 저 셋이 남은 뒷풀이 자리였습니다.

김길오가 대뜸 물었습니다. “어떻게 좀 정리가 돼가고 있나?”

눈치를 보니 개인적인 부채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김강호는 “네. 뭐 다 갚아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김길오는 ”그럼 자네 올해 안에 강릉을 정리하고 올라올 수 있겠나?“고 물었고 김강호는 선뜻 가능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김길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구형구 총장이 당미에게 시달리면서 멘탈이 약해서 그걸 견디지 못 하는 것 같아. 계속 몸이 아프다는 걸 보니. 자네가 올라와서 총장을 맡아줘야겠네. 강한 총장이 필요해.”

총장 임면권은 구교현 대표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10. 대표를 내린다.

온 기운을 다 쏟아붓고 난 총선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당은 또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얻어 당에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실낱같은 기대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선거 결과보다 더 절망스러웠던 것은 사회당계, 반사회당계 양쪽에서 확인한 모습이었습니다.

사회당계는 무능해 보였고 반사회당계는 악랄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구교현이 대표직을 사퇴했습니다.

당시 반사회당계는 대표 사퇴를 요구했지만 구교현은 사퇴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격적인 사퇴가 이뤄졌습니다.

곧 김길오의 뜻임을 알게 됐습니다.

김길오의 결정을 정파의 결정으로 봐야 할까? 그 조직 안에서는 회의라도 제대로 거쳤을까?

결국 노동당은 김길오의 바지사장을 대표로 선출하기 위해 선거를 치렀던 것입니다.


※ 여기까지가 2015년 7월부터 2016년 7월까지의 1년의 기록입니다.

2편에서는 그 후에 일어난 일들과 제가 왜 이런 참담한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글이 길어져 내일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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