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원, 최창진 위원장에게 답하고 묻습니다

by 김상철(냥이관리인) posted Jun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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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원, 최창진 위원장의 주장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좀 많이 깁니다. 이해하십시오.


1. 나도원 위원장에게 답하고 묻습니다


나도원 위원장은 ‘2015년 상반기에 중앙집행위원회의 역할을 명시하자는 당규개정안이 제출되었으나 재편파와 당의 미래 소속 전국위원들이 함께 반대했기 때문에 자진 철회'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저 역시 그 기간에 중앙집행위원으로서 누구보다 당시 나경채 집행부가 날선 공방을 하던 때였고, 중앙집행위를 자문 기구 정도로 운영하는 것에 항의했던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전국위원회의 자진철회는 반대 때문이 아니라 다른 안건의 중차대함 때문으로 기억하며, 논란은 중앙집행위의 위상 강화 자체가 아니라 제안한 내용이 담고 있는 ‘심의 기구의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즉, 집행기구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광역시도당 위원장이 모이는 정치적 협의 기구의 위상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중앙집행위입니다.


그래서 외려 궁금한 것은, 그런 문제의식을 가졌던 분이 왜 구교현 집행부 체제에서는 ‘이상한 회의체계'를 당연시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라는 점입니다. 평전위 구성에 대해 말하시지만 이것 역시 취지에 엇나간 설명입니다.


- 대표단은 사퇴에 준하는 입장문을 냈다(형식적으론 사퇴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론 사퇴다)

- 중앙집행위 위원들 역시 집행의 책임을 지는 이들로서 그에 준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당시 울산시당 위원장의 사퇴가 있었으며, 내용적으로 대표단의 무거운 결정에 준하는 책임감을 진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 따라서 평가와 전망위는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로 구성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고, 오히려 당원들이 제안한 평가와 전망안을 수정없이 수용하고 집행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총선 이후의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것이 제가 요청했던 사항입니다. 나도원 위원장은 평가와 전망위의 위원장을 당대표가 맡음으로서 오히려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오히려 평가와 전망위가 총선 이후 당원들 사이에서 점차 나타나고 있는 반목을 불식시키고 일종의 ‘정치적 합의문'과 같이 당의 공동 비전을 만드는 과정으로 본다면 대표단이나 중앙집행위가 평전위에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제안했습니다.


유사하게 평가와 전망을 분리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평가에 대한 극단적인 온도차가 오히려 당내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음으로 평가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진행하고(사실 평가의 내용은 총선의 결과를 통해서 명징하게 드러났으므로) 전망 논의에 중점을 두고 최소 2018년까지의 중기 정치전망을 바탕으로 당내 통일된 정치비전을 수립하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 구성된 평전위의 위상이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앙집행위 차원에서의 긴 시간 동안 토론과 의견조율을 통해서 만든 소중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사문제에 대한 질의가 나온 것입니다. 이야기는 맥락이 있고, 그것에 대한 이해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합니다. 당연히 평전위가 이렇게 조정되는 과정에서 인사문제는 전망위의 전망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체계로 개편되는 것이 바람직함으로 그 전까지는 자연 감소 등의 요인을 제외하고 부서 조정 등의 절차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낸 것입니다(아시겠지만 중앙집행위 이전에 이미 사무총장 등이 진행했던 사무총국 개편안이 논란으로 불거진 시기 였습니다). 다행히 이후 전국위원회를 거쳐 어느 기간 동안은 사무총국 개편 논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맥락도 배경도 알 수 없게 사무총국 조직개편이 진행됩니다. 당황스러운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만약 중앙집행위의 의견이 집행부에 의해 ‘취사선택'에 불과한 것이라면 당시에 그 의견을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양해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나도원 위원장의 주장대로 ‘알겠다'는 대답을 정치적 합의로 이해하는 것이 무리라면, 역으로 제시된 의견에 대해 가타 부타 부연 설명 없이 흘려 넘기는 행위야 말로 중앙집행위원에 대한 모욕이 아니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집행부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고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회의라면 그 생각의 차이가 선명히 드러나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런 저런 배경에서 저런 선택을 하는 군'이라는 최소한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마치 사장이 노동자의 건의에 대해 ‘잘들었다'고 하면서 제멋대로 하면서 소통을 잘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부모가 청소년의 말을 ‘잘들었다'고 하면서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만약 나도원 위원장이 설명한 대로 중앙집행위가 그런 기구라면 소수파인 저는 그 기구에 들어가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어차피 소수파의 의견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 ‘알았다'는 청취의 대상일 뿐인데 말이죠.


나도원 위원장은 ‘정치적 합의가 있었다는 착각'을 말했습니다. 그것이 정치적 합의가 아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잘 들었다'는 뜻이고, 이후에도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듣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기 보다는 ‘알아서 선택'하겠다는 뜻으로 말이죠. 또 나도원 위원장은 ‘소수파를 배척하기 위한 개편이라는 오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유독 당의 미래 회원이라 지목된 당직자들만 고통을 받고 항의하고 있는지 영원히 모를 겁니다. 아픈 사람이 소리칠 때, ‘그것은 오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울 뿐입니다. 나도원 위원장은 ‘당사자도 아니고 회의참석자도 아니었으나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임했던 사람들의 불신'을 말했습니다. 이 말은 부디 당사자가 아니니, 회의참석자도 아니니 ‘확신을 가지지 마라'는 뜻은 아니길 빕니다. 두 당직자의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은, 두 당직자가 직접 소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징계절차를 통하지 않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인사를 하는 것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부당인사'라는 기본적인 원칙이 침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확신과 불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노동 사안에 대해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은 확신이나 불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스스로 각별하다고 말하는 공태윤, 박성훈 동지에 대한 나도원 위원장의 ‘무-태도'가 더욱 의아하고 이상할 따름입니다. 이것이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저에게 남긴 의문입니다. “왜 밖의 노동사안에 대해선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사람들이 당내 노동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과 잣대를 댈까? 왜 정파 논리니 뭐니 하면서 물타기를 할까?”라는 것입니다.


2. 최창진 위원장에게 답하고 묻습니다


솔직히 별로 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뭐 의도가 보인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 생각의 방식이 다르구나를 느꼈거든요. 정책홍보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 까요? 저는 부서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사 ‘정체를 알 수 없는 중앙당 부서'라고 하더라도요. 문제는 그 부서를 담당했던 사람이, 광역당부가 홍보물을 만들었는데도 제대로 가져가지도 않았고 이는 문제다(보이콧이라 했던가요?)라고 했던 부분입니다. 최창진 위원장은 분명 “중앙의 기획이 있는 후에 대구시당의 필요에 의해서 판단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것입니다. 대구시당은 대구시당의 판단에 의해 정책홍보물을 사용할 수도 있고, 서울시당은 서울시당의 판단에 의해 다른 홍보작업과 병행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가져간 부수를 언급하면서 ‘총선 보이콧' 운운을 해요? 이게 말이 되는 태도입니까. 무조건 중앙당에서 결정하면 하급당부는 집행해야 한다는 것 역시, 특히 선거시기라면, 일정부분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최소 본 선거 전까지 <이번 선거기간 동안 대략 몇 종의 정책홍보물이 나올 것이고, 주요한 정당 홍보 논리는 이렇다>라는 것이 나와야 광역당부도 그에 맞춰 선거 계획을 짭니다. 이번 선거에 그런 것이 있었나요? 정책자료집 마저도 원래 나온다는 시기가 미뤄지며 게시판에 ‘수정될 수 있다'는 어정쩡한 버전의 한글 화일만 올라왔던 상황입니다.


당연히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집행을 기획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홍보물 찍기 전에라도 ‘서울시당은 몇 부를 소화할 수 있는가'라고 확인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미 비정규실 등의 현수막 사업은 그렇게 진행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협의도 계획도 없이 부서가 생기고 홍보물 찍어놓고 ‘안가져간다'며 선거 보이콧 운운하면 <독단>이라는 말 말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연고 판매에 대한 이야기, 참 멋진 레파토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정확하게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대위 기간 동안 진행한 재정사업은, 퇴직자의 퇴지금 마련을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참, 고작 몇 개월 비대위를 맡아놓고 <재정 및 조직개편안>에 대한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고(반영은 하나도 안되었지만) 퇴직금 주겠다고 연고 판매 계획을 수립해서 사무실에 앉아 ‘포장지' 조립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니 ‘괜한 짓' 했다 싶긴 하네요^^

분명히 말하지만, 잔여 연고의 처분에 대해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그 방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지만 당의 미래 부대표가 동의했다고 당의 미래 서울시당 위원장이 찬성할 것이라는 것은, 제가 10여년 동안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처음 본 사고 방식입니다. 부대표는 당연히 사무총국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고 저는 당연히 서울시당 위원장으로서 판단합니다. 둘이 같은 정파라고 해서 부대표가 사무총국의 피해를 감수하라 할 수 없듯이, 서울시당 위원장이 같은 정파 부대표 면을 세워주기 위해 당협과 당원들에게 피해가는 결정을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직위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럽거든요. 그런데 최창진 위원장은 이것이 그렇게 이상한 가 봅니다.


더욱이 당시 사무총장이 논란이 되었던 것은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중앙당 계획은 당원수에 비례해 연고를 할당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실제 판매량과 상관없이 할당량 기준으로 교부금에서 선 공제를 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노동당 당원수의 ⅓ 이상이 되는 서울시당이 전체 연고의 1/3을 떠맡게 되었으며, 그에 해당하는 교부금을 삭감당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서울시당은 다른 광역당부와 다르게 당협 교부금도 있으니 이 삭감분은 고스란히 서울시당이 떠안던지, 아니면 중앙당이 한 방식대로 당협에 쪼개 던져줄 수 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죠? 게다가 이런 방식에 대해 사전에 협의가 전혀 없었거든요. 참, 지난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전, 이이전 집행부는 재정과 관련된 중앙당의 결정을 내릴 땐 전국 사무처장단 회의를 한달지, 아니면 전화협의를 한달지라는 절차가 있었는데 말이죠.


뭐, 그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무실에 없는 사이에 시당 총무국장에게 사무총장이 '위원장과 다 이야기가 되었다, 이번 달 교부금은 제하고 지급하겠다’고 통보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 말도 안되는 것에 동의'했다는' 위원장에게 확인을 했죠. 저는 당장 사무총장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본인이 그런 취지로 말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중앙당의 결정에 따라라(그 당시에도 최창진 위원장이 말한대로, 당신이 비대위원장일 때 한 일인데 이제와서 책임을 못지겠다니 이상하네요...라는 취지의 말은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몹쓸 기억력이라니.) 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그래서 당시 대표에게 항의를 했고, 실제로 구두 사과를 받은 바 있는 사건입니다. 사무총장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다 알려진 일인데 왜 모르실까요?).


제가 분명 당의 미래 회원이고 운영위원장이 맞는데 말이죠, 시당위원장이라는 공식적인 당직을 망강할 정도로 무지한 사람이 아니고 또 당을 위해 정파활동을 하는 것이지 정파활동을 위해 당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무리하게 정파라는 프리즘을 가져다대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안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으셨죠.


당대표단 사과문에 “허위보고는 없었"다고 언급이 되었는데, 이래 저래 ‘당신이 사과할 생각이 없냐'고 말이죠. 만약 허위 보고가 없었다면, 둘 중 하나 겠죠. 우리 노동당의 대표단 회의에 대단한 거짓말쟁이가 있거나 아니면 ‘동의가 없었다'고 주장한 두 당직자들이 ‘악한 마음을 먹고 일부러 거짓주장'을 하거나 말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뒤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굳이 당대표가 사과의 글(아니 유감표명인가)을 올렸겠습니까. 그리고 인사발령도 수정해 게시를 했겠습니까? 절차대로 제대로 되었는데, 몇몇 당사자가 억지를 부리면 그것을 수용해 억지 춘향식으로 대표가 유감을 표명하고 인사발령 공고도 수정하는 것이 타당한가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혹시 이것은 당대표의 정치적 포용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다면 대표단 회의에 거짓말쟁이가 있는 겁니다. ‘허위 보고'라는 말이 악의로 창작한 말이 아니라면 그 말을 ‘입에 담은 사람'이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허위 보고 논란이 나온 것입니다. 최창진 위원장은 그 사람으로 이장규 전국위원을 지목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대부분 두 당직자 당사자의 이야기를 근거로 했더군요. 저는 당사자 입장에서 본인들이 동의를 하지 않았고, 회의에 참석하지도 못했는데 ‘마치 사전 협의가 된 것처럼 말했다'는 것을 허위 보고로 인식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왜냐면, ‘내가 안한 것'이니까요. 그것만큼 강력한 반증이 있나요?


저는 대표단의 사과문은 사실관계의 규명보다는 당내 갈등의 봉합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합니다. 그러면 존중할 생각이 있습니다. 정말 이 문제가 이렇게 봉합될 문제인지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대표단의 숙고를 존중할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창진 위원장과 같이 이를 ‘사실관계의 확인'이라고 판단한다면 저는 대표단의 사과문을 존중할 생각이 없습니다.


공식적인 경위서의 공개가 필요합니다. 중앙당 집행위 개최일, 참석자 명단, 안건 내용이 포함된 경위서가 공개된다면, 그리고 거기에 당사자들의 확인 절차가 진행된다면 저는 ‘허위보고는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아니, 확인절차 없이 ‘사과문에 쓰여졌지 않느냐'는 것만으로 없던 사실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겁니까?


또한 부당인사와 관련해서도, 이렇게 쟁점이 되느니 부당인사의 요건에 해당되는지 외부 노무사 단체나 민주노총 법률원과 같이 아예 전문적인 기관에 자문을 의뢰했으면 좋겠습니다. 당내에 전문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신뢰도 제로의 상황에서 외부 자문 결과가 오면 서로 그 해석에 대해 존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대표단의 사과문이 당내 지나친 갈등을 조정하려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고,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허위보고가 있네 없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진위 여부에도 불구하고 비생산적인 갈등을 정리한다는 취지라면 다릅니다.


어떤가요? 앞서 말한 사실관계의 확인과 외부 단체의 자문을 추진하고, 그 결과가 나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같이 제안해주시겠습니까?



3. 지금 분명한 사실은, 공태윤-박성훈 동지가 그만 둔 것, 밖에 없다


이런 저런 각별함을 강조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정작 필요할 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지도 않는데 각별함 따위.


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 되겠습니다. 그 사달과 논란의 끝에서 결국 공태윤-박성훈 동지는 중앙당 당직자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명확하게 받아들이는 사실은 이것 뿐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의 활동 비전을 당에 맞춰가며 일했던 동지들이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당의 미래 회원이었지만, 그리고 진보재편에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나경채 집행부에서도 조직실의 담당자이자 선거관리위원회 간사로 일했던 공태윤 동지와 홍보업무를 총괄했던 박성훈 동지가 중앙당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 둘은 당의 미래 소속이네요. 그리고 또 한명의 당의 미래 회원인 편집실의 정정은 동지도 사직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정말 공교로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오해가 생기게, 나경채 집행부에서도 해당 직위를 유지하고 역할을 해왔던 중앙당의 세 명 동지들이 떠나게 될까요. 짧게는 5년, 길게는 10수년의 진보정당 활동을 해왔던 당직자가 그만 둔 것입니다. 왜 그런 건가요? 누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 좀 해주시죠?


정치가 말의 힘 대신 다수의 위세로 작동하고, 권위가 동의보다 명령으로 유지되고, 피해 당사자의 말보다 지켜야 하는 명분이 더 중요한 상황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금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07년, 2011년에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도 노동당이라는 그릇을 통해서 함께 독립적인 좌파 정당, 현실성 있는 사회주의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신뢰의 끝자락에 서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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