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쓰레기. 진정한 쓰레기들.

by 박찬수 posted Mar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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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은 그 사건 하나로 의미를 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한 조직의 진정한 모습은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여기 80년대 학번이면 '양키 고 홈'이란 단어를 기억할 것이다.

이를 두고서 뭐라고 지껄였나.


특히나, 조직 내부 일이라면 거기엔 니 것 내 것이 없다.

'당규'에 따른 상벌은 분명해야겠지만, 그건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그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잘할거나 문제 없을 땐 '동지'고 잘못하면 무슨 버려야 할 혹은 부끄러운 것인가?

세상에 만상에나 가장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뭐가 부끄러운지도 모른다.

같은 조직에 있으면서 '동지'는 고사하고 '동료 의식'조차 없으면서 무슨 '조직'을 논하는가.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만들어가면 그만이다.

조직은 원래 그런 곳이다.

뭔가 부족하거나 잘못됐으면 내가 만들거나 해결해야지 그걸 대체 누가 하겠는가.

내가 옳거나 잘하면 말하지 않아도 퇴물은 자연스레 사라지기 마련이다.


조직이란 것이 그런 것이고, 조직 구성원 역시 출신, 모습, 인성, 성격, 기호 다 제각기이다.

그래서 무엇은 맞고 무엇은 더 진보적이고 이걸 대체 무엇으로 규정하고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조직이든 그들 내부 간에 얼마든 모임과 결의를 할 수가 있다.

다른 누군가에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도 이 자체가 해당 행위는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과 무리는 언제든 존재할 수 있고 이는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그나마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조건 혹은 합의된

최소한의 토대가 바로 '당헌'이나 '당규'이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한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1차적으론 그들 몫이다.


되려 그 무엇은 안된다고 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자신이 무언가만 된다고 규정하는 것과 같고,

자신의 정치적 무능력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다.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려 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린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화내고도 자기 자신이 똑같은 짓을 하고도 모른다.

이는 마치 그 조직원 개개인의 인성을 논해 누군 되고 안되고를 따지겠단 것과도 별반 차이도 없다.

그렇다면, 그 1호는 바로 당신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떳떳하듯이 돌을 던진다.


난 예수를 존경하거나 좋아하진 않지만, 성인이란 것은 알겠다.

왜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는 돌을 던지라' 했는지.


이가현 글부터 해서 그 누구도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서두에도 얘기했지만, 사건은 그 사전 자체로 의미를 다하지 않는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그 다음에 나오는 행위가 오히려 사건을 규정하기도 한다.


잇권이 개입된 '대표 선거'에 나오면서. 그 어떤 무엇이 있든 그들로 부터 배운 것이 있고

억지부려 없다해도 그들이 활동한 성과 역시도 남아 있는데 그 똥 위에 앉겠다고?

이걸 정의를 실현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의 행위라고?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하고 있네.


더욱이 운동은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정말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나 사람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방법을 찾게 돼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싸놓은 똥 위에 앉고 거기에 잇권까지 갖겠다고?


피해자 중심? 웃기지마라.

이걸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동사무소 민원 처리도 못할 사람이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피해를 받았으면 '당헌'이나 '당규'에 명시된 내용대로

하면 된다.

조직엔 수많은 다른 조직원이 있다.

그들 모두의 모습대로 조직이 존재할 수 잇는가? 답할 수 있는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반대다. 그 모습은 다양한 조직원의 모습으로 갖추는 것이다.

함에도 자신들 문제조차 공론화할 수 있는 방식이 조직에 명시돼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

조직이 어려울 때 일수록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난파된 배에 사공이 많으면 그 배가 가라앉지 살겟나?

한데, 피해자란 사람이 문제가 있단 사람이 문제조차 공론화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도 하지 않으면 이게 되려 더 해당 행위이지 뭔 피해자고 조직원인가.

자기 집에 도둑 들었으면 경찰에 신고할 일이지 길거리에서 마냥 떠들거나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사람에게 화내고 삿대질 하는거나 마찬가지지.

그리 하는건 당신 자유지만, 안듣는 것도 공감하지 않는 것도 상대 자유니

당신은 누굴 탓할 이유도 가치도 없다.


그래도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왜?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문제를 객관화해서 보지도 못하고, 진짜 잘못이 있어도 말하지 아니하고

진짜 잘못을 하고도 뻔뻔할 수 있는, 이게 진짜 해결할 문제다.


운동권이란 울타리에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

적어도 이런 류의 고민은 나오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

지금 출근해야 해서 더 이상은 못 적겠다.


아.. 넨장할... 이 따위 일에 밤을 새야 하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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