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위 소회 -- 절망 그리고 희망과 반성

by 이장규 posted Jul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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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절망스러웠습니다.

당의 전망이란, 단순히 '앞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열심히 해보자'는 수준의 사업계획안이나 당원참여 기획안이 아닙니다. 당이 이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당의 앞날에 대해 회의하고 있는 수많은 당원들이 다시 이 당에서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망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당권파 평전위원들의 결론은 그냥 이대로 가면서 좀 더 열심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전망이야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무엇을 혁신하자는 내용도 원론적인 수준 이상의 구체적인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정파논리에서 당권파를 비판한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그래도 평전위가 그동안 정파간의 자리싸움만 한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 당권파의 문제점이나 당의 철저한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신 분들은 오히려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분들이었습니다. 당의미래 소속인 저는 대부분의 사안에서 오히려 온건한 입장이었습니다. 마지막 회의에서도, 그래도 합의를 해보고자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절충안을 제시했던 것도 당의미래 소속인 저였습니다. 하지만 그조차 당권파 평전위원 분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 당에서 정치적 합의란 게 과연 가능한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 합의는 단순히 '다수결 원칙에 따른 당적 질서를 존중하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적 질서의 존중'을 강조하시는 분들은 과거에 과연 당적 질서를 존중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표적으로 2012년 대선 당시 김순자 후보 파동을 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정치적 합의란 자신과는 생각이 다른 소수파의 입장이라도 그 문제의식의 합리적 핵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름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게다가 무정파인 분들이 오히려 더 깊은 문제의식을 제출했음에도 이를 일정 정도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당적 질서만을 강조하는 것은 이 당을 자신들의 입장만이 관철되는 사실상의 단일정파 정당을 지향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당내에는 당의미래 이외의 다른 정파는 없지 않느냐는 식의 눈가리고아웅은 하지 맙시다. 저는 오히려 신좌파당원회의가 해산한 것이야말로 오만함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이 집권했다고 집권 이후 새누리당을 해산하고 이제 우리 조직이 바로 국가다라고 선언하면 그게 타당한가요? 당내에 이른바 당권파로 통칭되면서 내부적으로는 뚜렷한 위계질서를 가진 정파가 비공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않습니까?

어차피 존재한다면 그 정파는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투명한 의사결정구조에 따라 자신의 노선 및 정책을 제출하면서 이를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비공개로 활동할 경우 정치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책임을 묻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핵심적인 의사결정이 당의 공적 체계와는 별도로 몇몇에 의해 불투명하게 이루어지면서, 그 몇몇은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계속 지도부 역할을 할 경우 이는 명백히 비민주적입니다.

가령 그간 숱하게 자신들의 정치노선이 실패했거나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초반 ‘민중당 개혁추진위’와 ‘우리청년회’ 시절 이후 30년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 핵심적인 의사결정 내지 지도부 역할을 하는 사람이 그대로 유지되고, 해당 정파의 조직원들이 이에 대한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면 이는 민주적인 정파가 아닙니다. 몇 번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거듭했다면 해당 정파 조직원들 스스로가 먼저 정파의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정파의 지도부는 기업의 소유주나 대주주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역시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비공개 지도부만이 아니라 당의 공적 지도부 역시 스스로 책임지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총선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대표단은 물론이고 당의 총선대응을 실질적으로 책임졌던 사무총장이나 정책위의장 등 그 누구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평전위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핑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평전위가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끝난 상태인데도 대표단 및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간의 평전위 활동은 결국 현 대표단과 사무총장 및 정책위의장에게 책임을 회피할 알리바이를 제공해 준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셈입니다. 두 달 간의 평전위 활동이 이렇게 귀결된 것에 저는 절망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대로 절망으로 끝내지는 않겠습니다. 아직 미약하지만 희망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오히려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분들이 당에 대해 더 깊은 고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간 당에서 어떤 자리도 맡은 바 없는데도, 활동 상의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가장 낮은 곳에서 노동당 당원으로 꿋꿋이 활동하면서 당의 앞날을 고민하는 당원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반성합니다. 그간 당을 생각한다는 핑계로, 답도 없는 상층부 논쟁 내지 이른바 '중앙'의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았는지를. 그리고 우리 당의미래 또한 지역과 현장에서 묵묵히 활동하는 당원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하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를 가슴속 깊이 반성합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또한 결국 '오만'했던 것입니다.

지역과 현장으로 다시 내려갈 때입니다. 가장 아래에서부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절망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합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기에.

※ 평전위에 제출한 전망안 관련 입장문을 파일로 첨부합니다. 시간 나실 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가안은 평전위에서 합의되었는 바, 그 합의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별도로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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