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오, 사회당과 만난 3년의 기록 [2]

by 윤성희 posted Jan 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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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원동지들께 드리는 글로 약 3년 동안 우리당에 일어난 일들에 관해 매우 신중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무수한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닌 제가 직접 목격한 것 혹은 당사자에게서 직접 들은 것만 기술하였으며 인물에 대한 존칭은 생략하였습니다.

대개 시간순으로 나열하였고 분량이 많아 2회로 나누었고 2번째 글입니다.

차기 대표단은 저의 진술을 토대로 김길오와 연관인물들에 대한 진상조사위를 재설치해주십시오.

 

 

1. 형님으로 모셔라.

20166월이었습니다.

당시 사무총장 구형구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얼마 전 서천에 있는 김길오 별장에 초대를 받아 갔다.

이른바 사회당 패밀리의 모임이더라.

긴 탁자의 상석에 김길오가 앉고 양옆으로 사회당의 지역책임자들이 앉았는데 김길오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구형구가 사무총장 그만 두면 너희가 그 때도 총장님이라고 부를 거냐. 구형구는 내 친구이니 이제부터 형님으로 모셔라.”

그리고 형님에게 술 한잔 따라드려라고 하니 돌아가면서 형님. 술 한잔 받으십시오.” 하며 술을 따라주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야쿠자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장면 같았습니다. 참 기묘한 조직이다 싶었습니다.

한껏 비아냥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졸지에 새 조직 하나 생기셨네요. 동생 많아 좋으시겠어요.”

그 말이 민망했는지 구형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기는. 이해림까지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참 묘하더라고.”

 

2. 당명개정 처마모임

2017년 벽두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사회당이 당명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당시 금민이 소장으로 있는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이럿타라는 팟캐스트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연구소에 드나드는 상황이었는데 금민이 당명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면서 평등당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구상이야 자유니까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123일 김윤영이 여성위원장으로 출마하면서 올린 출마의 변에 평등당이라는 당명이 등장했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습니다.

당시 부대표 임석영에게 물어봤습니다.

임시당대회 때 평등당이란 당명으로 현장발의를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722일 처마의 신년모임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소원하다가 거의 4~5개월 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중요한 이야기가 오갈 것 같아 파주로 찾아갔습니다.

당내 분위기가 뒤숭숭해서였는지 여느 때와 달리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모임이었습니다.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 참석자는 구형구, 김강호, 김길오, 김수영, 김숙진, 김영근, 박홍진, 안효상, 윤성희, 이갑용, 이건수, 이경자, 이근선, 이해림, 임수철, 정진우, 허영구 등이었습니다.

 

 

3. 안효상, 당이 왜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하나.

처마모임에서 당명개정을 놓고 점차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당명을 이렇게 개정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당명을 바꿔야 한다 격론이 오갔습니다.

전 대표이자 고문인 안효상이 격앙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세요. 지금 정당론에서 정당의 층위가 우리(사회당계)와 다른 거에요. 당명은 시대정신과 정세분석을 반영해서 정하는 거지 당원들이 정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당이 왜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해요? 정당은 정치적 결사체인데 비민주적이라고 문제되는 게 아니에요.”

나중에는 고성이 오갔습니다.

저 역시 현장발의라니 이게 당권파가 할 짓이냐. 내가 기를 쓰고 대의원 반대 조직해서 부결시킬테니까 그럼 당권파는 다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혔습니다.

 

 

4. 새끼를 위하는 애비의 심정으로.

당명에 관해서는 반대가 심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당대표였던 이갑용은 나조차 납득할 수 없는 안을 가져오면 어쩌란 말이냐. 당원들을 어떻게 설득하냐.”고 반대했습니다.

당시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명한 사람은 이갑용, 허영구, 이근선, 임수철, 이건수, 윤성희 등이었습니다.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 지속되고 김길오가 입을 열었습니다.

과거 노동당으로 당명개정했던 당대회의 기억을 말하며 마치 주위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당이라는 당명만 들어도 질식할 것 같다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새끼들 이기는 애비가 어디 있습니까. 새끼들의 절박한 소원을 들어주는 애비의 심정입니다.”

그 후로 처마모임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5. 당원은 당비내고 선거 때 우리 찍어주면 돼요.

저는 건강위 활동 등을 통해 임석영과는 친분이 있었습니다.

개중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당 사람들 중에는 그나마 소통하는 사람 중 하나가 임석영이었습니다.

 

20175, 당시 부대표 임석영과의 통화 중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진보신당 초기, 그러니까 광우병 촛불정국 때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도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라고요.

얼마든지 동의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 후 이어진 이야기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당원은 당비 내고 선거 때 우리 찍어주면 돼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우리끼리의 우리에 내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그 촛불당원인데요. 저는 당비나 내고 선거 때 투표나 하는 당원이 아니에요.”

이 말을 듣곤 나니 당명개정 처마모임 당시 안효상의 발언과 겹쳤습니다.

사회당이 당원을 바라보는 시각을 느꼈습니다.

 

한달 정도 지나 6월 중순에 임석영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청년활동가들이 나이든 당원들 상대해가면서 지역활동 하는 건 못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당협 활성화한다고 해도 당세가 살아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6. 혼전순결, 낙태반대, 그리고 불륜엄벌

201824일 알바노조 폭로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노동당-김길오는 포털사이트에서 연관검색어가 되었습니다.

폭로에 나왔던 혼전순결 낙태반대라는 문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만큼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그 조직이라면 저런 분위기가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김길오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조직은 무엇보다 도덕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서로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조직에서 용납하지 않네. 바로 축출하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불륜에 대해 조직 차원에서의 징계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길오 뿐 아니라 임석영에게서도 들었습니다.

저희 조직은 불륜에 대해서는 단호합니다.”

 

혼전순결, 낙태금지, 불륜금지.

이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입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는 특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7. 김길오 탈당

알바노조 사태 후 지루하게 시간이 흐르면서 대체 사회당의 입장, 아니 김길오의 입장은 뭐냐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사회당의 조직 차원에서의 의견이야 있을 리 만무하고 결국 김길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냐.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는 말이 있어서 몇몇 동지들의 의견을 들어 제가 일단 김길오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만나서 일단 대화의 테이블을 마련하자라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던 중 423일 김길오의 탈당 소식을 들었습니다.

탈당의 변을 읽으면서는 . 진짜 철수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다가 이미 이야기 된 바도 있고 어쨌든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4302, 김길오 탈당 일주일 후 파주 해이리의 커피팩토리라는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8. 당기위원장을 하면 돈과 사람을 대주겠다.

저는 진보신당 쪽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길오와 그의 조직이 당에 많은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고 김길오의 탈당글을 읽으면 참회하며 영원히 떠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탈당한 사람을 만나는 건 부적절한 일이었지만 사회당은 김길오의 지시가 없으면 절대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당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하면 겸연쩍겠지만 받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나서 이런 저런 안부를 묻다가 제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의제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지금은 작게 시작하지만 조금씩 확장해서 광역당부 수준으로 만들 거다. 그 때 사회당 사람들도 들어와서 함께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자 김길오가 말했습니다.

자네 지금 한가하게 의제기구 타령인가? 난 또 차기 대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나 해서 나왔지.”

아마 구교현 대표 출마 당시를 떠올렸나 봅니다.

그래서 이게 한가한 이야기냐고 되물었습니다.

제 기억에 우리는 합당 후 함께 일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같이 일을 해야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드는 것 아니냐, 난 대표가 누가 되는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 상황에선 조금씩 사이를 좁혀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김길오가 제게 말했습니다.

자네 지금 나한테 돈과 사람을 대달라는 건가?”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시냐고 대답하자 마지막 처마모임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그 때 자기가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아냐고 말했습니다.

당명개정을 반대해놓고 이제 와서 뭘 하자는 게 어이없다고 하는 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김길오가 갑자기 얼굴을 제 쪽으로 가까이 들이밀고 말했습니다.

자네. 나한테 너무 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돈과 사람을 대주면 자네는 날 위해 뭘 해줄 건데?”

느닷없는 질문이었습니다.

..? 제가 뭘 해드려야 하나요?”

그러자 김길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당기위원장이 돼서 반대파 놈들을 숙청한다면 내가 돈과 사람을 대주지

터무니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인데요.”

처음부터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어서 물었습니다.

누구랑은 만날 수 있으세요? 절대로 못 만나겠다 하는 사람 있으세요?”

무슨 말이야?”

싫은 사람하고는 죽어도 같이 못 하잖아요. 이 사람하고는 절대로 대화 못 한다 하는 사람 있으세요? 예를 들면 OOO 하고는 같이 할 수 있으세요? 아니면 XXX는 어때요?”

그랬더니 김길오가 씩 웃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지금 살생부를 작성하자는 건가?”

 

9. 발뺌과 망언과 2차 가해

무슨 말을 해도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하는데 이렇게 대화가 비틀릴 수 있는 건가.

김길오는 이어 장황하게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이민정의 글에 대해, 부산 권우상이 전화를 해서 말한 게 있다며 그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심각한 2차 가해성 발언을 했습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사전에 피해호소인 이민정에게 양해를 구했으나 당사자가 더 이상 다치고 아프고 싶지 않다고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해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김길오의 2차 가해 사실만 밝히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당기위나 진조위에서 진술하겠다는 동의를 받았습니다.

 

용윤신에 대해서는 그가 제주도에 머물렀을 때 집과 차를 내주고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는 말이 다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용윤신의 어머니가 돈에 관한 수완이 있어 어느 정도 사는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절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헀습니다.

 

이가현에 대해서는 진상조사위 오창익이 이가현의 장차 시아버지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알 리가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진조위를 맡았으니 진상조사가 제대로 됐겠냐고 분통을 터뜨리길래 그 말에는 대꾸를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일종의 특수관계인인데 제척사유가 될 것 같긴 하네요.”

그러자 김길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근데 그것에 대해 아무도 싸우는 놈들이 없어. 병신 같은 새끼들. 그러니까 윤성희 같이 불의를 보고 못 참는 사람이 나서야지 말야.”

 

10. 내 말 잘 듣는 대표를 세울 거다.

한 시간 넘게 김길오는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당이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아나? 2명의 대표가 내 말을 안 들어서야. 구교현은 자르기라도 했지 이갑용은 자르지도 못 하고. 다시는 그런 대표 안 세워. 내 말 잘 듣는 대표를 세울 거야.”

이 이후로는 저는 별 말 없이 듣기만 했습니다.

놀라움의 정도가 지나치면 아무 느낌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대표 선거 때 지는 쪽이 탈당하는 걸 걸고 한 판 붙는 거다. 우리가 지면 홍세화 선생 필두로 그 즉시 탈당 후 창당한다. 자기들이 이기면 반대파 전부 제명한다.

이런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11. 기인이 아니라 광인

대화 말미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평생 먹고 살만큼 벌어놨어. 이제 내 아우들 중에 아픈 사람 있으면 미국에 치료하러 보내고 이런 데나 돈 쓰면 모를까 아쉬울 게 없어. 혹시 모르지. 저 놈들 다 정리해놓으면 돌아올지.“

마지막으로 그가 덧붙인 말은 이랬습니다.

윤성희가 성질은 불 같아도 이상한 짓은 안 하잖아. 이제 자네도 곧 결단해야 할 순간이 올 거야.”

이상한 짓이라는 게 뭘까. 이 말을 두고두고 곱씹어 봤습니다.

 

이 말을 마쳤을 때 시계를 보니 440분이었습니다.

피로감이 느껴졌습니다.

커피숍을 나오면서 김길오가 어떻게 전화 한통 하는 놈이 없다고 푸념했습니다.

딱 한 명, OO한테만 전화가 왔다고요.

그러면서 또 볼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괜히 왔네요. 앞으로 뵐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합정으로 오는 광역버스에 타고 이 말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까 고심했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잘 안 됐다. 본인이 모욕받은 것에 매우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만 말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영원히 떠나겠다고 탈당글을 올린 사람에게서 이런 말들을 들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해 당명개정까지 불사한다던 내 새끼들병신 같은 새끼들이라 지칭한 것을 우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건가.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저는 한 가지 분명한 입장을 정했습니다.

김길오 말대로 어느 쪽이 나가야 한다면 그건 사회당이라고.

 

 

12. 금민 만남

금민 연구소에서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저녁에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행사가 끝나고 금민과 둘이 맥주를 마시게 됐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간 끝에 금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김길오에게 너는 조직에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고 했어. 그랬더니 김길오가 형님, 반성문을 쓰는 건 쓰는 건데 그걸 누구에게 제출합니까라고 묻는 거에요. 그래서 글쎄다.. 라고 대답했어요.”

그럴 겁니다. 김길오의 오류에 대해 교정할 능력이 없는 조직입니다.

당을 한바탕 휘저어놓은 사건에도 사회당 조직은 제대로 된 입장문 하나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길오의 개심이 아니고서는 바뀔 수 없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3. 강은실 만남

가장 최근인 201810월 하순, 강은실을 한강성심병원 앞에 있는 지하 수제맥주집에서 만났습니다.

김길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전했습니다.

저는 김길오가 그런 말까지 했단 말이냐고 놀랄 것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강은실은 형님 원래 그래. 누가 말린다고 듣냐.“라고 반응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형님에게 대드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고 하면서 전한 일화였습니다.

 

이갑용 대표 체제 때 김길오가 대표직을 사퇴한 구교현을 중앙당에 집어넣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갑용 대표가 반대하자 분노한 김길오가 강은실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직자들 지금 당장 화정으로 건너와!’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강은실 등이 화정으로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김길오와 싸웠다고 했습니다.

 

본인은 무용담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또 한 번 느꼈습니다.

김길오가 뭐라고, 대체 김길오가 무슨 존재길래 업무 중의 중앙당 당직자들을 소집한다는 걸까.

이런 말은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는가.

당에서의 김길오가 공식적으로 맡았던 당직은 선출직 전국위원이 전부입니다.

 

 

제가 이러한 글을 쓴 이유는.

우리당의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입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일들을 개탄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봤자 근거없는 마타도어로 떠돌 것이며 사회당은 또 다시 사회당에 대한 혐오를 멈춰달라. 우리가 2등시민이냐라는 피해자 프레임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참담한 이유는 제가 당원동지 여러분께 대안과 전망을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당의 자신감의 원천은 김길오의 돈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당권을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당원들의 냉소와 외면에 기인합니다.

지난 일들을 되짚어보면 당원들의 이탈에 저 역시 책임이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글인 이상, 제 감정을 싣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차기 대표단에게 다시 한번 요청합니다.

진상조사위를 재설치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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