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엽님에게 : 정치의 과잉, 가치의 빈곤, 소탐대실

by 문성호 posted Jun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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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의 인연

 

제가 누군지 숨기고 있는 느낌이면 곤란할 듯 해서 우리 과거 얼굴 본 적을 밝힙니다. 2002년 대선에서 저는 김영규 선본의 정책국에서 일했습니다. 정책국원이 대학생 2명에, 갓 제대한 청년 한 사람, 막 귀국한 선배 한 명, 이렇게 네 명이었는데 그 대학생 2명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대학생치곤 나이가 좀 많긴 했습니다.) 2002년 당시 대선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던 상속 총액 제한의 제안자이기도 했고, 선거슬로건이었던 “돈 세상을 뒤엎어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놓았던, 오창엽님도 잠시 지지의 뜻을 내비치셨지만 기각되었던 더많은 자유, 평등한 소유의 제안자이기도 했습니다. , 당시에는 본명을 잘 쓰지 않았던 때라 라커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2003년 논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저와 기억이 다르실 것 같습니다. 오창엽님이 기억하고 있는 2003년 논쟁이라 함은 아마도 독립좌파와 현 당권파 등이 당권을 놓고 경쟁한 것을 말씀하겠지만, 제가 기억하는 2003년 논쟁은 성폭력 가해자였던 이일재 선생님이 당대회에서 발언한 것을 두고 학생운동이 문제제기한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글을 쓰자마자 당의미래가 돌아왔듯이, 그 때 문제제기한 학생운동에게는 독립좌파가 돌아왔습니다. 동의에 기반하지 않은 인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당의미래 정치공세가 되어 버리는 지금의 그림이, 성폭력 2차 가해 문제를 제기했더니 독립좌파=배신자가 되어 버린 그 때의 그림이랑 하도 비슷해서 지금의 문제에 대해서 감정이입을 더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전학협, 사회당, 진보신당, 노동당 이외에 속했던 운동은 딱 우리 운동하나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창엽님이 대체로 소수파 편이었다는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합니다. 제 기억에는 오창엽님은 당내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씩 했지만, 당시 *가지라곤 졸 라 없는 개 잡 년 눔의 반동 SEE끼덜!!!”, “상대 이성이 자기를 안는 것을 허용했다면 그 이후에 벌어질 어떤 일도 일정하게 예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다등의 소리가 버젓이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을 때 침묵한 선배였거든요. 더 할 이야기가 산더미 같지만, 일단 접어 둡니다. 이 글의 논지와의 관계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워딩은 당시의 전학협에서 발표한 해결 촉구의 글을 빌어 왔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이게 인터넷 어딘가에 아직 굴러 다니더라구요.)

 

 

2. 이번 사건에 대한 정리

 

저는 게시판에 글을 자주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한 화면에 글쓴이 이름에 두 번 이름이 찍히는 일은 아마도 공가실 사건 이후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사건 덕분에 제가 쓰는 글마다 따라 다니는 분이 생겼지요. ...) 굳이 글을 쓴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오창엽님의 글을 보고 탈당을 고민하는 한 동지를 제가 굳이 또 나서서 말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해결을 위한 막대 구부리기.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막대를 구부렸다면 그에 대한 비판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막대 구부리기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며, 그를 막기 위한 저같은 사람의 출현도 예상하셔야 합니다. 73233같은 글이었다면, 아마 저는 굳이 그를 의식한 글을 쓰지 않았겠지요.

 

지금의 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도 안혜린, 김한울 두 부대표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마 비판의 지점이 조금 다를 겁니다. 대표단 회의에서 합의한 것을 뒤짚는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그런 사과문에 합의할 수 있었지?”에 대한 비판을 들어 마땅합니다. 앞에 제가 쓴 글을 읽으셨다니, 같은 논지의 글은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만 짚어두고 넘어갑시다.

 

최초 사과문의 허위 보고는 없었으나라는 문구 말입니다. 전원 동의가 허위보고가 되지 않는 상황은 딱 두 가지입니다.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 이야기가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보고자가 동의하지 않는 것을 몰랐거나”. 허위 보고가 없었다는 언명만 남은 글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시선을 첫 번째 상황으로 두게 만듭니다. 게다가 두 당직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글들이 뒤로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사과문에 바란 것은 딱 한 줄입니다.

 

의도성은 없었으나 잘못된 보고. 두 번째의 상황이라고 설명하는 사과문 말입니다. 사무총장님이 퇴진하건 말건 저의 관심사가 아니지만, 사무총장님이 처음에 인사는 대표 권한을 내세우지 말고 파악하는데 실수가 있어서 잘못된 보고가 있었습니다고 말씀하셨다면, 문제는 훨씬 쉽게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당내 정파들과 관계없는 제3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유는 이런 것들입니다. 열심히 당을 지켜온 동지들의 퇴진이 불명예 퇴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동의해놓고 동의하지 않았다고 흰소리 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게 하는 것. 상처를 회복하고 당을 중심으로 쌓아온 지금까지의 전망을 다시 구축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불명예 퇴진으로 다 소진하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두 동지에 대해서 니가 잘못한 게 아냐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노동당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저는 사실 오창엽님의 글을 보기 전에는 이 논쟁에서 빠질 생각이었습니다. 구교현 대표님이 영등포당협의 문제제기를 직접 듣기 위해서 당협사무실까지 찾아오셨고, 사실 담화문 내용에 당협에서 한 문제제기를 다 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동의에 기반하지 않은 인사에 대해서 담화문을 통해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담화문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지만, 어차피 나중에 문제제기자의 입장에서 당협에서 입장을 올리게 될 것이고, 저 스스로는 당협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오셔서 의논하신 성의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스스로는 그만하자고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2003년에 사회당 대표가 그러했으면, 저는 아마 오창엽 동지와 함께 사회당에서 진보신당으로 넘어왔겠죠.)

 

 

3. 정치의 과잉, 가치의 빈곤

 

이번 상황에 대한 저의 평가는 이러합니다. “정치의 과잉, 가치의 빈곤

우리는 정당이긴 한데 그냥 정당이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진보정당이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지켜야할 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소수자들과 함꼐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성폭력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람이며, 최저임금을 인상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동의에 기반하지 않는 인사발령에 싸우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노동당입니다.

매끄러운 의사결정 과정, 정치적 합의가 존중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비교하자면, 노동당이 지향하는 가치 쪽에 아무래도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동의없는 인사발령”, “인사는 대표권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노동당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위배입니다.

 

안혜린, 김한울 두 부대표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김한울 부대표님은 뵌 적이 있지만, 안혜린 부대표님은 사실 얼굴도 뵌 적이 없습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되어 죄송합니다.) 정치적 합의가 결코 노동당의 가치에 앞설 수 없다는 관점에서 두 부대표에게 비판해야 할 점은 오창엽님 등이 제기하고 있는 합의를 뒤엎었다가 아닙니다. 노동당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가 발생했는데, “가치의 문제가 정파간의 정치적인 문제로 희석되는 것을 막는데 무능했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래서 합의를 뒤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사과문을 합의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두 부대표만의 문제이긴 한가요? 더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노동당이 "당연히"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정파간의 대립에 의한 것으로 포장하는 행위들이지 않은가요?

 

저는 당의미래였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도대체 왜 당의미래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어야 할까요? 혹시 우리 삼국지일보전진, 이보후퇴뭐 이런 것들하고 너무 친한 나머지 당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석하는 것에 당내 정치세력 간의 문제라는 도구를 서투르게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저를 포함한 문제제기자들이 당의미래였어야지 지금 동의 없는 인사발령의 문제가 당의미래의 정치공세라는 구도가 완성되기 때문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 사건에 대한 제 평가는 정치의 과잉, 가치의 빈곤입니다. 오창엽님의 막대 구부리기에 대한 평가는 과잉된 정치의 왜곡된 폭발이구요.

 

 

4. 소탐대실

 

바둑 이야기를 살짝 하셨는데, 저는 바둑을 둘 줄 모르므로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대신 스타크래프트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2003년 대선 당시 인터넷위원회는 불이 다 꺼진 사회당사에서 밤늦게 스타크래프트를 하시곤 했는데, 없는 실력에 정책자료집 만드느라 일주일에 하루 빼고는 당사에서 숙식했던 저도 한 번 낀 적이 있었습니다. 실력이 형편없는 관계로 깍두기로 끼기도 민망해서 바로 빠졌지만 말입니다.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잘못합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제가 프로토스 유저인데, 질럿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려고 플레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략 시뮬레이션을 롤플레잉처럼 플레이하고, 맨날 집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지는 것보다 질럿 죽는 게 속상한데요. 저는 전술적사고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게다가 잘 하고 싶은 사람도 아닙니다.

 

오창엽님이 소탐대실이라는 표현을 쓰실 때 소와 대가 무엇인지를 한참 생각했습니다. 오창엽님이 생각하는 가 이번 사건이고 가 노동당이 비전, 정파간의 합의 뭐 이런 것이라면, 저는 그냥 소탐대실하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 라는 것에 노동당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동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투쟁하는 동지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도저히 작게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대표단의 권위정파 간의 합의로 보이고 노동당의 가치부당하게 퇴진한 동지로 보이는걸 어쩝니까. 청년진보당 첫 대표였던 최혁님이 좋아하던 말이 우공이산이었습니다. 저도, 그냥 그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창엽님이 보기에는 끝까지 소탐대실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족. 저는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스스로 가지고 있는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입좌파는 되지 말자는 생각에, 제가 하는 활동만큼만 게시판에 글을 쓰기로 한 것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게시판에 글을 너무 많이 써서 자기 검열을 좀 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이 글도 쓸까말까 오래 망설였죠. 반론-재반론 형식으로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글에 대한 반론이 혹시 이어지는데 그에 답하지 못하더라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게시판에 쓴 글들이 너무 많아진 것에 대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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