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당원참여 vs 정파등록제, 정파연합당

by 오창엽 posted Jun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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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당원참여 vs 정파등록제, 정파연합당
- 전국위원들의 책임의식, 노동당 그 가능성의 중심 -


오늘은 노동당의 중장기적인 과제와 관련한 고민을 풀어본다. 평가와전망위원회 활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우연히 합석한 술자리에서 신지혜위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7월 초가 되면 중집, 전국위를 거치면서 어떤 중요한 국면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이후 노동당이 취할 노선과 여러 혁신들에 관한 줄기찬 논쟁이 펼쳐질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가볍게, 최근 내게 생긴 다양한 별명과 지칭들을 소개해야겠다. 문 모 당원은 “홍위병”, “호위무사”라고 했고 윤 모 당원은 “구사대”, “친위대”라고 비아냥거렸다. 심지어 글을 여러 개 쓴 때문인지 “백수”라고 확신하는 당원도 나타났다.


나는 2008년 10월부터 지금까지 택배노동자로 살고 있다. 매일 탑차를 몰고 아침 6시까지 일터에 도착한다. 장시간을 운전 및 짐을 나르며 일한다. 화요일인 어제는 13시간 일했고 오늘은 11시간 분량인데 비가 많이 와서 12시간 걸렸다. 그 동안 아프거나 전날 술을 먹은 이유 등으로 지각, 조퇴, 결근을 한 적이 단 하루도 없다. 여름휴가도 없었다. 직계부모가 돌아가시면 사흘 간 다른 동료들이 대신 해 준다. 그런 내가 글을 쓴다, 써왔다.


소탐대실과 반면교사, 관계와 정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조롱을 하더라도 좀 알고나 하자.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보니 이러저런 말장난으로 위안을 삼는 듯 하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을 천 명 이상 겪었다. 어찌 그리 천편일률인지. 진부하고 식상한 반발들이다. 그런 치졸함으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자신과 상대와 구경하는 사람들의 불쾌감만 높이고 자신의 품위만 떨어뜨릴 뿐이다.


소탐대실 하지 말라는 건 토론을 하려거든 비아냥거리는 욕구를 가능하면 줄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음식의 양념처럼 적당히 가미해야지 그 자체가 전부인 글은 작성자를 부끄럽게 만들 뿐이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그러면 그 철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반면교사로서는 매우 적절한 예가 되겠지만.


나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구형구 선배보다 이장규 선배를 더 좋아했다. 이장규 선배에게는 나름의 존경심도 있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관계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구형구 사무총장의 곤란에 대해 업보라고 생각했으며 미안하게도 내 문제는 아니었다. 구교현 대표의 경우 이름 알고 얼굴은 아는데 그냥 지인이지 잘 아는 혹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심지어 전화번호조차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즉 어떤 세월 속에 다져진 ‘동지를 위한 편들기’의 욕구가 없었다.


한편 이전에 어떤 정파에도 가입한 적이 없다. 신좌파당원회의 회원 가운데 한 명이 작년 여름에 가입을 권유했으나, 훗날을 위해 거절했다. 그 정파가 몇 달 뒤 해산하기에 권유했던 동지를 나무라긴 했다. 겨우 몇 달 뒤 해산할 조직에 가입을 권유했느냐고 그렇게 바로 한 치 앞도 예측 못하느냐고. 한 동안 그 동지가 무얼 제안하면 그때의 경험을 기억하여 귀담아 듣지 않았다.


새 별명들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지키는 것들이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원칙이다. 반칙을 응징하고 무책임을 성토하는 것뿐이다. 늘 해오던 것들이다. 나는 노동당의 정상적인 소통을 촉구하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심각한 신호위반을 한 운전자의 면허를 정지시키는 것처럼 회의와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미사일과 천박한 절충주의


맑스학(Marxologie)의 대가라는 Marximilien Rubel이 맑스 전기들을 추려서 정리한 『맑스-연대기 Marx-Chronik』(1983)를 1990년 아침출판사에서 번역출간했다. 1863년 7월 6일자 편지에서 예니 맑스는 칼이 작업 중인 책을 가리켜 “독일 땅에 폭탄처럼 떨어질, 전지 50장 분량의 책”이라고 한다. 1867년 맑스는 『자본』의 정서를 끝내고 출판인에게 건네주기 위해 함부르크로 갔고 4월 17일 그는 베커에게 자신의 책이 곧 출간될 것을 신문에 보도해 줄 것을 요청하며 “그것은 확실히, 부르주아지(지주를 포함하여)의 머리로 날아갈 가장 효과적인 미사일이다”라고 한다. 당시까지의 미사일 missile은 지금과 같은 로켓이나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날아가는 무기(투창·화살·총알·돌 따위)’의 총칭이었다.


그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자본』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 정치경제학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강령중심의 사회주의자들의 현학취미에도 재료가 되었다. 맑스는 『자본』에서 존 스튜어트 밀을 ‘천박한 절충주의’의 ‘대표자’라고 평가했고 그의 책을 ‘부르주아 경제학의 파산선고’라고까지 비난했다. 아마도 맑스는 밀을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를 위해 개혁하려고 애쓰지만 그 모순만 부각시키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부르주아 지식인이라고 본 것 같다. 맑스는 절충을 나쁘게 생각했다.


집행부, 야당, 여당 없는 당권파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기보다 어리바리한 보수야당을 상대하는 게 안전하다. 더군다나 그 야당은 역시 그에 못지않게 어리바리한 보수여당이 대당하고 있다. 언론을 이용해 양측의 무능을 비난하면서 최고 권력자의 책임, 정부의 책임 논란을 피해간다.


정치개혁과 정권재창출 혹은 정권탈환은 새로운 선명야당이나 여당 내 새 흐름이 주도한다. 물갈이와 나름의 변신 노력이다. 이런 게 꼭 국가 차원의 정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겠는가. 진보정당 내의 정치도 마찬가지다. 구조가 같으면 역할도 비슷한 법이다.


집행부가 있고 야당이 있고 당권파라는 모호한 집단이 있다. 여당이 특정 정파로 모여 있지 않다보니 야당이 집행부와 대표단을 직접 상대하는 형국이다. 이미 결집한 세력과 갑자기 급하게 결속한 세력은 대응속도가 다른 법이다. 파죽지세에 속수무책이었는데, 정신을 추스르고 반격을 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실전 경험이 있는 군인은 다시 연습하지 않아도 바로 전투에 돌입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점은 몇몇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 여당의 부재로 인한 전 당적 휘청거림.


보수 여야당이라는 게 인민의 정치참여를 막고 간접적으로 대리하여 그 강도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심심해서 싸움질을 하고 쇼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것을 하면서 돈을 버는 중이다. 그러니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들은 다 싸움질만 한다며 정치 자체에 환멸을 느끼면 안 된다. 그게 바로 그들의 목적이자 존재이유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민의 실질적인 정치참여를 막고 있는 것이다. 구조를 인식하면 개인들을 탓하지 않게 된다.


소통능력과 정치력 vs 정파등록제, 정파연합당


평소 당원참여를 싫어하는 간부들이 있다. 그것을 회의하고 정보 제공을 귀찮아한다. 소통능력이 곧 정치력인데 그것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자들이 종종 정파등록제를 대안이랍시고 고민한다. 대리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과 비판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정파등록제는 필연적으로 두 거대 정파의 양당체제를 조성한다. 소수정파는 흡수되고 탁월한 개인은 힘을 쓰지 못한다. 원내교섭단체처럼 등록한 정파에게 유리하고 무소속을 특정 정파의 일원이 되도록 압박하게 된다.


그들이 기껏 꿈꾸는 정파연합당은 진보정당사가 보여준 것처럼 지긋지긋한 내부 갈등으로 당원들을 신물 나게 만든다. 진보정치에 무관심하도록 만드는데 기여한다. 그래 놓고 당원참여가 적어서 사업이 어렵다고 핑계를 댄다. 기존의 어떤 정당에서 나온 이들이 새로운 진보정당을 추진한다며 내 놓은 발상이 정파연합당이었다. 소수파의 수세적인 자구책이랄까.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절충주의를 구상하던 그 이데올로그들과 함께 또 다른 당으로 갔다. 제발 그 당에서 정파등록제를 제도화하여 어디 그럴듯한 정파연합당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그 연합들끼리 지지고 볶으면서 그렇게 각자의 몫만큼 지분이나 챙기며 그렇게 지내길 바란다. 그 당이 망하든 말든. 


이렇듯 인적쇄신과 제도혁신은 개혁의 대상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노동당이 정파들의 내부 문제로 인한 소모전에 당력을 쏟는 문화,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파를 없애거나 보완적인 제도를 만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책임 있는 정파들이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그런 당풍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레닌, 정치신문, 기관지, 패권


오랜 세월 망명지에서 고국의 선진노동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전 러시아적 정치신문을 활용한 레닌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소통의 구조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이 당내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수단과 방법이었으므로. 직접 만날 수 없으니 글로라도 아니 글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에게 소통능력은 곧 정치력이었다. 자신의 정견과 정책과 지시를 조직원과 당원들에게 신속하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에게 조직을 달라 그러면 전 러시아를 뒤엎어버리겠다”라고. 자신의 권력의지를 펼칠 수단과 동지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본소득은 싫어하면서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레닌을 닮지 못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당권파가 패권적이라고? 세상 어느 진보정당, 좌파정당의 당권파가 기관지를 장기간 타 정파의 소관 하에 두었는가. 정상적인 당권파라면 하루라도 빨리 기관지를 자신들이 접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그 점에서 지금의 당권파는 착하게 굴다가 두 번 발목 잡혔던 것이다.


그리고 제발 전국위원들이 당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다. 총선 때 선거운동을 안했다고 밝힌 전국위원도 있고 또 투표도 안 했다는 당원도 있는 이 당의 상태를 감안한다. 그들이 지금 무얼 맡고 있다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그런데 전국위원이나 대의원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당원들을 독려하진 못할망정 그렇게 활동하고 아니 안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지.


전국위 결정들에 대한 전국위원들의 책임의식


다시 전국위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공부로 돌아가자. 노동당 전국위원들이여! 전국위에서 결정한 사업들, 전국위에서 설치한 기구들의 활동과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자. 질문도 하고 비판도 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령 대표단 활동비는 매달 얼마로 책정했었는지 그 액수를 알고들 있는가? 두 달 동안의 평가와전망위원회 사업예산은 총액이 얼마인지 그 액수를 알고들 있는가? 당원들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들을 할 것인가.


전국위에서 설치하고 전국위원들이 일부 참여하고 나중에 전국위에 종합 활동보고서가 제출될 텐데, 왜 그 사이에는 아무런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는 것인가. 도와줄 건 없는지, 잘못된 점은 없는지, 지역에서 부문에서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내용을 알아야 전국위에서 그것에 대해 검토하고 질문하고 찬반토론을 하지 않겠는가. 그날 갑자기 안건자료집 펴놓고 고민을 시작하면 너무 늦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관행처럼 그랬어도 총선 이후 당이 존폐위기에 빠졌다고 하는 마당인데.


최근 다른 일로 전국의 동지들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전국위원들이 당내 문제와 어떤 사안들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음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 물론 지역과 부문에서 너무나 성실하게 활동하다보니 잘 모를 수도 있다. 중앙당 당직자만큼 직접적으로 자기 일과 관련되지 않으면 소홀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위는 당의 전국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곳이다. 최고의사결정을 하는 곳이다.


특히 전망 논의는 자신들의 미래와 직결된 내용들이다. 그런 주제들을 놓고 당원들과 이야기 나누고 조직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당원들의 생각을 듣고 토론을 통해 정리한 결론과 입장을 갖고 전국위에 참석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는 언제든 중앙당이나 해당 기구에 요청도 해야 한다. 지역에서 평전위원들과 당원들의 간담회를 연다면 지역당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개별적으로 요청하는 곳에만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기보다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게 더 나은 정치다. 그런 일을 원활하게 하는 게 소통이고 관료들은 일이 늘기에 기피하더라도 당내 정치인들은 그걸 활용해야 한다.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정견을 밝히면서 당원들에게 정보를 주고 판단의 방향을 제시하고 의견을 듣고. 그게 정치 아닌가.


전국위원들조차 모르는 게 많고 관심을 안 가지니 당원들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사실 정보가 부족하면 질문도 어렵다. 당원들은 잘 모르는데 어디선가는 선수들끼리는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노동당 그 가능성의 중심


시간 많은 백수라. 나는 평균 4시간을 잔다. 일마치고 귀가하면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주말엔 야구도 하고 바둑도 둔다. 얼마 안 되는 금쪽같은 자유시간을 쪼개어 당원게시판에 당원들이 알면 좋을 내용을 담아 정치적인 글을 쓴다. 재미없는 걸 억지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어떠한 글도 심심해서 혹은 알량한 호승심에서 작성하지 않는다. 호미로 가능한 걸 가래까지 동원하지 않는다.


내가 전업활동가나 직업상근자가 아니고, 풀타임으로 정치조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처지임을 어떤 사람들은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보다 많이 쓰진 않았을 것이다. 필요한 만큼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투혼을 발휘하여 열 배 이상 정성을 기울일 수 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전국위원 동지들, 나를 동지라 여기는 전국위원들! 자신과 당원들을 위해 조금만 더 분발하자. 각자의 몫만큼 역할만큼 책임의식을 갖자. 노동당을 바로 세우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노동당을 수단으로 발판으로 하여 한국의 진보좌파진영의 중심으로 우뚝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정파싸움의 놀이터로 전락하거나 정파연합당의 수준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오늘 나의 호소가 다소 느닷없고 언급한 주제들이 맥락을 알 수 없게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미리 생각하고 예측한 가운데 맞는 숙제는 모두를 덜 당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주제의 제목들만 기억하고 있어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갑자기 미사일을 맞고 휘청거리지 않게 될 것이다. 절충주의의 산물인 정파연합당은 우리의 미천한 상태를 지속시키고 저열하게도 진위여부 따위나 따지게 만들 것이다. 그러한 혼란은 노동당을 더 나은 미래로가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져온 구질서의 질곡에 허덕거리게 만들 것이다.


지금의 노동당의 모습과 상태는 비록 왜소하지만, 인적쇄신과 제도혁신을 거치고 올바른 수준과 방향과 크기로 혁신을 해낸다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내부를 정비하여 눈을 밖으로 돌리게 된다면 작고 단단한 노동당이 앞으로 개척해 나가야할 과제와 영역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을 것이다. 오랜 세월 헌신해온 동지들이 있기에.


노동자 당원 오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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