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명 논의와 전면적 혁신

by 구형구 posted Feb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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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 논의와 전면적 혁신

 

구형구 (서울 용산 당원)

 

얼마 전에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구교현 전 대표와 김윤영 여성위원장의 글을 계기로 당명 개정에 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노동당 당명을 지지한 이유

 

우리 당은 2013년에 재창당을 위해 당명을 포함하여 강령, 당헌, 당규 등을 새롭게 제정했습니다. 재창당이기에 개정이 아니라 제정이었던 것입니다. 두 차례의 당대회를 치르는 우여곡절 끝에 그해 721일에 노동당으로 당명을 결정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 노동당 당명을 지지한 분들 중에는 고전적 의미의 노동계급 중심적 신념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밖에 각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 자신도 노동당 당명을 지지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의 원래 정의에 따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대립과 가치를 포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서 그 시기의 필요에 따른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습니다. 노동운동의 일부(구체적으론 민주노총 중앙파 일부)가 우리 당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여 그들이 선호하는 당명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내가 소속해 있던 녹색사회주의연대라는 의견그룹에서는 다분히 그러한 정치적 고려에 따라 당명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노동당이란 이름이 왜 문제인가?

 

그로부터 4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대중정당의 숙명인 전국단위 선거를 두 번 치렀습니다. 선거의 결과가 오직 당명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요인이 있습니다. 또한 당명의 영향이 선거 시기에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노동당 당명의 지난 4년에 걸친 현실적 영향을 간략히 평가하고자 합니다.

 

우선 노동운동 일부의 참여를 기대하는 정치적 고려는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훗날 이른바 진보정치 재편’(현실적으론 정의당과 노동당의 통합)을 위한 거간꾼 역할을 자임했으며 결국 정의당에 참여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길게 평가할 이유조차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역사성에서 비롯된 여러 요소들 때문에 노동당이란 이름의 부정적 효과는 애초부터 예상되었습니다. 이런 점들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전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노동당을 자기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과는 다르게 노동이 뜻하는 바는 원래의 정의와 다르게 이해되었습니다. 다수 대중은 노동당이라는 이름에서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이미지를 보게 됩니다. 이는 대중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근거를 갖습니다. 현실에서의 민주노조운동이 그러한 토대를 갖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노동당 이름이 주는 인상을 바꾸는 일은 단지 이미지 개선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말로 설명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고 노동운동의 토대를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다수의 불안정 노동자들을 노동이라는 이름에 묶어 넣기는 불가능합니다. 인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입니다.

 

위의 이유와 연관되는 것으로서,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지 못하는 이미지도 여전합니다. 노동이라는 이름이 원래의 정의대로 이해되지 않고 협소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다양한 대립과 가치를 포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북한 조선로동당과의 혼동도 예상되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예상보다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 노동당이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대중은 조선로동당부터 연상합니다. 역사성을 갖는 일이기 때문에 이 또한 설명으로 해소되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넷에서 노동당을 검색하면 김정은 이름부터 나오는 현실은 대중정당으로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인상이기에 당원들의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불편함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직장생활을 하는 평당원이 직장 동료에게 세액공제 후원을 요청할 경우, 상대방이 당명을 물어본다면 부담 없이 대답할 수 있는 당원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운동진영 내에서의 활동에서는 불편함이 없습니다. 당직자나 활동가 당원들도 이런 불편함을 별로 겪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는 평당원들은 대부분 겪어봤을 일입니다.

 

당명이 주는 영향은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노동당 당명으로 치른 선거 결과를 과거와 비교해보면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명 변경 이후에 수도권 지역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습니다. 반면에 울산과 경남의 대공장 밀집지역은 다소 상승했습니다. 따라서 당명 개정에 관한 의견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당은 전국정당입니다. 당명은 전국적 영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대중정당은 최소한 2년마다 전국단위 선거에서 숫자를 통해 냉혹한 평가를 받는 것이 숙명입니다. 당명에 의한 불편함은 선거 시기에 후보자를 비롯하여 선거운동 일선에서 뛰는 당사자일수록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위에서 예시한 대공장 밀집지역에서도 실제 선거를 치른 후보자나 현역의원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이상과 같은 평가에 근거해서 현재의 당명에 대해서는 엄정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명 논의는 사생결단 아님

 

4년 전에 당명을 제정하면서 많은 우여곡절과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당명 논의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당명에 대한 생각부터 가벼워져야 합니다.

 

4년 전의 당명 논의는 마치 사생결단과 비슷했습니다. 당명은 중요하지만 사생결단할 일은 아닙니다. 한 번 사라진 당을 재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번 지은 이름을 고치는 것은 그보다 덜 어렵습니다. 당명은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을 지키는 일이지, 당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당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떤 이름을 가질 것인지는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습니다.

 

당명 개정 과정도 가벼우면서 또한 진지해야 합니다. 당명을 결정하는 과정이 정파 간의 사생결단이 되거나 인기투표처럼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4년 전의 방식은 당론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분열시키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의견이 모아지는 과정이 아니라 누군가를 패배자로 만들어 불만이 쌓여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합니다. 세몰이나 인기투표로 가서는 곤란합니다. 당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함과 동시에, 강령 논의와 연동하여 우리에게 적합한 이름을 자연스럽게 도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름으로?

 

가장 훌륭한 당명은 당원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을 것입니다. 천명의 당원에게는 천개의 당명이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도 있습니다. 여기서 특정한 고유명사를 언급한다면 위에서 지적한 나쁜 방식, 즉 세몰이와 인기투표의 시작이 될 것이기에 생략합니다. 다만 어떤 이름이 좋을지 간략한 의견만 말합니다.

 

새로운 당명의 방향은 현 당명의 부정적 효과에서 우선 도출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당의 정체성을 협소하지 않게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중이 다르게 이해할 여지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하면 곤란합니다. 명료해야 합니다.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담아내되, 이름이 마냥 길어도 곤란합니다. 이름이 길어서 번거롭다는 측면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당명에 이것저것 갖다 붙이다 보면 만족이 늘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불만이 늘어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불만이 없으려면 당명 글자 수가 한 다스는 넘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으로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야 합니다. 적어도 45인승 고속버스 안에서 소리 높여 부르기 불편하다면 곤란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담은 당명입니다. 신자유주의가 개시된 1998년부터 최근의 광장민주주의까지 대중의 열망과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을 담아내는 당명이라야 합니다.

 

언제 바꿀까?

 

당명은 당헌과 당규 절차에 따라 당대회에서 언제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당명 개정을 논함에 있어서 시기 문제를 뺀다면 하나마나한 공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대중정당입니다. 아무 때나 작명소 찾아가서 이름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대중정당의 당명 개정 시기를 선거 시기와 떼놓고 논할 수 없습니다.

 

당명을 개정한다면 2018년 지방선거를 새로운 당명으로 치러 일정한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내년 지방선거는 금년 대선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대선의 성과가 지방선거로 연결되려면 대선부터 새로운 당명으로 치러야 합니다.

 

정치 일정이 원래대로 진행되었다면 상반기로 예정된 정기당대회가 당명 개정 시점으로 적합했을 것입니다. 2년마다 치르는 정기당대회를 마침 금년 상반기에 소집하기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정기당대회를 앞두고 최소 3개월 전까지 당대회준비위원회를 설치합니다. 이를 통해 당명을 포함한 전면 개혁 논의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조기 대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입니다. 정확한 시기는 헌재 판결에 달렸지만 늦어도 4~5월쯤에는 대선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당명으로 대선을 치르려면 3월 당대회에서 당명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신속한 논의를 통해 3월 당대회에서 당명을 개정하고 새로운 당명으로 대선을 돌파했으면 합니다. 정당은 정치조직이기에 정세의 필요에 따라서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방향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료 당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종합해보니 이런 일정은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명 개정이 사생결단의 과정이 되지 않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인 것 같습니다. 또한 강령을 비롯한 전면 혁신을 동반하지 않고 당명만 시급히 고친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 듯합니다.

현재의 당명으로 대선을 힘 있게 돌파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매우 아쉬운 결론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정기당대회를 예정대로 상반기에 열어서 당명을 포함한 전면 혁신을 논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선 포기를 전제로 합니다. 대선을 힘 있게 돌파하기도 어렵지만 대선을 포기한다는 것도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닙니다. 대선 방침은 대표단과 전국위원회가 현명하게 결정해주기를 평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바랄 뿐이며 여기서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정기당대회에서 전면 혁신을

 

위에서 말한 정황들을 종합하자면 어쨌거나 대선 전의 당명 개정은 불가능해보입니다. 조기 대선에 대응하자면 정기당대회는 하반기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반기 정기당대회를 전면적 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충분한 사전 논의를 통해 당명을 포함하여 강령, 당헌, 당규 등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이는 지난 연말까지 활동한 혁신위원회가 전국위에 제출한 결론이기도 합니다.

 

정기당대회 준비와 동시에 지방선거 준비도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정기당대회가 하반기로 미뤄지기에 당 혁신을 끝낸 후에 지방선거 준비를 시작하면 늦습니다. 최소한의 기획단위라도 먼저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당의 전면적 혁신과 지방선거 준비를 병행하고 그 성과를 결합하여 새로운 체제와 전략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돌파합시다. 이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1년여의 세월은 금방 흘러갑니다. 우리 당을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혁신을 두려워 말고 돌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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